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대화 - 율곡이 퇴계보다 높다”를 읽고 질문드립니다.
율곡의 일원론은 중앙집권, 퇴계의 이원론은 지방분권이다.
율곡의 일원론이 맞고 퇴계의 이원론은 틀리다.
한국에서는 중앙집권이 맞고 지방분권은 틀리다.
이렇게 이해하면 되는지요.
2018.10.16 (08:00:29)
거칠게 말하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는데
근본되는 원리를 파악해야지 입시문제 암기하듯 하면 안 되지요.
중앙집권과 지방분권은 당연히 균형을 이루어야지
중앙집권만 맞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율곡사상이 한국에서만 맞다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이고
어느 나라에나 적용되는 보편적인 원리입니다.
무엇보다 주자학이 왜 생겨났느냐를 따져야 합니다.
거기에는 진보성과 반동성이 공존해 있는 것이며
송나라가 오랑캐의 침략을 당해 저항할 목적으로
중화주의로 맞서야 하는 사정이 생긴 것이며
중화주의 이론적 근거로 주자학이 기능한 것이며
그러므로 방어적이고 분권적이고 대지주의 입장을 옹호하는 것이며
퇴계 역시 노예 300명 이상을 거느린 시골지주로
시골지주의 입장을 대변하는 반동적 성격을 가지는 것이며
이런 측면만을 보고 성리학을 반동으로 몰아붙이면
빨갱이 짓이고 학문은 건조하게 객관적으로 봐야 합니다.
진보와 보수는 항상 공존해야 하는 것이며
진보만 옳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며
그런데 학문의 영역에서는 진보만 옳은 것이며
보수는 논할 가치가 없는 겁니다.
그것은 상업영화와 예술영화가 공존해야 하지만
평론가는 예술영화만 평론하지
상업영화는 평론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에는 똥도 필요하고 오줌도 필요하지만
똥오줌을 밥상에 올리지는 않습니다.
율곡은 성리학의 반동적 성격을 극복한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학문에는 그 당시의 여러가지 역사적 사정이 얽혀 있는 것이며
진보적 성격과 반동적 성격이 뒤엉켜 있는 것이며
우리는 그 중에서 진보를 취하고 반동을 물리는 것이며
금이 1이고 흙이 9라면 대략 흙이구나 하고 버리면 바보지요.
지금 스마트 시대에 세계가 인터넷으로 통합되는 분위기에
그 흐름을 따라잡으려면 통합을 강조한 일원론의 율곡을 평가해야 하는 것이며
모든 한국인이 SNS만 하고 사는 것도 아니고
사상이라는 것은 지도자가 되는 극소수에게만 적용되는 것입니다.
한국은 중앙집권이 맞다 이렇게 단순화 시키면 안 되고
21세기 인류가 나아가는 방향성을 따라잡으려면
한국의 중앙집권적 성향이 부각되는 흐름이다 정도로 봐야 합니다.
지방분권적이고 방어적이고 보수적이면 흐름에 뒤처진다는 거지요.
퇴계는 성리학이 태동하던 당시 수세에 몰려
전전긍긍하던 중국 송나라의 입장과 일치하는 것이며
어떻게 보면 정통성리학 주류와 일치하는 것인데
그것은 단순한 번역일 뿐 진보가 없는 거지요.
율곡은 명나라가 들어서고 다시 한족의 시대가 열려서
암울하더 송나라의 퇴행적 분위기가 일부 긍정적 분위기로 바뀐
명나라 초기 잘나갈 때의 진보적 분위기가 반영된 것이며
성리학을 수세적 방어적 퇴행적 반동적 해석이 아니라
반대로 공격적 긍정적 진보적 해석으로 나아간 것입니다.
성리학은 인간의 행위를 자연법칙과 일치시킨다는 천인합일설에 근거하여
남녀간 군신간 중앙과 지방간, 중국과 오랑캐 사이에 질서가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남자가 높고 임금이 높고 중국이 높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오랑캐가 중국을 먹고 있는 시대라
일종의 정신승리가 되는 것인데
남자가 높고 임금이 높고 중앙이 높고 중국이 높다는건 억지 해석이고
그냥 어거지로 말을 가져다 붙인 것이고
성리학의 근본은 우주에 질서가 있다는 그 자체이며
모든 차별은 그 질서를 부정하고 파괴하고 해체하는 것입니다.
차별하면 떨어져 나가는데 무슨 질서가 있겠습니까?
남자가 높다고 하면 여자는 가버리는데
남자끼리 모여서 무슨 모임이 되겠습니까?
오프모임을 해도 남자만 나오면 망한 모임입니다.
모임이 망했는데 무슨 질서타령?
중앙이 높다하면 지방은 가버리고
강남이 높다하면 강북은 가버리고
모든 차별은 질서의 파괴요 해체요 부정입니다.
질서는 통합을 전제로 하는 것이며
일원론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며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서열이 생기지만
사건이 종결되면 다시 평등하게 됩니다.
평등>서열>평등으로 패턴이 가는 거지요.
진행되는 일 안에는 반드시 서열이 있고 담당자가 있습니다.
율곡이든 퇴계든 시대조류의 반영인 것이며
퇴계는 노예 300명 거느리는 시골지주의 입장을 반영하고
시골에서 지주노릇을 하려면 도덕을 닦아야 한다 이런 것이고
율곡은 명나라가 잘나갈 때 조선도 뭣 좀 해보자 하고 분위기 좋을 때
조선의 통합과 발전을 모색해보자 이런 겁니다.
너무 단순화 시키면 곤란하고 내막을 들여다 봐야 합니다.
중화주의를 직수입해서 곧이곧대로
중국 높고 조선은 오랑캐 이러면 곤란하지요.
이론은 입맛대로 가져다붙인 군더더기 해석을 걷어내고
근거가 되는 근본을 봐야 합니다.
퇴계가 일본으로 가서 천황은 높고 막부는 낮다 이래버리니
2차대전 터져서 중국에서 2천만명 죽고 이것도 곤란.
자연의 질서 그 자체를 따라가야지 인간의 의도를 갖다붙이면 안 됩니다.
자연의 질서로 보면 통합이야말로 모든 사건의 출발점이오 대전제라
이것이 율곡사상입니다.
진보는 통합이지만 통합만 옳은건 아닙니다.
그런데 학문은 언제나 통합되어 있어야 하지
한국학문 일본학문 이렇게 나라마다 학문이 다르면 안 됩니다.
진보만 있으면 안 되고 보수도 있어야 하지만
똑똑한 사람은 진보만 해야지 똑똑한 사람이 보수하면 망합니다.
리더는 진보를 해야지 리더가 보수하면 망합니다.
운전사도 있고 승객도 있어야 하지만 운전사는 진보여야 합니다.
승객은 보수적이어야 하는데 난 승객할래 난 보수할래 이러면 강퇴됩니다.
구조론 연구소는 운전사를 양성하지 승객을 키우지 않습니다.
2018.10.16 (08:56:28)
답변 고맙습니다.
2018.10.16 (09:47:38)
감사히 읽었습니다.
2018.10.17 (19:29:13)
소름 끼치도록 명쾌한 통찰입니다. 아직도 흥분이 가라앉지를 않네요. 항상 감사드립니다.
2019.12.25 (11:43:29)
그래서 밤에 구조론을 읽으면 밤잠을 설쳐요. 흥분해서 ㅋㅋㅋ 구조론으로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는 챕터 하나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
2018.10.19 (00:30:55)
거칠게 말하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는데
근본되는 원리를 파악해야지 입시문제 암기하듯 하면 안 되지요.
중앙집권과 지방분권은 당연히 균형을 이루어야지
중앙집권만 맞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율곡사상이 한국에서만 맞다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이고
어느 나라에나 적용되는 보편적인 원리입니다.
무엇보다 주자학이 왜 생겨났느냐를 따져야 합니다.
거기에는 진보성과 반동성이 공존해 있는 것이며
송나라가 오랑캐의 침략을 당해 저항할 목적으로
중화주의로 맞서야 하는 사정이 생긴 것이며
중화주의 이론적 근거로 주자학이 기능한 것이며
그러므로 방어적이고 분권적이고 대지주의 입장을 옹호하는 것이며
퇴계 역시 노예 300명 이상을 거느린 시골지주로
시골지주의 입장을 대변하는 반동적 성격을 가지는 것이며
이런 측면만을 보고 성리학을 반동으로 몰아붙이면
빨갱이 짓이고 학문은 건조하게 객관적으로 봐야 합니다.
진보와 보수는 항상 공존해야 하는 것이며
진보만 옳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며
그런데 학문의 영역에서는 진보만 옳은 것이며
보수는 논할 가치가 없는 겁니다.
그것은 상업영화와 예술영화가 공존해야 하지만
평론가는 예술영화만 평론하지
상업영화는 평론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에는 똥도 필요하고 오줌도 필요하지만
똥오줌을 밥상에 올리지는 않습니다.
율곡은 성리학의 반동적 성격을 극복한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학문에는 그 당시의 여러가지 역사적 사정이 얽혀 있는 것이며
진보적 성격과 반동적 성격이 뒤엉켜 있는 것이며
우리는 그 중에서 진보를 취하고 반동을 물리는 것이며
금이 1이고 흙이 9라면 대략 흙이구나 하고 버리면 바보지요.
지금 스마트 시대에 세계가 인터넷으로 통합되는 분위기에
그 흐름을 따라잡으려면 통합을 강조한 일원론의 율곡을 평가해야 하는 것이며
모든 한국인이 SNS만 하고 사는 것도 아니고
사상이라는 것은 지도자가 되는 극소수에게만 적용되는 것입니다.
한국은 중앙집권이 맞다 이렇게 단순화 시키면 안 되고
21세기 인류가 나아가는 방향성을 따라잡으려면
한국의 중앙집권적 성향이 부각되는 흐름이다 정도로 봐야 합니다.
지방분권적이고 방어적이고 보수적이면 흐름에 뒤처진다는 거지요.
퇴계는 성리학이 태동하던 당시 수세에 몰려
전전긍긍하던 중국 송나라의 입장과 일치하는 것이며
어떻게 보면 정통성리학 주류와 일치하는 것인데
그것은 단순한 번역일 뿐 진보가 없는 거지요.
율곡은 명나라가 들어서고 다시 한족의 시대가 열려서
암울하더 송나라의 퇴행적 분위기가 일부 긍정적 분위기로 바뀐
명나라 초기 잘나갈 때의 진보적 분위기가 반영된 것이며
성리학을 수세적 방어적 퇴행적 반동적 해석이 아니라
반대로 공격적 긍정적 진보적 해석으로 나아간 것입니다.
성리학은 인간의 행위를 자연법칙과 일치시킨다는 천인합일설에 근거하여
남녀간 군신간 중앙과 지방간, 중국과 오랑캐 사이에 질서가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남자가 높고 임금이 높고 중국이 높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오랑캐가 중국을 먹고 있는 시대라
일종의 정신승리가 되는 것인데
남자가 높고 임금이 높고 중앙이 높고 중국이 높다는건 억지 해석이고
그냥 어거지로 말을 가져다 붙인 것이고
성리학의 근본은 우주에 질서가 있다는 그 자체이며
모든 차별은 그 질서를 부정하고 파괴하고 해체하는 것입니다.
차별하면 떨어져 나가는데 무슨 질서가 있겠습니까?
남자가 높다고 하면 여자는 가버리는데
남자끼리 모여서 무슨 모임이 되겠습니까?
오프모임을 해도 남자만 나오면 망한 모임입니다.
모임이 망했는데 무슨 질서타령?
중앙이 높다하면 지방은 가버리고
강남이 높다하면 강북은 가버리고
모든 차별은 질서의 파괴요 해체요 부정입니다.
질서는 통합을 전제로 하는 것이며
일원론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며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서열이 생기지만
사건이 종결되면 다시 평등하게 됩니다.
평등>서열>평등으로 패턴이 가는 거지요.
진행되는 일 안에는 반드시 서열이 있고 담당자가 있습니다.
율곡이든 퇴계든 시대조류의 반영인 것이며
퇴계는 노예 300명 거느리는 시골지주의 입장을 반영하고
시골에서 지주노릇을 하려면 도덕을 닦아야 한다 이런 것이고
율곡은 명나라가 잘나갈 때 조선도 뭣 좀 해보자 하고 분위기 좋을 때
조선의 통합과 발전을 모색해보자 이런 겁니다.
너무 단순화 시키면 곤란하고 내막을 들여다 봐야 합니다.
중화주의를 직수입해서 곧이곧대로
중국 높고 조선은 오랑캐 이러면 곤란하지요.
이론은 입맛대로 가져다붙인 군더더기 해석을 걷어내고
근거가 되는 근본을 봐야 합니다.
퇴계가 일본으로 가서 천황은 높고 막부는 낮다 이래버리니
2차대전 터져서 중국에서 2천만명 죽고 이것도 곤란.
자연의 질서 그 자체를 따라가야지 인간의 의도를 갖다붙이면 안 됩니다.
자연의 질서로 보면 통합이야말로 모든 사건의 출발점이오 대전제라
이것이 율곡사상입니다.
진보는 통합이지만 통합만 옳은건 아닙니다.
그런데 학문은 언제나 통합되어 있어야 하지
한국학문 일본학문 이렇게 나라마다 학문이 다르면 안 됩니다.
진보만 있으면 안 되고 보수도 있어야 하지만
똑똑한 사람은 진보만 해야지 똑똑한 사람이 보수하면 망합니다.
리더는 진보를 해야지 리더가 보수하면 망합니다.
운전사도 있고 승객도 있어야 하지만 운전사는 진보여야 합니다.
승객은 보수적이어야 하는데 난 승객할래 난 보수할래 이러면 강퇴됩니다.
구조론 연구소는 운전사를 양성하지 승객을 키우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