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의 김대중 공격 안철수가 뜬금없이 한명숙을 공격하고 있다. 대법원 판결이 난 그 시점도 아니고 문재인의 혁신안이 통과되고 있는 시점에 말이다. 한명숙 저격이 김대중 전대통령에 대한 공격이라는 사실을 그는 정말 모를까? 모른다에 한 표! 안철수라면 그럴 수 있다. 그 정도로 아둔하다. 안철수의 원스트라이크아웃제라면 김대중, 노무현은 당연히 아웃된다. 안철수 본인도 과거 배임으로 구설수에 오른 바 있다. 부패청산 좋으나 맥락을 무시한 소급적용은 무리다. 한명숙의 인생전체를 봐야 한다. 그게 정치다. 부패청산은 개인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시스템의 개선으로 가야 한다. 그래서 정치는 어렵다. 도덕성이 중요하지만 송양지인 되기 십상이다. 정치는 언제라도 전쟁의 연장이다. 전쟁터에서는 별 일이 다 있는 법, 공적이 있으면 실수해도 봐주는게 전쟁이다. 이순신 장군도 녹둔도에서 실수했지만 공적이 있었기에 도리어 승진했다. 도덕성 찾다가 적군에게 착하고 아군에게 엄격하면 패배는 당연지사. 안철수가 부패 새누리에만 유독 관대한 것이 그렇다. 최근 깜짝 좌파 붐으로 미국에서 샌더스가 뜨고 영국에서 노동당수 코빈이 뜬다. 무뇌 지식인들이 샌더스나 코빈이나 카터에게 환상을 가진다. 선거하면 줄줄이 깨진다. 이게 이념문제인척 하지만 이념문제가 아니다. 왜 쓰레기 트럼프의 지지율이 높을까? 그게 정치다. 본질을 보라. 정치의 목적은 국민을 잘 살게 하는게 아니다. 사는건 각자가 알아서 사는 건데 왜 정치가 해결해줘야 하는데? 정치의 목적은 집단의 의사결정구조 작동 그 자체다. 정치인은 언제라도 정치를 해야 한다. 의사결정을 해야 하며 그 과정에 다수를 참여시켜야 한다. 의사결정구조를 작동시켜야 한다. 언제나 예열되어 있는 상태라야 한다. 그런데 집단적 의사결정이 필요한 상황이 많지 않다. 어떤 사람이 상온핵융합을 발명해 버렸다면 어떨까? 모든 사람이 그 기술에 눈독을 들인다. 집단의 의사결정이 요청된다. 인류 전부가 한 자리에 모여 대회의를 해야 한다. 집단의 의사결정이 요구되는 때는 기관총과 같은 신무기가 발명되었을 때다. 석유가 발견되었을 때, 신대륙이 발견되었을 때도 마찬가지다. 인류의 운명을 바꾸는 결정적인 변화가 일어났을 때다. 그래서 전쟁이 일어난다. 양차 세계대전은 기관총과 전투기와, 전차라는 신무기의 발명 그리고 석유쟁탈을 위한 제국주의 소동 때문이다. 대란이 있으면 대치가 있는 법이다. 정치판이 시끄러운 이유는 그만한 변화가 계속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혹은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미지의 변화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집단은 언제나 의사결정이 가능한 긴장감 속에 있어야 한다. 잘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극도로 긴밀해져 있어야 한다. 우리가 계급과 차별과 인종과 종교들로 장벽을 쌓고 분리되어 나누어져 있다면? 서로 상관없는 존재가 된다. 상황이 발생해도 동원은 실패다. 서로 무관한 존재가 아니어야 한다. 의기투합이 가능하도록 밀접한 존재라야 한다. 그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도덕도 예의도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긴밀하게 하는 수단의 하나다. 집단의 의사결정을 부르는 변화는 집단 밖에서 일어난다. 고립주의는 멸망의 길이다. 탐관오리 때문에 나라 망한다는건 망상이다. 나라는 고립 때문에 망한다. 인간은 피아를 구분하는 대칭구조가 없으면 의사결정을 못한다. 고립되면 내부를 쪼개 대칭을 만들게 되고, 그 경우 사설권력이 생겨나며 이들이 탐관오리다. 탐관오리와 부정부패는 고립의 결과다.
◎ 초딩생각 – 부정부패를 청산하면 나라가 발전한다.
미국인들이 여성들에게 인기가 좋았던 미남 대통령 워런 하딩을 역대 최악의 대통령으로 뽑는 이유는 고립주의 때문이다. 미국을 일본처럼 생태계에서 고립된 갈라파고스로 만든 거다. 황당한 금주법이 그렇다. 왜 금주법인가? 금주법은 여성의 참정권과 관련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외부에 대칭구조가 없으니 내부에 대칭구조를 만든게 남녀대결, 종교대결, 도덕대결이다. 일베충의 여성혐오 발언도 원리는 같다. 북한이 안 무서우니까 여성을 씹는다. 미국인들이 고립주의로 외국의 시선에서 벗어나자 극단적 내부대결을 벌인게 뜬금없이 착한 청교도가 되어 술 안 마신다는 웃기고 자빠진 짓을 한 거다. ‘내가 더 착하다니깐. 난 금욕적인 청교도라구.’ 서로 이러고 있었던 거다. 일본도 중국과 틀어져 고립주의 노선을 걸은 결과 잃어버린 30년을 착실히 채워가고 있다. 왜 도덕성이 중요한가? 도덕은 고립을 탈피하는 수단이 된다. 정치인이 도덕을 외치는 이유는 역시 젊은 세력으로의 물갈이 의도다. 이게 중요하다. 고립은 외교적 고립 뿐만이 아니라 개개인의 심리적 고립이 있다. 부패로부터 자유로운 젊은이가 더 사회적 유대가 긴밀하다는 점이 각별하다. 젊음이 고립극복의 수단이다. 안철수는 그런 물갈이 의도가 없다. 문재인과의 단일화 때문에 품속에 다 들어온 대통령자리 뺏겼다고 믿고 앙심을 품은 것이다. 도덕은 가부장과 족장들의 사설권력을 제거하여, 국민 개개인을 심리적 고립으로부터 해방하는 길이다. 도덕을 위한 도덕은 가짜다. 반면 술 안 마시는 청교도의 도덕은 도덕을 위한 도덕이다. 잘난척 하려는 것이다. 정치의 진짜 목적은 국민의 마음을 긴밀하게 결속하여 의사결정 중심으로 끌어들이는데 있다. 개개인의 마음을 고립으로부터 탈피시키기다. 나라가 고립되면 망하듯이 국민의 마음도 고립되면 망한다. 인간은 대칭이 없으면 의사결정을 못하고, 고립되면 대칭이 없고, 그래서 괴로워지며, 반드시 내부를 찢어서 대결구도를 만든다. 일베충의 성대결 책동이 대표적이다. 국민 개개인을 심리적으로 고립시키는건 일체의 차별과 계급적 격차, 종교적 적대행위다. 왜 부패가 문제인가? 도덕이 중요해서? 초딩인감? 부패는 사설권력이다. 가부장과 족장의 사설권력이 국민을 심리적으로 고립시킨다. 조중동, 강남기득권, 재벌, 대형교회와 같은 사설권력이 국민 개개인을 국가의 의사결정 중심으로부터 격리, 고립, 소외시키므로 부패가 나쁘다. 부패의 목적은 우월적 지위에 있으며 우월적 지위는 주변을 자신에 종속시킨다.
◎ 초딩생각 -> 국민은 도덕을 좋아한다.
도덕은 이에 반하여 국민을 중앙과 결속시키는 장치다. 도적의 본질은 부당한 중간권력의 배제다. 항상 그러한 것은 아니다. 도덕은 껍데기에 불과하고 본질은 존엄이다. 무엇인가? 정치판에는 싸울줄 아는 반골이 있어야 한다. 무조건 NO를 말해야 한다. 변방은 중앙에 반기를 들어야 한다. 일부러라도 규칙을 어겨야 한다. 그러다보면 감옥에 갇힌다. 80년대 운동권 투사들처럼.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독재자들을 포함해 모두 NO를 해본 사람들이다. 일제에 NO한 이승만부터 민주주의에 NO를 저지른 박정희, 쿠데타 일으킨 전두환, 629 속임수를 쓴 노태우까지 말이다. 김영삼, 이명박, 박근혜도 나름 작은 NO로 입지를 키웠다. 김대중 노무현 두 분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다. 이회창도 김영삼에 한 번 개긴 걸로 떴다. 찬성이냐 반대냐는 중요치 않다. NO는 국민을 의사결정에 끌어들이는 절차다. 지도자의 NO를 통해 국민은 정치에 개입하는 발언기회를 가지므로 유권자는 언제라도 반골을 좋아한다. 정치는 집단의 의사결정을 위해 존재한다. 의사결정 가담은 YES다. 그러나 YES는 NO를 통해 가능하다. 허경영 트럼프가 주류의 정치방식에 나름의 NO를 구사했기에 인기가 올랐다. 그는 유권자에게 마이크를 넘긴 것이다.
◎ 초딩생각 - 미국 보수는 트럼프의 발언내용을 지지한다.
정리하자. 국민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정치의 목적이라는 망상은 김정은과 같은 공산당이나 하는 개소리다. 각자의 존엄을 위해서 정치가 존재한다. 존엄은 집단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것이다.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방법은? 의사결정 현장에 초대되는 것이다. 초대받지 못한다면? NO를 해야 한다. 그래서 천정배도, 안철수도 나름의 NO를 구사하고 있다. 속마음은 ‘나를 중앙무대에 초대해줘.’ 이런 거다. 그렇다면 국민을 그 현장에 초대하는 방법은? 우리는 국민 개개인을 대한민국이라는 의사결정의 장으로 초대해야 한다. 그러려면 모든 차별과 계급과 격차와 장벽과 배타적 태도를 없애야 한다. 그러려면 일단 NO를 구사해야 한다. NO로 발언권 얻는다. YES는 그 다음이다. 같은 방법으로 우리는 인류의 중심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국제무대에서도 역시 NO를 구사해야 한다. NO를 하기 위한 NO는 가짜다. 70억 인류의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존엄을 획득하기 위한 수순이 NO다. NO를 할줄 모르는 범생이들은 정치인 자격이 없다. 국민들이 도덕성 위주로 판단할거라는 믿음은 초딩착각에 불과하다. 특히 지방 정치인은 중앙에 반기를 들 목적으로 선택된다. 그래서 지방유권자는 이상한 사람을 뽑는다. 좋은 사람이 모여 좋은 정치를 할 거라는 믿음은 망상이다. 카터는 좋은 사람이지만 좋은 전직대통령에 불과하다. 왁자지껄 떠들어 집단 구성원 모두를 의사결정에 참여시키는게 정답이다. 답은 동원력이다. 존엄으로 가능하다. 정치의 목적은 집단의 의사결정에 참여> 그것은 존엄> 존엄방법은 NO> NO라고 말하는 정치인에 투표> 결과는 허경영. 명박트럼프 쓰레기의 당선. 이러한 정치판의 몰락은 진보 지식인이 정치의 진짜 메커니즘을 몰라서다. 무엇인가? 진보 역시 국민을 소외시키고 있다. 진보의 병폐는 일베충이나 어버이연합이 알아듣지 못하는 어려운 말을 쓰는 것이다. 박근혜는 쉬운 말 쓴다. 보수는 돈으로 국민을 소외시키고, 진보는 지식으로 바보를 소외시킨다. 존엄이라는 본질, 의사결정 참여라는 본질, NO로 발언권 얻어 무대에 초대된다는 본질, 차별과 계급과 배타주의, 고립주의를 없애야 한다는 본질에서 벗어난 막연한 도덕타령은 카터의 실패를 답습하게 할 뿐이니 그게 사기다. 선한 의도만으로는 선한 결과를 얻을 수 없다. 밀당이라는 절차가 필요하다. 그래서 정치가 어렵다. 정치적 밀당이 국민을 심리적으로 의사결정에 참여시키는 좋은 방법이다. 청교도식 도덕을 위한 도덕, 우월주의 도덕은 가짜다. 국민은 사설권력을 제압하는 수단으로 도덕을 원하지만, 한 편으로는 정치의 본질인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NO를 통해 발언권을 얻을 목적으로, 진보의 지적 경쟁에서 소외된 자신의 존엄을 지키려고 반도덕적인 투표를 한다. ◎ 초딩생각 - 국민은 언제나 도덕군자 정치인에게 투표한다. 모든 것의 답은 존엄이며, 존엄은 때로 사설권력을 제압하는 도덕을 통해서, 때로는 변방에서 중앙을 치는 반도덕적(?) 도전을 통해서 달성된다. 둘은 얼핏 모순된다. 그러므로 정치의 퍼즐을 풀기 쉽지 않다. 알고 떠들어야 한다.
선과 악이라는 이원론의 언어로 보면 정치에 정답이 없지만 존엄이라는 일원론의 언어로 보면 정치에 정답이 있습니다. 선의 반대는 악이지만 존엄의 반대는 없습니다. 존엄을 찾는 행동은 때로 도덕으로 나타나고 때로 도전으로 나타납니다. 둘은 얼핏 모순되어 보입니다. 프로 정치인만이 이 어려운 퍼즐을 풀 수 있습니다. |
안철수는 좀 많이 모자른 거 같아요.
안철수 말대로라면 박정희 남로당원님도 무기징역 살려야 하고
조봉암 선생 명예회복도 시키지 말아야하고
김대중 대통령도 1981년에 형장의 이슬로 가셨어야 하죠.
안철수는 그냥 아무 생각없는 기계적 중립인 인간이 민주개혁세력에 들어온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