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gujoron.com/xe/473235 오세님이 인용한 구조론게시판의 21세기 자본론에 대한 댓글에 내용을 추가하고 있습니다. ### 증세하자는 말은 백만년 전부터 나온 말이니 새삼스러울게 없고, 중요한건 이런 논의들이 다 거짓말 게임이라는 거다. 감세론자들의 거짓말이 더 센 거짓말이라는걸 데이터로 입증했다는 거짓말 같은데, 물론 부분적으로는 맞는 말이 더러 섞여 있겠지만, 어떻든 다 거짓말 공화국 안에서 일어나는 거짓말 게임에 지나지 않으므로 일단은 안 쳐주는 거다. 맹자선생께서 괜히 오십보백보라는 말을 남긴게 아니라는 거다. 본질이 거짓말이면 부분적으로 참말이 섞여 있어도 어차피 다 거짓말이라는 거다. 하등의 가치가 없는 거짓말놀이일 뿐. 이런건 그냥 같은편끼리 모여서 떠들며 시시덕대기 좋은 소리다. 내 견해는 학자는 절대로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는 거다. 정치는 상부구조이고, 경제는 하부구조이며, 정치는 전쟁이고 경제 역시 전쟁이다. 미국이 전쟁으로 세계를 다 먹었고 그 덕에 맘껏 증세를 했다. 놀자판이 벌어진 거다. 그러나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는 법, 신나는 증세놀음에 도끼자루 썩는줄 모르다가 미국경제가 일본경제에 밀렸다. 그때 그시절 미국의 재난은 세 가지였다. 첫째 냉전으로 인한 군비증가, 둘째 석유값 폭등, 셋째 일본경제의 질주. 삼각파도를 맞았다. 결론은.. 미국이 패배한 거다. 왜? 실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판에 달나라 간다니 어쩐다니 하며 흥청망청 놀아먹었으니 당연한 귀결이다. 월남전이라니 이런 사치는 네로황제도 누려보지 못한 사치다. 이 얼마나 사치스런 전쟁인가? 단지 패권국가 기분 좀 내보겠다고 300만 때려죽이기 살인놀이. 증세로 패권전선에서 기분 내다가 경제전선에서 밀리자 아뜨거라 하고 뒤늦게 기업에 실탄 밀어준게 감세다. 그래서 이겼다. 일본기업 다 꺼꾸러졌다. 이겼으니 다시 증세할 때가 된 거다. 증세해서 생긴 돈으로 세계를 다 패죽여야지. 깡패가 깡패의 본업으로 돌아가는거. 경제전쟁의 목적은 세계를 지배하려는 것이며, 돈으로 실탄을 마련하고 그 실탄으로 사람을 죽이는게 미국의 직업이다. 그들은 보통 사람을 죽인다. 그런데 이러한 전쟁의 본질을 위의 링크한 본문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그러니까 이 새끼들은 입만 열었다 하면 거짓말을 하는 거다. 카터때 냉전놀음에 돈 퍼붓다가 미국이 망했고, 레이건때 소련 망한 덕으로 미국이 살아난건 백퍼센트 확실하다. 증세해서 뭐했나? 사람죽였다. 감세해서 뭐했나? 경제 살렸다. 위의 내용이 맞는지 틀렸는지는 차지하고 왜 이런 본질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언급이 없느냐가 궁금한 거다. 사기칠 의도 때문이다. 직업이 거짓말이니까. 최근 독일이 잘 나가는 이유가 뭔가? 감세? 증세? 장난하나? 놀구있네. 초딩이냐? 독일은 EU통합으로 EU를 다 먹은 거다. 땅따먹기다. 그냥 유럽을 통째로 쌈밥으로 싸서 독일 입에다 쳐넣어준 꼴이 되었다. 독일은 2차대전의 가해자다. 피해자가 홀딱 벗고 가해자에게 날 잡아잡슈 하니까 가해자 왈 그래 너를 잡아먹어줄께. 홀랑 털어먹었다.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는 날로 거지가 되고 있다. 지금 독일의 자세는 뻣뻣하기 짝이 없다. 속은 니가 바보지 용용 죽겠지 하는 식이다. 양심이 있으면 독일은 남유럽을 먹여살려야 한다. 책임을 져야 한다. 문제는 독일에게 양심이 있을 리 없다는 거. 양심 있는 넘이 왜넘과 짜고 사람을 1억명씩 죽이나? 이게 전쟁이다. 결국 영토싸움이다. 일본은 고립되었고 패권을 얻지 못해서 죽어가고 있다. 지금 미국이 가진 패권을 일본이 가졌다고 치자. 과연 일본이 지금처럼 이렇게 망가졌을까? 아니다. 독일은 EU를 낼름 먹었는데 일본은 먹을게 없어 거지된 거다. 일본땅이 EU 땅보다 작은 거다. 일본이 사는 유일한 길은 중국시장을 먹는 건데 한국이 중간에서 잘 훼방놓고 있다. 생선가시같은 동남아시장 일본이 껄떡대봤자 먹을거 없다. 증세냐 감세냐는 세금 걷는 기술에 달린거고, 대개 오른쪽 호주머니 돈을 왼쪽 호주머니로 옮기는 뻘짓이다. 그게 중요한게 아니고 신용카드 사용으로 세원이 들통난게 중요한 거다. 법인세를 내든, 소비세를 내든, 상속세를 내든, 재산세를 내든 어디 하나는 걸린다. 이건 세무기술자들이 알아서 할 기술의 문제다. 그 어떤 세무기술자도 마피아 돈과 명바기 돈은 못 터는 거다. 하긴 그네가 맘만 바꾸면 명바기 돈도 구원파 털 듯이 탈탈 털어버리겠지만. 결국 경제는 전쟁이고 전쟁에서 이기는 방법은 첫째 병사를 양성해야 한다. 교육에서 결판이 난다는 거다. 둘째 동맹을 강화해야 한다. EU통합과 FTA같은 시장확대, 경제블록에서 결판이 난다. 일본은 고립되어 망한거. 셋째 실탄지급.. 이건 환율조작이나 감세, 금리조정으로 기업과 가계를 밀어주는 거다. 세금정책도 여기에 포함되나 비중은 작다. 교육으로 차를 만들고, 시장획득으로 도로를 만들고, 경제운용으로 운전을 잘 하면 된다. 교육 잘 하고, 외교 잘 하고, 환율, 금리, 세금 잘 운용하면 경제가 된다. 물론 환율만능, 금리만능, 세금만능, 시장만능, 경쟁만능과 같은 망상은 버려야 한다. 복잡한 구조의 일부를 차지할 뿐이다. 뭐든 만능 들어가면 구라다. 승부는 총구에서 난다. 정신 못차리고 뻘소리 하는 넘은 패죽여야 한다. 전쟁 판에 장난하냐고? 경제가 더 이상 성장을 안 하는 것은 인간의 수요가 원래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식, 의, 주, 차, 휴.. 이 다섯가지 외에 더 할게 없다. 이는 구조론의 질, 입자, 힘, 운동, 량을 거꾸로 나열한 거다. 한국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남자 70퍼센트, 여자 50퍼센트로 평균 60퍼센트라는데 이걸 80퍼센트선까지 끌어올려야 한다. 이런건 세금의 문제가 아니고 교육과 문화, 사회관계의 문제다. 핑계만 있으면 경제활동을 안하는 가부장제 문화를 그냥 놔두고 세금타령, 성장타령이나 한다면 미친 넘들이 아닌가? 가부장제는 여자의 경제활동에만 해당되는게 아니다. 남자도 가부장제 하에서는 형님 믿고, 아버지 믿고, 삼촌 믿고 누구 믿고 일 안 한다. 군대 간다고 안 하고, 대학 간다고 안 한다. 곧 죽어도 본질을 건드려야 한다. 첫째 전쟁.. 둘째 병사.. 셋째 동원이다. 전쟁은 땅따먹기고, 병사는 교육이고, 동원은 경제활동참가다. 이 외에는 경제가 어느 정도 한계에서 더 이상 성장을 하지 않으므로, 이 범위 안에서 최적화만 가능할 뿐 더 이상은 없다. 경제는 절대 무한히 성장하지 않는다. ### ‘돈이 돈을 버는 속도가 노동이 돈을 버는 속도보다 빠르다?’ 구조론에서는 진작부터 돈이 돈을 벌지 노동이 돈을 번 적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당연히 돈은 돈이 번다. 자본이라는 생물이 스스로 성장하는 거다. 지구라는 생태계에 자본이라는 생물이 한 마리 살고 있는 것이며, 이 생물이 스스로 성장을 하는 것이고 다들 여기에 빨대 꽂은 거다. 자본이 스스로 증식하는 것이며, 인간은 자본의 성장환경을 가꾸는 방법으로 옆에서 슬쩍 도와줄 수 있을 뿐이다. 당연히 돈이 돈을 번다. 정치 다음에 경제고 다음은 사회다. 구조론으로는 정치≫경제≫사회이며 이 셋은 따로가는게 아니라 함께 가는 것이다. 그러나 별개의 생물이 세 마리 살고 있다. 하나의 커다란 생명체 안에 간도 있고 심장도 있고 위장도 있듯이 하나의 체제 안에 정치생물, 경제생물, 사회생물이 살고 있다. 큰 승부는 정치에서 난다. 정치가 망하면 경제는 절대로 망한다. 경제가 흥해야 사회도 흥한다. 사회가 흥하면 경제가 흥한다는 되먹임도 있는데 이건 착각이다. 이건 화장실에 잘 가면 밥도 잘 먹게 된다는 말과 같다. 물론 변비에 걸리면 화장실에 못가고 속이 더부룩해서 밥도 못먹는건 맞다. 그러나 열심히 화장실에 간다고 저절로 밥이 생길까? 화장실에 열 번 가면 저절로 부자가 되나? 그건 아니다. 순서는 에너지의 순환경로이므로 반드시 지켜야 한다. 절대 정치가 중요하고 경제가 다음이며 사회는 결과다. 정치와 사회가 밀접하기 때문에 순서를 헷갈리는 거다. 사회라는 생물이 별도로 있다. 흔히 분배라고 하는데 분배가 아니라 소비다. 분배는 잘못 만들어진 개념이다. 사회가 정체되어 있는 것은 소비가 안 되기 때문이다. 경제주체의 소비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에너지의 법칙에 의해 소비력이 크면 그쪽으로 에너지 낙차가 발생하고 돈이 흐른다. 중국경제가 성장하는 이유는 중국의 소비력이 더 크기 때문에 일어난 물리현상이다. 남편이 백만원 벌어서 아내에게 90만원 준다면 남편이 아내에게 분배한 것일까? 아니다. 소비라는 힘든 일을 아내에게 떠넘긴 거다. 아내가 물건을 사도 아내가 소비한게 아니다. 경제단위가 가족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국가가 가족이면 국가 안에서 누가 소비해도 상관이 없다. 생산력 있는 부자가 벌고 소비력있는 가난뱅이가 소비하는 구조를 만들면 된다. 어차피 이건희가 부자이지 건희아들이 부자인 것은 아니다. 아들은 가족 안에서 소비수 역할이다. 부자에게는 생산수 역할을 주고, 빈자에게는 소비수 역할을 주면 된다. 회사에서 일하는게 편하지 백화점에서 물건 사는게 편한가? 소비가 더 중노동이다. 백화점에 두 시간만 돌아다니면 탈진된다. 사흘휴식 처방을 요한다. 근데 그것을 좋다고 마다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신기하지만 사실이다. 분배라는 단어는 지워없애야 한다. 각자 생산하고 소비하는 것이며 문제는 경제단위다. 보통은 가족이 경제단위인데 공공이나 국가도 중요한 소비단위다. 공공소비, 국가소비가 있다는 말이다. 공원건설은 공공소비에 해당하고 전쟁은 국가소비에 해당한다. 물론 꼴통들은 공공소비보다 국가소비를 좋아한다. 왜냐하면 왕따라서 공원에서는 놀지 못하니깐. 탑골공원 외에는 공원이 있어도 없다. 세금 늘리자는 말은 가계의 소비력이 떨어지므로 국가나 공공의 소비력으로 보완하자는 거다. 일본 노인들처럼 지갑에 돈만 많고 소비력이 떨어져 나라를 망치는 수가 있으므로, 국가가 기술적으로 점잖게 노인들 돈을 빼앗아 대신 소비하자는게 핵심이며, 그렇게 소비한다고 한게 시골에 쓸데없이 체육관을 지은 것인데 이게 과연 잘하는 짓일까? 명박이 사대강도 대단한 공공소비인데 이게 잘하는 짓일까? 체육관 지으면 소비가 되나? 안 된다. 시골 체육관은 그냥 흉물로 남는 거다. 관리비가 아깝다. 사대강 관리비도 매년 5천억이다. 미친 짓이 아닌가? 이멜다는 필리핀인들에게 화려한 왕궁을 소비시켜 줬다. 필리핀인들은 이멜다라는 왕비를 소비하게 된 것이다. 과연 필리핀인은 이멜다소비로 마음껏 사치를 누린 것일까? 우리는 화려한 왕궁과 미녀 왕비를 소유하게 되었어 하고 그 사치에 만족했을까? 경제단위는 개인단위, 가계단위, 공공단위, 국가단위, 세계단위가 있다. 자본이라는 생물이 증식하면 부자가 이탈하여 이웃나라로 튄다. 러시아는 돈을 버는 족족 돈이 영국은행으로 도망친다. 러시아가 석유를 팔아봤자 그 돈은 영국돈이다. 일본노인처럼 러시아인들은 소비력이 낮기 때문에, 그 돈을 자체적으로 회전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돈이 쥐새끼처럼 잘도 도망쳐버린다. 사회화 문제는 소비력 문제이며, 소비력은 사회관계의 밀도에 비례한다. 소비력을 높이려면 상호작용의 총량을 증대시켜야 한다. 예컨대 백수 둘 보다 연인관계 1이 더 상호작용의 총량이 높다. 남편이 생산하고 아내가 소비하는 형태로 연계시켜야 상호작용이 증대한다. 반대로 개인화 되어야 개인단위 의사결정이 가능해서 소비력이 증대하는 측면이 있다. 한국의 경우 무채색 자동차만 팔리는데 이유가 있다. 빨간차를 사면 중고차값에서 손해를 본다. 중고차를 사는 사람은 대개 지방에 사는 사람들이고 지방사람들은 가족주의라서 빨간차를 사면 동네 아지매들이 너 바람났냐? 하고 흉본다. 개인화가 되지 않아서 개인단위 의사결정이 안 되므로 빨간차가 팔리지 않고 따라서 한국의 자본주의가 망하는 것이다. 소비력을 증대하려면 의사결정단위가 충분히 개인화 되어야 하며, 동시에 가족화되어야 한다. 또 공공화, 국가화 되어야 한다. 특히 부족주의는 자본주의의 적이다. 부족주의가 개인의 독립적인 의사결정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축제 열심히 하는 나라는 대개 가난하다. 축제야말로 부족문화의 꽃이 아닌가? 증세는 소비단위를 공공화, 국가화 하는 하나의 방법일 뿐 어느 면에서는 감세로 소비를 더 잘게 개인화 시켜야 하는 부분도 있다. 지나치게 소비를 공공화 하면 북유럽 사람들은 호주머니에 돈이 없어서 한국으로 여행오지 않는다. GDP는 높아서 분명히 돈은 있는데 돈이 없다. 개인의 의사결정이 방해되는 것이다. 소비의 공공화와 개인화는 일정한 비례 안에 있다. 팀에 너무 우수한 몇 명의 타자와 투수가 있으면 다른 팀원들은 놀게 되고 팀의 상호작용 총량은 감소하며 생명성은 위축되고 리스크는 증대한다. 그 시합은 이기겠지만, 장기적으로 시합이 승리할 확률을 낮춘 즉 지속가능성이 없는 구조가 된다. 대신 팬을 더 많이 야구장으로 끌어들여 높은 층위로 올라가는 효과는 있다. 그걸로 시장을 키우면 다른 이야기가 된다. 양극화는 팀을 위축시키고 동시에 세계시장이라는 새로운 단위를 만들어낸다. 봉건국가에 왕주와 공주가 있어야 외교가 안정되는 이치다. 닫힌 계에서는 의미가 없다. 부자의 긍정적 역할이 고립된 나라에는 전혀 없다. 고립된 경주 최부자는 주변 1만호를 망하게 하지만 개방된 중국부자는 큰 문제 없다는 의미다. 이 역시 밸런스의 문제다. 분배는 거짓말이고 소비력이다. 경제가 멈추는 이유는 소비력의 감소 때문이다. 소비력과 생산력은 동시에 증대되어야 한다. 생산력은 전쟁과 혁신에 의해 달성되지만 소비력은 사회화에 의해 달성된다. 대부분 후진국은 부족주의에 의한 사회화 실패가 문제다. 의사결정단위가 세팅되지 않아 서로 눈치보고 있다. 부자와 빈자는 소비력이 약하다. 한계효용의 법칙 때문이다. 은퇴한 노인, 노숙자, 스님은 소비력이 없다. 상호작용 총량을 감소시킨다. 물론 스님이 갑자기 불사를 일으켜 새 절을 짓겠다고 나서며 왕성한 소비력을 보여줄 때도 있다. 어떤 부자가 예술가의 그림을 비싸게 사들였다면 그것은 소비실패가 된다. 그 그림은 부자의 창고에 쳐박혀 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부자가 어떤 예술가의 연주를 100만원이라는 비싼 돈으로 감상했다면 그것은 가치있는 소비가 된다. 노숙자가 백만원의 소주를 사먹는 것과 부자가 100만원짜리 음악을 한곡 듣는 것 중에 어느게 가치있는 소비일까? 그것은 그 소비행위가 사회에 일으키는 후방효과의 총량과 비례한다. 노숙자가 소주를 먹고 난 뒷이야기는 없다. 끝. 상황종료. 상호작용을 증대시키지 않는다. 부자의 100만원짜리 티켓은? 그 자체로는 가치없다. 그러나 예술가는 1인당 100만원짜리 연주를 한 것이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가 된다. 연봉 1억짜리 선수 100명이 뛰는 것과 연봉 100억짜리 선수 한 명이 뛰는 것 중에 어느 쪽이 가치있을까? 사회의 상호작용 총량으로 보면 100억짜리 한 명이 낫다. 이 규칙은 선두주자 한 명에게만 적용되는 경향이 있으므로 항상 그러한 것은 아니다. 1억짜리 100명이 더 가치있을 때도 많다. 이런건 다분히 확률의 문제다. 현대의 문제는 생산력의 문제가 아니라 소비력의 문제이며, 소비력을 해결하려면 사회화 되어야 한다. 서로간의 관계가 밀접해야 한다. 관계의 밀도가 낮아지면 부자가 외국으로 튀어버린다. 러시아 꼴 난다. 상호작용의 총량을 증대하는 방법 중 하나는 공공소비를 늘리는 일이다. 버스요금을 무료로 하는 식으로, 개인이 소비를 하지 않으면 손해보는 사회를 만들면 된다. 공짜지만 사실은 그게 공짜가 아니다. 다 세금으로 지출된다. 선소비 후지불이 아니라 선지불 후소비로 가면, 이미 지불했기 때문에 소비하는 사람이 이득을 본다. 무슨 활동이든 무조건 활동하는 사람이 이익을 본다. 일본노인처럼 지갑을 잠궈서 소비기술이 떨어지면 나라가 망한다. 소비기술 역시 교육문제 그리고 사회화 문제다. 젊은이들이 매주 노인을 방문해서 지갑을 열도록 강제해야 한다. 지갑을 잠그면 반드시 손해보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증세는 그 방법 중의 하나다. 결혼을 안 하면, 바람을 안 피우면, 연애를 안 하면, 초식남이 증가하면 반소비사회가 되어 그 사회는 망한다. 상호작용을 증대시키는 소비로 유도해야 한다. 즉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친구, 부부, 가족, 회원, 등으로 연계시켜야 소비가 증가한다. 대부분의 소비는 필요에 의한 소비가 아니라 남이 카톡을 하니까 자기도 카톡을 해야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즉 소통의 레벨 맞추기다. 그러나 반대로 그러한 가족주의가 소비를 방해하는 측면이 있다. 한국인들은 차를 구입해도 개인취향이 아니라 가족눈치로 구입하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망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회화는 가족화와 개인화가 동시에 달성되어야 한다. 어떻든 의사결정총량이 늘어나는 구조로 정밀하게 세팅해야 한다. 아무런 결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로 가면 그 사회는 망한다. 북유럽은 과연 많은 의사결정을 하는 사회일까? 그런 측면도 당연히 있지만 그건 대개 우수한 교육의 효과이고 그 반대의 측면도 있다. 개인이 소비의 주체가 못 되는 경향이 강하다. 결국 균형과 황금비례의 문제다. 분배라는 단어는 쓰지 말라. 거짓말이다. 생산력과 소비력의 밸런스다. 금리만능, 시장만능, 경쟁만능, 환율만능, 분배만능.. 만능주의는 전부 구라다. 경제는 예술이다. 예술은 만능이 아니라 화음이다. 소비력은 단순히 개인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생명성의 문제다. 좋은 작품을 가지고 있어도 남이 알아주지 않으면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걷는 것처럼 소비의 의미가 없다. 사회가 유기적으로 호흡하는 구조여야 하며 그 관계는 긴밀해야 하며 그런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이를 정치로 강제하려는 시도는 대개 실패한다. 결론적으로 좋지 않은 사회는 결국 망한다. 혹은 진다. 경제는 생물이므로 무한성장하는게 아니라 최적화에 이른다. 문제는 환경이다. 피그미나 부시맨처럼 고립되고 극단적인 환경을 만나면 키를 작게 하여 낮은 수준에서 밸런스를 이룬다. 사바나처럼 넓은 환경을 만나면 전체적으로 몸집을 키워서 높은 수준에서 생산과 소비의 밸런스를 이룬다.
경제가 망하는 이유는 가족주의와 개인주의가 안 되어서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가족주의는 핵가족주의입니다. 즉 대가족주의라는 이름의 부족주의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개인단위 의사결정이 안 되어서 망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일단 가족주의가 상당히 진행되어 있으므로 개인주의로 가야 합니다. 구원파들처럼 자기네들끼리 모여서 이상한 부족 만들고 그러면 곤란합니다. 재벌도 혈연으로 얽힌 점에서일종의 타도해야할 원시부족이죠. 선장 쳐다보고 있으면 안 되고 개인이 결정을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개인이 집단에 대해 일정한 영향력과 지배권이 있어야 합니다. 개인주의 한다면서 개인이 고립되면 그것도 아니라는 거죠. 집단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독립적인 의사결정권을 가진 개인이 필요합니다. 그게 소비력이죠. |
이하동문 입니다. 제가 쓰고픈 댓글도 맹달님과 너무 비슷하여;
정치든 경제든 사회든 마찬가지
사실은 먹고살기 위해 경제하는게 아니고
의사결정시스템을 작동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경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사결정환경이 해체되어 있으면 의사결정 안해도 되고 따라서 경제를 안하는 거지요.
안해도 되는데 왜 합니까?
아프리카 사람들이 가난한 이유는 여자들이 집을 짓는 것으로 되어 있어서입니다.
왜 여자가 집을 짓느냐 하면 집을 안지어도 되는데 왜 짓습니까?
그냥 나무밑에서 잠을 자도 얼어죽지 않습니다.
가난뱅이가 가난한 이유는 게을러서 가난한 겁니다.
가난뱅이는 왜 게으를까요? 일 안해도 되는데 왜 일합니까?
경제할 동기가 없는 거죠. 사회화의 목적은 동기부여입니다.
사회구조가 잘못되면 일할 동기가 없는 겁니다.
그동안 학자인척 하는 구라쟁이들이 너무 많은 거짓말을 해놓아서
단번에 바로잡기가 불능이지만 일단은 전부 거짓말이라고 보면 됩니다.
진보나 보수를 떠나 싹 다 거짓말입니다.
학문이라고 타이틀 붙일 수준이 아닙니다.
19세기 서구 과학자의 눈으로 보면 조선 양반들이 하는 학문이라는게 싹 다 거짓말이죠.
마찬가지로 지금 경제학이니 어쩌구 하는게 싹 다 거짓말입니다.
논어? 맹자? 중용? 대학? 싸그리 다 버려. 단 하나도 쓸모없어.
한의학? 풍수지리? 사주관상학? 다 버려!
물론 한의학이나 풍수지리나 사주관상에도 약간의 진실은 있습니다.
그러나 근대 서구 과학자의 눈으로 보면 싹 다 거짓말입니다.
마찬가지로 구조론의 눈으로 보면 전부 거짓말입니다.
진실도 좀 섞여 있지만 통째로 버려야 합니다.
학문은 체계로부터 시작되는 바
한의학도 제법 병을 치료하지만 체계가 없으므로 인정하지 않는 거죠.
정치와 경제와 사회가 각각 하나의 살아있는 생물이라는 것을
또 이 셋이 얽혀서 또다른 전체 생물을 이룬다는 사실을
그게 체계인데 그걸 알아야 본론이 나오는 거죠.
무슨 말씀인지 조금 더(잘 알겠다고 해도 될것을 굳이 조금 이라는 단어를 쓰는 이유는 정말이지 잘 알겠다고 쓰면
거짓말이거든요 제 입장에서는요) 알것같습니다.
첨언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선생님~
생산력과 소비력의 밸런스...
너무나도 당연하고 쉬운 것인데
경제학 학자들의 말은 언제나 이해하기가 어렵다.
생산력과 소비력의 밸런스가 맞지 않다면
부족한 부분은 매꿔주면 되는 것을
왜 학자들은 만능주의에 빠져드는지...
엘런 그린스펀은, 중앙은행의 '이자율'로 통화량과 연계된 경제 전체를 '조절'합니다. 그리고, 미국 내의 경제는 '외국인' 노동자를 통해서 '소비력'을 증진시킨다고, 이미 20년전에 이야기한겁니다.
근데, 증세로, 위기를 극복하자...이게 말이 됩니까. 이미, 투자자들은 중국으로 몰려가고, 신흥시장뿐 아니라, 브레인들이 모이는 대도시로 몰려가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학문이 수단으로 삼는 논리는 전제에서 진술을 뽑아낼뿐,
전제를 발견하여 그 범위를 확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와 다른 착각에 의해 채택된 전제를 기본으로 하는 한
그 위에서 전개된 모든 논리는 죄다 구라가 됩니다.
공공소비,,,국가소비,,회사는 시스템에 의해 작동시킵니다,,,,개인의 의사결정,,,,감사
감사히 읽었습니다.
충분히 소화할 깜냥이 못되는게 아쉽지만 이 글 속에 무언가 대단한 게 있다는 것은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