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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6692 vote 0 2010.11.19 (11:57:44)

 

 


  김기덕과 그의 계승자들


 - 정치칼럼 아닙니다. -


  올해 영화계는 뭐 유인촌 감독의 0점으로 시작해서, 이창동 감독의 만점으로 끝나버린 느낌이다. 고거 참 통쾌하다. 한편으로는 김기덕-장훈의 의형제로 시작해서, 김기덕-장철수의 김복남..으로 끝났다고 해도 무방하겠다.


  김기덕 감독은 최근 영화를 만들지 않고 있는데, 이렇게 또 존재감을 증명하고 있다. 김기덕 사단이니 하는 말이 나온지도 꽤 오래 되었다. 그새 제자들이 도합 10여편 가까운 영화를 만들고 있다고 하니 대단하다.


  그런데 정작 김기덕 감독은 가르친게 없다. 왜냐하면 영화를 너무 빨리 찍기 때문에 도무지 가르치고 배울 새가 없기 때문이다. 뭘 가르친다고 하면 적어도 석달은 가르쳐야 이야기가 되는 건데.. 운전을 배워도 한 달은 걸리지 않나?.. 일주일만에 후다닥 촬영 끝.. 시간이 너무 짧아서 조감독 이름도 못 외운단다.


  김기덕 감독에게 처음으로 이름을 불리웠을 때 감격해서 눈물을 흘렸다는 신인감독도 있었다. 촬영기간 동안 워낙 강행군이라.. 일정이 빡빡해서 정신없이 돌아가는 판에 조감독 이름을 외울 겨를도 없을 것이다.


  그 양반 성격에 뭘 자상하게 가르쳐줄 사람 같지도 않고, 또 초등학교 졸업 학력에 남을 가르칠 수 있는 그럴듯한 어휘를 가지고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아는게 있어도 교과서적인 틀이 없으면 뭘 가르친다는게 실제로 쉽지 않다.


  좀 배우려고 하면 그새 촬영이 끝나버린다. 그러니 스승은 가르칠 것이 없고 제자는 배울 것이 없다. 그러므로 장훈감독이나 장철수감독의 영화에서 굳이 김기덕 냄새를 찾으려고 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도 냄새가 난다. 그렇다면?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집단지성의 힘이다. 바깥뇌의 작동이다. 김기덕 패밀리들이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기 때문에 전체의 수준이 향상된 것이다. 아니다. 그 전에 또다른 이유가 있다. 언제나 그렇듯이 진짜는 따로 있다.


  장철수 감독은 원래 영화쪽에 관심이 없었고, 일본에 유학하는 중 우연히 김기덕 감독의 섬을 보고.. ‘뭐야 이거. 이러다가 저 양반이 내 아이디어로 영화 다 만들어버리겠네. 그렇다면 나는 할 것이 없잖아’..하고 마음이 조급해져서 급히 귀국하여 떼를 써서 김기덕 문하로 들어간 것이다.


  중요한건 그 영화가 다른 것이 아니고 하필 섬이라는 거다. 그리고 김복남..도 섬이다. 다른 것은 호수 위의 섬이냐 바다 속의 섬이냐 차이 뿐. 어떤 고립된 공간.. 그곳은 만물을 잉태시키는 낳음의 공간, 창조의 공간이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깨달음과 연결된다. ‘자궁 속에서 도 닦냐’는 말이 공연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하긴 수도승들의 토굴도 고립된 면에서는 섬과 비슷하다. 도는 원래 혼자만의 자궁 속에서 터지는 거다.


  김기덕 감독의 많은 영화들 중에서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활이다. 잘만들고 못만들고를 떠나서.. 아스라한 느낌이 있다. 곰곰이 생각해본 결과 필자가 활을 특별히 좋아하는 이유는.. 25년 전 젊었을 적에 연안에서 배를 타본 경험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15톤급 목선을 타고 망망대해에 떠 있다. 볕 좋은 날에 이물에 누워서 하늘을 보고 있으면 배는 정지해 있는데, 바다가 오르락 내리락 한다. 그 아스라한 기분을 말로 설명할 수는 없다. 배는 삶과 죽음이 직결로 만나는 공간이다. 그때 나는 폭이 한뼘 쯤 된는 배 난간을 후다닥 뛰어다니기 좋아했는데 파도가 쳐서 배가 휘청하면 짜릿하다.


  삐끗하면 바다로 추락한다. 난간에 서 있는데 갑자기 기관실에서 엔진에 시동을 걸어버리면 배가 급격하게 움직이고, 그 때문에 바다에 추락하면 스크류에 몸이 갈려서 시체도 찾을 수 없단다. 난간을 뛰어다니며 까불다가 갑판장에게 여러 번 혼이 났음은 물론이다. 


  그 경험이 영향을 미쳤음인지 시나리오를 습작해 본 일이 있다. 분위기가 김기덕의 섬과 비슷하고 장철수의 김복남과도 비슷하다. 내용은 간단히 바다 위에 목선 두 척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이다.


  망망대해에 배 두 척이 떠 있다. 그곳에서 낯선 사람을 만난다. 그들은 친절해 보이지만 뭔가 제 정신이 아니다. 삶과 죽음이 교차한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배를 떠나지 않는다. 그것을 깨달음과 연결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깨달음을 굳이 그림으로 표현하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 당시의 내 생각이었다.


  장철수 감독은 왜 김복남..을 찍었을까? 김기덕의 섬에 영향을 받아서? 아니다. 원래 가지고 있던 자기 아이디어였다. 필자의 습작도 마찬가지다. 그게 87년경 일이니 김기덕 감독이 데뷔하기도 전이다.


  무슨 뜻인가? 김기덕 사단은 김기덕 감독의 제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김기덕 유전인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원래 김기덕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이 있었고 그들이 자연스럽게 모인 것이다. 사제간의 만남은 그 유전인자의 공통성을 확인해 나가는 과정이었을 뿐이다.


  김기덕 감독에게 배웠기 때문에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뭐 그런 측면도 당연히 있겠지만.. 그보다는 김기덕 유전인자를 가진 사람들이 자연히 그리로 모여든 것이다. 그리고 집단지성을 형성한 것이다. 바깥뇌를 작동시킨 것이다. 필자의 전작 소통지능에 해당하겠다.


  감독한테 이름 한번 못 불리고 일주일만에 끝나는 판인데, 그새 배우긴 뭘 배우겠냐 말이다. 하긴 장철수 감독은 ‘관객이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라’는 가르침을 김기덕감독으로부터 배웠다고 말하지만, 그건 뭐 김기덕 감독 아니라도 마찬가지일 거다.


  필자는 처음부터 일관되게 김기덕 감독을 지지해 왔다. 영화 내용을 떠나서 바로 그곳이 진짜와 가짜가 가려지는 지점이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나머지 전부의 차이와 같다. 진짜배기는 딱 냄새가 난다. 초기작 악어를 보고 처음부터 그 냄새를 맡은 평론가도 있고 끝까지 못 맡고 딴소리 하는 평론가도 있다.


  영화를 잘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은 유치하다. ‘영화가 뭐냐’에 대해서 결론을 내려야 한다. ‘이것이 영화다’는 주장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진짜배기다. 남들이 ‘영화는 이런 거야’ 하고 세워놓은 줄 뒤에 가서 쓰는건 아닌 거다.


  문학예술의 본령은 무엇일까? 인문정신이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글재주를 뽐내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마음을 읽고 소통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과학이라고 믿는다. 그렇다. 문학은 과학이다. 그러므로 탐구함이 있어야 한다. 이문열처럼 좔좔 잘 써대는 건 안 쳐주는 거다. 뭘 탐구하고 인류에게 보고했느냐 이거다.


  늘 하는 말이지만 작가를 만드는 작가가 진짜고, 관객을 만드는 작가는 이류다. 이문열의 소설을 읽으면 ‘맞아 소설은 이런 양반이 써야 해. 나같은 사람이 소설가가 될 수는 없지.’ 이런 생각을 한다. 그러나 이상의 날개를 읽고는 ‘뭐야? 이것도 소설이라구? 그럼 나도 소설가 하겠네’ 이런 생각이 든다.


  김기덕 감독은 나같은 사람도 영화감독이 되고 싶게 만든다. 왜냐하면 나는 애초부터 김기덕의 아이디어와 유사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안에 어떤 보편성이 있다는 거다. 하기야 김기덕 감동은 열일곱 편을 만들고도 아직도 영화 열 편 정도는 머리 속에 들어 있다고 하니까, 경우 영화 한 편을 머리 속에 넣고 다니는 나와는 급이 비교될 수 없지만 말하자면 그렇다는 거다.


  결론을 말하자. 영화 한 편으로 말하면, 김기덕 감독이 지금까지 만든 모든 영화의 관객수를 다 합쳐도 못 따라갈 정도의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딴건 안 쳐주는 거다. 중요한건 과학이다. 누가 인류의 아이큐를 올렸느냐 이거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보고 감독이 되고자 하는 결심을 품은 사람은 한국 아니라도 전 세계에 많다.


  김기덕 감독은 타인의 마음을 읽는 노하우를 전수해 준다. 타인의 마음을 읽을 때는 상대방의 입에서 나오는 대사를 보면 안 된다. 진짜 마음은 본인도 모르기 때문이다.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마음이라면 그게 진짜배기냐다. 알아도 말로는 끝끝내 나타내지 못하는 마음이 있고 그것이 진짜다.



1199.JPG


  상대가 어떤 포지션에 위치해 있느냐를 보아야 한다. 나는 왜 섬을 좋아하는가? 왜 바다 위에 고립된 배가 깨달음을 표현하기에 적당한 도구인가? 이 만화가 참고가 될 것이다. 이 만화의 판구조 역시 고립된 섬과 같다.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같은 배를 타고 있다는 사실을. 죽음과 삶이 한끗 차이라는 사실을. 나의 마음을 실제로는 상대방이 결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바다는 열려있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철저하게 닫힌 공간이다. 배만 타면 어디로도 갈 수 있지만 배를 놓치면 파도여인숙 신세를 져야 한다. 반도 역시 마찬가지다. 인류의 문명이 반도를 끼고 도는 것이 우연이 아니다. 닫혀있으면서 동시에 열려있는 곳, 열고 닫는 키를 누가 장악하느냐에 따라 대사가 결정된다.


  모든 이야기는 그 안에서 탄생된다. 그곳은 자궁과 같아서 고요하고 은밀한 공간이면서 동시에 생과 사를 결정하는 공간이다. 나의 전부를 걸어 상대방의 전부를 끌어내는 자 만이 최후에 살아남아 이야기를 전해줄 것이다.


  


 


 

 

 

http://gujoron.com




[레벨:12]부하지하

2010.11.19 (15:24:14)

 죽음은 삶의 대극이 아니다.   군시절에 읽었던 상실의 시대를 난 이 한줄로 기억하고 있소.  
 말이 없다니 한잔 술 나눌수 없지만  생사를 넘어서 만나야겠소. 새시대가 필요하오.

  
 
   

 
[레벨:6]폴라리스

2010.11.20 (09:22:55)

 

한달전쯤  내가 후원회원으로 있는 청소년단체에서 하는 네팔의 오지에서 온 어느 마을 극단의 연극을 보러간 적이 있는데.... 그 연극은 그야말로 마을 주민들이 출연자였고 연극의  주제는 네팔의 카스트제도와  열악한 여성문제....지주와 소작인 등... 네팔의 사회문제를  고발하는 내용이었소.  전문 연극배우도 아니고 마을 주민들이 하는 연극이니... 뭐 그렇게 대단한것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마을 극단을 꾸리게 된 젊은청년의 내력이 좀 특이했소. 이 네팔에서 온 청년은  우연히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라는 영화를 보고 영화감독이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하오.  그 영화를 300번을 봤다나?..... 하여튼 김기덕 감독의 영화가 네팔 오지마을에 사는 한 청년에게 영화감독의 꿈을 심어주었다니.... 동렬옹이 말하는 인류의 아이큐를 높여 놓았다는게 이런게 아닌가 싶었소.
그 네팔 청년의 입으로 직접 그런 얘기를 들으니 신기했다오. 진짜배기는 어디에다가 가져다놔도 진짜배기인가보오.

<공연보기>
http://pumdongi.mynet.co.kr/zbxe/?document_srl=88197

한국문명이 아시아전체에 이런 영향을 미칠 수가 있겠구나.... 그래서 그들에겐 한국에 가는게 꿈이고 한국사람들과 친구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것..... 그리 멀지만은 않은것 같소. 

[레벨:7]iness

2010.11.24 (16:46:50)

포지션의 존재 그 자체가 곧 폭력임을 깨달아야 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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