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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3462 vote 0 2020.11.30 (18:47:41)

    사건과 게임


    세상은 사건이다. 사건에 가담하는 것은 게임이다. 게임의 승률은 반반이다.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다. 절반의 성공보다 나머지 절반의 위험이 더 부각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게임을 해야 하는가? 해야 한다. 왜? 전략이 있기 때문이다. 절대로 이기는 방법이 있다.


    말을 타는 것과 같다. 말을 이기면 기수가 되고 말에 지면 낙마한다. 칼을 이기면 무사가 되고 칼에 지면 손을 다친다. 그런데 사건이 거듭되면? 강자가 살아남는다. 생물의 진화가 그러하다. 그런데 약자도 살아남는다. 생물의 진화는 자연선택이 아니라 유전자의 전략 때문이다. 


    이기는 게임을 하는 것이 전략이다. 유전자는 효율적인 대응으로 환경에 대해 우위를 달성하고 지속적으로 이겨가는 전략을 쓴다. 전략은 시간을 이용한다. 첫 게임을 한 번 져주고 나머지 두 번을 이기는 것이 전략이다. 최소 세 번은 게임을 해야 한다. 그만큼 시간이 필요하다. 


    생쥐는 세 마리의 새끼를 낳아서 한 마리가 죽어도 두 마리가 살아남으면 종족이 보존된다. 포식자가 접근하면 생쥐는 세 방향으로 도주해야 한다. 충분한 공간도 필요하다. 일단은 사건이 많아야 한다. 서구가 발전한 이유는 전쟁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많은 주사위를 던졌다.


    확률을 만드는 것이다. 만약 인간의 수명이 천 년이라면? 게임의 숫자가 많지 않다. 인류는 멸망한다. 인간의 수명이 20년 정도로 짧다면? 장기전을 못 한다. 전략을 발전시킬 수 없다. 역시 멸망한다. 수명은 80세라야 전략을 구사하여 환경에 대한 우위를 유지하는 황금률이다. 


    생물의 진화가 자연선택이 아니라 유전자의 전략이듯이 인간도 전략적 기동을 꾀해야 한다. 자연을 결정하는 것이 에너지라면 인간을 결정하는 것은 권력이다. 자연은 유전자의 전략에 따른 에너지 효율성이 진화를 낳고 사회 역시 전략에 따른 권력의 효율성이 진보를 만든다. 


    효율적인 결정이 합리적인 결정이다. 효율성을 달성하는 방법은 피아간에 대칭을 만들고 축을 장악하여 대상을 통제하는 것이다. 축 한 번을 움직여 대칭 2를 통제하므로 효율적이다. 효율적인 구조가 주변을 이겨서 사회가 탄생했다. 집단을 이루면 의사결정이 효율적이다. 


    게임은 전략과 동의어다. 상대의 대응을 예측하여 그에 맞게 행동한다. 상대의 행동을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방법으로 대상을 통제한다. 상대에게 먼저 이익을 제공하는 방법으로 나중에 돌아오는 나의 이익을 늘린다. 게임은 환경과의 게임, 신과의 게임, 운명과의 게임이다. 


    역사와의 게임이기도 하다. 대결하여 이겨야 한다. 이기면 다음 게임에 초대되고 지면 아웃된다. 이기는 방법은 사건을 주도하는 것이다. 사건을 지배하는 것은 에너지다. 권력은 에너지의 입력측에 서는 것이다. 포지셔닝을 잘해야 한다. 계의 에너지 통제권을 장악하는 것이다. 


    주최측이 되는 것이다. 게임의 초기조건은 타자성이다. 버려진 아기에게는 모두가 적이다. 너무 일찍 사회에 뛰어들면 동료가 없다. 사방의 모두가 적이다. 그 상태에서 승산은 높지 않다. 두 번 게임을 하면 한 번은 진다. 게임 두 번만에 죽을 수 있다. 타자성의 위태로움이다.


    타자성을 극복하고 주체성을 획득하면 전략을 쓸 수 있다. 일단은 동료를 얻어야 한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가족이 주어져 있다. 기본적으로 동료가 제공되어 있다. 그러므로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 먼저 배우고 나중 일한다. 먼저 배움으로 손해를 보고 나중 수익을 회수한다.


    게임은 피아간에 대칭을 이루며 승패는 누가 축을 장악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동료를 늘리면 축을 장악한다. 동료를 늘리는 방법은 발명하고, 창의하고, 건설하고, 제안하고, 주장하여 함께 일을 벌이는 것이다. 내가 일을 벌이면 남들이 일에 가담해 온다. 이때 내게 권리가 있다.


    주도할 수 있다. 후건이 전건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전건이 되어 후건을 제한하는 것이 권리다.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권력이다. 자기 일을 새로 벌이지 못한다면 남들이 벌여놓은 일에 가담하면 된다. 윤리와 도덕과 선행으로 벌어져 있는 천하의 일에 가담할 수 있다.


    그것이 의리다.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새로 창의하여 에너지를 생산하는 방법과 이미 벌어져 있는 게임에 가담하여 효율을 생산하는 방법이다. 의리는 게임의 초기조건이다. 게임의 초기에는 평등하다. 출발선에 나란히 서기 때문이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직접 들어보면 안다.


    혼자 들 때 비용이 100이라면 맞들 때 비용은 50이다. 50만큼 권리가 생긴다. 의리가 지켜져야 하는 이유는 후건이 전건을 칠 수 없기 때문이다. 백지장을 맞들겠다고 약속해놓고 중간에 놓아버리면 비효율이 발생한다. 커다란 손실이 일어난다. 배반이다. 손실에 책임져야 한다.


    우리는 자유, 평등, 박애, 평화, 인권을 알고 있다. 윤리, 도덕, 선악, 정의, 에티켓도 안다. 공자의 인의와 석가의 자비와 예수의 사랑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그런데 이런 개념들이 개별적으로 무질서하게 투척될 뿐 어떤 맥락을 가지는지에 대해서는 다들 모르쇠다. 입을 다물었다.


    보통은 하나씩 주워섬기는 열거법을 쓴다. 자유라고 하면 노예해방을 의미한다. ‘내가 내 자식을 두들겨 패는데 네가 무슨 상관이냐?’ 이러면 난감하다. 그것도 자유인가? 이런 것을 낱낱이 붙들고 앉아 논쟁해서는 답이 없다. 마이클 샌델의 속임수와 같다. 정의란게 무엇인가?


    머리가 좋은 자들이 끝도 없이 애매한 상황을 발굴해낸다. 사람을 약 올릴 의도로 작정하고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을 만들어낸다. 삽질이다. 사건에 답이 있다. 자연스러운 사건의 흐름에 맡기면 된다. 사건이 흘러가면서 스스로 판단하게 하면 된다. 인간은 뒤로 빠지면 해결된다.


    사건에 참여하는 것은 자유다. 사건의 출발점에 서는 것은 평등이다. 결과에 책임지는 것은 정의다. 승리자는 트로피를 받고 패배자는 징벌을 받는다. 도박을 해서 이기면 돈을 따고 지면 돈을 잃는다. 안철수와 윤석열의 정치도박도 마찬가지다. 정치인과 국민은 기수와 말이다.


    국민 등에 올라타거나 떨어지거나다. 자유와 평등과 정의가 하나의 사건 속에서 연결된다. 기승전결로 가는 일의 순서대로다. 프랑스 혁명의 구호는 원래 자유, 평등, 권리였다. 권리는 부르주아 계급의 자유계약 권리를 의미한다. 왕이 시민의 상공업에 간여하지 말라는 거다.


    그런데 자유개념과 중복된다. 자유는 스스로의 결정으로 게임에 뛰어드는 것이며 권리는 타의에 의해 강제로 게임에서 배제되지 않는 것이다. 사실은 그게 그거다. 봉건사회에서 노예는 자유가 없다. 여성들도 자유가 없었다. 지금도 미성년자는 자유가 없다. 자유가 제약된다.


    외국인은 자유가 제약된다. 범죄자는 자유가 없다. 교도소 재소자는 투표권이 없다. 공무담임권도 없다. 이렇게 보면 사건의 진행 정도에 따라 권리도 제약당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유승민은 당연히 권리가 없다. 병역기피 과정에서 제 손으로 자기 권리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기본인권을 인정하는 것은 사회가 에너지의 선순환으로 돌아가려면 가급적 많은 사람을 게임에 참여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되도록 많은 사람에게 투표권을 주고 선거연령을 낮춰주는 것과 같다. 박애나 사랑이나 자비도 같다. 동료들과 협력하여 게임에 참여할 권리를 획득한다.


    혼자서는 효율을 만들어낼 수 없다. 결국은 물리학이다. 에너지 효율성이다. 이것이 사회에서는 권리로 나타나고 그것을 장악하면 권력이다. 자유, 평등, 박애, 평화, 인권, 윤리, 도덕, 선악, 정의와 에티켓은 모두 권력의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다. 권력의 황금률이 있기 때문이다.


    자연에는 에너지가 있고 사람에는 권력이 있다. 에너지 효율성이다.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와 사용할 수 없는 에너지가 있다. 사건 안에 권력이 있고 사건이 파탄 나면 권력이 죽는다. 게임이 불성립하면 그동안의 노력이 무효가 된다. 열리지 않는 도쿄올림픽이 되어버리는 거다.


     어떤 사람이 보다 효율적인 구조를 만들었다면 거기에 권력이 있다. 결혼하는 이유도 건물을 가족이 공유하면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사랑이란 서로에게 몸을 빌려주는 것이다. 호르몬을 공유하여 안정감을 얻는 것이다. 그 방법으로 의사결정에 있어서의 효율성을 달성한다. 


    윤리와 도덕은 그 효율성을 위한 출발점에서의 평등한 규칙을 지키는 것이다. 윤리는 자연법칙과 호르몬이 그것을 요구하고 도덕은 팀 안에서의 주도권이 그것을 요구한다. 선악은 그 효율성에 의지하는 것이다. 그 방법으로 이기는 것이다. 이기면 의사결정을 한 번 더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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