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과거 모 매체에 기고했던 글을 지금 시점에 맞게 발췌, 편집한 것입니다.

재건축보다 어려운 리모델링
리모델링이라 함은 건물의 골조, 내력벽, 바닥, 기둥은 손대지 않고 내장과 외관을 뜯어고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건축현장을 방문해 보면 리모델링은 법망을 피하기 위한 눈속임에 지나지 않고, 사실상의 재건축인 경우가 다반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개혁이 리모델링이라면 혁명은 재건축이다. 혁명이 개혁보다 쉽지만 그래도 우리는 개혁을 해야 한다. 헌 집을 허물어 놓고 새 집을 짓는 동안의 희생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미 시위를 떠난 화살을 중간에서 임의로 멈출 수 있는가이다. 어느 선까지 개혁이 진행된 상태에서 개혁을 중단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문제이다.

개혁은 시스템의 개혁이다. 시스템은 내재적인 완결성을 지향한다. 만약 누군가가 시스템의 일부를 개조한다면 내재적인 완결성과 충돌하는 구조적인 모순이 일어난다. 이때 시스템은 작동을 중지하거나 극도의 비효율에 빠져든다.

『MS 도스』『윈도 2000』사이에서 사망한 『윈도 3.1』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부분적인 개혁은 『윈도 3.1』처럼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이 신세가 된다. 그러므로 한번 시작한 개혁은 어떻게든 끝까지 가는 수밖에 없다.

국가도 하나의 시스템이다. 시스템의 호환문제는 사회구성체 내에서 제 이해집단 간에 의사소통의 장애로 인한 정보전달비용의 증가와, 독과점으로 인한 유통비용의 증가로 나타난다. 이 경우 사회는 극도의 비효율성에 빠지게 된다.  

『가다가 중단하면 아니 간만 못하다』는 속담이 있다. 사실이 그러하다. 역사의 필연법칙이 개혁의 중단을 허용하지 않는다. 어중간한 개혁은 시스템은 작동을 마비시키고, 적들의 반격을 초래하여 그간 쌓아온 개혁의 성과까지 물거품이 되게 한다.

중단없는 개혁은 혁명과 통한다
처음에는 리모델링을 하고자 했다. 하다보니 안되겠다 싶어 내력벽까지 헐어낸다. 뭔가 아귀가 맞지 않는다. 결국은 바닥과 골조 까지 전부 헐어내게 된다. 처음에는 하나만 개혁하려고 하지만, 결국은 전부 뜯어고치게 된다.

중단없는 개혁은 혁명과 통한다. 역사에 있어서 많은 국가들의 개혁은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건 간에 혁명의 효과가 얻어지는 단계까지는 기계적으로 진행되곤 했다. 한번 시작한 개혁을 임의로 중단하면 곧 기득권 세력의 반격을 받아 상황은 개혁을 하기 전보다 더 나빠진다.

이 경우 왕조는 몰락하고 정권은 교체된다. 다른 누군가에 의해 개혁의 바톤은 물려지고 주체를 바꾸어 개혁은 계속된다. 여기서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은 시행착오를 줄이고 단기간에 개혁을 끝내느냐, 아니면 우왕좌왕 하면서 터무니 없는 민중의 희생을 요구하느냐 뿐이다.

어차피 해야할 개혁이라면 우리가 주도하느냐 아니면 구한말에 나라를 빼앗기고 타의에 의해 개혁을 강요당했듯이 남의 손에 의해 끌려갈 것이냐를 선택해야 한다.

개혁의 성공사례와 실패사례
춘추전국시대 최초로 개혁을 성공시킨 군주로는 제(齊)나라의 환공(桓公)을 들 수 있다. 관중(管仲)과 포숙아(鮑淑牙)를 등용하여 국정을 쇄신하고 최초로 중원의 패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 성공은 오래가지 못하였다. 제나라는 결국 몰락하였다.

왜인가? 어느 정도 개혁의 성과가 가시화된 시점에서 임의로 개혁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이념과 철학에 기초하지 않고, 몇몇 뛰어난 관료의 개인적 능력에 의지하였기 때문이다. 위로부터의 개혁이 가지는 태생적 한계이다.

쏜 화살은 중간에 멈추지 않는다. 제나라의 환공이 붙인 한 알의 불씨가 중원의 여러 나라에 차례로 옮겨붙어 춘추오패(春秋五覇)를 낳고 전국칠웅(戰國七雄)을 낳았다. 그들은 차례로 개혁을 성공시켜 중원의 패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 성공들은 모두 일시적 성공에 불과하였다. 최초로 개혁을 유의미하게 성공시킨 사람은 진시황(秦始皇)이다. 그는 한비자의 법가주의 철학에 기초하여 봉건제도를 타파하고 군현제도를 실시하는 등 개혁의 제도적인 뒷받침에 주력하였다. 문제는 진시황의 개혁도 결국 실패했다는 데 있다.

진정한 의미에서 개혁의 최종적인 완성은 동중서(董仲舒)의 천인감응(天人感應)론을 받아들여 유가개혁을 실시한 한무제(漢武帝)에 의해 달성되었다. 기원전 600년경 제나라 환공에 의해 최초로 시작된 개혁이 춘추오패와 전국칠웅을 낳고 진시황의 천하통일로 이어졌으며, 기원전 100년경 한나라 무제때 동중서의 유가개혁으로 최종 막을 내린 것이다.

개혁은 무려 500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이루어졌다. 마침내 천하가 통일되고 내외는 안정되었다. 이러한 과정은 사전에 설계된 프로그램에 의해서가 아니라, 역사의 필연법칙에 의하여 저절로 진행된 것이다. 역사가 내재적인 완결성을 추구한 끝에 무수한 시행착오와 오류시정을 거쳐 스스로 시스템 자원의 최적화를 찾아내기에 이른 것이다.

보통은 뛰어난 행정가가 출현하여 몇 가지 개혁을 성공시키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 개혁의 성과가 얻어지면 임의로 개혁을 중단한다. 개혁을 필요로 하는 동기가 군주 일인의 야망에 있기 때문에 그 야망이 달성된 시점에서 개혁은 중단된다.

그러나 개혁은 내재적 완결성에 기초한 자체의 관성 때문에 거기서 멈추어지지 않는다. 군주가 양성한 새로운 세력이 들고 일어나 중단없는 개혁을 요구하게 된다. 이때 군주는 스스로 기득권 세력이 되어 개혁을 방해하기 시작한다.

마침내 개혁은 실패로 돌아가고 그 국가는 멸망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축적된 개혁의 성공사례가 다른 나라로 수출된다. 그렇게 개혁의 불길이 이 나라 저 나라로 옮겨 붙기를 무려 500년간 지속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역사의 필연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개혁은 3단계로 진행된다
역사의 큰 흐름으로 보면 춘추전국시대의 개혁운동은 크게 3단계로 정리될 수 있다. 1단계는 요소 투입량을 늘려서 일시적 성과를 얻은 제나라 환공의 부국강병프로그램이다. 2단계는 구조개선을 통한 개혁의 제도화를 도모했던 진시황의 법가주의프로그램이다. 3단계는 자원의 질을 개선하여 생활과 문화까지 바꾸었던 한무제 때 동중서의 천인합일(天人合一)프로그램이다.

※ 1단계 제환공의 부국강병 - 요소투입량을 늘리는 한건주의 개혁
※ 2단계 진시황의 법가개혁 - 구조개선을 통한 개혁의 제도적인 뒷받침
※ 3단계 동중서의 유가개혁 - 자원의 질을 개량하여 삶의 형태를 바꾼다.

농업에 비유한다면 1단계 요소투입량의 증대는 간단히 노동력의 투입을 늘리는 것이다. 더 많은 면적에, 더 많은 거름과, 더 많은 노동력을 투입하여 단기적으로 수확을 증가시킬수 있다. 그러나 명백한 한계가 있다.

더 많은 수확을 얻으려면 2단계 구조개선을 통한 시스템자원의 최적화에 도전해야 한다. 구조개선 역시 일정한 한계가 있다. 3단계는 종자개량이다. 신약, 신물질, 신소재, 신품종의 개발은 한계가 없으므로 항구적인 성장이 보장된다. 선진국의 첨단농업이 이에 해당한다.

박정희시대 한국의 산업은 단순히 생산요소의 투입량을 물리적으로 늘리는 것이었다. 이는 저임금구조하에서 노동자들의 희생과 농민의 이농으로 가능했다. 이는 제나라 환공의 방법이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더 이상 저임금에 의존할 수 없게되자 기업들은 2단계 구조개선을 통한 시스템자원의 최적화를 지향하게 되었다. 이 역시 한계가 있다.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3단계 소재와 기능의 혁신에 주력해야 한다.

신소재, 신물질, 신약, 신품종, 신기능의 개발에는 한계가 없다. 항구적인 경제성장이 가능하다. 지금 한국의 경제는 2단계와 3단계의 전환점에 있다. 정치는 2단계 시스템 자원의 최적화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김대중정권의 개혁인프라 구축
개혁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실감나게 보여준 정권은 역설적이지만 YS의 문민정부다. YS정부 초기의 신경제 100일 작전, 금융실명제 실시, 하나회 척결 등의 개혁정책들은 제나라 환공의 부국강병책을 연상케 하는 데가 있다.

DJ정권의 금융개혁, 재벌개혁, 햇볕정책 등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YS와 DJ의 부국강병책은 그 자체로는 유의미한 개혁이 아니다. 진정한 개혁은 시스템의 개혁이다. 시스템의 근간을 건드리지 않고 어느 한쪽의 희생을 수반하는 개혁은 가짜다.

YS와  DJ개혁은 노무현정권의 진정한 개혁을 위한 개혁인프라를 갖추는 작업으로 평가할 수 있다. 진정한 개혁은 자원의 질을 개선하는 것이다. 알아야 한다. 지금까지 역대정권의 모든 개혁은 준비운동에 불과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노무현 정권은 말로만 개혁을 외치고 있을 뿐 뭔가 보여주는 것이 없다. 도무지 뭘 개혁하겠다는거냐? 』

맞는 말이다. 노무현은 『신경제 100일 작전』『하나회 척결』도, 『신한국 창조』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가짜다. 눈에 보이는 YS와 DJ개혁은 모두 가짜다. 진짜는 자원의 질을 업그레이드 하는 것이며 이것은 보이지 않는다.

진정한 개혁은 박정희나 전두환처럼 깡패를 두들겨 잡고 삼청교육대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를 처단하고 감옥에 보내는 것도 아니다. 법을 바꾸고 제도를 바꾸는 것도 아니다. 진짜는 따로 있다. 사람의 생각을 바꾸고, 삶을 바꾸고, 문화를 바꾸는 것이 진정한 개혁이다.  

고조 유방의 시행착오와 무제의 오류시정
한고조 유방(劉邦)이 처음 함양을 점령하였을 때 진(秦)나라의 법을 모두 폐지하고 법삼장(法三章)이라 하여 3가지 규칙만 남겨둔 일이 있다. 대단한 개혁의 성공일까? 만세라도 부를 일일까? 천만에!

개혁은 실패로 돌아갔다. 천하는 다시 어지러워졌다. 유방은 소하(蕭何)의 건의를 받아들여 진시황의 법률을 모두 복원했다. 그래서 천하가 안정되었을까? 천만에! 그래도 천하는 조금도 안정되지 않았다.

개혁의 완결은 유가주의 철학에 기초한 동중서(董仲舒)의 천인감응(天人感應)론을 채택하므로서 이루어졌다. 이는 곧 사람의 생각을 바꾸고, 삶을 바꾸고, 문화를 바꾸자는 것이다.

천인감응론이란 무엇인가? 천(天)은 위로부터의 개혁을 말하고 인(人)은 아래로 부터의 개혁을 말한다. 민중의 삶을 바뀌었을 때 개혁은 최종적으로 완성되었던 것이다.

 역사의 많은 시기들에서 이와 유사한 사례들을 발견할 수 있다.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한 것도, 신라가 불교를 채택한 것도, 조선이 유교를 수용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근본적으로 사람의 생각을 바꾸고 삶을 바꾸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는다.  

서기 2003년 지금, 우리의 개혁도 삶이 바뀌고, 문화가 바뀌고, 철학이 바뀌고 생활이 바뀌는 단계에서 최종적으로 완성된다. 이는 혁명과 같다. 쏜 화살은 언제 멈추는가? 개혁이 사실상의 혁명의 효과를 얻는 단계에서 그 화살은 멈추어진다.

역사를 돌이켜보라! 한방울의 피를 아끼려 하다가 결과적으로 더 많은 피를 흘리게 된 경우가 그 얼마나 많았던가? 개혁은 피를 흘리지 않고 혁명의 효과를 얻고자 하는 것이다. 박정희식 부국강병으로 한계가 있고 YS와 DJ식 제도와 법률의 개선으로도 한계가 있다.

최종적으로 사람의 생각이 바뀌고서야 더 이상의 피를 흘리지 않을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언론개혁이고 장기적으로는 교육개혁이다. 궁극적으로 언론과 교육이 달라지지 않으면, 국민의 가치관과 철학이 하나로 통일되지 않으면 반드시 피를 흘리게 되어 있다.

개혁의 최종 목표는 신인류의 공급이다
노무현정권은 세 가지를 개혁할 수 있다. 첫째는 정치개혁이고, 둘째는 언론개혁이며, 셋째는 사회개혁이다. 정치개혁은 게임의 룰을 바로잡는 것이고, 언론개혁은 불공정한 심판을 교체하는 것이며, 사회개혁은 그 게임을 벌이는 동기와 목적까지 바꾸는 것이다.

사회개혁은 가치관의 변화가 전제되어야 가능하다. 가치관을 지배하는 것은 언론과 교육이다. 언론개혁과 교육개혁의 성공없는 사회개혁은 100% 실패한다.

가치관의 변화 없이는 어떤 개혁을 해도 국민들이 개혁의 의미를 실감하지 못한다. 반드시 역풍이 일어난다. 삶이 바뀌고 공동체의 성취동기가 바뀌어야 한다. 자원의 질을 개선하는 것이다.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신인류를 이 사회에 공급하는 것이다.

조중동에 밥 빌어먹고 있는 일부 좌파들은 여성, 환경, 노동 등 사회개혁의 부진을 이유로 들어 노무현정권의 개혁을 비판하고 있으나, 기실 그들은 그 모든 개혁의 절대적인 전제조건인 언론개혁의 방해세력이라는 점에서 그들이야말로 개혁의 적이다.

우리가 갈 길은 아직도 멀다. 중요한 것은 우선순위다. 정치개혁과 언론개혁, 교육개혁 없이, 공동체에 공급되는 자원의 질을 개선하지 않은 상태에서, 완전히 개량된 신인류를 사회에 공급하지 않은 상태에서 서구식 사민주의 개념의 사회개혁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중요한건 개혁의 우선순위다.
“창고가 가득 차야 예절을 알고, 의식이 족해야 영욕을 안다.” [倉凜實則 知禮節(창름실즉 지예절) 衣食足則 知榮辱(의식족즉 지영욕)]

제나라의 개혁가 관중이 쓴 관자(管子) 목민편(牧民篇)이다. 역사는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시스템의 내재적 완결성에 기초한 필연법칙이 작동한다. 역사의 필연에 따라 개혁의 우선순위가 정해진다.

창고를 먼저 채우고 그 다음에 예절을 가르쳐야 한다. 언론개혁, 교육개혁이 먼저이고 이를 통한 신인류의 공급이 우선이며 서구식 사민주의 개념의 사회개혁은 그 다음이다. 이러한 우선순위를 지키지 않는 개혁은 절대 실패한다.

역사는 부단한 시행착오와 오류시정의 연속이다. 한방울의 피를 아끼기 위해 개혁을 기피하다가 결과적으로 더 많은 피를 흘리는 양상의 반복이다.

역사에는 지름길이 없다. 우선순위를 지키지 않으면 절대로 실패한다. 단계를 무시하고 사회개혁부터 주장하는 사람들이 좌파이다. 모든 개혁을 가능케 하는 개혁 인프라의 구축이 부국강병프로그램이다. 부국강병 단계에서 주저앉으려 하는 사람이 우파이다.

정리하자. 우리는 무엇을 개혁하는가? 궁극적으로는 사람을 개혁한다. 생각을 바꾸고, 삶을 바꾸고, 문화를 바꾼다. 공동체의 이상을 바꾸고, 가치관을 바꾸고, 철학을 바꾼다. 최종적으로는 자원의 질을 개선한다. 공동체의 자원은 사람이다. 우리는 신인류를 양성하고 그들을 사회에 공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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