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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석의 더비평 중에서, "우는 주적으로, 좌는 국가보안법 폐지로 문재인에게 후미에(ふみえ)를 강요했다. "[페북펌] 심상정은 아직도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고 있다. 깨우쳐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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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나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새긴 목판이나 금속판을 길거리에 놓고, 사람들을 불러서 밟고 지나가게 하는 것. 성상은 보통 금속으로 만들었고 후에 가서 물량이 부족해지자 천이나 종이에 동그라미를 그리고 가운데 IHS[1]를 그려(쉽게 말해 성체의 모습) 만들기도 하였다.
가톨릭 신자들이 차마 밟지 못하거나 밟기 직전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하거나 조용히 통회의 기도를 올리는 순간, "너 이 새끼 나의 함정 카드에 걸렸구나."하고 잡아가는 것이다. 심지어 아기들이나 병이 들어 움직일 수 없는 노인들은 후미에를 발에 갖다대는 식으로 행했다. 당사자의 자백에 달린 문제이니 만큼 별 효과가 없어 보이는 방법이지만, 의외로 시행되었을 당시에 신자들에게는 엄청난 효과를 발휘해서, 이로 인해 잡히고 고문을 당하고 순교한 신자 수가 어마어마하다. 물론 막부도 다 죽이는 건 꺼림칙했는지 배교하면 살려 주겠다고 했지만 대부분이 배교를 거부하고 죽음을 선택했다.[2]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 다 방법이 생긴다. 신자들이 좀 줄었을 때 막부는 길거리가 아닌 각 마을별로 에부미를 실행했는데, 보통 정초에 했다. 에부미 날짜가 마을에 공지되면 신자들은 에부미 전날에 발을 최대한 깨끗이 씻고, 또 최대한 성상의 얼굴을 피해 밟으며 집에 와서는 즉시 발을 씻어 그 물을 통회의 뜻으로 다 마시고 기도를 바쳤다고 한다. 당시 극심한 박해와 탄압으로 사제가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고해성사를 볼 수 없었던 만큼 신자들 나름의 방법이었으리라. 이후 1854년에 쿠로후네 사건(흑선 사건)으로 일본이 개방하게 되면서 없어졌으나 암묵적인 압박은 이어지다가 1939년에 교황 비오 12세가 '유교 문화권의 조상 제사는 민속적 관습일 뿐 가톨릭의 교리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라는 칙서를 발표하면서 가톨릭에 대한 압박은 조금 줄어들었다. 참고로 가톨릭을 탄압했던 이유는 다름 아닌 국가신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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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은 후미에를 밟게 하는 에부미로 기독교도 20만명을 죽였다.
심상정의 소행은 인간이 아닌 악마의 행동이다.
악마는 언제라도 우리의 주적이다.
많은 사람이 밟아서 성모의 얼굴이 뭉개져 있다.
엔도 슈사쿠의 침묵이 그 원작입니다.
문제의 장면
앞선 동영상은 일부 잘린것 같아서 다시 올립니다. "유승민 > 홍준표 > 심상정" 순서로 문재인을 공격합니다. 같은 편이 등 뒤에서 찌르는 행위.
1970~80년대 명문대의 교육목표는
Yes or No만 대답하라! 인가보다.
어떻게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단세포로만 생각해서
Yes와 No만 강요하나?
본인의 일기장에도 Yes or No로만 쓰지는 않겠다.
심상정, 홍준표, 유승민, 안철수는
논술고사 테스트 후에
별도로 대통령시험 보고 나와야 겠다.
안철수를 좋아하는 5~60대 주부들이 하는 말이
안철수가 스펙이 좋기때문이란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많다.
서울안에 있는 대학을 보내기 힘든 학부모들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안철수가 어리버리하지만
뭔가 한방을 가지고 있어서
위기가 올 때에는 잘 헤쳐 나가리라 생각한다.
보여지는 것을 믿지않고
뭔가 하나 있을 것 같다고 하는데 아무리봐도 없다.
"박근혜가 누구 딸인디... 지 애비한테 보고 배운 것이 있을겨..."
"얼마나 잘 할 건디... 안봐도 알지..."
그랬더랬죠...
마틴스콜세지의 침묵(Silence, 2016)이 저걸 다룹니다.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parkman7&logNo=2209474330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