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칼럼

김기덕과 그의 세계 이해하기

임권택 감독이 반공영화를 찍을 때 이야기다. 정부 지원으로 특별히 국군을 동원하여 탱크부대가 전진하는 장면을 여러 영화감독들에게 찍게 했는데 다른 감독들이 열심히 촬영할 동안 임권택 감독은 놀고 있었다.

임권택 감독은 뭔가가 달랐다. 그는 촬영막바지에 이르러 탱크부대가 초가마을을 지나갈 때 초가집 담장 너머로 국군의 행군모습을 촬영했던 것이다. 여기에 각별한 의미가 있다. 미학이란? 담장 너머로 보는 시선이다.

그때 그시절 골목길의 담장은 낮았다. 70년대 영화 관객들은 누구나 담장 너머로 남의 집 마당을 기웃거려 본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관객은 자신이 그 영화 속으로 성큼 걸어들어온 느낌을 받는다.

까치발로 서서 담장 너머로 탱크부대가 지나가는 장면을 훔쳐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럴 때 관객은 영화를 보는 관객 자신의 시선을 각성한다. 여기서 브레히트의 서사극이론을 떠올려도 좋다.  

브레히트의 낯설게 하기는 객관화다. 그것은 관객의 시점을 드러내는 것이다. 임권택의 영화에서는 담장이 그 역할을 하지만 장훈의 영화는 영화다에서는 죄수와 면회객 사이에 놓여진 투명 바둑판이 그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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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이란 한 마디로 ‘단순화 하기’다. 그 단순화의 과정은 복잡하다. 10 페이지로 기술된 방대한 분량의 텍스트를 한 컷의 그림으로 압축하기다. 그것이 영화다. 영화는 그림이다. 밀도있는 그림이 되어야 한다.

쉽지 않다. 영화 포스터가 전체 줄거리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듯이, 스틸컷 하나가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듯이, 좋은 영화라면 모든 장면에 그러한 압축과 그에 따른 밀도의 깊이가 들어가 있어야 한다.

탐미주의 소설의 전형적인 예라 할 김동인의 ‘광염소나타’ 역시 액자식 소설이다. 소설의 구조를 실험하고 있다는 말이다. 명백히 의도적인 실험이다. 주인공의 성격도 괴팍하다. 여러모로 김기덕의 영화와 닮아있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형식의 실험을 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무엇을 실험하는가? 압축을 실험한다. 액자식 구조 자체가 고도의 압축이다. 김기덕 영화의 모든 장면에 그러한 실험들이 숨어 있다.  

이중, 삼중, 사중, 오중의 관점이 있다. 보여지는 대상과 그 대상을 보는 사람과 그 보는 사람을 보는 눈이 또 하나 더 있다. 그럴 때 관객은 그 모든 것은 보는 관객 자신의 시선까지 보게 된다.

그렇게 단계적으로 압축해 들어간다. 나쁜남자의 거울과 같다. 대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보여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대상 위에 시선을 씌우고 시선 위에 또다른 시선을 씌우고 최종적으로 관객의 시선을 씌운다.

마지막으로 그 모든 시선의 위에는 부처님 손바닥 위에서 노는 손오공을 지켜보는 부처님의 시선이 있다. 그것은 작가의 시선이다. 그 순간 관객은 작가와 직접 소통한다. 거기에 이심전심의 미소가 있다. 도달했는가?

흑의 소지섭과 백의 강지환은 분명 서로 다른 두 인물이다. 그러나 둘 사이에 거울을 배치하면 자화상과 같아진다. 흑과 백의 반전이 있을 뿐 포즈는 같다. 소지섭이 강지환이다. 강지환이 소지섭이다.

그렇다면? 관객이 배우다. 배우가 관객이다. 작가가 관객이고 관객이 작가다. 관객이라는 작가는 입소문이라는 배역을 맡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옮기며 연기한다. 김기덕 관객이 지켜보는 앞에서. 이런 게임은 재미가 있다.

영화는 그림이다. 언제라도 이야기 줄거리를 따라갈 것이 아니라 그림을 따라가야 한다. 왜 막판에 바다가 나오고 최후에 인사동이 나오느냐다. 심우도의 마지막 입전수수를 연상시킨다. 깨달은 이는 다시 시장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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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셈은 덧셈보다 더 단순하다. 그러나 복잡하다. 단순하기 때문에 복잡하다? 그렇다. 곱셈을 아는 사람에겐 단순하고 모르는 사람에겐 복잡하다. 모든 단순화는 복잡한 구조화의 과정을 거친다.

덧셈은 앞과 뒤로 주변과 이어져 있지만 곱셈은 더 많이 주변과 맞물려 있다. 제곱은 더욱 많이 맞물려 있다. 점에서 선, 각, 입체, 밀도로 갈수록 더 많은 외부 변수와 동시에 맞물려 있다. 그렇게 압축하는 것이다.

미학은 압축기술이다. 하나의 장면에 많은 것을 담아내야 한다. 양의 많음이 아니라 질의 깊이까지 담아내야 한다. 알집을 이용한 소프트웨어의 압축과 같다. 압축비가 높은 것이 미학적으로 뛰어난 것이다.

무조건 우겨넣는다고 압축되는 것이 아니다. 포지션이 정해져 있다. 예쁘다는 곱다 속에만 들어가고 곱다는 어울린다 속으로만 들어가고 어울린다는 아름답다, 아름답다는 멋있다 속으로만 압축되어 들어간다.

한국 드라마는 확실히 일본 드라마보다 재미가 있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일본 드라마를 즐겨보고 일본 소설을 즐겨 읽는다. 한국 드라마는 후진국 베트남에서 환영받는다. 이런 실정을 부끄러워 해야 한다.

극장에 백만 관객이 들어와봤자 베트남 팬들의 열광과 같다. 감독을 만드는 감독이어야 진짜다. 결국 한국관객의 수준이 높아진다. 재미있어도 같은 것을 계속보면 식상하게 되기 때문이다.

식상하지 않게 하려면 부단히 압축률을 높여가야 한다. 압축의 최종 단계에서는 관객의 쌍방향적인 참여가 일어나므로 미학적으로 완성된 작품에는 관객이 식상해 하지 않는다. 그것이 진짜다.

자동차와 같다. 가장 압축률이 낮은 자동차는? 두 다리 자동차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걸어가기다. 자전거는 약간 압축률이 높고 오토바이는 더 높고 승용차가 매우 압축률이 높다.

승용차는 키 하나만으로 단번에 부산까지 갈 수 있다. 두 다리 자동차로 걸어가려면? 배낭도 필요하고 솥단지도 필요하고 침낭에 텐트에 일이 많아진다. 복잡한 것이다. 승용차는 단순화 시킨다. 키만 있으면 된다.

김기덕의 영화는 쉽다. 단순하기 때문이다. 고도로 압축되었기 때문이다. 김기덕의 영화가 어렵다는 사람도 있다. 운전면허가 없기 때문이다. 확실히 자동차가 자전거나 도보로 걷기보다 쉽지만 면허가 있어야 한다.

김기덕의 영화가 어렵다는 사람은 자신의 보는 안목과 수준이 낮다는 고백일 뿐이다. 운전면허가 없다는 고백일 뿐이다. 수준차를 인정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발전은 없다. 평생 김수현 드라마만 보고 그 수준에 놀아난다.

중요한 것은 지적 성장이 정체된, 김수현 드라마나 보는 사람과는 대화하지 않는다는 거다. 글을 모르는 사람과의 대화는 한계가 있다. 인터넷을 못하는 사람의 대화는 한계가 있다.

김기덕 영화의 미학을 모른다는 것은 글을 못읽는 것과 같고 자판을 못 치는 것과 같아서 소통은 실패다. 어쩔 수 없는 한계다. 문화적 지체현상은 분명히 존재하며 인정해야 한다.

김기덕 영화가 짜임새가 없어서 허접하다는 사람도 있다. 확실히 그의 영화는 이창동의 소설만큼 구조가 탄탄하지는 않다. 그러나 이는 초등교사가 김용옥의 강의를 트집잡는 격이다. 그들은 말한다.

“김용옥은 도대체가 교사의 기본이 안되어 있어! 빡빡머리에 검정 두루마기 입고 나와서 인상이나 쓰고 쇠끓는 소리로 꽥꽥대다니 그런 식으로는 초등학교 1학년도 못 가르친다구!”

맞는 말이다. 김용옥은 초등학교 1학년을 못 가르친다. 그런 식으로 수업하면 학생들이 울면서 뛰쳐나갈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김기덕은 초등학교 1학년 수준의 관객들에게 그의 영화를 보여주지 않는다.

미학적 창의가 있느냐가 중요하다. 파란 대문에서 바닷가 다이빙 위의 정사 장면은 훔쳐보기의 효과를 극대화 시킨다. 김기덕의 대형 크레인은 임권택의 담장과 같다. 관객이 보는 자신의 시점을 의식하게 한다.

그런 식으로 김기덕 영화의 모든 컷에는 항상 무언가가 하나씩 더 있다. 그렇게 하나를 추가하는 것이 미학이다. 시선 위에 시선을 덧씌우는 것이 미학이다. 그 미학적 창의의 가치는 그 어떤 가치보다 높다.

왜냐하면 그것은 과학이고 발명이기 때문이다. 자동차를 1백만대 만들어도 최초로 자동차의 원리를 발견하고 자동차를 발명한 가치에는 미치지 못한다. 김기덕은 미학에서의 과학자이고 발명가이기 때문에 위대하다.

한국인들이여. 제발 수준 좀 높이자. 부끄럽지도 않나? 당신네들이 인터넷을 배우지 않는 한 내 글을 읽을 수 없듯이, 당신네들이 먼저 수준을 높이지 않는 한 소통은 일정한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www.drkim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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