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5191 vote 0 2019.05.24 (22:01:45)


    물건을 주워오는 이유


    정신병자는 정신병자 대접을 해줘야 한다. 그것이 예의를 차리는 것이다. 정신병자도 둘러대기 피곤하다. 부담을 덜어주어야 한다. 왜 그들은 물건을 주워올까? 쓸모가 있어서? 근검절약? 개코나. 그럴 리가 없다. 구조론에서 항상 하는 말은 인간의 어떤 이유, 목적, 의도는 죄다 가져다 붙인 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속지 말자.


    남들이 자꾸 물어보니까 그렇게 대답하는 것이다. 그럼 뭐라고 대답하리? 혹은 자신을 납득시킬 의도로 꾸며대기도 한다. 자신도 자기가 왜 그러는지 잘 모르니까 먼저 자신을 속여야 한다. 정치든 경제든 사회든 문화든 예술이든 마찬가지다. 언어에 속지 말자. 말은 그냥 말이다. 말은 말 자체의 결이 있고 질서가 있는 것이다. 


    말로 추궁하면 사실을 말하는게 아니라 그럴듯한 말로 대꾸한다. 그래야 귀찮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말은 말이고 사실은 별개다. 정치는 정치의 생리가 있고 경제는 경제의 생리가 있다. 마찬가지로 정신병자는 정신병자의 생리가 있다. 각자 자기 결을 따라가는 거다. 사실은 저장강박증 식으로 상태가 안 좋은 아저씨들 꽤 많다.


    부자는 왜 자꾸 땅을 사 모을까? 피규어를 사 모으는 오덕들은 왜 그런 짓을 할까? 다른 이유가 없다. 인간들이 워낙 말을 안 듣기 때문이다. 그들은 좌절해 있는 것이다. 사람을 모으면 반드시 배신한다. 말을 잘 듣는 것은? 무생물이다. 피규어다. 땅이다. 돈이다. 왜 돈이 넉넉히 있는데도 돈을 모을까? 돈이 사람 괄시하지 않더라.


   돈이 사람을 비웃거나 엿먹이거나 배신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다. 애니멀 호더들은 동물을 수집한다. 아기를 수집하는 자도 있다. 무리하게 아기를 입양한다. 유명 헐리우드 배우 중에도 있다. 한국 아기를 특히 노린다. 왜? 아기들은 배반하지 않기 때문이다. 동물은 반항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상처 입은 사람들이다.


   왜 물건을 모을까? 물건은 대들지 않는다. 물건은 배반하지 않는다. 물건은 복종한다. 물건은 그 자리에 두면 그 자리에 있다. 옛날에는 아기를 많이 낳았다. 아기는 배반하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은 아기를 낳지 않는다. 배반하기 때문이다. 학원비 줘. 등록금 줘. 명품옷 사줘. 요구하는게 많다. 말을 들어먹지 않으므로 상처입는다.


   냄비나 의자나 그런 물건을 어디서 주워온다. 가치가 있어서? 쓸모가 있어서? 판매하려고? 개코나. 인간이 하는 행동에는 이유가 없다. 주워올 수 있으므로 주워온다. 물건은 제자리에 가만히 있으며 내게 복종한다. 어디 안 가고 거기에 있다. 인간은 쓸모를 추구한다. 과연 그럴까? 당신에게 1억짜리 다이아 반지가 있다 치자. 


    그걸 쓸까? 쓰지 않는다. 그냥 깔고 앉아 있는다. 1억짜리 재화의 가치는 그 쓰임새에 있지 않다. 그것을 깔고 않아 있는데 쾌감이 있다. 자동차 마니아들은 타지도 않으면서 잔뜩 차고에 세워 놓는다. 한 대에 1억짜리 차가 10대이면 10억이다. 그걸 쓸까? 천만에. 그걸 사용하는 자들은 거지다. 그걸 쓰지도 않는데 쾌감이 있다.


    결론하자. 물건은 쓰는게 아니다. 그냥 깔고 앉아 있는 것이다. 쓸만한 냄비를 주워와서 쌓아놓으면 그것을 소유하고 지배하고 통제하는 그 자체에 기쁨이 있다. 주변을 둘러보라. 자신이 소비한 물건 중에 과연 몇 퍼센트나 써먹는지를. 대부분 쓰지 않는다. 그냥 깔고 앉아 있는 것이다. 신발장을 열어보자. 몇 켤레인지 세어보자.


    물건을 쓰는 것은 가난한 자들의 방법이다. 인간의 소유욕은 다른 것들에 배척당하고 괄시받고 밀려나고 배반당하고 상처입은 경험에 대한 반작용이며 물건을 소유하고 있으면 그 물건은 나에게 핀잔을 던지거나 엿먹이거나 놀려먹거나 골탕먹이거나 약올리거나 비웃지 않고 겸허하게 복종한다. 권력적 지배의 쾌감을 누린다.


    미니멀라이프 시대다. 물건을 버릴수록 친구를 얻는다. 반대로 친구를 잃을수록 물건에 집착한다. 손님을 초대하려면 적절히 비워두어야 한다. 상처 입은 사람들은 손님이 앉을 자리에 가구를 앉힌다. 거실의 한 가운데 큼지막한 소파를 둔다. 손님이 올 자리를 막아버리는 것이다. 손님을 배척하고 가구를 그 자리에 초대하기다.


    손님은 험한 말로 상처를 주지만 가구는 내게 상처를 주지 않는다. 물건을 버리고 가구를 최소화하고 대신 사람을 초대하기를 교양해야 한다. 물건은 쓸모가 있지만 쓰지 않는데 진정한 쾌감이 있다. 옛날 영국인들은 40개짜리 은수저 나이프 포크 세트가 있어야 체면이 섰다. 24개짜리 은수저 세트는 가난한 서민들의 식기다. 


    부르주아라면 반드시 40개다. 그중에는 거북이 등껍질 파먹는 포크도 있고 토마토를 나르는 스푼도 있다. 그게 필요하랴? 거북이 등껍질 파먹을 일이 평생에 몇 번이 있겠느냐고. 토마토는 그냥 손으로 집어서 운반하는게 편하다. 토마토를 은제 스푼으로 운반하다니 멍청한 짓이 아닌가? 부르주아 졸부의 콤플렉스인 것이다.


    왜 물건을 주워모을까? 돈을 모으지 못하고 땅을 모으지 못하고 자녀를 모으지 못하고 결정적으로 손님을 초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쓰지 않는다. 쓰지 않고 깔고 앉아 있는데 진정한 기쁨이 있다. 물건의 가치는 소비와 상관없다. 자신을 장식하는게 본질이다. 구조론은 마이너스다. 인간은 무엇을 버리는 방법으로 해결한다.


    그런데 왜 모을까? 손님의 방문을 차단하는 것이다. 강박증은 플러스로 나타나지만 그 반대편에 마이너스가 있다. 무언가를 막기 위해 바리케이드를 쌓는 것이다. 반대로 비움의 미학은 누군가를 초대하는 것이다. 나는 무엇을 가지고 있지 하고 소유를 자랑하는 사람의 마음속에 무언가를 막으려는 절박한 마음이 숨겨져 있다. 


    수집가들에게 말해줘야 한다. 수석이든 분재든 우표든 피규어든 자동차든 골동이든 마찬가지다. 도대체 어디에서 상처 입었길래 무엇을 막으려고 부지런히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느냐고? 허무를 막으려고? 공허를 막으려고? 친구의 부재를 자신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손님의 방문을 막으려고? 그들은 무언가를 방어하고 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3]kilian

2019.05.25 (02:37:06)

"나는 무엇을 가지고 있지 하고 소유를 자랑하는 사람의 마음 속에 무언가를 막으려는 절박한 마음이 숨겨져 있다. ~  반대로 비움의 미학은 누군가를 초대하는 것이다."

http://gujoron.com/xe/1091897

프로필 이미지 [레벨:9]미니멀라이프

2019.05.25 (16:27:36)

늘 궁금했던 문제였습니다. 감사합니다.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공지 설의 어원 김동렬 2024-12-25 8355
4452 구조의 효율성이 세상을 통제한다 1 김동렬 2019-06-08 5787
4451 태초에 무슨 일이 있었다 2 김동렬 2019-06-07 4066
4450 인생에는 규칙이 필요하다 1 김동렬 2019-06-07 4483
4449 세상은 구조다 1 김동렬 2019-06-05 4132
4448 3대가 되라 2 김동렬 2019-06-05 4237
4447 제 1 원리 2 김동렬 2019-06-01 4484
4446 예술은 만남이다 5 김동렬 2019-05-31 5096
4445 말을 똑바로 하자 1 김동렬 2019-05-31 4337
4444 사건의 평형법칙 1 김동렬 2019-05-30 4341
4443 마이너스가 인류를 구한다 1 김동렬 2019-05-29 4404
4442 답은 언어에 있다 1 김동렬 2019-05-29 4213
4441 카리스마가 힘이다 1 김동렬 2019-05-28 4315
4440 춘추필법으로 출발하라 1 김동렬 2019-05-28 4025
4439 한방요법의 문제 10 김동렬 2019-05-27 4809
4438 구조론은 수학이다 1 김동렬 2019-05-26 3904
4437 구조론은 언어다 4 김동렬 2019-05-25 4133
4436 단순한 것은 다양하다 1 김동렬 2019-05-24 3969
» 물건을 주워오는 이유 2 김동렬 2019-05-24 5191
4434 당신은 우주를 믿는가? 1 김동렬 2019-05-24 4373
4433 예술의 근본은 팝이다 2 김동렬 2019-05-23 46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