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을 저지르는 이유는 딱 세가지이오.
1) 누군가 부추길 때 .. 공동체를 보호하는 본능에 따라 지목된 타자를 공격함.
2) 과거에 저지른 경험이 있을 때 .. 무심코 같은 짓을 반복. 안해야지 하면서 또(반복연습으로 극복가능)
3) 본능의 명령이 내려졌을 때 .. 절대로 약자만 공격함, 비겁한 짓.(순간적으로 계산 들어감)"
여기에서 잘못에 폭력을 대입하면,
폭력은 누군가 부추길 때, 과거에 폭력을 저지른 경험이 있을 때, 본능의 명령이 내려졌을 때 저지른다고 말할 수 있겠소.
이 이야길 좀 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소. 이 세 가지 이유로부터 우리는 폭력의 근원과 그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오.
동렬님이 언급한 세 가지 중 가장 먼저 살펴볼 것은 바로 두 번째, 폭력은 과거에 저지른 경험이 있을 때 발생한다는 것이오. 폭력이 폭력을 낳는다는 것은 오리가 오리를 낳고 닭이 닭을 낳는다는 것과 마찬가지이고 폭력은 폭력을 낳을 뿐 다른 무언가를 낳을 수 없소. 이건 인과율에 따른 거라, 폭력이 폭력 이외의 것을 낳는다는 것은 불가능하오.
누군가 아무 이유없이 내 뒤통수를 치면 화가 나고 상대를 보고 같이 맞받아치던지, 아니면 쫄아서 나중에 집에 들어와 애먼 아내, 아이 혹은 형제에게 풀던지, 아니면 속으로 끙끙거리며 자기자신을 때리던지, 이 외의 것은 없소. 혼자서 끙끙 앓는 것도 폭력이오. 자기 자신에 대한 폭력. 왼뺨을 때리면 오른뺨도 내밀어라는 미친짓이고. 그러면 상대는 오른뺨부터 시작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갈것이오. 왼뺨을 때린 시점에서 폭력은 즉각적으로 단호하게 제지되어야 하는 것.
폭력이 폭력을 낳는다는 기본 원리에 입각하면, 우리는 어떻게 폭력에 접근해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소. 아, 폭력이 폭력을 낳으니까 폭력을 멈추면 되겠구나. 자신, 혹은 타인의 폭력 행위를 강제 혹은 자발적으로 멈추게 하면 되겠구나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소. 근데 이건 너무 뻔한 소리. 우리가 이 문제를 구조론적으로 접근하려면 이것 가지곤 부족하오.
폭력의 구조를 알아야 하오.
내가 살펴 본 폭력의 구조는 아래와 같소.
바운더리 침해(질)> 두뇌가 침해를 의식(입자)> 두뇌차원에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판단(Fight or Flight)(힘)> 코르티졸 호르몬 방출(운동)> 싸우거나 도망침.
우리는 폭력의 자궁을 볼 수 있어야 하오. 폭력을 낳는 것을 알아야 하오. 폭력의 자궁. 그것은 근본적으로 "바운더리 침해". 상부구조의 스트레스가 하부구조물들에 전달되 서로의 바운더리 침범을 낳는 것. 그래서 하부구조물에 일시적 혹은 지속적인 스트레스가 가해지는 것, 그것이 바로 폭력의 자궁이오.
바운더리 침해의 예: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가에서 A가 B의 발을 밟았다(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가라는 상부구조의 스트레스가 신체들끼리의 의도치 않은 충돌을 낳음)
-가뭄이 들어 우물물은 바닥이 보이는데 A와 B는 그 물을 나눠 마셔야 한다(가뭄이라는 환경의 스트레스가 스트레스 범위 내에 있는 개인들 사이의 긴장을 고조시킴. 전에는 아침엔 A가 물뜨고 저녁엔 B가 물뜨는 식으로 서로의 생존권을 침해하지 않을 수 있었으나 이젠 어쩔 수 없이 서로의 생존권이라는 바운더리를 침해할 수 밖에 없는 상황)
-교실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아이들은 각자의 정신적, 신체적, 정서적 바운더리를 유지해야 한다. 그런데 교실 공간(여기에서 공간은 심리적 공간도 포함, 교사가 너그럽고 아이들을 존중하면 심리적 공간은 넓고 교사가 사사건건 간섭하고 아이들을 무시하면 심리적 공간은 좁음)은 턱없이 좁다. 그 속에 속한 아이들은 자동으로 스트레스 만땅. 일진들이 괜히 교실 구석에서 공간을 넓게 쓰는게 아님.
***인간에겐 적어도 1평 이상의 공간이 확보되어야 함. 그게 안 되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음. 미쿡 교도소 같은 경우엔 적어도 가로 2미터 세로 4미터 공간은 확보, 근데 우리나라 교실은 보통 개인당 평균잡아 1제곱미터의 공간이 허용되오. 이건 미친짓. 감옥보다도 좁소. 이러니 스트레스를 안받을래야 안 받을 수가 없는것.
-독재나 경제공황 등 정치 경제적 문제들은 그야말로 폭력의 자궁 of the 자궁. 이명박식 정치는 사회 구성원들의 인권, 의사결정권, 정치참여권 등을 현저하게 침해함으로써 구성원들의 스트레스를 만땅으로 충전시킴. 경제 공황의 경우엔 구성원들의 생존권을 현저하게 침해함으로써 극심한 스트레스를 가함. 정치 경제 처럼 인간의 바운더리 확보가 필수적인 영역에서의 침해는 다른 무엇보다도 공동체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안기므로, 닥치고 정치, 문제는 경제야 이런 말들이 나오는 것임.
이렇게 상부구조의 세팅에 따른 하부구조들 끼리의 바운더리 침해가 바로 폭력의 근원이오. 그래서 폭력에는 구조론에서 말하는 바와 같은 시스템적인 접근이 필요한 것이오. 따라서 근본적인 의미에서 폭력 해소 방안 중 하나는 바로 정권교체요.
교실에서 아이들이 폭력을 휘두른다고? 이명박을 심판하자.
용산에서 용역들이 시민들에게 폭력을 휘두른다고? 이명박을 심판하자.
제주도 강정마을에서 해군들이 주민들에게 폭력을 휘두른다고? 이명박을 심판하자.
이게 말이 되는 이유는 바로 폭력이 근본적으로 바운더리 침해의 문제이고 보통 상부구조에서의 스트레스가 하부구조에까지 전달되면서 바운더리 침해가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시스템적 접근이 필요한 것이오. 시스템적 접근은 상부구조와 하부구조 둘 다를 아우르는 것이며, 방역작업에서 발생지역내 가축들에게 일일이 백신을 주사하듯이 하부구조에선 구성원 하나하나의 폭력 행위를 제지하고 다른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줘야 하오. 그리고 상부구조 차원에선 지역 내에 일체의 바이러스 침입을 통제하고 인근 지역의 가축 모두에 백신을 놓듯이 애당초 바운더리 침해를 낳는 상부구조의 조건을 다룰 수 있어야 하오.
다시, 폭력의 구조로 돌아가면,
바운더리 침해(질)> 두뇌가 침해를 의식(입자)> 두뇌차원에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판단(Fight or Flight)(힘)> 코르티졸 호르몬 방출(운동)> 싸우거나 도망침.
앞에서 다룬 바운더리 침해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것은 질적 차원의 해결책이오. 학교 폭력을 예로 들면, 교실 공간을 확보한다던지, 학교폭력에 대한 법률을 제정한다던지, 대대적인 학교폭력 예방 교육을 벌인다던지, 과도한 경쟁교육을 협력교육으로 대체한다던지, 학생인권조례안을 적용한다던지, 가정폭력을 근절시킨다던지 등등은 전부 질적 차원의 접근이며 폭력 문제를 상부구조 차원에서 풀어보겠다는 시도로 볼 수 있소. 하지만 이걸론 부족하오. 우리는 프로이기 때문에 상부구조 뿐 아니라 하부구조도 다룰 수 있어야 하오. 전장에서 전략을 짬과 동시에 실제 전장에 뛰어들 수 있어야 하오. 그러기 위해선 하부구조에서 일어난 일들도 능수능란하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하오.
폭력도 마찬가지.
폭력을 낳는 바운더리 침해를 막는 일은 로마제국을 건설하듯, 비폭력제국을 건설하기 위해 공동체 전체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 그 때까지, 비폭력제국이 세워질 때까지, 타인에게 폭력을 휘두른다는 것이 곧 자신을 해치는 것임을 구성원 전체가 자각하는 수준에 이르기 전까진, 현장에서의 지침도 필요하오.
이것 역시 우리가 함께 만들어갈 것들중 하나이오.
다음 글은, 폭력에 대해 나머지 입자, 힘, 운동, 량의 관점으로 살펴보겠소.
인간은 원래 폭력적인 동물이오.
원시 사회에서는 가냘픈 여자도 멧돼지 두어마리는 때려잡소.
남자가 사냥을 하고 여자는 아기를 돌본다는 신화는 남자들이 꾸며낸 거짓말이고
원시 공동체에서는 여자들도 꽤 짐승을 잘 때려죽이오.
남자가 사냥하는 관습은 현대의 문명이 만들어낸 역할분담의 편견일 뿐이오.
침팬지들은 아무 이유없이 형제를 때려죽이고 후회하지도 않소.
'어 죽었네? ㅎㅎ 죽었어. 잘 죽는다니깐.'
나치가 학살을 하듯 태연하게 사람을 죽이고 짐승을 죽이는 것이며 원래 인간은 그렇소.
인간이 폭력을 버린 이유는 전략일 뿐이오.
폭력을 버리는 전략을 채택한 거지 다른거 없소.
그렇다 해서 인간이 폭력적인 존재라고 생각해도 곤란하오.
폭력이라는 관념 역시 인간이 지어낸 망상일 뿐이오.
폭력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먹이활동이오.
먹이활동을 하다보면 동료를 먹기도 하고 그러는 것이오.
폭력을 하는 이유는 딱 하나 기승전결의 법칙 때문이오.
기에 들어섰으면 무조건 승으로 가는 수 밖에 없소.
왜냐하면 인간의 아이큐는 바퀴벌레와 정확히 같기 때문이오.
인간은 아이큐가 거의 0에 가깝기 때문에 폭력의 기가 발동한 순간 승 외에 다른걸 판단하지 못하오.
그러므로 폭력을 경험한 사람은 기승전결이 세트로 다니므로
기를 통과하면 그 다음은 자동이고 거기에 브레이크를 거는 것은 고도의 긴장 뿐이오.
귀싸대기를 쳐서 강력한 긴장을 걸어주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게 주먹이 나가는 것이오.
이미 주먹을 쥐었는데 다시 펼 수는 없는 것이오.
결국 때려본 놈이 때리는 것이고 막는 방법은 강력한 물리적 억제나 긴장을 걸어주는 것이고
혹은 반복 연습으로 그 상황을 극복하는 것 뿐이오.
이건 물리적 메커니즘이고 자연법칙이며 인간의 아이큐가 바퀴벌레와 같기 때문에 어쩔 수 없소.
여자들은 뱀을 보기만 하면 공중부양을 하는데 그것이 뱀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속도보다 빠르오.
뇌가 아 뱀이구나 하고 판단하기도 전에 이미 비명을 지르고 공중부양을 해 있소.
이 상황을 극복하는 방법은 뱀을 자주 접촉하는 것 뿐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