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콜럼버스의 달걀
다들 컬럼버스의 달걀 이야기는 한번 정도 들어 봤을 것이다. 1492년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한 그 콜럼버스 말이다. 존 글렌이 제작한 <콜럼버스 : 발견> 이란 영화에서는 콜럼버스가 대서양으로의 항해를 꺼리는 선원들을 설득하기 위해, 지구는 둥글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기 위해 달걀을 이용하는 것으로 묘사 되었다.
달걀을 세워보겠다고 낑낑대는 가운데, 컬럼버스가 달걀을 송곳니로 톡 깨서 그 안을 쪽쪽 빨아먹고, 빈 달걀을 세워보였다나 뭐래나? 이 이야기가 진실일 리가 만무하지만, 어쨌거나 이야기는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 뭐 그런 교훈으로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고 있으니, 인류사에 길이 남을 '역사적인 구라' 라고 할만하다.
하지만 정작 '달걀 이야기'가 처음으로 기록된 것은 1565년 이었다. 이탈리아인 지롤라모 벤조니(Girolamo Benzoni)는 <신세계의 역사> 라는 책에서 콜럼버스가 서인도제도에서 돌아오고 난 뒤 추기경이 주최한 환영연에서 달걀에 관한 일화가 일어났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벤조니는 "환영연에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그러한 일이 있었다는 풍문을 들었기 때문에 자신의 책에 소개하는 것은 잘못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고 했다.
그러나 콜럼버스 이전에도 달걀을 깨뜨려 세웠다는 일화는 있었다. 르네상스 시대 미술사가인 바자리(Giorgis Vasari)의 책 <이탈리아 르테상스 미술가 열전>에 따르면, 중세에 번영을 누리던 피렌체에서 1296년부터 대성당을 건축하기 시작했는데, 건축 책임자가 원형 지붕(dome)을 완성하기 전에 죽었고, 그 후 1세기 동안 지붕을 완성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써봤지만,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다.
1407년 당국은 여러나라의 건축가들을 모아놓고 방법을 연구하도록 했는데, 브루넬레스코(Filoppo Brunellesco)는 이 돔을 완성할 수 있는 설계도와 모형까지 제작해 놓고 이 집회에 참가하여 자신의 돔을 완성할 수 있다고 얘기했지만, 자기가 고안한 건축법을 다른 건축가들이 도용할 것을 꺼려하여 공개하지는 않았다. 다른 건축가들은 건축 책임을 브루넬레스코에게 맡기는 것에 반대하면서 그가 제안한 방법을 면밀하게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그러자 브로넬레스코는 '미끄러운 대리석 위에 달걀을 세울 수 있는 사람에게 돔 건설을 맡기자' 고 제안했다고 한다.
2. '달걀 세우기' 에 관한 오해
뭐 그런 이야기가 있었댄다. 달걀을 세우는 것과 지구가 둥글다는 것이 무슨 상관인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달걀 쪽 빨아먹고 껍데기를 세운건 좀 반칙이다. 그건 달걀을 세운 것이 아니라, 달걀 껍데기를 세운거니까... 달걀을 깨지 않고 세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물론 손의 감각이 좋은 사람이나, 달걀 세우기를 엄청나게 훈련한 사람이라면 가능할 지도 모른다.
비보이의 헤드스핀을 보면, 머리 만을 땅에 댄체로 회전하는 모습은 상식 밖의 일이 아니던가?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도 신기한데, 죽어라 연습하다보면 헤드스핀이 아니라 달걀 세우기도 가능할 것이다.
세우기 어려운 것은 머리나 달걀이 둥글기 때문에 서기 힘들다고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질은 헤드스핀이든 달걀 세우기든 개체의 무게중심을 찾는 것에 있다. 헤드스핀이라면, 머리를 땅에 대고 서야지 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돌아야지 설 수 있는 것이다. 자전거를 탈 때에도 마찬가지, 자전거가 서야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게 아니라, 나아가야지 설 수 있다.
달걀을 세우기가 쉽지 않은 것은 달걀의 무게중심이 가운데 있기 때문. 바닥보다 위에 있으니 중심을 잡기가 수월치 않다.
달걀이 있어도, 그 중에서 무게중심을 결정하는 것은 달걀의 노른자 부분이다. 노른자 부분이 흰자보다 밀도가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른자는 달걀의 껍질 속에서 위, 아래의 알끈으로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언제나 가운데 위치 할 수 있다.
달걀을 세우려면? 간단하다. 달걀을 위 아래로 엄청나게 흔들어서 알끈을 끈어버리면, 노른자가 내려와 무게중심이 아래로 쏠리게 하면 된다. 이것은 오뚜기의 원리와 같다. 노른자가 아래쪽에 있으면 세우기가 훨씬 쉬워진다. 달궈진 후라이팬에 달걀을 깨 넣으면, 알끈의 존재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그렇게 많은 달걀을 먹으면서도 알의 구조를 알지 못한다.
3. 구조를 보라
달걀은 애초에 닭의 알이 품기 좋게, 안전하게 그리고 굴러도 멀리 못가도록 만들어진 생명체의 디자인이다. 그런 달걀을 애써 세우라고 한다는 그 자체가 우문(愚問)이지만, 세상의 모든 문제에 사람들이 대처하는 방법이 이것과 크게 다르지가 않다. 달걀이 세워질 때까지 수십, 수백번 반복 한다. 구조를 볼 수 있어야 답이 나온다.
수백년 전 콜럼버스의 땡깡쟁이 선원들이건, 아니면 돔을 만드는 건축가이건, 그 당시엔 달걀이 귀해서 후라이를 못해먹어서 그 안에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몰랐다고 할텐가? 달걀의 구조를 보는 것은 알을 깨야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바라보는 방향에 달려있다.
달걀, 그것은 인간 입장에서는 음식물이지만, 닭의 입장에서는 소중한 생명체다. 음식이 아닌 생명체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당연히 그 중심에서 주변으로 생명이 확장되어 간다는 것을 알 수가 있고, 귀납이 아닌 연역으로 보아야 알 수 있다.
이 세상 모든 생명체가 그러하고, 모든 자연이 그러한 것이다. 드러난 사실이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구조까지 볼 수 있어야 한다. 이 바보같은 달걀 세우기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문제와 다르지 않다.
구조를 보라.
오늘 계란 여럿 깨지는 소리가 벌써 들린다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