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론이란
read 3093 vote 0 2003.08.01 (14:27:02)

게시판을 상단의 Board(뉴스블로그)로 옮겼습니다. 이 게시판(Column)은 서프라이즈에 연재되는 칼럼 위주로 게시합니다.

80년대 초에 나온 영화 『블레이드 러너』를 기억하시는지. 이 영화는 2017년의 근미래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20년 전의 예측이 과연 얼마나 맞았는지 지금의 현실과 비교해보는 재미가 쏠쏠한 것입니다.

이상적인 사회는 국민 모두가 자영업 혹은 자영업에 가까운 형태의 노동에 종사하는 것이다.

영화는 인간과 똑같은 생체로봇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우주로 이민을 떠나고 있는 그야말로 초과학혁명의 시대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수백층의 고층빌딩 사이를 우주선이 총알처럼 빠른 속도로 날아다니고 있는 거지요. 그런데 컴퓨터는 도스를 쓰고 있고 마우스는 아직 발명되지도 않았습니다.

문제는 이 엄청난 초과학의 사회가 불과 14년 후의 근미래라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간 것입니다. 14년 후에 그런 꿈같은 시대가 오리라고는 아무도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영화의 무대를 서기 2500년 쯤으로 설정하면 어떨까요? 틀렸습니다. 500년 아니 일천년 후에라도 영화가 묘사하는 그런 과학만능, 기계만능의 시대는 결단코 오지 않습니다!

예상은 빗나가기 위해 존재한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20세기의 벽두에 세계의 내노라 하는 전문가들이 모여서 100년 후 21세기의 미래를 예측한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100년 세월이 흘 렀습니다. 과연 1세기 전 세계 석학들의 예측이 얼마나 맞았을까요?

텔레비전과 전화의 시대는 누구나 예측할 수 있습니다. 카메라와 전신이 이미 발명되어 있었으니까요. 인터넷을 예측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합니다.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로봇천국의 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적중률은 30퍼센트를 넘지 않았다고 합니다. 미래예측은 그만치 어렵습니다.

듄이나 스타워즈류의 SF영화들은 미래를 그린다면서 반쯤은 과거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중세의 갑옷처럼 생긴 로봇이 중세의 무기인 장검을 휘두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 칼이 광선검이기는 하지만 전투하는 방식은 1천년 전의 낡은 전술을 답습하고 있습니다. 1천년 후 까마득한 미래에 말입니다.  

인간들이 미래를 예측한다면서 실제로는 과거를 예측(?)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측들이 대개 빗나가는 이유가 그 때문입니다. 하물며 200년 전의 마르크스가 오늘의 현실을 정확하게 예측하기를 기대한다건 말이 안되지요.

미래의 경제는 집단자영업 위주로 간다
마르크스는 하루 4시간 노동하는 이상적인 사회를 상상했습니다. 선진유럽의 경우 주 30시간 노동에 근접하고 있으므로 마르크스의 예상이 아주 빗나간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4시간 일하고 남는 나머지 20시간에 무엇을 할 것인가입니다.

마르크스의 예상이 큰 틀에서 빗나간 것은 마르크스 역시 과학혁명에 지나치게 기대를 걸었기 때문입니다. 하긴 인류가 저온핵융합에만 성공만 했다고 해도, 벌써 전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사회주의 낙원에서 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마르크스가 꿈꾸었던 유토피아는 인류의 생산력이 고도로 발달한, 재화가 넘치는 물질 위주의 사회입니다. 과연 그런 세상은 올까요? 절대로 오지 않습니다. 미래사회를 움직이는 본질은 4시간의 노동이 아니라 나머지 20시간의 활동입니다.

생산과 소비의 개념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요즘 애들이라면 그 남는 20시간 동안 게임이나 웹서핑을 하고 있는데 이건 생산입니까 소비입니까? 경제학자들은 그것도 소비라고 우기고 있는데 실제로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입니다.

마르크스는 현대자동차와 같은 대규모 공장, 포드시스템, 표준화, 획일화, 대량생산, 대량소비로 표상되는 모더니즘체제의 사회상을 상상했습니다. 대다수의 노동자는 대기업에 취직하고, 대기업은 상품생산 뿐 아니라 출산에서 의료, 교육, 노후보장 등 인간의 삶 전반을 책임지는 그런 이상적인 사회입니다.

생산력이 남아돈다면 이런 사회가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런 세상은 앞으로도 절대로 오지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미래사회의 본질은 4시간의 노동이 결정하는 생산력이 아니라 나머지 20시간의 활동이 결정하는 창의력이기 때문입니다.

마르크스의 이상향은 집단의 효율을 추구합니다. 효율의 추구는 인간의 활동을 위축시키고 개개인의 역할을 감소시킨다는 점에서 오히려 인간을 소외시킵니다. 남는 20시간 동안 할 일을 찾아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르크스의 유토피아는 굴뚝산업의 유토피아에 불과합니다. 굴뚝산업은 이미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물론 산업의 패러다임이 10년이나 20년 만에 바뀌지는 않습니다. 변화는 느리게 진행됩니다. 자동차산업은 아마 100년 후에도 건재할 것입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변화가 밑바닥에서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습니다.

창의력이 생산력을 대체하는 시대가 온다
미래의 이상적인 사회는 대다수 노동자가 자영업, 또는 『집단자영업』에 종사하는 사회입니다. 대규모 공장, 대규모 노조에 기반한 서구식 사민주의의 개념은 이미 흘러간 노래가 되었습니다. 인터넷이 약속하는 미래는 기존의 통념과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것입니다.

예컨대 옥션의 경우 이미 집단자영업의 구조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다수가 하나의 시스템 기반을 공유하며 각자 알아서 먹고사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무한경쟁이 일어나지만 그 경쟁은 착취의 경쟁이 아니라 창의의 경쟁입니다.

노동의 량은 큰 의미가 없고 대신 노동의 질이 문제가 됩니다. 양질의 노동은 창의적인 노동입니다. 집단자영업은 창의적인 노동을 얻어내기 위한 시스템구조입니다. 벤처기업의 스톡옵션이나 연봉제 또한 이와 같은 패러다임에 속합니다.

가격이 더 이상 주요한 요소가 아닙니다. 예컨대 최근 모 인터넷사이트에서는 짝퉁 명품구하기가 유행이 되어 있습니다. 과거라면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개념입니다. 전혀 다른 시대가 오고 있는 것입니다.  

선진국에서 노조조직률이 떨어지는 것은 노동운동이 약해져서가 아니라 전통적인 개념의 노동자 숫자가 감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절대자원이 감소한 것입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외국인노동자가 30만에 육박하고 있는 데서 보듯이 전통적인 개념의 노동자 숫자는 상당히 줄어들고 있습니다.  

유럽식 사민주의가 우리나라에 맞지 않는 이유는 후발주자인 우리나라는 대량생산, 대량소비, 표준화, 획일화, 포드시스템, 굴뚝산업으로 표상되는 모더니즘 시대를 너무 빠르게 통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의 공장으로 떠오른 중국이 모더니즘을 통째로 인수해 가버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좌파들도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여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 합니다. 인간은 점점 기계에 밀려납니다. 소외된 인간을 기계로부터 구원하는 것은 대기업노조와 유럽식 사민주의가 아니라 서비스업과 IT산업, 새로운 업태인 집단자영업 그리고 상대적으로 자영업노동자에 가까운 계층의 이해를 깊숙이 반영하는 형태의 사회입니다.

미래사회를 규정짓는 코드는 생산과 소비가 아니라 활동과 역할입니다. 생산력부족이 아니라 활동부족, 상품빈곤이 아니라 역할빈곤이 사회적인 문제가 됩니다. 노동자의 주요한 협상조건인 노동강도와 노동시간은 상대적으로 비중이 줄어듭니다. 대신 노동의 종류와 노동의 형태가 문제로 떠오릅니다.

이상적인 사회는 국민 모두가 자영업에 종사하거나 혹은 자영업에 가까운 형태의 노동에 종사하는 것입니다. 회사택시보다는 개인택시를 모는 것입니다. 어느 면에서 비효율적인듯 하지만 총체적으로 인간의 활동을 늘리고 개개인의 역할을 증대시킨다는 점에서 더 바람직한 사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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