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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1036 vote 0 2005.12.17 (16:08:15)

서프가 대통령을 구했는가?



정치란 무엇인가?

그것은 집단의 의사결정 구조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지정학적 환경과 역사와 전통이 만드는 바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맞게 최적화된 형태의 의사결정의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부터 만들어가야 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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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반대쪽의 입장도 생각해 보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치란 집단의 의사결정 구조이며, 그것은 51과 49의 팽팽한 대결에서.. 51을 선택하고 49를 배척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49가 간단히 배척해도 좋은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갈등을 최소화 하고 단기간에 사태를 종결하기 위해서 49의 의견을 거듭 무시해 왔다.


황우석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진작부터 듣고 있었다. 노성일의 비리에 관해서도 충분히 듣고 있는 만큼. 그러나 나는 황우석의 문제들을 무시하곤 했다. 그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과연 중요하지 않은 것인가? 그렇지 않다. 특히 과학도들 입장에서 그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내 입장에서는 덜 중요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내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서프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일정부분 황우석과 노무현은 공동운명체라는 사실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판단했다. 청와대가 보고받지 못했을 경우는 상상할 수 없다. 줄기세포 오염사건도 청와대는 아마 알고 있었을 것이다.


또 당연히 알고 있었어야 한다. 대통령은 모든 경우의 위험의 가능성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의 칼끝이 최종적으로 청와대를 겨냥할 수 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고 필자는 판단했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할퀴는 법이니까! 또 그들에게도 한 가닥의 명분은 있으니까.


나는 서프가 청와대를 구했거나 혹은 서프가 청와대를 구하려고 했다고 판단한다. 대통령의 네티즌에 대한 자제요청을 조중동은 ‘노빠 총동원령’으로 왜곡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 와중에 서프가 대통령의 말씀을 존중하여 엠비씨를 편들고 황우석을 비판하면? 대통령이 친노세력을 동원하여 황우석을 죽이려 한다고 조중동이 왜곡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 아닌가.


다행히 대통령의 말씀은 한 번으로 그쳤다. 대통령이 엠비씨를 두둔하는 말을 한 마디만 더 했다면? 아찔한 상황이었다. 나는 서프가 대통령께 뭔가 사인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는 나의 오바가 분명하다. 대통령이 그 정도를 모를 사람이겠는가?


나는 대통령의 말씀을 거꾸로 해석하는 습관이 있었다. 대통령이 김혁규를 두둔하는 발언을 했을 때 나는 이를 김혁규에서 다른 사람(이해찬)으로 총리후보의 교체로 확신했다.


대통령의 말씀 직후에 ‘김혁규는 아니다’라는 제목을 글을 올렸다. 내가 대통령의 말씀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글을 쓴 것이 한 두 번은 아니다. 대통령이 안희정을 두둔하는 발언을 했을 때 안희정이 잘린다고 선언한 예가 그러하고 이기명이나 이광재 등의 경우도 비슷하다. 나는 이를 서프와 청와대의 짜고치는 고스톱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이번에 나는 대통령의 말씀을 ‘MBC의 칼끝이 최종적으로 청와대를 겨냥하게끔 구조화 되어 있다’로 알아들었다. 이것이 나의 오바라면 오바다.


51과 49의 팽팽한 대결에서 49를 배척할 때의 아픔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MBC PD들도 나름대로 애국자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는 MBC를 치는 것이 MBC를 구하는 길이라고 판단했다.


누구나 나름대로는 애국자이지만 조중동의 애국이 재앙이라면, MBC의 애국은 위험이다. 선의(善意)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문제의 최종적인 해결 그리고 결과에 대한 책임이 중요하다.


네티즌들이 광고중단 공세를 편 것은 명백히 잘못이다. 그러나 나는 네티즌들을 비판하지 않았다. 왜인가? 이것이 인터넷 신문명 시대의 룰이 되어서 앞으로도 이와 같은 일은 무수히 반복될 것이며, 그렇다면 MBC가 정신을 차려서 대세가 바뀌었음을 알아채는 수 밖에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분명 네티즌이 잘못했지만 그것이 역사의 흐름이고 대세라면 MBC가 그 변화에 순종하는 수 밖에 없다. 네티즌은 직접 민주주의를 하려들고 직접민주주의는 단기적으로 혼란을 부르지만 인터넷이 존재하는 한 역사가 점차 이 방향으로 갈 수 밖에 없다면 옳고 그르고의 여부를 떠나 MBC가 그 흐름에 순응하는 것이 옳다고 보았다.


네티즌은 잘못하고 있지만 어차피 해결책이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면 네티즌 더러 이래라 저래라 밖에서 지시하고 명령할 것이 아니라, 네티즌 안에 신뢰의 축을 만들어서 그 잘못을 최소화 하는 방향으로 가는 수 밖에 없다고 보았다.


네티즌은 성난 황소처럼 난폭해졌다. 네티즌은 앞으로도 무수히 잘못을 저지를 것이다. 그러나 밖에서 인위적으로 이를 통제할 수 없다면 서프가 네티즌 다수의 중론을 주도하는 것이 그나마 피해를 최소화 하는 길이라고 보았다.


결론적으로 필자의 말이 다 맞는 것도 아니고, 필자가 의견을 개진할 때 필자가 절대로 옳고 상대쪽은 완전히 틀렸다고 확신하는 것도 아니다.


필자는 51 대 49의 팽팽한 대결에서 단기전이면 51을 편들고, 장기전이면 49를 편든다. 지율이나 부안과 같은 환경문제는 울림이 큰 장기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그분들의 주장이 사리에 맞지 않더라도.. 역사의 큰 흐름을 살펴서 ‘새로운 기운’의 편을 드는 것이 맞다고 본다.


나는 이렇듯 공식을 정해놓고 그 공식에 맞추어서 기계적으로 판단한다. 독자여러분이 이 점을 헤아려 주기 바란다. 내 기계가 아직은 쓸만하다 싶지만 세상 일은 역시 알 수 없는 것. 다 때려치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MBC를 위해서 MBC를 공격했다고 말하면 아무도 안믿겠지만 나는 정말이지 MBC가 살아나 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MBC는 점차 죽을 길로 가고 있다.


황박사가 잘못한 건 분명하다. 그러나 단지 진실을 밝히기만 하면, 황박사만 죽으면 그걸로 게임 끝이고 앞으로는 평화가 온다는 MBC의 믿음은 분명 틀렸고, MBC가 그 환상에서 헤어나지 않는 한 점점 수렁으로 빠져들 뿐이라는 나의 충고가 MBC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누구의 잘못인가?


나는 냄비언론의 잘못도 아니고 네티즌의 잘못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누구도 황박사를 영웅만들기 하지 않았다. 그것은 자연스런 흐름일 뿐이다.


이 모든 것은 한국이 지정학적 조건에 맞는, 역사와 전통과 기질에 맞는, 민주적이고 최적화된 의사결정 구조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한번은 거쳐야 할 통과의례라고 본다.


섬나라 영국이 이 문제에 발빠른 대처를 하는 데서 보듯이, 한국은 반도국가의 이점을 살려가는 것이 맞다. 반도국가인 한국이 대륙국가인 서구의 기준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건 미친 짓이다. 그건 물리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 필자는 공식을 만들어 놓고 기계적으로 판단한다. 이 공식의 신뢰도는 일반 언론이나 전문가 집단에 비해서도 높은 편이지만 언제나 맞는 것은 아니다.


● 황박사가 잘못을 저지른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그에게 확실한 기술이 있다면 스스로 그 잘못을 만회할 기회를 주는 것이 또한 한국의 방식이다.


● 머피의 법칙이 있다. 잘못될 수 있는 것은 반드시 잘못되고 만다. 황우석은 이 사실을 알아야 했다. 그것이 데이터를 조작한다 해서 대충 넘어갈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국민 역시 이 사실을 알아야 한다. 잘못될 수 있는 것은 결국 잘못될 수 밖에 없으므로 쉬쉬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다 까발겨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젊은 과학도들의 역할은 가치있다.


● MBC가 언론으로서의 역할은 잘했고 이 점은 존중한다. 그러나 그 선을 넘어 정치 역할까지 하려 든 것은 잘못이다. MBC는 정치했고 지금도 정치하고 있다.


● 네티즌의 광고취소 운동은 잘못이지만 인터넷으로 인한 환경의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네티즌이 스스로 권력화 된 점은 비판되어야 하지만 MBC 역시 그러한 변화된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 이러한 전개는 인터넷 발전과 관련이 있다. 과거라면 대충 넘어갈 일이었을지 모르나 이제는 인터넷 때문에라도 다 까고 가는 수 밖에 없다. 어차피 밝혀질 일이면 외국에서 밝히는 것 보다 국내에서 밝히는 것이 낫다는 점에서 MBC의 역할을 긍정평가 하지만, 인터넷의 발전으로 하여 네티즌 역시 함부로 건드리면  폭발하고 만다는 사실을, 그러므로 신중하게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나는 MBC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 서프가 대통령을 말씀을 좇아 수동적으로 움직이면 조중동과 한나라당의 협살에 걸리고 만다. 서프는 대통령 보다 약간 앞질러가는 방법으로 짜고치는 고스톱을 해야한다.  


● 정치는 집단의 의사결정 구조이다. 이는 복잡한 것을 단순화 해 가는 절차다. 문제를 단순화 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갈등을 증폭시킬 필요가 있다. 필자의 글이 갈등을 증폭시킨 점에 대해서는 늘 반성하고 있다.


● 우리가 찾는 정답은 대한민국의 지정학적 구도와 역사와 전통이 결정하는 바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맞는 최적화된 의사결정 구조를 만들어 내는 것이지 결코 선진국의 관행을 그저 수입하는 것이 아니다. 이 과정에 진통이 필요하며 기꺼이 그 고통을 감수할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MBC도 네티즌도 ‘대한민국의 최정화된 의사결정구조’라는 옥동자를 낳기 위하여 각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MBC도 옳고 네티즌도 옳다. 그러나 조중동식 양비론이나 황희정승의 양시론은 도움이 안 된다. 어떻게든 의사결정을 해야한다. 계백이 가족을 베고 황산벌에 나가는 심정으로 51을 취하고 49를 버리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51을 선택했다 해서 49의 희생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 그 상처, 그 고통, 그 아픔 다 안고 가야 한다.


그래도 결단은 결단. 나는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의사결정 구조 안에서 기득권의 몫, 자칭 전문가라는 먹물들의 몫을 되도록 좁게 잡고, 네티즌의 몫, 민초들의 몫을 되도록 크게 하기 위하여, 한번이라도 더 네티즌의 손에, 민초들의 손에 마이크가 쥐어지고 발언권이 가게 하기 위하여 할 말을 할 것이다.


● 언젠가 한국이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민주주의에 근접한, 최적화된 형태의 의사결정 구조를 만들었다는 평판을 받게 될 때, 오늘의 다툼이 아주 무의미한 이전투구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금 돌아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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