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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0]양을 쫓는 모험
read 26270 vote 0 2010.08.10 (12:41:38)

1. 남자의 자격, 남자 그리고 하모니

 

오늘은 작정하고 뒷북 좀 칠란다. 다들 알겠지만, 예능 프로그램 중에 <남자의 자격> 이라고 있다. 그것은 내가 유일하게 보는 예능 프로그램 이다. 왜 제목을 '남자의 자격' 이라고 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얼추 <무한도전> 과 비슷한 컨셉인 듯. 고정 출연자 인 이경규, 김태원, 김국진, 김성민, 이윤석, 이정진, 윤형빈 이렇게 일곱명의 남자가 나와서, 주어진 미션에 도전하는 프로그램 이다.

 

 

남자의 자격.jpg 

 

 

그 중에서도 지난 7월 11일 방송부터 '남자 그리고 하모니' 라는 미션으로 7명의 고정 출연자가 음악감독 박칼린 씨의 도움으로 거제도 합창대회에 출전하는 중, 장기 미션이 시작되었다. 남자의 자격 멤버를 포함한 34명의 합창단을 구성하기 위하여, 합창단 오디션을 실시하였고, 오디션은 그 다음회인 7월 18일 방송까지 이어졌다.

 

 

 

2. 바닐라 루시의 다해

 

이날의 방송중 하이라이트는 바닐라 루시라는 듣도보도 못한 걸그룹의 배다해의 'Think of me' 였다. 그녀의 노래는 심사를 하는 박칼린 음악감독을 놀라게 하였고, 방송 후에 네티즌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녀는 그것으로 스타가 되어버렸다. 그때의 장면을 다시 한번 감상하시라.

 

 





 나는 성악에 조예가 있는 편은 아니지만, 처음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그녀의 노래는 훈련된 목소리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성악의 발성을 공부하지 않고서야 저런 목소리가 나올리가 만무하다. 아니나다를까? 그녀의 이름을 검색해보니 계원예고 성악과, 연세대학교 성악과를 졸업 했단다. 그러니 적어도 8~9년은 성악을 공부했지 싶다.

 

 

배다해 인물정보.jpg 

 

 

 

3. 음악가의 길

 

그런 그녀의 노래를 듣는 순간, 근사한 노래실력에 감탄을 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울화가 치민다. 물론 그것은 그녀의 탓이 아니다. 내가 화가 나는 것은 나의 추측에 기인한 것이겠지만, 그리 빗나가진 않았으리라. 그녀가 노래를 잘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그런 그녀의 목소리가 어째서 남자의 자격을 통하여 '발견' 되었느냐 하는 것이다.

 

나는 음악을 잘 알지도 못하지만 수년전 우연한 기회를 시작으로 약 2년간 오프라인 연주회를 기획, 주체 한 적이 있다. 24번의 연주회를 기획하면서 수많은 전공자, 비전공자를 만나고, 그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개인적으로는 전공자를 그리 좋아하지는 않다. 클래식 전공자 중에는 간혹 잘난척 왕재수가 있어 비전공자들과 함께하는 연주회 분위기를 깨곤하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클래식 전공자들의 슬픈 스토리는 다들 비슷하다. 우리나라에서 클래식을 전공하면 필연적으로 유학과 세트메뉴로 되어있다고 한다. 입학정원이 30명이라면, 그 중 25명은 유학을 떠난다. 문제는 남겨진 5명의 삶이다. 그들이 얼마나 실력있는 연주를 하건, 감동적인 노래를 하건과 하등 상관없이 그들의 삶은 허물어져 버린다. 각자에겐 각자의 이유가 있다. 내가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던 피아노 전공자는 훗날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되었다고 하면 이해할 수 있으려나?

 

배다해는 28살의 나이로 걸그룹으로 데뷔를 한 셈이다.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걸그룹이 흔하고 흔한 가운데 말이다. 그러니 안봐도 비디오다. 여자가 대학을 졸업하면 대략 24살 정도, 그후 4~5년 동안 아마도 배다해는 머리채 뜯어가며 별별 생각을 다하지 않았을까?

 

전공을 못한 아이들은 꿈을 접고 살고, 전공했지만 유학을 못 간 아이들은 피아노 학원 선생님이 되고, 혹은 전혀 다른 길을 가기도 한다. 유학에서 돌아온 아이들도 음악으로 벌이하기가 녹녹치 않다.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음악으로 밥벌이를 한다. 하늘의 별이 된다는 것이 결코 쉬운일은 아니겠지만,  어째서 음악의 꿈을 접어도, 음악을 계속해도 불행해 지는 것일까? 이것은 '구조의 문제'인 것이다. 바로 전공자가 백수되는 구조이다.

 

 

 

4. 당신이 다해

 

성악과 출신의 박현빈이 트로트 가수가 되어 '샤방샤방'으로 떳지만 그 마음이 오죽할까? 배다해가 속한 '바닐라 루시' 라는 걸그룹은 다들 정통 클래식을 전공한, 하지만 '남겨진 사람들'이 뭉친 결과다. 물론 이것은 대중가요가 클래식보다 천박하다거나 하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그 선택의 기로에서 어쩌면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을 거라는 얘기다. 10년 가까이 한우물을 팠는데, 다른 우물 다시 파라고 하면 졸 짜증나지 않겠는가?

 

 



 

남자의 자격에서 합창단 심사를 맡은 박칼린 음악감독도 배다해의 노래를 듣고 K-pop을 하기엔 그 목소리가 참 아깝다고 하지 않았던가? 위의 동영상은 바닐라 루시의 '비행소녀' 뮤직비디오 인데, 앞서 배다해의 'Think of me'를 듣고 '비행소녀'를 들으면 (본인은 그리 생각을 안하겠지만) 어쩐지 화가난다.

 

대중가요와 클래식의 음악적 가치를 저울질 할 수는 없겠지만, 음악에 있어서 기술적인 요소는 대중가요가 클래식을 따라잡을 수가 없다. 그 자체가 하루 아침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녀의 재능과 열정이 아깝다 못해 안타깝다는 마음이 든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녀의 모습이 비단 그녀만의 모습은 아니기 때문이다. 국어 전공해서 국어로 벌이하는 사람 있던가? 수학 전공해서 수학으로 벌이하는 사람 있던가? 경영학과 나와서 경영하는 사람 있던가? 모두가 꿈대로 살아갈 수는 없다지만, 모두가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사는 구조가 옳은 것인가?

 

 

 

5. 대학교육의 실패

 

이것은 우리나라 대학교육의 실패를 말하는 것이다. 대학 등록금이 비싸다고?, 학자금 대출 이율이 높다고? 좋다! 그건 그렇다고 치자! 졸업 후에는 어쩌란 말인가? 취업하기 위하여 경쟁하라고? 10년 전까지만 해도 여대생이 성경처럼 <상실의 시대>를 끼고 다녔는데, 요즘은 성경처럼 <해커스 토익>을 끼고 다니더라. 아~ 슬프다.

 

사회의 밸런스가 무너진 것이다. 지식의 량은 엄청나게 증가했는데, 사회는 지식을 가치로 환원할 직업이 없다. 기업의 노예가 되어 적당히 타협하고 살아가는 것. 꿈은 잠시 잊고 살아가는 것. 그 잠시가 10년이 되고, 20년이 되고, 30년이 되어가는 것. 사회의 밸런스의 문제를 개인의 능력 탓으로 얼버므리고 있다. 인재를 죽이는 사회, 젊은이는 좌절하고 있다.

 

 

 

 

 

세상의 창, 생각의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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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이미지 [레벨:22]id: ░담░담

2010.08.10 (14:00:15)

목표가 무엇인가에 따라 실패 여부가 판가름 나겠지요 "본 대학교의 사명은 학문의 이론과 방법을 교수하여 사회의 각 부문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고 아울러 학술연구를 진작함으로써 자아의 실현과 국가의 발전 및 인류의 번영에 기여함에"  있다라고 하지만, 말이 그런거고 세력으로 씌워 풀어보면, 우리나라 대학은 통째로 족벌세력에 봉사하고 있습니다. 학벌, 재벌, 언벌 등 족벌세력을 강화하여, 혹은 족벌세력에게 이익이 되는 범위안에서 위 목표를 추구한다는 거지요.

지식량에 걸맞는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족벌세력에 위협이 된다면 노예만들기의 포장은 바꿀지라도 내용은 결코 바꾸지 않겠지요.

족벌세력 입장에선 대학도 잘하고 있고, 이명박도 참 잘하고 있는 것이고,
지성이라면 분노하고, 다른 끝을 볼 준비를 하여야겠지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양을 쫓는 모험

2010.08.10 (14:07:19)

 배다해가 대중가요를 부르는 것을 바라보는 기분은 언젠가 유진박이 시골잔치에서 바이올린 연주하는 사진을 보았을 때와 흡사하오.

유진박-3.jpg

첨부
프로필 이미지 [레벨:22]id: ░담░담

2010.08.10 (17:13:56)

클래식입네 하면서도 하청으로 먹고 사는 넘들에게 장악당한 판인거지요.
이런 판이 한국에서 벌어진다는 것이 대한민국의 실패.
이런 나라들이 판을 친다는 것은 인류의 실패.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0.08.10 (15:35:04)


남자의 자격 오디션 자체의 수준을 높인건지?
아니면 남자의 자격 오디션에 일반인이 아닌 거의 프로들이 참여한다는 것이 문제인지?
조금 헷갈렸소.
연예인이 특별나게 인지도가 없다면, 누가누군지 모르다가도 예능방송에 출연하면 바로 그 사람은 기억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예능은 어쨌든 그 사람 자체에 포커스를 맞춰준다는 것에 있겠지요.
그래서 남자의 자격(예능)에 출연하는 것은 자기를 알리겠다는 것이요. 다른 것에는 신통한 길이 없으니까...
연예인이나, 예술인이나 자기를 알릴 방법이나 길이 한정되어 너무 좁다는 것이 문제이나, 예능이 그 좁은 문을 어느정도 해소하고는 있지만, 그 방법은 그 자체로 하나의 또하나 예능 족벌사회를 만드는 것에 기여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2]이상우

2010.08.13 (02:47:16)

연대 성악과면 학벌을 떠나서 우리나라에서 제일 노래 잘하는 성악과라고 알고 있소.
친한 형이 연대 성악과 나와서 대충 짐작이 있소.
이번에 배다해가 남자의 자격에 나온 이유도 합창이 좋아서가 아니라 연예계에 착근하기 위한 수단이 뻔히 보이는지라...
본래 성악하는 사람들은 합창을 잘 안하죠. 한다면, 돈이 궁해서나 솔리스트를 시켜줘서 하는 거고... 

우리나라는 친근한 느낌, 우연을 가장한 강렬한 첫느낌으로 새끼오리 각인시키듯 연예인들을 시민의 뇌에 각인시키오. 가수의 노래를 제대로 감상하거나  합리적 비판을 하기 전에 이미 옆집 동생으로 만들어서,   좀 잘봐줬으면 하고 은근히 응원해주기를 바라는 찌질함이 엿보이오. 털털한 매력이나 산뜻한 몸짓으로 이미 우리편이 되었으니 잘봐달라는, 공적영역의 사적접근이라 할 수 있겠소.

암튼 양모님 말씀대로 미와 예를 안다는 사람들이 저렇게 헤메고 다닌다니
과잉학생에 택도 없이 모자란 소리의 길에 참담함을 느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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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 노래를 정말 좋아서 하는건지, 자기가 노래를 잘하다보니 남들이 알아줘서 좋아하는건지...
           우리나라 분위기는 좋아해서 잘하는 쪽보단, 잘하니까 좋아하고, 
           자기가 잘하는 걸 즐거워하는 것은 남의 시선에 얽매였다는 것이 안타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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