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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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1096 vote 0 2014.06.10 (14:39:28)

     

    원순씨는 진보인가?


    구조론 게시판에 쓴 ‘쿠르베, 성기의 근원’편을 참고할 수 있다. 성기를 노출할 의도로 일부러 성기를 노출하면 그것은 예술인가? 그렇다. 예술이다. 의도가 중요하다. 의도가 있으면 예술이다.


    중요한 것은 행위의 주체가 누구냐다. 작가의 노출은 예술이고, 바바리맨의 노출은 외설이다. 주체의 관점으로 보기, 구조론의 1인칭 관점이다. 주체가 작가면 예술이고, 바바리맨이면 외설이다.


    관객이 그 작품을 보고 성적 수치심을 느끼면? 그것은 관객 잘못이다. 누가 그런거 느끼랬느냐고? 내가 느끼지 말라고 그만큼 주의를 줬는데도? 예술은 전쟁, 작가는 지휘관, 작품은 명령이다.


    관객은 전쟁에 참여한 병사다. 병사가 아니면 모르겠으되, 제 발로 전시회에 찾아온 병사라면 지휘관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 중요한 것은 누가 권력자냐다. 작가가 권력자다. 받아들여야 한다.


    쿠르베의 ‘세상의 기원’을 보고 꼴리지 않으면? 쿠르베는 모델을 교체하고 꼴릴때까지 다시 그린다. 그러므로 꼴려야 한다. 꼴리면? 그 현장에서 추방한다. 지휘관 명령을 따르지 않았으니까.


    꼴리지만 그것을 극복해야 한다. 그래서 예술이다. ‘나는 꼴리는데요?’ 혹은 ‘나는 안꼴리는데요?’ 하고 의견을 발표하면 안 된다. 누가 당신 의견 물어봤냐고? 지휘관의 명령을 따르라니까.


    그렇다면 문제는? 작가의 권력이다. 일본의 경우를 보자. 학부모들이 시위를 한다. 만화가들이 야한 만화를 그려서 애들 버려놨다고 따진다. 그러나 일본은 작가의 권력이 세다. 학부모 너 닥쳐!


    이는 작가의 명령이다. 작가의 명령에 굴복해야 한다. 한국은? 만만한게 만화가다. 만화가를 외설죄로 구속한다. 한국은 작가의 권력이 없다. 예술인지 외설인지는 작가의 권력이 정하는 것이다.


    권력있는 작가면 예술이고, 권력없는 작가면 외설이다. 이때 작가의 권력은 작가 안에 있는게 아니다. 만화가 협회에 있다. 모든 한국의 예술가들이 총동원되어 학부모에 저항해야 하는 것이다.


    한국의 모든 예술가연합 대 학부모+기독교집단의 대결구도로 가는 것이며 예술가집단이 이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그래야 선진국에서 끼워준다. 지면? 학부모가 이기면? 후진국 낙인 찍힌다.


    만약 예술가집단이 승리한 결과로 방자해져서 예술로 위장한 외설을 퍼뜨리면? 예술가 위신이 깎인다. 이러한 전개는 전 지구단위에서 판단된다. 한국 안에서 예술가 지위로 판단하면 안 된다.


    인류 안에서 예술가의 지위로 판단하는 것이며, 이를 거부하고 ‘한국은 한국이다’ 하고 외치면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고립되고 해외에서 한국제품은 팔리지 않을 것이며 결국 한국은 굶어죽는다.


    작품 안에는 작품이 없다. 그림 안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한다면 등신이다. 바보냐? 그림 속에 무슨 그림이 있어? 하나의 작품이라도 세계사적 맥락, 인류사의 동적균형 안에서 판단해야 한다.


    세계 모든 예술가의 그림을 한 자리에 모았을 때 그 전체가 커다란 하나의 그림을 이룬다면, 그 세계모든예술집합 안의 1화소다. 70억 인류가 그대로 하나의 예술작품이며 그 안에서 호흡한다.


    그러므로 작가가 ‘이 작품은 예술이다’ 하고 선언하면 곧 예술이다. 관객의 판단은 무시된다. 닥쳐! 관객은 발언권 없다. 작품의 예술성 여부는 인류 모든 예술가집단전체 신용 안에서 용해된다.


    외설을 예술이라고 우기면 예술가집단 전체가 망가지며, 반대로 예술가집단의 신용을 보험삼아 외설도 예술이라고 우기면 예술이다. 대개 다른 작가들이 바통을 넘겨받아 동조하면 예술이 된다.


    이 작품이 예술인지 아닌지는 작품에서 결정되는게 아니고, 사후에 결정된다. 인상주의처럼 선풍을 일으키면 추사의 낙서도 예술이 되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면 걸작도 채소밭울타리가 된다.


    진보도 마찬가지다. 예술이 예술가집단의 사회적 권력에 의해 결정되듯이 진보 역시 진보의 권력이라는 관점에서 판단된다. 진보가 결정하면 그것이 진보다. 의사결정의 관점에서 판단해야 한다.


    조선총독부 건물을 한국인 노동자가 지었다고, 한국의 문화재로 되지는 않는다. 일본인이 설계했으면 일본 문화재다. 당연히 때려부숴야 한다. 한국인이 써도 한자로 쓰면 중국문학에 속한다.


    원순씨가 진짜 진보다. 말하자면 ‘진짜가 나타났다’ 이렇게 된 거다. 정말이지 골치아픈 진짜가 나타나버렸다. 무엇인가? 뿌리깊은 우월주의다. 선민의식이다. 진보는 종자가 다르다는 관념이 있다.


    보수가 생리적으로 싫어하는게 있다.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게 있다. 그게 박원순의 수염 기르고 백두대간 종주나, 배낭매고 도보선거운동이다. 이런건 정말이지 확 짜증나는 것이다.


    보수 입장에서 때려주고 싶은 거. 왜 보수는 박원순을 싫어할까? 진보와 보수는 생활방식부터 다르다. 한국 특유의 양아치형 보수문화는 원래 한국 특유의 비밀요정 접대문화에서 파생된 것이다.


    한국에서 보수가 되려면 종업원에게 반말해야 한다. 정몽준 스타일 나와주시고! 보수는 한 마디로 노예근성이다. 보수가 술집에서 똘끼를 부리는 것은 자기를 비하하여 손님을 편안케 하는 거다.


    종업원에게 반말하는 것은 손님이 자신에게 막 대하라는 암시다. 늘 접대를 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한국의 모든 상품은 사실 남의 것을 훔친 것이다. 한국경제는 한 마디로 도둑경제다.


    도둑질도 노하우가 있다. 외국바이어를 노곤노곤하게 구워삶으려면 자기도 같이 저질로 놀아줘야 한다. 내가 먼저 저질로 행동하여 손님을 같은 저질로 만들면 도둑계약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수호지에서 도둑떼에 가입하려면 살인하고 와야 하는 것과 같다. 같이 저질이 되어야 정서적인 공감대가 만들어진다. 그런데 같이 양질로 되어서 맞추면 되잖아? 이거 안 된다. 해봐라 되는가?


    ◎ 나는 저질이다. 너도 저질해라, 구조론의 균일성 획득 성공.
    ◎ 나는 양질이다. 너도 양질해라. 구조론의 균일성 획득 실패.


    구조론의 마이너스 원리에 따라 평등은 하향평준화일 뿐 상향평준은 없다. 그런데 드물게 시도하는 인간이 있다. 조광조다. 조광조 이 화상은 정말이지 짜증나는 인간이다. 아둔하기 이를데 없다.


    어느 정도냐 하면 오랑캐가 쳐들어 오는데, 왕이 무신들과 전략을 논의하되 오랑캐를 유인한 후 기습하자고 하니 조광조가 반대한다. 동방예의지국이 속임수를 쓰다니 있을 수 없다는 거다.


    오랑캐에게는 점잖게 편지를 써서 설득하는게 맞다고. 이런 미친 넘이 조광조다. 이후 조선왕조는 조광조가 말아먹었다. 최명길에 의하면 병자호란 전후로 연패한 이유는 선비들 때문이라고.


    최명길은 화친을 주장했는데, 그 이유는 조선은 선비들이 상소로 토론해서 전쟁하는 나라이므로 이길 수가 없으니 화친하는게 맞다고. 전쟁은 로마식으로 독재관에게 비상대권을 주는게 맞다.


    조광조는 미쳤지 전쟁도 민주주의로 가서 공론으로 정하자는 거다. 그런데 미쳐도 곱게 미친게 아니고 줄기차게 미쳤다. 조광조가 처음 성균관에 입학했을 때의 일이다. 큰 충격을 받았다.


    성균관 유생들이 아테네 학당의 그리스 학자들처럼 혹은 바닥에 눕고, 혹은 벽에 기대어 자유롭게 토론하는게 아닌가? 조광조는 유생들이 수도하는 스님처럼 꼿꼿하게 앉아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통 이런 미친 넘은 왕따되는데 하나 둘씩 동조자가 생기더니 마침내 모든 유생이 조광조를 따라 선비들처럼 꼿꼿하게 앉아있게 된 것이다. 아니 지들이 언제부터 선비였다고? 이게 말이나 돼?


    원래 성균관은 술도 먹고 기생도 부르고 파티도 벌이며 탱자탱자 놀아나는 귀족 자제들의 놀이터 아닌가 말이다. 술도 없고, 기생도 없고, 파티도 없는 성균관에 무슨 재미로 출입하느냐 말이다.


    조광조는 죽을때도 자신이 죽은 이유를 몰랐다. 조광조가 무신들을 폄훼했기 때문에, 분노한 무사 30명이 무신정변을 모의했고 이에 중종이 선제대응으로 조광조를 제거하여 화근을 없앤 것이다.


    조광조의 기행이 조선백성들의 지지를 받은 것은 아니다. 왜? 잘난척 했기 때문이다. 서자 출신 유자광이 반대편에서 대립한 것도 이 때문이다. 중종은 유자광그룹과 조광조그룹의 균형을 원했다.


    이후 조선은 조광조의 설계대로 굴러갔다. 유교가 종교화 된 거다. 여기에는 선비의 우월의식, 선민의식, 차별주의가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학계는 조광조를 비판하고 유자광을 재평가 하는 중이다.


    어쨌든 조광조가 단숨에 뜬 이유는 선비집단의 선민의식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서자, 얼자, 평민을 차별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정몽주가 바로 복권된데 비해, 정도전이 조선왕조 내내 씹힌 것은 역시 조광조의 차별주의 때문이다. 정도전 역시 천출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보수는 박원순스타일을 생리적으로 싫어한다. 분류하면 김대중, 노무현은 역사의 미션을 받은 전략적 진보다. 문재인은 점잖은 선비스타일의 학구적 진보다. 진중권들은 잘난척 하는 허풍선이 진보다.


    박원순은 보수가 꼴도 보기 싫어하는, 조광조식으로 ‘종자가 다르다’는 우월주의 진보, 광신도형 진보다. 보수가 ‘치가 떨린다’고 말하는 바로 그거다. 보수가 노무현을 싫어하는 것도 이유가 있다.


    원래 진보는 말로 떠드는 건데 노무현은 말이 아니라 행동까지 가버리기 때문이다. 박원순 역시 그렇다. 중 2병이라는 허세를 늘어놓고 그걸 진짜로 실천하는 사람, 엄청난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다.


    진보는 원래 허세고, 허세는 허세로 끝내야 한다는게 보수생각이다. 말로 ‘반미면 어때?’ 하는 것과 행동으로 전작권환수까지 가는건 다른데 말이다.


    지난번 글 ‘진보의 지배가 진보다’를 참고하자. 국가조차 덜 만들어진 부족민 사회는 버섯의 균사가 엉킨 구조와 같다. 내부 스트레스가 임계에 도달하면 폭발적으로 구조가 형성되어 자실체를 만들어낸다.


    버섯에서 식물로 진화한 거다. 그러나 그 안에는 뇌가 없다. 지금 대한민국은 식물에서 동물로 넘어가는 중간단계다. 버섯을 식물로 오해하기도 하는데 균류다. 버섯의 자실체가 식물처럼 보이는 거다.


    진짜 진보는 진보주의 이념과 무관하게 자연의 법칙으로 존재하며, 보수는 돼지가 살을 찌우는 것이고, 진보는 균류에서 식물로, 식물에서 동물로 진화하는 것이다. 균류가 자실체를 얻으면 식물이고, 식물이 뇌를 얻으면 동물이다.


    새끼코끼리가 어른코끼리로 무럭무럭 자라는 것은 보수, 원숭이가 인간으로 진화하는 것은 진보다. 진짜 진보는 우리 안에 집단지성에 의한 의사결정구조를 갖추는 것이다. 그것이 자실체다.


    중요한 것은 식물과 동물의 차이가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정도에 비례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문을 닫아걸고 쇄국을 하면 아무리 잘 먹고 잘 살아도 진보가 아니다. 반대로 문호를 개방하고 해외로 진출하고 세계사를 리드하면 가난해도 진보다. 물론 가난한 주제에 세계사를 리드하긴 힘들다.


    그러므로 쇄국주의 진보는 진보가 아니라 사이비다. 첫째 진보는 첫째 우리 안에 지식인 중심의 의사결정구조를 갖추는 것, 둘째 외국과의 상호작용 총량을 증대시켜 나가는 것이다. 세계사적 의사결정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 균류≫식물 – 진보세력 안에 의사결정구조라는 자실체를 형성한다.
    ◎ 식물≫동물 – 외국과의 상호작용에서 동적균형이라는 뇌를 얻는다.


    이는 생물의 진화법칙을 국가에 적용한 거다. 필자가 이걸 진짜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자연법칙이기 때문이다. 반면 노동자, 농민 어쩌구 하는건 자연법칙이 아니라 도덕적 당위에 기초한 주관적 신념이다.


    도덕적 당위란 사슴이 사자에게 잡아먹히는거 보면 불쌍하잖아 하고 감정에 호소하는 거다. 그게 인간에게 동기부여는 되지만 과학은 아니다. 오늘날 한국 진보의 수준은 딱 이 수준이다. 인간적 감정에 호소하기.


    ◎ 진보는 진화, 보수는 생장이다.
    ◎ 진보는 수준을 높이고, 보수는 덩치를 키운다.
    ◎ 진보는 세력전략을 쓰고, 보수는 생존전략을 쓴다.
    ◎ 진보는 상부구조에서 답을 찾고, 보수는 내부 쥐어짜기로 답을 찾는다.
    ◎ 게가 껍질을 갈면 진보, 껍질에 살을 채우면 보수.
    ◎ 진보는 의사결정하고 보수는 의사를 집행한다.
    ◎ 진보는 머리, 보수는 몸통이다.


    몸통은 머리에 종속되므로 의사결정 측면에서 볼 때, 진보는 있고 보수는 없다. 진보는 독립된 존재자이며 보수는 버섯처럼 기생하는 불완전한 존재다. 버섯의 균사가 자실체를 만들면 진보다. 보수가 뇌를 얻으면 진보다.


    조광조가 숱한 오류에도 불구하고, 의미있는 것은 선비는 ‘진화된 인류’라고 우겼기 때문이다. 이를 입증하려고 서자, 얼자, 평민을 차별한 것은 오류다. 유태인들은 자기들이 더 진화된 특별한 인류라고 여긴다. 조광조가 선비들에게 그런 선민사상을 심어준 거고 그게 먹혀서 단번에 스타된 거다.


    보수가 노무현이나 박원순 부류를 극도로 싫어하는 이유는 진중권처럼 말로만 떠벌이면 이쁜데, 실제로 행동을 해서 ‘종자가 다르다’고 입증하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박원순의 진보 행동주의는 진보패거리들이 뭉쳐있는 균사체 앉에서 자실체를 만들어낸 것이다.


    더 진화한 인류인 것처럼 연출해 보이므로 싫어하는 사람은 극도로 싫어한다. 그런데 극소수지만 그 싫어하는 사람까지 감동시켜 흡인해내는 진짜배기가 역사에 드물게 있다. 정몽주를 모두가 좋아했듯이 말이다.


    정리하자. 예술가의 권력이 예술이다. ≫진보의 지배가 진보다. ≫진보가 내부에 자실체를 만들면 지배한다. ≫자실체를 만들면 종자가 달라진다. ≫ ‘종자가 다르다’고 선전하면 보수들이 골을 내고 집중공격하며, 그들에게 난타를 당하면 이미 루비콘 강을 건넜으므로 박원순은 절대 보수가 될 수 없다.


[레벨:2]지리산인

2014.06.10 (16:18:33)

진짜가 나타났군요.

그들 입장에서는 괴물이 되겠군요.

정몽주는 실패했는데 박원순은 성공 할 까요?

 

[레벨:5]거침없이

2014.06.10 (16:23:44)

최고다. 오늘 글.

[레벨:11]큰바위

2014.06.11 (08:37:00)

원숭이씨는 인간으로 진화하므로 절대 보수일수가 없다. 


[레벨:1]쌩라면

2014.06.11 (11:43:02)

유쾌한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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