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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4083 vote 0 2005.12.02 (19:10:03)

오늘은 정말 슬픈 날이다. 우리는 친구를 잃었다. 우리는 든든한 우군이었던 MBC를 잃었고, 오마이뉴스를 잃었고, 프레시안을 잃었고, 민노당을 잃었다.

배아복제의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MBC,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민노당은 일반의 상식으로 볼때 ‘손잡고 무슨 일을 함께 할 수 없는 사람들’로 낙인이 찍혀버렸다.

옳고 그름을 떠나 일이란 것을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세 살 먹은 어린애도 아니고 참! 사람 할 말이 없게 만든다.

주위를 둘러 보라. 이제는 정말 우리 밖에 없다. 고독한 여정이 되겠지만 힘들더라도 이제는 우리만의 힘으로 헤쳐가야 한다.



MBC의 기이한 자살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 게임에서 MBC는 져도 지고, 이겨도 역시 진다는 거다. MBC가 이긴다 해서 한 번 떨어져 나간 시청률이 돌아올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 그 후유증이 최소 3년은 갈 것이다.

승부의 룰은 MBC가 자의로 정한 것이다. 그들은 황우석이 룰에 동의했었다고 말하고 있지만(그들이 황우석을 괴롭힌 결과로), 그 부분은 국민의 관심사가 아니다. 설사 이긴다 해도 아무도 축하하지 않는, 저주받은 승리가 된다.

MBC가 지면 작게 지는 것이고, 이기면 크게 지는 것이다. 운명적으로 일은 점점 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본래 MBC라는 일개 방송국이 감당할 수 있는 규모의 사건이 아니었던 거다.

오늘 MBC의 기자회견은 ‘제발 빨리 끝내자’는 하소연이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미 잃을 것을 모두 잃은 황박사 입장에서 MBC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얻을 이익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 누가 ‘갑’이고 ‘을’인지를 봐야 한다. 누가 칼자루를 쥐었고 누가 칼날쪽을 쥐었는지를 살펴야 한다. 내가 황우석이라도 이 상황이면 시간을 끌어 MBC를 곤경에 몰아넣을 것이다.

이미 명예를 손상당하고 자존심을 구긴 황우석 입장에서는 이 기회를 역이용하여, 다시는 MBC 같은 집단이 괴롭하지 못하도록 ‘성역’을 보장받아야 본전이 되는 게임이다.

한 마디로 MBC측의 판돈이 부족한 것이다. 황우석 박사가 이 황금의 찬스를 그냥 날려버릴 바보이겠는가? 



얼치기들의 아마추어리즘이 문제

MBC가 처음 의혹을 발견하고 추적하기로 한 것은 그렇다 치고, 그 후의 대응과정은 지극히 아마추어적이다. 공룡을 사냥할 때 넘어지는 공룡의 몸집에 깔려 같이 죽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고약한 비유지만 양해를 -.-;)

오늘 기자회견 역시 그렇다. 해도 너무한다. 설사 그들의 주장이 옳다손 치더라도, 암환자에게 ‘당신 한달 안에 죽을 거야’ 하고 말해서는 안된다는 상식을 그들은 어긴 것이다.

가족에게 먼저 통보하는 것이 맞다. 가족과 협의를 거쳐서 환자의 심리상태를 보아가며 조심스럽게 통보여부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상식이 있다면, 황우석 박사가 스스로 진실을 털어놓게 유도를 하고, 황박사가 기자회견을 한 시점에 취재를 멈춰야 했다. 황박사가 털어놓지 않은 부분은 청와대와 과학계로 보고가 들어가야 했다.

청와대가 국정원이나 관계기관을 시켜 검증하게 하고, 다른 과학자가 과학의 방법으로 반박하게 해야 했다. 그것이 일을 풀어나가는 제대로 된 절차이다. 그러나 그들은 어떻게 했는가?

황박사와 직접 승부를 보기로 했다. 이게 뭔가? 이것이 스포츠 게임인가? 거대 방송국과 한 과학자의 꼴사나운 멱살잡이 막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방송국이 이런 일을 벌여서는 안 된다. 이건 추태다.

MBC여! 지금 도박을 하자는 건가. 내기를 걸자는 건가? 전 국민이 황박사 편에, 혹은 MBC 편에 돈을 걸고 이 게임을 지켜봐야 하는가? 왜 우리가 그 짓을 해야하는 거지? 무엇 때문에? 정말 화가 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왜 국민을 고문하는가? 왜 최단시간에 일을 정리하지 못하고 질질 끄는가? 단시간에 정리하지 못하는 책임을 황박사에게 떠넘기기만 하면 된다고 믿는가?

이 사건이 원래 단시간에 정리되지 않을 규모의 사건이라는걸 처음부터 알고 들이대더라도 들이댔어야 하지 않는가? 황박사가 잘못했다 치고, MBC의 국민고문 행위가 덮어지는 것은 아니다.

MBC는 이기고야 말겠다는 호승심에 사로잡혀 보도를 ‘게임’으로 몰고갔다. 이건 정치가들이 흔히 하는 방식이다. MBC의 방법은 언론 플레이의 절정이다. 하기사 언론이니 언론 플레이를 하겠지만.

정치를 이런 식으로 했다면 MBC가 선거에서 압승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국민 고문’을 이런 식으로 하면 설사 당신들이 옳다는게 나중 밝혀져도 국민고문죄로 엮여서 파산하게 된다.



MBC는 손 떼고 정부가 나서라

MBC, 황박사 연구실에서 핵폭탄을 발견했다면 지들이 검증한다면서 망치로 뇌관을 때려볼 넘들이 아닌가!

이쯤에서 결론을 내리자. 이제 사건은 MBC의 손을 떠났다. 오늘 MBC의 기자회견은 정부에 대고 ‘제발 살려달라’고 구조요청을 한 것이다. 늦었지만 지금이 정부가 개입할 때다.

MBC는 일단 사건에서 손을 떼고, 청와대와 정부기관이 사건을 전담하되 뒷마무리는 입법부에 넘겨야 한다. 다시는 MBC와 같은 몰지각한 집단이 나서지 못하도록 법을 정비해야 한다.

지금 참여정부의 위기관리능력이 시험받고 있다. MBC는 아마추어지만 참여정부는 프로가 되어야 한다. 사건이 조속히 해결되지 않으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정부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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