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꾼 적이 있었지.
커다란 통나무를 올려다 보고 있었지.
통째로 굵어서 내 반키쯤 만 나무에 올라서서 나무를 쳐다 보고 있었지.
처음에는 굵은 나무 통만 끝없이 하늘 위로 올라가 있었지. 하늘로 다리가 난줄 알았어.
나무는 곧장 하늘로 뻗어 있는데, 나는 그 나무가 마치 비스듬하게 있는 것처럼 걸을 수 있었지.
조금씩 하늘로 난 나무 다리 위를 올라가보니 드디어 보였지.
아득한 나무 꼭대기 위에 나뭇잎이 벙실벙실 돋아나 있었지.
그래 맞아 틀림 없었어. 나무 꼭대기에 나뭇잎들이 푸르게 돋아나 있었어.
이 하늘로 다리처럼 뻗은 굵은 나무 다리는 살아 있는 나무가 확실했었던 거야.
꿈에서 본 나무를 현실에서 찾자면, 한 수 만미터쯤 키를 늘려놓은 바오밥 나무였다고 생각해. 사진보고 이런 나무가 현실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 물론 그 이전에도 바오밥 나무를 사진에서 보긴 했지. 그런데 꿈에서 보고 나니까 웬지 바오밥 나무가 더 친근하게 여겨졌어. 바오밥 나무 역시 생긴 것이 딱히 현실적이지는 않아. 통자루에 위에 나무 덤불 올려져 있는 모양이 특별히 아름답다...뭐~ 그런 것은 아니니까...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원초적인 느낌을 마구마구 품어내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현실적인 나무가 아닌 것 같은 나무가 오히려 더 현실성을 갖게 한다고 할까... 아마도 그건 현실과 현실이 아닌 그 경계에 서 있는 것 같은 나무 같다 여겨지기 때문인지도 모르지.
며칠전에 영화 재크와 콩나무를 봤지. 동화와 신화의 경계를 왔다갔다 했지. 동화와 신화의 차이가 뭘까... 동화가 신화가 되고, 신화가 동화가 되지. 무엇이 먼저 일까? 동화가 먼저라고 생각해. 이것은 이야기의 씨앗이니까. 동화는 확장이 가능하고, 신화는 각색이 가능하지.
동화를 확장하면 이야기의 매듭을 풀기에 좋지. 이야기의 매듭이 풀리면 다양하게 각색이 가능하지. 각색에는 구조와 방법론들이 필요해지겠지. 환타지 영화산업, 게임산업은 다 여기에 기반하고 있다고 보이기도 해. 리얼리티라고 별다른가... 동화가 현실에 들어와 부조리를 보이면 그게 리얼리티이지.
헨젤과 그레텔도 봤어. 마녀와 마녀 사냥꾼 얘기지. 실제 존재한다 치고 못된 마녀를 사냥 하지만, 실제도 역사에서나 현실에서도 리얼리티는 존재하므로...
땅과 하늘의 중간계에서 사는 거인 이야기와 그 거인을 통제하는 신물을 가지고 공주와 결혼하는 농부 청년.. 뭐~ 우리식으로는 온달장군 얘기지.
마녀에게 죽을 뻔하다 마녀를 오히려 죽이고 마녀 사냥꾼이 되는 오누이 이야기. 그런데 사실은 오누이 엄마는 착한 백마녀...
여기의 공통점은 모두 주인공이 선함의 씨앗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지.
원래부터 그런 근본을 가지고 있다라는 뭐~...그런거.
이것은 동화에서의 가장 주된 특성이자 신화에서는 또 그 상황적 정의를 세우는 것으로 일관되게 관통하는 그런 요소이지...뭐~~ 그런 것이지.
그런데 이 동화적 요소와 신화적 요소들이 인간의 삶에 필요가 없을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고 봐. 동화가 없으면 아이들의 세계는 황폐해지지. 꿈이 없거나 꿈을 꾸지 못하면 상상력이 약해져서 현실만 남게 되어 추동하는 에너지의 근본의 고갈이 온다고 봐. 그러면 생각이 빈곤해지지. 빈곤한 생각을 하는 이들과의 대화가 얼마나 무기력하고 진이 빠져나가는지...
신화가 없으면, 역사에 갇혀 버리지. 사람이 역사시대에만 살았나?... 자연 생태계가 역사시대에서 부터만 시작 되었나?.....
신화는 특정한 것을 상정하는 것만이 아니라, 역사 이전을 상상하고 접근하게 해주는 통로이지. 또한 인간이 현실을 넘어설 수 있는 또 하나의 세계이기도 하고. 인간은 상상을 하지. 상상에 생각을 더하면 상상력이 되지. 이 상상력이 각색이 되어 환타지가 되지. 이 환타지에도 리얼리티를 심을 수 있는 것이지.
꿈 그리고 동화 그리고 신화 그리고 영화 그리고 게임.
꿈 그리고 현실 그리고 역사 그리고 영화 그리고 게임.
실제 이 세상을 움직이는 추동력은 상상력이다. 실현과 아직은 실현 불가능함만이 있을 뿐이다.
가상의 세계를 산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가상의 세계로 떠나는 것이 아닌 꿈이라는 이상의 상상력이 현실과 만날때 그것이 창의력이다.
실현된 것만이 진실이고 진리인것처럼 더는 바라지 않는 상상의 빈곤함이 찾아들면, 아직은 실현되지 않은 일들에 대하여 잊혀지고 점점 낯설어진다.
커다란 통나무를 올려다 보고 있었지.
통째로 굵어서 내 반키쯤 만 나무에 올라서서 나무를 쳐다 보고 있었지.
처음에는 굵은 나무 통만 끝없이 하늘 위로 올라가 있었지. 하늘로 다리가 난줄 알았어.
나무는 곧장 하늘로 뻗어 있는데, 나는 그 나무가 마치 비스듬하게 있는 것처럼 걸을 수 있었지.
조금씩 하늘로 난 나무 다리 위를 올라가보니 드디어 보였지.
아득한 나무 꼭대기 위에 나뭇잎이 벙실벙실 돋아나 있었지.
그래 맞아 틀림 없었어. 나무 꼭대기에 나뭇잎들이 푸르게 돋아나 있었어.
이 하늘로 다리처럼 뻗은 굵은 나무 다리는 살아 있는 나무가 확실했었던 거야.
꿈에서 본 나무를 현실에서 찾자면, 한 수 만미터쯤 키를 늘려놓은 바오밥 나무였다고 생각해. 사진보고 이런 나무가 현실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 물론 그 이전에도 바오밥 나무를 사진에서 보긴 했지. 그런데 꿈에서 보고 나니까 웬지 바오밥 나무가 더 친근하게 여겨졌어. 바오밥 나무 역시 생긴 것이 딱히 현실적이지는 않아. 통자루에 위에 나무 덤불 올려져 있는 모양이 특별히 아름답다...뭐~ 그런 것은 아니니까...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원초적인 느낌을 마구마구 품어내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현실적인 나무가 아닌 것 같은 나무가 오히려 더 현실성을 갖게 한다고 할까... 아마도 그건 현실과 현실이 아닌 그 경계에 서 있는 것 같은 나무 같다 여겨지기 때문인지도 모르지.
며칠전에 영화 재크와 콩나무를 봤지. 동화와 신화의 경계를 왔다갔다 했지. 동화와 신화의 차이가 뭘까... 동화가 신화가 되고, 신화가 동화가 되지. 무엇이 먼저 일까? 동화가 먼저라고 생각해. 이것은 이야기의 씨앗이니까. 동화는 확장이 가능하고, 신화는 각색이 가능하지.
동화를 확장하면 이야기의 매듭을 풀기에 좋지. 이야기의 매듭이 풀리면 다양하게 각색이 가능하지. 각색에는 구조와 방법론들이 필요해지겠지. 환타지 영화산업, 게임산업은 다 여기에 기반하고 있다고 보이기도 해. 리얼리티라고 별다른가... 동화가 현실에 들어와 부조리를 보이면 그게 리얼리티이지.
헨젤과 그레텔도 봤어. 마녀와 마녀 사냥꾼 얘기지. 실제 존재한다 치고 못된 마녀를 사냥 하지만, 실제도 역사에서나 현실에서도 리얼리티는 존재하므로...
땅과 하늘의 중간계에서 사는 거인 이야기와 그 거인을 통제하는 신물을 가지고 공주와 결혼하는 농부 청년.. 뭐~ 우리식으로는 온달장군 얘기지.
마녀에게 죽을 뻔하다 마녀를 오히려 죽이고 마녀 사냥꾼이 되는 오누이 이야기. 그런데 사실은 오누이 엄마는 착한 백마녀...
여기의 공통점은 모두 주인공이 선함의 씨앗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지.
원래부터 그런 근본을 가지고 있다라는 뭐~...그런거.
이것은 동화에서의 가장 주된 특성이자 신화에서는 또 그 상황적 정의를 세우는 것으로 일관되게 관통하는 그런 요소이지...뭐~~ 그런 것이지.
그런데 이 동화적 요소와 신화적 요소들이 인간의 삶에 필요가 없을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고 봐. 동화가 없으면 아이들의 세계는 황폐해지지. 꿈이 없거나 꿈을 꾸지 못하면 상상력이 약해져서 현실만 남게 되어 추동하는 에너지의 근본의 고갈이 온다고 봐. 그러면 생각이 빈곤해지지. 빈곤한 생각을 하는 이들과의 대화가 얼마나 무기력하고 진이 빠져나가는지...
신화가 없으면, 역사에 갇혀 버리지. 사람이 역사시대에만 살았나?... 자연 생태계가 역사시대에서 부터만 시작 되었나?.....
신화는 특정한 것을 상정하는 것만이 아니라, 역사 이전을 상상하고 접근하게 해주는 통로이지. 또한 인간이 현실을 넘어설 수 있는 또 하나의 세계이기도 하고. 인간은 상상을 하지. 상상에 생각을 더하면 상상력이 되지. 이 상상력이 각색이 되어 환타지가 되지. 이 환타지에도 리얼리티를 심을 수 있는 것이지.
꿈 그리고 동화 그리고 신화 그리고 영화 그리고 게임.
꿈 그리고 현실 그리고 역사 그리고 영화 그리고 게임.
실제 이 세상을 움직이는 추동력은 상상력이다. 실현과 아직은 실현 불가능함만이 있을 뿐이다.
가상의 세계를 산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가상의 세계로 떠나는 것이 아닌 꿈이라는 이상의 상상력이 현실과 만날때 그것이 창의력이다.
실현된 것만이 진실이고 진리인것처럼 더는 바라지 않는 상상의 빈곤함이 찾아들면, 아직은 실현되지 않은 일들에 대하여 잊혀지고 점점 낯설어진다.
yhy
아란도
더 긴 얘기는 내일....
맨 아래에 대한 저의 생각은....
우리나라만 특별히 좀 되어 가려다 안되고 있지요. 우리나라가 특별히 취약한 부분. 왜 그런지 이유야 많겠지만.... 상상력이 부족해요. 그 이유는 상상을 저해하는 환경적 요소가 너무 많은데.... 솔까말...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는게 문제라는거. 이런 문제만 나오면 우리나라는 막막하다라는게 문제라면 문제. 그냥 미친척 치고 나가버려 주는 한 사람이 아쉬운거... 그런데 꼭 미친척 치고나가면 걱정한답시고 죽이지 못해 안달...손발 다 묶어버리는거.... 머~~. 이렇게 나열하면 끝이 없겠네요. ㅋ~^^;
맨 아래에 대한 저의 생각은....
우리나라만 특별히 좀 되어 가려다 안되고 있지요. 우리나라가 특별히 취약한 부분. 왜 그런지 이유야 많겠지만.... 상상력이 부족해요. 그 이유는 상상을 저해하는 환경적 요소가 너무 많은데.... 솔까말...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는게 문제라는거. 이런 문제만 나오면 우리나라는 막막하다라는게 문제라면 문제. 그냥 미친척 치고 나가버려 주는 한 사람이 아쉬운거... 그런데 꼭 미친척 치고나가면 걱정한답시고 죽이지 못해 안달...손발 다 묶어버리는거.... 머~~. 이렇게 나열하면 끝이 없겠네요. ㅋ~^^;
아란도
동화의 확장, 신화의 각색.
윗글은 생각이 일어나는데로 썼기 때문에. 동화의 확장과 신화의 각색에 대해서는 또 더 생각해봐야 하지만, 날도 덥고 하니, 또 그냥 일어 나는 생각데로 그저 써보네요.
동화는 확장 된다. 확장이란 쌓임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보는데, 확장이 무작정 넓히는 것이라고 보기 보다는 쌓아 올리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듯함.
즉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 것. 아이가 상상력이 있다고 하여 바로 소설 쓰고 시나리오 쓰고 영화를 만들 수 없으나 상상력이 풍부하면 그만큼 가능성이 커짐. 아이가 그 풍부한 상상력을 써 먹을 수 있다면 확장한 것임.
또 동화의 확장이란, 구조를 재설계 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음. 즉 모티브 제공이 가능함. 하나의 동화는 수 만가지 이야기에 다 끼어들 수 있음. 동화는 아이들이 읽는 이야기인 것만이 아니라, 이야기의 단초를 제공하기 때문.
동화가 이름이 동화이지만, 동화에는 이미 어떤 에센스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 이 에센스적인 요소가 변질이 안된다면 동화의 확장은 무한대임.
신화의 각색이란.... 신화는 이미 어떤 고정된 위치가 있어서 손을 대기가 애매해서 포지션의 변동은 어려움. 단지 각색을 통해서 에피소드로 몰아주기 형식이 가능하다고 보임. 부각을 시키는 부분이 어디인가에 따라서 각색이 효과를 보인다고 보임.
신화가 확장이 어려운 이유는...이미 이야기가 완성되어 있기 때문인데..., 완성된 이야기에서 이야기를 끌어내야 하기 때문에 확장 보다는 각색이라는 표현을 쓴 것임. 예를들어 그리스 신화얘기나 단군신화 얘기는, 이미 배역이 고정되어 있음. 제우스나 단군은 죽었다 깨어나도 그 위치나 위상이 손상되지 않음. 바뀔수가 없음. 제우스 이름이나 위치를 달리 바꾸지는 못함. 신화적 요소가 빠져버리면 신화 얘기가 아니게 되므로. 반면 동화적 요소나 민담적 요소는 그 주인공 이름이나 혹은 포지션 장소가 바뀌어도 아무 상관이 없음. 온달장군 얘기나 콩쥐팥쥐 얘기나 권선징악 요소나 모험적 요소들은 시대나 환경에 있어서 등장인물에 전혀 영향을 주지않고 변화시킬 수 있음. 환타지적 요소는 신화가 더 많이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구성요소의 제한은 신화가 더 많고, 동화는 오히려 구성요소의 제한을 덜 가지고 있다 여겨져서, 동화는 확장이라 표현 하였고, 신화는 각색이라 표현 하였네요. 물론 이런 나의 표현이 적절한가의 여부에 대해서는 더 대화를 해 보아도 좋다고 생각되네요.
그리고... 동화도 신화적 요소가 많을수록, 혹은 신화화 되어 갈수록, 어떤 고정되어짐이 일어나기 때문에 신화처럼 각색에 의존하는 경우가 늘어난다고 여겨짐. 반면 창작된 동화나, 창작 이전에 생각의 씨앗 형태로 있는 동화적 요소들은 사람의 생각에서 무한대로 적용이 가능하다고 보여지나 다는 물론이고 천만분의 일도 써먹지 못한다고 보임. 그리고 어느정도는 사람이 비슷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 경우도 많아서 중복제거나 혹은 누가 먼저 선점해 버리는 경우도 많다고 보임. 하지만 이 동화적 요소들을 잘 활용한다면, 뭔가는 좀 달라질 수 있을것 같다고 여겨짐.
윗글은 생각이 일어나는데로 썼기 때문에. 동화의 확장과 신화의 각색에 대해서는 또 더 생각해봐야 하지만, 날도 덥고 하니, 또 그냥 일어 나는 생각데로 그저 써보네요.
동화는 확장 된다. 확장이란 쌓임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보는데, 확장이 무작정 넓히는 것이라고 보기 보다는 쌓아 올리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듯함.
즉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 것. 아이가 상상력이 있다고 하여 바로 소설 쓰고 시나리오 쓰고 영화를 만들 수 없으나 상상력이 풍부하면 그만큼 가능성이 커짐. 아이가 그 풍부한 상상력을 써 먹을 수 있다면 확장한 것임.
또 동화의 확장이란, 구조를 재설계 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음. 즉 모티브 제공이 가능함. 하나의 동화는 수 만가지 이야기에 다 끼어들 수 있음. 동화는 아이들이 읽는 이야기인 것만이 아니라, 이야기의 단초를 제공하기 때문.
동화가 이름이 동화이지만, 동화에는 이미 어떤 에센스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 이 에센스적인 요소가 변질이 안된다면 동화의 확장은 무한대임.
신화의 각색이란.... 신화는 이미 어떤 고정된 위치가 있어서 손을 대기가 애매해서 포지션의 변동은 어려움. 단지 각색을 통해서 에피소드로 몰아주기 형식이 가능하다고 보임. 부각을 시키는 부분이 어디인가에 따라서 각색이 효과를 보인다고 보임.
신화가 확장이 어려운 이유는...이미 이야기가 완성되어 있기 때문인데..., 완성된 이야기에서 이야기를 끌어내야 하기 때문에 확장 보다는 각색이라는 표현을 쓴 것임. 예를들어 그리스 신화얘기나 단군신화 얘기는, 이미 배역이 고정되어 있음. 제우스나 단군은 죽었다 깨어나도 그 위치나 위상이 손상되지 않음. 바뀔수가 없음. 제우스 이름이나 위치를 달리 바꾸지는 못함. 신화적 요소가 빠져버리면 신화 얘기가 아니게 되므로. 반면 동화적 요소나 민담적 요소는 그 주인공 이름이나 혹은 포지션 장소가 바뀌어도 아무 상관이 없음. 온달장군 얘기나 콩쥐팥쥐 얘기나 권선징악 요소나 모험적 요소들은 시대나 환경에 있어서 등장인물에 전혀 영향을 주지않고 변화시킬 수 있음. 환타지적 요소는 신화가 더 많이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구성요소의 제한은 신화가 더 많고, 동화는 오히려 구성요소의 제한을 덜 가지고 있다 여겨져서, 동화는 확장이라 표현 하였고, 신화는 각색이라 표현 하였네요. 물론 이런 나의 표현이 적절한가의 여부에 대해서는 더 대화를 해 보아도 좋다고 생각되네요.
그리고... 동화도 신화적 요소가 많을수록, 혹은 신화화 되어 갈수록, 어떤 고정되어짐이 일어나기 때문에 신화처럼 각색에 의존하는 경우가 늘어난다고 여겨짐. 반면 창작된 동화나, 창작 이전에 생각의 씨앗 형태로 있는 동화적 요소들은 사람의 생각에서 무한대로 적용이 가능하다고 보여지나 다는 물론이고 천만분의 일도 써먹지 못한다고 보임. 그리고 어느정도는 사람이 비슷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 경우도 많아서 중복제거나 혹은 누가 먼저 선점해 버리는 경우도 많다고 보임. 하지만 이 동화적 요소들을 잘 활용한다면, 뭔가는 좀 달라질 수 있을것 같다고 여겨짐.
y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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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란도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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