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기효과 계 내부에 압박을 걸어 내부가 한 방향으로 정렬되면 의사결정 비용의 감소로 이득을 얻는다. 메기효과는 지어낸 말이지만 경영학에서 비유로 많이 사용된다. 인간의 여러가지 차별행동도 같다. 차별의 본질은 압박이다. 문제는 방향이 틀려 상충되면 자멸한다는 점이다. 큰 것으로 압박해야 상충되지 않는다. 진리로 압박하고, 역사로 압박하고, 문명으로 압박하고, 진보로 압박해야 한다. 패턴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아들 열 형제 중에 아홉을 봤더니 모두 닮아 있었다. 거리에서 우연히 형제들과 닮은 사람을 봤다면 열번 째 아들이라는 사실을 추측할 수 있다. 같은 자궁에서 복제되었기 때문이다. 세상은 복제된 존재다. 인간은 복제의 경로를 추적하여 지식을 얻는다. 그것이 구조다. 우리는 결과 측에서 같음과 다름을 구분할 뿐 원인 측에서 합쳐지고 갈라지는 경로를 추적하지 않는 오류를 저지른렀다. 깔때기와 나팔 모래시계는 깔때기와 나팔의 결합이다. 깔때기는 작아지고 나팔은 커진다. 우리는 작아지는 깔때기 기준으로 사유해야 한다. 작아지면 모이고 모이면 통제되기 때문이다. 깔때기는 내부에 대칭이 있다. 대칭의 축을 핸들로 삼아 조절할 수 있지만 나팔은 단순히 축적될 뿐 조절할 수 없다. 나팔은 트리구조와 같다. 나무는 가지쪽으로 자라지만 에너지는 뿌리쪽으로 이동한다. 나무는 태양에너지를 뿌리로 수렴하는 깔때기다. 가지는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는 나팔이다. 깔때기와 나팔이 있는데 우리가 보는 세계는 나팔의 세계다. 인류는 세계의 절반만 보고 있다. 승리와 행복 행복은 결과다. 결과는 깔때기의 출구다. 결과에 집착하므로 깔때기 속으로 미끄러진다. 인간은 타인을 깔때기 속으로 밀어넣지만 자기 자신을 밀어넣기도 한다. 깔때기 입구를 차지하고 무언가를 밀어넣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감독은 선수를 그라운드에 밀어넣고, 선수는 골을 골대에 밀어넣는다. 행복은 상당부분 외부환경에 지배된다. 그것은 내 책임이 아니다. 행복은 받는 것이다. 받는 사람은 움직일 수 없다. 택배를 받으려면 집에 머물러야 한다. 행복을 추구하므로 움직임이 줄어들어 활력을 잃고 조금씩 약화된다. 반면 이기려고 하는 사람은 움직임이 커지므로 활력을 얻어 유리해진다. 무는 없다 세상은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니고 변화다. 유와 무는 변화를 설명하는 방법이다. 유는 숫자 1과 같다. 외부의 객체를 가리킨다. 무는 숫자 0과 같다. 객체가 있을 자리를 가리킨다. 어느 쪽이든 외부 관측자와 대칭된다. 외부에서 결정하므로 거짓이다. 객체 내부의 자체 대칭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구조다. 빛은 있고 어둠은 없다. 빛은 광자가 있고 어둠은 암자가 없다. 자연에 무는 없는데 있다고 착각하므로 혼선이 빚어졌다. 존재는 대칭이다. 외부 관측자와의 대칭은 가상대칭이다. 빛은 위치와 크기가 있다. 크기는 내부 자체대칭의 크기이며 위치는 대칭의 축이다. 내부의 자체대칭이 있으므로 빛은 있다. 결정론 결정론은 우주가 해킹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우주가 안전하게 작동하려면 누구도 미래를 정확히 알 수 없게 차단해야 한다. 설마 하느님이 멍청이라서 양자 컴퓨터에 뚫리도록 세상을 설계했겠는가? 우주의 절대방어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초딩도 알 수 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결정론의 뉴턴과 정적우주론의 아인슈타인이 상당히 병맛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존재하는 것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예측되면 교란된다. 미리 결정하지 말고 현장에서 결정하게 하는 구조론의 방법으로 교란을 막을 수 있다. 원자 구슬을 꿰면 늘어나고 매듭이 풀리면 줄어든다. 구슬을 꿰는 실은 외부에서 조달하므로 열역학 1법칙을 어기는 거짓이다. 매듭이 풀리는 실은 매듭 안에서 움직이므로 열역학 법칙을 어기지 않는다. 원자론이 구슬론이라면 구조론은 매듭론이다. 구슬꿰기는 플러스다. 매듭 풀리기는 마이너스다. 우주는 마이너스다. 풀리는 원인은 매듭 내부에 있다.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존재다. 방향 우주는 벡터다. 벡터는 운반이다. 운반은 비용이 든다. 세상은 운반비용을 자체적으로 조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작은 그릇에 큰 그릇을 담을 수 없다. 에너지는 언제나 큰 그릇에서 작은 그릇으로 이동한다. 그릇이 작아지는 만큼 남는 것은 운반비용이다. 4차원 계는 압박되어 있고 3차원 체는 풀려 있다. 우리는 압박된 것이 풀린 것보다 크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산 것이 죽은 것보다 크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 압박이 걸려 있다. 사랑도 압박이고 행복도 압박이다. 압박하면 이기고 압박당하면 진다. 압박과 직관 계 내부에 걸린 에너지의 방향성을 판단하면 직관할 수 있다. 계 내부에는 압박이 걸려 있다. 양의 피드백이 걸리면 외부의 간섭을 무시하고 그 방향으로 계속 가서 거대한 눈덩이 효과를 만든다. 그러므로 예측할 수 있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확률은 50 대 50이 아니고 백 퍼센트다. 방향이 정해진 만큼 시간문제다. 내부 밸런스 구조론은 내부를 본다. 인류는 지금까지 외부를 봤다. 내부에 숨은 자체 질서를 본 사람은 없다. 내부를 보는 관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외부는 관측자의 간섭에 의해 오염된다. 내부는 보호받으므로 자체 질서에 따라 정해진 길을 간다. 내부는 언제나 밸런스가 복원되는 형태로 방향전환을 일으킨다. 결맞음 자연에는 무가 없다. 무가 없으므로 무한도 없고 영원도 없다. 우주에 오직 유의 부단한 방향전환에 따른 결맞음과 결어긋남이 있을 뿐이다. 매듭의 꼬임과 풀림이 반복될 뿐이다. 매듭이 풀리면 사건이 종결되므로 답은 명백하다. 무는 관측의 편의에 따라 도입된 가상의 설정이지 자연의 사실이 아니다. 태양을 직접 가리키면 눈이 아프다. 그림자를 가리키고 반대쪽을 보게 한다. 무한의 측정은 피사체의 크기를 재지 않고 그림자의 길이를 재는 어리석음이다. 마이너스법 몸에 좋다는 것은 다 먹지말고 몸에 나쁜 것은 다 하지마라는 의사의 권고를 듣는다. 좋다는 플러스로는 고칠 수 없고 나쁜 것을 제거하는 마이너스로 치료할 수 있다. 세상은 마이너스다. 조직은 무언가를 줄이는 방향으로 조절된다. 플러스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도 나쁜 것을 억제하는 수단으로 투입되는게 보통이다. 극단 큰 것은 더 크게 하고 작은 것은 더 작게 하면 쉬운 비교판단이 가능하다. 우주는 벡터이고, 벡터는 운반이고, 운반은 방향이 있고, 방향은 큰 것이 작아지는 쪽이다. 운반은 압력에 의해 일어나며 압력은 자원들이 전부 연결된 상태다. 전부 연결된 상태가 초기조건이다. 변화는 초기조건을 넘을 수 없다. 던져진 야구공이 날아가면서 덜 감속된다는 종속이론은 틀렸다. 대부분의 오류는 초기조건보다 커졌다고 판단하는 형태로 일어난다. 그림자로 빛을 치는 셈이다. 도구 구조는 도구다. 도구는 에너지를 연결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은 도구다. 도구는 압박이 걸려 있다. 정치는 사람을 동원하는 도구다. 경제는 자본을 동원하는 도구다. 사회는 의사결정단위를 만드는 도구다. 문화는 합을 맞추는 도구다. 예술은 사람을 깨우는 도구다. 정치는 권력의 압박, 경제는 이윤의 압박, 사회는 소통의 압박, 문화는 교양의 압박, 예술은 트렌드의 압박을 받는다. 부단히 인간을 깔때기 속으로 밀어넣는다. |
메기효과도 비슷한 걸 말하나 싶습니다. 계가 메기의 투입으로 복원쪽으로 압박받으니 청어가 활발하게 활동한다라고 말하고 싶은 듯.
르 샤틀리에 법칙은 화학원리지만 보편적인 뼈대가 있는 듯.
이게 구조론인 거 같은데 아직 보편적 법칙을 빼오지 못한 거 같아요.
메기 효과에 대해서 질문이 있는데
연상호 감독 지옥 시즌2에서 나온 내용으로
집단 전체가 나쁜 행동을 할 때 좋은 행동을 하자고 반역하는 사람이 더 나쁜 사람이다
이런 내용의 대사가 있더라고요
이 대사는 집단에서 정렬이 중요하며
비록 정의나 선한 의도를 가진다 하더라도
집단의 방향과 상충을 일으키지 말라는 뜻 같은데
예를 들어 이슬람에서 히잡문화가 지배적인데
히잡문화가 옳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분쟁을 일으키게 되는데
과하다면 반역, 테러,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을 텐데
구조론적으로 보면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68혁명도 시위자 중에서 1300명 정도는 죽었다고 하더군요
집단이 나쁜 방향으로 몰리면 분쟁을 일으켜서라도 방향전환을 하려고 해야 하나요?
당연한 이야기를 질문이라고 하면 제가 무슨 말로 대답을 해야할지 난감하군요.
막연하게 질문이라고 우기지 말고 정확히 뭐가 문제인지 분석을 해보세요.
유태인은 만장일치가 되면 무효가 되기 때문에 한 명이 일부러 반대를 해야 통과됩니다.
집단이 일제히 한 방향으로 간다는 것은 리스크가 증대되는 점에서 매우 위험한 사태입니다.
이런 말은 하나마나한 말이고 조금 진지하게 들어가 봅시다.
옳다는 것은 뭐고 그르다는 것은 무엇인가?
옳다는 것은 팔을 올린다는 뜻인데 이는 무기를 오른팔에 들기 때문입니다.
왼손에 무기를 들면 동료를 찌르기 때문에 왼손잡이도 오른손에 무기를 들어야 합니다.
즉 옳다는 것은 다수파를 따라간다는 말입니다.
바르다는 말은 다른데 직선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곡선으로 가면 거리가 늘어나므로 비효율적입니다.
즉 옳다는 것은 다수파에 속하며 효율적인 것입니다.
옳다는 말에는 저울에 올린다는 말도 있는데 불량품을 저울에 올리면 안되므로 합격을 의미합니다.
제단에 올린다는 뜻도 있는데 장애가 있는 동물을 희상제에 올리면 천벌을 받습니다.
제삿상에 올리는 과일이나 생선 고기는 모두 결함이 없어야 합니다.
옳은 것은 다수에 속하고 효율적이며 합격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올바른 행동을 하려면 미래를 예측해서 결과적으로 그렇게 될 것이다에 맞추어야 합니다.
뭐냐하면 결국 오른쪽으로 갈 것이면서 괜히 왼쪽으로 가면 그게 비효율이라는 거지요.
결국 평화로 갈 것인데 괜히 전쟁을 하면 그게 직선이 아니고 곡선이며 바른 것이 아니고 굽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수가 히잡을 쓰는데 혼자 히잡을 쓰지 않는 사람은
결국 히잡을 벗게 될 것이라고 예측하는 사람입니다.
다수가 친일하는데 혼자 독립운동 하는 사람은 결국 조선이 독립할 것이라고 예측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예측이 맞느냐 틀렸느냐가 중요하지요.
그러므로 옳은 일을 하는 사람은 예측을 잘 해야 합니다.
그냥 똥고집을 피우는 것은 바른 행동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역사와 문명과 진보의 편에서 옳고 그름이 가려지는 것입니다.
결국 역사는 진보가 보수를 이기고 문명이 야만을 이기도록 되어 있습니다.
단 닫힌사회, 작은사회는 이 규칙이 들어맞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시골 깡촌에 가서 귀농인이 현지인과 싸우면서 역사가 어떻고 해봐야 매를 벌 뿐입니다.
그러므로 바른 말을 하려면 여기가 닫힌사회냐 열린사회냐를 판단해야 합니다.
또 한가지는 인간에 대한 이해인데 원래 게이는 게이입니다.
게이에게 넌 치료를 받아서 정상인이 되어야 해 이러면 바른 행동이 아니지요.
즉 다수가 이성애자라고 소수자에게 너도 이성애자 행동을 하라고 압박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게이는 게이라서 그게 안 먹히는 거에요.
결론 올바른 행동을 하려면
1. 다수의 입장을 따라야 한다.
2. 효율적인 코스를 따라야 한다.
3. 합격품을 제출해야 한다.
4. 미래를 예측해서 맞추어야 한다.
5. 닫힌사회는 포기해야 한다.
6. 인간이 꺾이지 않는 존재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1번과 충돌할 수 있음)
7. 융통성 있게 조절해야 한다.
8. 진리와 역사와 문명과 진보와 자연의 편에 서야 한다.
절에 가서 삼겹살 굽고
교회 가서 목탁 치고
인도 가서 소잡아먹고
아랍 가서 돼지고기 먹고 이러면 안 됩니다.
한국인의 개식행동도 야만입니다.
한국이 북한처럼 닫힌사회라면 개식해도 되는데 수출하잖아요.
수출을 안하면 몰라도 수출하면서 개먹는 짓은 앞뒤가 안 맞는 행동입니다.
개고기 먹으면서 노벨문학상 달라 이러면 피곤한 겁니다.
인류를 적대하면서 인류로부터 한국정신을 인정받겠다?
스웨덴 한림원이 이런거 다 봅니다.
저 촌놈의 새뀌들이 말 듣나 안 듣나? 개식 그만두겠다고? 하나 줘버려. 선심 써버려.
이런거 분명히 있습니다.
다수의 눈치를 보고 보조를 맞추는게 맞으며
그러나 게이처럼 원래 안 되는건 인정해야 하며
수출을 하려면 세계무대로 가서 세계의 표준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며
자연인은 혼자 몰래 개잡아먹어도 됩니다. 들키지만 않으면. 평생 그렇게 숨어 살든가.
하여간 이런 것은 구체적으로 판단을 해야지
막연히 분쟁을 일으키면 분쟁만 일어나고 안 되는 거에요.
승산을 보고 전략을 가지고 움직여야 합니다.
메기효과는 제가 연상호 만화를 안봐서.. 봤는데 기억이 안남.. 모르겠지만
성공의 가능성을 보고 움직여야지 성공가능성 없는 일에 헛심 쓰지 말라는 뜻인듯.
문제는 성공가능성이 있느냐입니다.
1. 실패할 일은 하지마라.
2. 실패해도 의미가 있는 일은 하라.
3. 성공과 실패를 떠나 참을 수 없으면 하라.
이건 그때그때 다른 거지 어느게 옳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답변 감사합니다
결국 다양한 경우도 에너지 효율인 정렬로 환원시킬 수 있다고 이해되었습니다
다수가 나쁜 행동을 해도 다수에 맞춰서 정렬을 하는 것이 효율적이며
분쟁을 일으키는 것은 승산을 보고 행동하는 것인데
당장은 집단이 한 방향으로 정렬해도 미래에 문제가 생긴다면
사전에 방향을 전환시키자는 의도를 가지는 게
큰 틀에서 보면 역시 정렬로 환원되는 것이군요
자동차를 만들던 비행기를 만들던 앞 부분을 공기 저항과 정렬시키고
엔진 효율도 압력의 상충을 최대한 없애는 쪽으로 만드는 게 당연한 건데
인간사회는 뭘 어떻게 봐야 하는지 판단이 안 서서 질문했습니다
보편성과 특수성의 문제인데
둘은 동전의 양면이므로 보편성을 강조하면 같은 비율로 특수성이 만들어집니다.
똑바르게 할수록 미세하게 비뚤어진 것이 도드라져서 더 비뚤어진 것처럼 보인다는 말이지요.
불쾌한 골짜기 이론이 그런 것입니다.
그러므로 묵은 것은 그냥 특수성으로 놔두고 새로운 것에 보편성을 강조해야 합니다.
판소리나 한복이나 다 옛날에 흘러간 것인데 보편성을 들이대면 피곤한 거지요.
우리도 세계화에 발맞추어 디지털 상투를 틀자 이런 똥같은 소리 하는 넘은 때려죽여야 합니다.
새로운 것은 세계 기준에 맞추되 낡은 것은 그냥 놔둬야 합니다.
중앙은 세계 기준에 맞추고 촌놈들은 그냥 하던대로 하게 놔둬야 합니다.
경상도 꼴통 일베 꼴통들은 계몽하지 말고 내버려둬야 합니다.
확실히 그림을 그리다 보면
어느 부분을 세밀히 잘 그리면
다른 부분이 오히려 이상하게 보여서
그림 전체를 잘 그려야 할지
잘 그린 부분을 지워야 할지
딜레마에 빠지는 거 같습니다
그런 딜레마는 작은 사회가 외부와 연결되면서 해결이 되는 거 같은데
개고기 논쟁은 윤리 도덕 타령할 것이 아니라
개고기를 먹지 않아야 한국 사회가 부유해져서 모두 이득을 본다
이렇게 접근해야 다수가 납득을 할 것이고
동물복지 논쟁도 동물이 불쌍하다 이렇게 접근할 것이 아니라
스트레스 받지 않은 고기가 건강에 더 이롭다
이렇게 접근해야 다수가 납득할 거 같습니다
답변을 통해서
선악의 문제 이면에는 물리학적 전제가 있다고 이해되었습니다
옳다라는 게 선악이 아니라 물리학적 결맞음이었군요
개고기를 먹으면 먹지 않을때까지 괴롭힐 카드가 손에 쥐어집니다.
한국이 못살면 그냥 그러려니 하다가 잘살게 되면 그 카드를 써먹게 됩니다.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마는 것이며 바둑에 약점이 있으면 언젠가 추궁당하게 됩니다.
상대가 당장 약점을 추궁하지 않는다면 현현기경의 부하지하 수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선진국이 개고기를 눈감아준다면 약점을 추궁할 타이밍이 아니기 때문이입니다.
비행기가 마하를 넘어 속도를 높이면 언젠가는 깨질 부분이 깨지게 됩니다.
잠수정이 물 속으로 깊이 들어가면 언젠가는 뽀개지게 되어 있습니다.
타이타닉 관광 잠수정은 필연적으로 피로파괴가 일어나게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진작에 파괴되지 않은 이유는 단지 운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이득이라는 표현은 좋지 않고 약점의 추궁으로 봐야 합니다.
물어뜯을 약점이 있으면 시간문제일 뿐 언젠가는 물어뜯는 트럼프가 나타납니다.
동물복지도 스트레스 타령은 엉뚱한 것입니다. 이로운 고기라는건 없어요.
문제는 약점을 봤는데 안 물어뜯을 자비로운 인간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선은 집단에 보조를 맞추는 인간의 사회성인데 그것도 결맞음의 일부입니다.
1. 동물이 불쌍하다. 그냥 하는 소리임.
2. 스트레스 받지 않은 고기가 건강에 좋다. 그냥 말 갖다붙인 것.
3. 동물복지로 씹으면 칼이 잘 들어간다. 왜? 인간이 감정적인 호소에 약하니까.
칼맛을 봤는데 왜 안 찔러? 이겨먹기 본능이 있으므로 이겨먹기 행동을 합니다.
단톡방 만들어 구청에 민원 넣고 몰이사냥 하면 쉽게 이기는데 왜 칼을 안들지?
일본은 길거리에 쓰레기가 없습니다. 그게 옳은 걸까요? 천만에.
어떤 놈이 이겨먹으려고 그걸 물고 늘어져서 결국 이긴 겁니다. 왜? 섬이니까.
국가 전체가 결벽증에 걸렸다는 말인데 아주 고약한 것입니다.
반대로 중국은 국가 전체가 무개념증에 걸린 경우인데 역시 고약한 거.
답변을 읽다가 질문이 생겼는데
약점을 봤는데 안 물어뜯을 자비로운 인간이 없어도
국제 사회(열린 사회)는 공적인 업적이 있으면 그것으로 약점을 덮어주는지입니다
인간들이 공인의 약점을 물어뜯는 건 개별적 사례로 특수성에 해당되는 것이지 않나요?
아인슈타인 = 부인 버리고 자식 버리고 등등 사적인 문제가 있지만 공적인 업적으로 인정
한국에서의 김기덕 감독 = 영화제 수상이라는 업적은 패스하고 사적인 도덕성만 따지고 물어뜯음
공적 업적으로 약점을 덮어주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공인들이 업적을 쌓으려고 하기보다는 서로 약점이 안 잡히려고 조심하게 되어서
결과적으로 상호작용 감소로 이어진다고 생각해서
공인의 업적은 약점을 덮어주는 식의 전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국제사회는 이미 그렇게 돌아가고 있을 거라 추측하거든요
그러니깐 약점을 조심하는 전략도 있고
약점이 있어도 다른 쪽으로 생산력을 키워
종합적으로 약점을 무산 시키는 전략도 있다고 생각 되는데
부정주의 환경에서는 약점을 잡히지 않는 쪽으로 행동하고
긍정주의 환경에서는 장점이 잡히는 쪽으로 행동한다고 생각 되거든요
그래서 약점 잡히는 게 그렇게 중요하냐 그런 질문입니다
한국에서 공인이 욕먹어도 국제사회는 다르게 본다면 큰 상관없다고 보거든요
나라마다 다른데 미국은 마약에 관대하지만 페도필리아에 걸리면 얄짤없죠. 한 방에 갑니다. 트럼프가 미성년자를 건드렸다? 바로 아웃입니다. 일본은 성범죄에 관대한듯. 그리고 유행이 변하기 때문에 재수가 없으면 골로 갑니다. 로만 폴란스키의 경우 유태인 학살 피해자인데 성범죄 가해자가 되었죠. 피해자니까 뇌를 다쳐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게 아니고 피해자니까 응석받이가 되어 범죄를 저지른다고 보고 더 밟아버립니다. 뇌수술 받은 만화가가 십대 소녀와 문자를 주고받다가 한 방에 간 경우도 있는데 김기덕의 경우 못배워서 그렇다고 보고 가르쳐준다고 더 그럽니다.
동정론 - 못배워서 그런다. 불쌍하다.
심판론 - 못 배운 놈은 조져서 확실하게 가르쳐놔야 한다.
일반인들은 눈치를 보다가 칼이 먹힌다 싶으면 일제히 물어뜯습니다. 칼이 안 먹히는 경우는 일본에서 성범죄 피해자라고 외쳐봤자 거의 신경도 안 씁니다. 미국에서 마약했다고 폭로해봤자 안 먹힙니다. 지식인은 그런 것을 감안해서 고도의 정치적 판단을 해야 합니다. 어설프게 동정론을 구사하다가는 자신도 한 방에 갈 수 있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유명인도 털면 다 나온다는 겁니다. 걸리면 죽는 것은 어쩔 수가 없지요. 엘리트가 세상을 만만하게 보면 안 됩니다. 어릴 때 개고생했다고 응석부리는 심리를 들키면 안 됩니다. 김기덕은 워낙에 개고생을 해서 응석부리는 심리가 있었습니다. 그런 것을 쉴드칠 필요는 없지요. 우리가 예술가에 대해 존경심을 가져야 하지만 그건 다른 문제입니다. 엘리트는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김기덕은 예술가의 자부심이 부족한 경우입니다.
기존의 결정론의 형태는 화살을 쐈기 때문에 과녁에 맞는다는 식으로
선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데 (원인 → 결과)
구조론에서의 결정론의 형태는 → 이게 아니라
◎깔때기의 형태로 존재가 계 안에 갇혀 있고 압력을 피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어 화살표 형식으로 보자면 사과가 빨간색이면 → 의 형태로 원인 측에 의해 사과는 무조건 빨갛게 되어야 하는 것이고
깔때기 형식으로 보자면 사과는 초록색의 대비를 갖추고 다른 꽃이나 과일과의 컨셉을 피하는 쪽으로 빈 공간을 찾는 것이기 때문에
꼭 빨간색일 필요도 없고 노란색이거나 분홍색이어도 되는데 결과적으로 빨간색일 뿐이라는 거죠
기존 인과율 : 사과는 무조건 빨간색이어야 하는 원인 측이 있다
구조론적 인과율 : 사과는 초록색의 대비만 갖추면 되는데 그 결과가 빨간색일 뿐이며 노란색이나 분홍색이 되었을 수도 있다
다르게 말하면 인과율이란 어떤 것을 선택한다가 아닌 압력을 피하는 식으로 성립된다고 보는 거죠
소가 무리를 이루고 한 방향으로 이동하는 이유는 뒤쪽과 좌우가 압력이 걸려 있어서 앞쪽 밖에 가지 못하는 것인데
뒤쪽은 서식지를 이동해야 하는 압력, 배고픔이라는 압력
옆쪽은 맹수의 위협으로 부터의 압력
결국 앞을 선택해서 가는 게 아니라
뒤와 좌우에 생존이라는 압력이 걸려 있어서 그쪽으로 못 가니
갈 수 있는 방향으로 가는 게 앞이 되는 거죠
이게 뒤만 막혔다면 선택지가 3개인데
기존의 인과율은 피하는 게 아니고 선택하는 것이며
선택지를 무조건 1개로 좁혀버리니 융통성이 상당히 부실하다 생각합니다
주사위를 굴렸는데 3이 나왔으면
기존의 인과율은 3의 →화살표적 원인을 꼭 찾으려고 하는데 애초에 못 찾아요
구조론적 인과율로 보자면 면이 6개이니 어떤 수가 뜨더라도 7이 뜨는 경우는 없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확률이 6안에 수렴되는 걸 보는 거고 굳이 3의 원인을 찾지는 않습니다
구조론적으로 주사위 결과가 3인 뜬 것에 원인은 면이 6개인 것이지
못 찾는 걸 억지로 찾으려 하지 않습니다
기존 인과율의 관점 : 왜 3이 떳지?
구조론적 인과율의 관점 : 당연하게도 7은 뜨진 않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