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깨닫기
깨달음의 목적은 자유다. 자유는 서구의 개념이다. 그러나 노자의 무위, 공자의 중용, 석가의 해탈에 자유의 의미가 있다. 자유도 여러 가지다. 리버티(liberty)가 있고 프리덤(freedom)이 있다. 리버티는 해방이다. 억압에서 풀려남이다. 이는 온전한 자유가 아니다. 프리덤은 겨우 무대 위에 오른 것이다. 아직 내 안의 끼를 발산하지 않았다. 사랑이라는 결실로 나아가지 않은 잠재적이고 미완성의 것이다. 진정한 자유는 자기완성이다. 깨달음은 목적은 자기완성에 있다. 문제는 그 완성이 나의 내면에서만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자유는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 마음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내 마음이 마음대로가 아니면 마음대로 하여도 마음대로가 아니다. 마음은 머금는 것이다. 속에 머금은 의도가 있어야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내 본능과 감성이 나의 의도와 일치할 때 마음대로가 된다. 내 마음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마음에 머금은 것이 있어야 한다. 먼저 의도가 있어야 한다. 그 의도가 세상과 맞서 가치로 발전해야 한다. 속에 머금은 것을 자유로이 풀어주어 진동시켜 세상에 전파하는 것이다. 울림과 떨림이 전파되어야 한다. 나의 마음이 세상의 마음과 공명해야 한다. 화가는 속에 머금은 그림의 재능을 드러내고 연주자는 머금은 연주의 재능을 드러내어야 한다. 그렇게 날을 세우고 주파수를 맞추어 공명시킨다. 자유는 나의 완성이다. 리버티는 결함의 치유다. 프리덤은 완성된 나를 무대에 올려놓기다. 진정한 자유는 무대 위에서 마음껏 발산하기다. 자유의 성취는 사랑이다. 사랑으로 결실하지 않으면 자유가 아니다. 나의 완성이 전파되어 세상의 완성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자유가 아니다. 진정한 자유는 모든 가치판단에 있어서 내가 선택의 우위에 서는 것이다. 능동적으로 개입하고 주도적으로 판단하며 적극적으로 선택한다. 두려움을 극복함은 리버티다. 석가의 해탈은 리버티에 가깝다. 마조의 평상심은 프리덤이다. 선종불교의 소요자재는 프리덤에 가깝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