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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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9016 vote 0 2009.09.15 (19:41:11)

한국형 지성의 역할모델
‘정치 그리고 지성이란 무엇인가?’

정치는 집단의 의사결정 구조다. ‘개인의지’에서 미디어에 의한 ‘의사소통’, 정당에 의한 ‘의사결집’, 선거에 의한 ‘의사결정’, 권력에 의한 ‘의사집행’으로 가는 1사이클이 있다. 그 안에 에너지 순환이 있다.

의사결정구조 자체가 진화한다. 그 안에 숨은 역동성, 생명성, 역사성을 포착할 일이다. 정치는 그렇게 살아있다. 살아있는 정치의 몸통과 심장과 뇌가 있다. 그 의사결정 구조의 뇌가 지성이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다. 삶은 개인 단위로 출발하지만, 삶을 전개시킬 무대와 동기와 목적은 그룹 단위에서 조달된다. 그룹의 존재는 불투명하지만 전쟁 등으로 집단의 운명이 결정되는 지점에서 명백해진다.

정치가 개인과 그룹 사이의 고리가 된다. 지성은 개인이 사회화 과정을 거쳐 가족, 지역, 국가를 넘어 최종적으로 세계를 발견하게끔 이끄는 것이다. 문제는 그 세계의 뇌가 조직되어 있는가이다.

개인은 뇌가 있고 그룹은 리더가 있고, 국가는 정부가 있다. 세계는? UN인가? 아니다. 세계의 뇌는 인류의 집단지성 네트워크다. 그것은 무형의 존재다. 그래야 한다. 왜? 진화하기 때문이다.

세계정부 아이디어라든가, 혹은 제국주의 발상의 대두는 세계 단위 의사결정 문제가 제기되었음을 의미한다. 그것이 어떤 유형의 것으로 가시화 될 때 도리어 인류의 목을 조르는 결과가 된다.

지성은 더불어 진보하는 세계의 동그라미 안에서 자신의 좌표를 확인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진화하는 세계정신의 역동성 안에서 자신의 포지션과 임무를 깨닫고, 나아가는 방향성을 깨닫기다.

인류의 눈, 세계의 두뇌 역할을 해야 한다. 유형의 권력이 아니라 무형의 집적된 밸런스 형태다. 세계 지식인의 이심전심에 의한 무형적 연대 관점이 필요하다. 인터넷이 가능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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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주변에 경쟁자가 없으니 지성이 필요하지 않다. 자신의 기분대로 막나가도 말릴 자가 없다. 공룡이 눈감고 가도 앞을 막아 서는 자 없다. 그들은 몸통만 컸지 뇌가 왜소하다.

“힘으로 해도 되는데 왜 이성으로 해결해?”

뇌의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한다. 구소련이 망하고부터 노골화 되었다. 겸손은 사라졌다. 오만해졌다. 경제위기 효과도 작심1년이다. 중국도, 일본도, 러시아도 미국의 못된 점만 따라배우고 있다.

지금 인류문명의 밸런스는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생각있는 사람은 모두 느끼고 있다. 인류는 다시 한번 시험에 들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지구촌 인류의 자정능력이 문제를 해결한다.

진화하는 세계의 밸런스 원리에 의해 결국 다시 회복된다. 다만 그것이 전쟁 등의 극단적 형태로 나타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먼저 포착하고 먼저 알아챈 사람이 나서야 한다.

유럽은 여러나라 지식이 연대하고 있어서 확실히 지성의 존재감이 있다. 한국은 고립되어 있어서 지성의 위상이 약하다. 산업화 과정을 거치며 지성은 왜소해졌다. 존재감을 잃었다.

그러나 오백년 선비문화의 전통이 살아있다. 한국인의 가슴 밑바닥 깊은 곳에 지성인의 자부심이 있다. 그것을 어찌 세련된 문화양식으로 세팅하여 가시화할지의 미학적 고민이 관건일 뿐이다.

유럽형 지성은 자기 포지션을 소화하면 그만이다. 공격수는 골만 넣으면 되고 수비수는 골만 막으면 된다. 한국은 고립되고 사이즈가 작아서 중간 완충지대가 약하다. 극단적인 정치적 쏠림현상이 심하다.

유럽은 15억 기독교 문명권 단위로 밸런스가 작동한다. 국가 위에 EU 있다. 밸런스 위의 밸런스가 있다. 대략 북쪽 지역은 진보하고 남쪽 지방은 보수하며 전체적인 균형을 유지한다.

그들은 아프리카나 터키를 문명의 배후지로 삼는다. 남쪽에서 인구가 넘어오면 살기가 각박해져서 보수화 된다. 반면 생산력 혁신이 일어나 그들을 포용할 여유가 생기면 진보경향이 생겨난다.

그들은 역할분담 모델을 성공시키고 있다.

한국은? 5천만 단위로 밸런스가 성립한다. 5천만 중에서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사람은 적다. 사이즈가 작아서 쏠림현상이 심하다. 이 상황에서는 누가 집권해도 롤러코스터 정권이 된다.

포지션을 나누면 극단적인 분열과 갈등으로 치닫는다. 유럽식 지성 모델은 한국에서 먹히지 않는다. 구조적 접근이 필요하다. 빵이 열개면 나눠먹으면 되지만 하나 뿐이면 순번대로 먹어야 한다.

유럽은 빵이 열개라 분배가 가능하지만, 한국은 빵이 하나라 나눠먹자니 남의 빵이 커보인다. 전부 아니면 전무. 너죽고 나죽기. 순번대로 먹으면 되지만 믿지 못하니 누구도 뒷번호를 원치 않는다.

예로부터 한국은 화쟁사상, 통불교의 전통이 있었다. 교종과 선종이 대립 끝에 공존을 꾀한 것이다. 땅이 비좁아 함부로 나누다가는 누구 하나는 죽어야만 하는 상황이 수시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석가의 중도, 공자의 중용, 노자의 무위에 힘입어 통합적인 지식인 모델이 성립되었다. 한국에서 지식은 좌우 극단으로 치달아서 안 된다. 난 공격만 하겠다거나, 수비만 하겠다고 캐릭터 꾸리면 안 된다.

안하무인으로 지껄이는 무개념 지식인 캐릭터, 혹은 곧 죽어도 자존심만 지키겠다는 꼬장꼬장한 학자의 태도는 소아병적이다. 공격이나 수비 포지션을 넘는 심판의 관점, 중재자 관점을 얻어야 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한국에서 최후의 중재자, 최후의 균형추는 대중의 소임이다. 대중의 균형감각이 한국을 살렸다. 역대선거 결과가 입증한다. 대중을 어버이로 아는 진짜 지성이 필요하다.

대중의 숨겨진 마음을 읽어내는 훈련이 필요하다. 한국에서는 차별화 전술보다 공감의 전략이 더 호소력이 크다. 한국의 지정학적 구조, 사회발달 단계에 맞는 지성인 역할모델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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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지성인가? 세계의 중심과 연결된 자가 지성이다. 세계정신과 소통하는 이가 지성이다. 세계가 아플때 그 아픔이 느껴지는 자가 지성이다. 그 아픔이 전달되지 않는 자가 야만인이다.

진보, 보수 문제는 이성적 판단 이전에 물리적인 생존조건 문제다. 문제는 지식인이 그 물리의 최전선에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들은 상아탑이라는 안전한 후방에 있어서 갈등을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

경기가 좀 나아지거나 혹은 경기가 나빠지거나 간에 그들은 전혀 느끼지 못한다. 그들에게 이념은 관념화 되어 있다. 그들은 민감한 센서를 잃었다. 안테나 고장난 라디오 된지 오래다.

보수는 일정부분 생존본능이다. 햄스터는 먹이가 부족하거나 영토가 좁으면 서로 잡아먹는다. 인간에게도 그러한 야만의 본성이 있다. 이는 진화과정에서 형성된 유전인자이므로 부정할 수 없다.

‘보수가 옳지 않다’는 가르침만으로 이길 수 없다. 미국인이 뚱뚱해진 것은 ‘비만이 건강에 이롭지 않다’는 사실을 몰라서가 아니다. 알면서 자신을 통제하지 못한다. 보수심리도 마찬가지.

전쟁이나 불경기와 같은 결정적 위기, 혹은 인터넷과 같은 결정적인 혁신에 의해서만 인간은 야만한 본성을 벗고 반짝 이성을 회복한다. 약간의 여유만 있으면 다시 야만의 긴 잠에 빠진다.

진보는 계몽과 학습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청동제 무구가 지배하던 시절, 귀족들만 무장할 수 있었다.(야금기술 부족으로 철기는 농기구로 쓰임.) 야금기술이 발달하여 철제무기가 보급되자 평민이 무장하게 되어 고대 노예제는 해체되었다.

대중이 결정적인 생산수단을 장악할 때, 혹은 미디어의 획득에 의해 의사소통, 의사결집, 의사결정 수단을 실질적으로 장악하여 더 높은 단계로 올라설 때 진정한 의미에서의 진보는 가능하다.

관념좌파들은 대중의 미디어 장악노력을 외면한다. 심형래 디워소동 이면에 도사린 ‘미디어를 장악하려는 대중의 권력의지’를 꿰뚫어보지 못한다. 함부로 대중을 경멸하고 좌절시켜 보수화를 부채질한다.

인간은 꿈이 있을 때 자부심을 가진다. 이성을 회복하고 진보성향을 드러낸다. 왜? 꿈은 공유되면 공유될수록 가치가 빛나기 때문이다. 꿈을 공유하기 위해 손을 내밀고 협력하기 때문이다.

음악을 하거나 그림을 하거나 간에 혼자서는 재미없다. 그림이든 음악이든 혹은 자본주의 시장에서 재화의 소비든 간에 타인과 공유될 때 가치가 빛난다. 혼자먹기보다 함께먹기가 맛있다.

인터넷은 공유될수록 그 가치가 커진다. 대중이 스스로 공유하려 할 때가 진보가 빛나는 지점이다. 그 지점에서 인간은 이성을 회복한다. 인간의 꿈은 결코 개인의 욕망을 달성함에 있지 않다.

진정한 꿈의 실현은 함께 하는 세계 안에서 의사소통, 의사결집, 의사결정 형태로 이루어진다. 생산수단의 획득, 미디어의 지배 형태로 나타난다. 그렇게 세계의 중심과 연결되고 싶어한다.

세계와 함께 호흡하며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한다. 그 가능성이 차단될 때 좌절한다. 꿈을 잃는다. 그럴때 은폐된 생존본능이 발동된다. 보수화 된다. 보수는 본능이므로 설득되지 않는다.

어떤 논리로도 수구꼴통 아저씨를 납득시킬 수 없다. 지식인이 그들 좌절한 자, 꿈을 잃은 자, 공존하는 법과 공유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자, 낙오된 자들의 생존본능을 자극한다면 고약하다.

그들을 좌절시켜 악한 생존본능을 발동시킨다면 참으로 딱하다. 중요한건 지식이 그들에게 새로운 동기를, 꿈을, 목표를 제공할 수 있는가이다. 대중의 본심을 읽는 능력을 획득할 때 가능하다.

 

http://gujoron.com


[레벨:0]피케이영중

2009.09.15 (20:09:04)


그 시대의 대중이 늘 옳다고 볼 수 있습니까?

결과적으로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옳다고 말한 사람도 있습니다. 반면,

어떤 권력자는 대중은 우매하니 시종 우매한 상태로 두기 위해 전략을 세우곤 합니다.

대중의 본심을 어찌 알겠습니까만 알아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시간이 걸리겠지요.


선생님께서는 언제나 '역사'를 중히 여기시는데 그 존재했던 그리고 결과를 맺은 사실에 근거해 현재를 판단해야 된다는 뜻인가요?

역사를 면전하기 전에 혹은 면전하면서 무엇을 고민해야 할까요?


진보와 보수에 대해 생각이 많았는데 선생님 글을 보고 기뻤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희미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09.09.15 (20:26:03)






대중이 늘 옳다기보다는
대중이 옳을  때 한하여 지식도 옳게 힘을 쓸 수 있다는 거지요.
대중이 옳지 않을 때는 사실이지 지식도 그 존재가 없습니다.
그때는 걍 입 다물고 있는게 상책.
대중이 다 이명박 찍을 때는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
대중을 옳은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 지식인의 임무이므로
대중이 옳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지식의 실패를 자인함에 지나지 않습니다.
실패자의 비난은 설득력이 없는 것.

중요한건 대중이 늘 옳도록 유도할 수 있는 스킬들이 무수히 개발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적절한 포지션 조합에 의해서 가능합니다.
대중이 늘 옳도록 유도하지 못한다면 그 자체로 이미 지식의 실패.
대중은 목표를 따라가므로 언제 어디서든 그 상황에 맞는 목표를 발굴하여 던져줄 수 있습니다.
그게 지식의 역할이구요.
대중이 지식을 따라오지 않는다 해서 화를 낸다면 그것은
이명박이 국민탓 하는 것과 같아서 이미 자격상실.

대중이 좋은 클래식 버리고 수준낮은 대중음악, 대중문화를 좋아한다면
함부로 성을 내고 비난할 것이 아니라
그 대중음악, 대중문화 중에서도 괜찮은 월메이드영화를 찾아낼 수 있고
거기서 새로운 가능성, 새로운 트렌드와 지표들을 묶어낼 수 있는 것이며 지식이 그 일을 해야합니다.
대중이 예술영화 버리고 상업영화 찾으면
돌아서서 비난할 게 아니라
상업영화 중에서도 걸작을 찾아 가치판단을 해주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깨어있는 이라면 언제 어떤 경우라도 그 상황에서의 최선을 찍어낼수 있습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작은 희망은 건져낼 수 있습니다.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거죠.

역사는 기승전결로 이어지는 전체과정입니다.
긴 호흡으로 보면 지금의 반동이 더 큰 정동으로 가기 위한 호흡조절이지요.
낙담하지 말고 미리미리 다음 단계에 대비하는게 현명하지요.
역사는 항상 그 이전단계가 다음 단계에 영향을 미치므로
그 이전단계의 실패 덕분에 다음 단계에 박차고 올라갈 힘을 얻는 경우가 많습니다.
역사에는 반복되는 패턴이 있으므로 일정부분 예견하고 대비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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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본심을 잘 이해한 사람이 모택동입니다.
모택동을 지지한 대중의 판단이 옳았던 것인가? 아니죠.
대중이 어리석게 모택동의 속임수에 넘어갔던 것인가? 그것도 아니죠.
대중의 에너지를 끌어내지 못한 장개석이 전적으로 잘못한 겁니다.
이명박 찍은 대중을 탓할 일이 아니라 대중의 에너지를 끌어내지 못한 정동영 탓할 일입니다.
만약 지식인이 대중을 비난하고 있다면
대중에게 목표를 던져주어야 할 자신의 책임을 망각한 처사일 뿐 아니라
지식인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할지 모르고 있다는 증거라는 점에서 참으로 암담한 거죠.
어떻게든 문제를 풀어갈 방법이 찾아졌다면 절대 대중을 욕하지 않습니다.
왜?
등돌린 대중의 마음을 되돌리는데 백해무익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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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어떤 지식인이 대중을 상대로 감정적인 비난을 가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어떻게 문제를 풀어가야 할지 답을 갖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역설적으로 대중에게 자신이 어떻게 해야할지 묻고 있는 겁니다.
그런 무자격자는 그 무대에서 퇴출이 정답.
지식인은 어떤 경우에도 그 상황에 맞는 답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레벨:0]피케이영중

2009.09.15 (23:51:55)

매 번 이렇게 고마운 답변을 얻습니다.

고맙습니다.
[레벨:3]우리보리

2009.09.16 (01:24:04)

아직도 제게는 깨달음이  없습니다. 그러나, 꿈을 버릴 수 없고 실천으로 동참합니다.
[레벨:3]고마버

2009.09.16 (11:18:36)

부자될라고 이명박 찍은거 아니예요.
10년만에 정권 바꾸려고 찍은겁니다.
독재가 싫은거예요.
부자되세요에 당한게 아닙니다.
잃어버린 10년에 당한겁니다.
대중은 언제나 옳습니다.
그걸 이용해먹는 놈들이 문제지요.
선지자는 먼 곳의 달을 봤지만 반걸음만 앞서갑니다.
대중은 긴 과거를 보고 반걸음 뒤에서 옵니다.
한걸음 차이가 납니다.
[레벨:6]폴라리스

2009.09.17 (10:25:09)

농부가 밭을 탓할 수는 없다했던 ..... 그분이 생각나오. 그리고보면 그분은 참 지성인이었던거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09.09.17 (11:08:00)


좌파들은 이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사이비 취급하는 것을 보면...^^:
무조건 수입해와서 이땅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고 그것을 적용하기 위해서 애만 쓰면 되는줄 착각을 하는 듯...
그러니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이해가 안되는 것...
그러니 못난 한국인 무능한 한국인, 피하고 싶은 한국인 이라는 인식을 갖고 자꾸 대중에게 그런 인식을 심어주는 것...
모든 국민이 좌파가 되어야만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고, 좌파의 개념이 국민들의 머리속에 심어져야 국민이 성숙해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 느낌...결국 좌파의 이념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은 성숙한 사람이 아니고 성숙한 사회가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듯 하다는 생각.....
좌파들이 갖고 있는 진보라는 개념과 진보진영이 갖고 있는 진보는 서로 다르게 인식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어떠한지요...?


글 가져갑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09.09.17 (12:01:37)

좌파든 우파든
놔두면 점점 종교 비슷하게 갑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본래 그런 존재이니까.
종교의 강점이라 할, '인간의 오프라인에서 무리짓는 본성'의 활용 테크닉 말이지요.

좌파는 정치를 종교화시키고 우파는 종교를 정치화 시키지요.
종교가 탄생하는 이유는 그 안에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성(장점이자 단점인)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남녀가 서로 끌리듯 본성에 끌려드는 것은 어쩔 수 없고 좌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한 본질적이고 구조적인 난맥상을 깨뜨리는 것은 과학적인 성과, 지리상의 발견, 전쟁, 천재지변,

미디어의 발전, 경제적인 성장, 산업의 혁신, 외부와의 경쟁, 신세대의 등장, 소통과 교류, 진보한 문화적 양식,
깨달음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현장의 논리, 실질의 논리로 이겨야 합니다.

사막과 같은 오지에서 20명의 조난자가 있고 탈출할 버스가 한대 있는데
아무도 운전할 수 없다면 결국 누가 핸들을 쥘까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09.09.17 (13:08:38)


그 중에서 누군가 운전할 자가 나타나겠지요.
인간은 위기에서 대표를 만들어 내므로...
현재상황을 타개할 의지를 가진자가 무리를 이끌거나 운전을 하거나 운전을 할 만한 자를 골라내지 않을까....^^:

아니면 그 스무명도 서로의 이념이나 사상이 다를까요...?
흑인 황인 백인이 섞여 있을까요...?
종교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나라도 다르다면...?
어른과 청년 어린아이들이 섞여 있다면...?
ㅋㅋ..민주당과 민노당 진보신당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이였다면...?
하하..스무명에 대한 가정을 해보니 재미있네요....물론 이것은 웃자고 한 얘기입니다.^^


'좌파는 정치를 종교화시키고 우파는 종교를 정치화 시키지요.'
이 부분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09.09.17 (13:49:13)

어떻게든
자동차를 좀 아는 사람이 나서야겠지요.
좌파는 절차로 틀고 우파는 불신으로 틉니다.
실제로 그 사람들 하고 같이 일해보면 알게 됩니다.
'아 이사람들 하고는 무슨 일을 손잡고 함께 할 수가 없겠구나' 하고 느끼는거 그런거 있어요.
매우 인내심있고 윤리적, 도덕적 훈련이 잘 된 사람이라면 함께 할 수도 있는데
그런 사람은 대개 직업이 선생님이더라구요.
선생님들은 말 안듣는 꼴통 애들을 많이 다뤄봐서 인내심있게 설득하는데 
저같은 사람은 두 손 두 발 들고 뛰쳐 나옵니다.
저같은 사람은 매일 회의하고, 보고하고, 설명하고, 납득시키라면 안합니다.
능력도 있고 실무도 아는 사람이 절차에 치여서 못하는 겁니다.
우파들은 불신으로 트는데 그들은 오직 경험만 믿습니다.
'우리가 뭘 믿고 네게 운전대를 맡기겠느냐'는 식으로 나오는데 할말없죠.
결국 우파들은 나이순으로 하자거나, 힘으로 하자거나 이렇게 나오는데
일대일로 하나하나 격파해서 물리적으로 제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영화 7인의 사무라이라 치면 마을에 도적이 나타났는데 절차 따져가며 도적잡겠습니까?
매일 주민들에게 진도 얼마나 나갔는지, 어떤 작전으로 도적을 잡을지 보고하고 승인받겠습니까?
도적을 잡으려면 적을 속이기 위해, 아군도 속이고 마을 주민도 속여야 할텐데도요?
또 농민들이 그 사무라이를 불신하면 어떻게 됩니까?
7인도 믿을 수 없는 뜨내기들이기는 도적이나 마찬가지인데 뭘 믿고 목숨과 재산을 맡겨?.
이런 식으로 틀면 일이 안 되는 거지요.

정치를 종교화 시킨다는 것은
일을 실무적으로 풀지 않고, 지나치게 환원주의 논법으로 가져가서
예를 들면 쇠고기협상 문제를 협상기술의 관점에서 실무적으로 풀지 않고
근본문제인 반미문제로 가져가면 답없는거 아닙니까?
좌파들은 절차를 내세우는데 그 절차에는 선결조건인 반미문제가 걸려있고
그러므로 쇠고기 협상을 하려면 미군철수부터 먼저해야 합니다.
그게 절차지요.
좌파논리로 가면 미군철수, 남북통일 후에나 쇠고기협상이 가능할 겁니다.
그 어떤 것도 실질적인 진행이 불가능합니다.
보통 사업을 추진할 때
여러 아이디어들을 동시에 추진해보고 그 중에 싹수가 있는 것을 골라서
성공모델을 만들고 로드맵을 짜고 그 다음에 전면화 하는 건데 열에 하나가 겨우 성공합니다.
좌파식으로 절차 따지면 그 시험삼아 해볼, 해보다가 중간에 도태될 아홉에 걸려서 아무 것도 못합니다.
하나라도 중간에 실패하면 안되기 때문에 결국 아무 일도 안하는 넘이 살아남지요.
실제로 일본의 좌파정당 몰락사를 보면 아무 일도 안하는 도덕군자 할아버지 국회의원이 백살까지 해먹다가 망쳤습니다.
젊고 의욕있고 모험 좋아하는 인재들은 각종 회의에 불려다니다가 지쳐서 중간에 다 나가떨어져요.
노무현은 어떤 일이든 실무적인 차원에서 해결하려 했습니다.
이명박은 힘으로 눌렀고.
환원주의를 계속 확장하면 지구상 모든 인간이 같은 생각을 해야만 합니다.
모두가 납득해야만 다음 단계로 나가니까.
그게 종교지요.
생각이 다른 사람끼리 공존은 불가능합니다.
적당히 간격을 둔 상태에서 줄건 주고 받을건 받고 이게 안되지요.
실제로 북한이나 중국이나 러시아나 점점 종교를 닮아갔고 우리나라 좌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가 납득해야만 하는 절차를 들이대니 생각이 조금만 달라도 분열할 수 밖에 없고
분열 막으려면 종교수준으로 교양을 해야 하는 겁니다.
상대가 지쳐서 포기할 때 까지 갈구는 거지요.
우파가 종교를 정치화 시킨다는 건 보시는 바와 같습니다.
미국도 그렇고 한국도 그렇고 종교세력이 정치에 개입하지요.
그들은 기존에 만들어져 있는 힘을 룰을 어겨가며 편법적으로 들고 나오는데
재벌의 금력과 지역주의 동원력, 그리고 종교의 동원력이지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09.09.18 (12:44:49)



 정치와 종교를 인간이 활용하는 범위가 이제까지는 늘 우파와 좌파의 어떤 틀에 갖혀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는 그런 틀에서 벗어나 조금은 자유롭게 새롭게 시작을 해도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활용 가능한 범위가 넓은데 너무 좁은 틀안에서만 허우적 대고 있었다는 생각도 들구요.
그리고 그동안 너무 그런 좁은 틀에 익숙해져 살아온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정치의 한계를 우파와 좌파들의 시각에서 본다는 것은 이제 너무나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고...
종교를 정치화 시키거나 종교가 인간의 생활에 너무 깊게 간섭하는 경우도 힘들고...
정치를 다시 종교적인 시각을 갖게 만들어 버리는 것은...
어쨌든 인간에게 정치와 종교를 단절 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고 생각되어집니다.

정치는 인간의 삶을 떠날 수 없는 것인데 오히려 그동안의 정치는 인간을 떠나 있었다는 생각이 들고...
종교 역시 인간을 떠날 수 없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인간과는 너무 먼 거리에 있었던 것 같고...

정치에 환멸을 느끼게 만든 것은  오히려 정치에 접근하지 못하게 막아버리는 역할을 했고,
종교를 숭배하게 만들고 종교가 인간을 억압하고 있거나 권력화 되어 있거나 물질화 된 것은 오히려 인간을 역으로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고...

정치와 종교가 그동안 인간을 묶어 놓는데 확실하게 사용되어진 것은 사실인거 같습니다.

좌파가 정치를 종교화 시킨다는 것, 우파가 종교를 정치화 시킨다는 것.
대부분 좌파가 정치를 종교화 시킨다는 것은 쉽사리 발견하지 못했던 부분인 것 같습니다.
우파가 종교를 정치화 시킨 다는 것은 요즘 확실하게 보고 있기에 다들 느끼는 부분인 것 같구요.
좌파가 정치를 종교화 시킨다는 것은 좌파들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일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이렇게 쉽사리 드러나지 않는 부분들을 살필 수 있는 눈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 같습니다.
설명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2]이상우

2009.09.17 (13:25:12)

정치의 1사이클. 참 깔쌈하오.
혜안을 가진 자가 점점 늘어날 것이오.
위에서 나린 물이 낮은 곳까지 채우는 소통의 속성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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