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당선자의 취임을 앞두고, 5년전 김대중대통령의 취임 무렵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지난 5년간 세상이 얼마나 바뀌었나요? 바뀐거 없다구요? 하긴 김대통령의 신자유주의 공세에 실망한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조금씩 나아져 왔고, 그 작은 전진 조차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안다면, 노무현정권에 희망을 가져도 좋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래 글은 98년 1월 1일 김대중대통령의 역사적인 취임을 앞두고 쓴 글입니다. 지난 5년간 조선, 동아가 달라진 것이라곤 전면 가로쓰기를 채택한 사실 밖에 없군요.
이제는 진보를 말할 때이다. 10여년 전에 조선일보는 한글 가로쓰기를 해야 되느냐 말아야 하느냐를 두고 독자들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했는데, 가로쓰기 찬성비율이 10프로 밖에 되지 않아서 세로쓰기를 고수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독자들이 반대하기 때문에..』 변명 좋다. 그런데 오늘 동아일보가 가로쓰기를 시작하고보니 감회가 새롭다. 조선일보는 언제쯤 하려는지 모르지만..! 《(주) 조선일보는 99년 3월에 전면 가로쓰기를 채택함》 그래도 세상은 조금씩 변한다. 동아일보가 가로쓰기를 채택한 것이 진보인지 퇴보인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변화는 일어나고, 그 변화는 예측되며, 그 변화를 미리 내다보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기에 그 변화가 안심하고 우리 곁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깟 가로쓰기가 뭐 대단한거냐고 말할수 있겠지만, 그것도 한겨레가 하고 중앙이 하고, 스포츠신문들이 하니까 동아도 하는거다. 누군가 앞서서 길을 열어가지 않으면 결코 안하는게 인간의 심사다. 이거 알아야 한다. 변화는 고통을 수반한다. 사람들은 작은 변화도 두려워 한다. 아무리 그것이 옳고, 모두에게 이익이 되고, 좋은 거라도, 앞서가는 한 사람이 모범을 보여주지 않으면 다수는 한사코 그 길을 가지 않으려 든다. 정권교체..! 막상 해보면 별 것도 아닌데, 이 쉬운 일을 왜 우리는 지난 몇십년간 망설이기만 했던가 하고 후회하게 되리라. 이유는 없다. 지금껏 안해왔으니 안한거다. 좌파는 진보의 테크닉을 배워라! 무슨 운동.. 이라며 하는 것은 대개 실패하기 마련인데 관 주도로 하므로 그렇다. 새마을운동이 어느면에서 성공적이라면 거기엔 충분한 이유가 있다. 나치식 선전술을 동원하여 심리적으로 접근한 것이다. 이장이 동네사람 모아놓고, 위에서 지시가 내려왔으니 걍 해보자고 하면 촌사람들은 안한다. 시켜서는 절대로 안하는 존재가 인간이다. 하면 좋은데 왜 안할까? 본인에게 이익이 되고, 돈이 되고, 손해볼거 없는데도 왜 한사코 사람들은 안하려고만 할까? 안해봤기 때문에 안하는거다. 경험이라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 아시아에 수십개 나라가 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정권교체 한번이라도 성공한 나라는 딱 한 나라가 있다. 한국이다. 그거 쉬운 일 같지만 실상 어려운 거다. 새마을운동은 먼저 하나의 모범적인 성공사례를 만들어놓고 마을간에 경쟁을 붙였다. 안하는 마을은 지원을 안해주고, 하는 마을은 적극 지원하고..! 앞동네가 이기냐 뒷동네가 이기냐! 시골사람 인간심리를 파고들었기 때문에 약간이라도 성공한 거다. 인간을 움직이는데도 테크닉이 필요하다. 정서가 중요하고 문화가 중요하다. 마을끼리 경쟁을 붙여서 『이거 못하면 우리동네만 촌넘된다. 우리동네가 웃동네를 이겨야 된다.』 이렇게 바람을 잡아주면 경쟁심이 생겨서 그나마 약간 움직여 주는게 인간이다. 진보도 그렇다. 만만한 것이 아니다. 그것이 옳고, 정당하고, 떳떳하고, 우리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고 해도 인간은 진보를 안한다. 조선일보처럼 죽어보자고 진보를 안한다. 진보가 옳다는거 알면서 안한다. 왜냐하면 한번도 안해봤으니까. 좌파들은 생각해야 한다. 정권교체..! 이 작은 전진을 우리는 소중히 생각해야 된다. 중요한 것은 한번이라도 해봤다는 경험이다..! 한번 안하면 영원히 못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앞서가는 한 사람의 『진보주의자』이다. 진보주의자라는 이름의 역사의 바람잡이들 세상은 결국 그렇게 되게 되어 있지만, 어차피 역사는 진보하게 되어 있지만, 인간이란 꽤나 답답한 존재들이다. 누군가가 광야에다 깃발을 꽂아놓고 목놓아 외치지 않으면 죽어보자고 안하는게 인간이다. 그 작은 변화가 안심하고 우리곁으로 다가올 수 있도록 앞장서서 바람잡아주는 진보주의자들이 필요하다. 진보주의자는 치밀해져야 하고 정교해져야 한다. 성급한 낙관이나 낭만적인 구호로, 막가파 투쟁으로 안된다. 『우리가 옳으니까.. 이렇게 하면 모두에게 이익이 되니까 걍 하자. 진보하자!』 그렇게 백날을 외쳐봤자, 설사 그것이 옳고, 모두가 이해하고, 또 공감한다 해도 반대세력은 진보를 해서 안되는 이유 3백가지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한다. 진보가 이기려면 확실한 성공사례를 만들어서 증명해 보여줘야 한다. 그게 인간이라는 말안듣는 존재이다. 깊은 성찰이 있어야 한다. 내가 옳으므로 나를 따르라는 식은 곤란하다. 그것이 교만임을 알아야 한다. 옳은 길은 한사코 피해가는 것이 또한 인간이다. 라이트 형제 비행기를 만들다 비행기는 라이트형제가 만들었다. 문제는 라이트형제가 비행기의 원리를 발견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비행기를 공중에 부상하게 하는 양력의 원리는 많은 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해 이미 오래전에 규명되어 있었다. 왜 잘난 과학자들이 비행기를 발명하지 못하고, 엉뚱하게 자전거포나 운영하던 라이트형제가 비행기를 만들었을까? 스미소니언 협회 회장이던 랭글러박사가 만든 비행기는 왜 이륙하자 말자 호수로 추락하고 말았으며, 학교도 못나온 라이트형제의 비행기는 어째서 이륙하는데 성공하였나? 당시 과학자들은 비행기가 공중에 뜨기만 하면 날 수 있다는 고정관념에 빠져있었다. 이것은 오늘날 좌파들의 혁명만 하면 된다는 낭만적인 견해와 같다. 랭글러박사의 비행기는 뜨기는 하지만 곧장 추락한다. 왜? 조종기술이 없기 때문에. 문제는 비행기가 뜬다는 신념이 아니라 허공에서 비행기를 제어할 수 있는 테크닉이다. 좌파들의 문제는 비행기가 뜬다는 이론적 확신은 있으나, 비행기를 제어하는 테크닉이 없는 것과 같다. 라이트형제는 비행기가 아니라 실은 풍동 실험장치를 발명한 사람이다. 거기서 테크닉을 얻은 것이다. 이론과 현실 사이에는 명백히 갭이 있다. 실제로 경험해보지 않으면 절대로 알 수 없는 미지의 부분이 분명히 있다. 그 숨은 플러스 알파를 잡아채지 않으면 진보는 언제나 실패한다. 과학자들은 비행기가 추락하니까 『아하! 이론에 결함이 있구나!』 하고 날이면 날마다 이론을 점검했다. 자전거수리공 라이트형제는 무식해서 이론을 검증할 능력이 없었다. 라이트형제는 과학자들이 빌려준 책을 얻어보고 그 이론을 백프로 믿어버렸다. 왜? 이론적 지식이 없기 때문에, 믿어버리는 수 외에 다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실은 이론에 결함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접근방법에 원초적인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좌파들은 그걸 알아채야 한다. 이론에 결함이 있는 것이 아니다. 당파성 싸움 그거 백날 벌여봤자 답 안나온다. 완벽한 이론? 그런거 원래 없다. 오만과 몽상이다. 진보가 안되는 것은 다른 이유가 없다. 한번도 안해봤기 때문에 안되는 거다. 그러므로 단 한걸음이라도 앞으로 발을 내딛어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론을 떠드는 랭글러진보가 아니라 경험을 축적하는 라이트진보가 필요하다. 랭글러박사는 『아하! 이론에 결함이 있구나!』 해서 포기했지만, 이론을 몰랐던 라이트형제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날마다 실험했다. 그들은 처음 바람에 띄우는 연에서, 글라이더로, 비행기로 조금씩 진보했던 것이다. 정권교체란 조금 해보는 것이다. 조금 한다고 뭐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 조금도, 반만년 역사이래 한번도 안해본 일이라는 사실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해보니까 되더라는 경험이다. 완벽한 이론? 당파성 논쟁? 진지전? 해방구? 다 필요없다. 시행착오 겪으면서, 단계적으로 오류시정 해가면서 조금씩 나아가는 거다. 지금 우리는 비록 작게 시작하지만, 이제 한 번 해본 사람이기 때문에 계속 할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중요하다. 결국은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질적 한계이다. 혁명을 이해하기 앞서 먼저 인간을 이해해야 한다. 이 약하디 약한 인간이라는 존재 말이다. 콜럼부스는 그냥 서쪽으로 갔다. 알고 간건 아니다. 실은 모르고 간 것이다. 그가 갔으니 모두가 간 것이다. 그가 가지 않았다면 아무도 가지 않았을 것이다. |
김대중과 함께 간 5년, 노무현과 함께 갈 5년
젊은 김대중은 오금을 저릴만큼 매력적이다. 70년대 김대중의 연설문을 읽어보면 놀라온 통찰력에 충격을 받는다. 그때 당선되었다면 세상이 달라졌겠지. |
이 글을 쓰고 5년하고 50일이 지났습니다. 노무현당선자의 취임이 닷새 앞으로 다가왔군요. 5년만에 우리는 다시 새로운 처음으로 돌아왔습니다. 때때옷, 꼬까옷, 설빔 골라입고 마음도 경건하게 차례상 앞에 나란히 섰습니다.
그 5년 사이에 조선일보도 마지 못해 가로쓰기를 채택했군요. 그러나 조선일보는 많이 퇴행했습니다. 15년전의 조선일보는 한글 가로쓰기를 앞장서서 주도하지는 못해도, 가로쓰기를 할까말까 하고 독자들의 여론을 떠보는 척은 할 정도로 사꾸라로 진보적이었습니다. 이제는 아주 내놓은 수구꼴통이 되어 있습니다. 뭐 그래도 나름대로 변절 문부식도 끌어오고, 콩기름 진보는 열심히 하겠지만요.
5년 전에도 그넘의 조선일보가 문제였듯이, 5년 후에도 빌어먹을 조선일보가 문제일 것입니다. 언론개혁? 아마 잘 안될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 5년간 조선일보를 집요하게 갈구어서 수구꼴통으로 만드는데 성공했습니다.
인간은 잘한다 잘한다 하고 칭찬해주면 잘합니다. 못한다 못한다 하고 갈구면 진짜로 못합니다. 조선일보? 『너희들 수구야!』 하고 갈구면 진짜로 수구가 됩니다. 조선일보를 5년간 갈구면 정권을 획득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지난 5년간의 경험으로 얻은 노하우입니다.
김대중대통령이 많은 부분에서 실패했다고요? 그래도 우리는 시행착오와 오류시정의 노하우를 얻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우리의 정치적 자산이라는 점입니다. 설사 많은 부분에서 실패였다 해도 그것이 적들의 실패가 아닌 우리의 실패이기 때문이지요.
랭글러박사는 한번에 뜨는 완벽한 이론을 꿈꾸었지만, 라이트형제는 천번의 어려운 실험에 도전했습니다. 무수하게 실패하면서 하루에 한걸음씩 진보한 것입니다. 노무현정권의 승계로 하여 김대중정권의 실패한 부분까지도 시행착오와 오류시정의 노하우라는 형태로 우리의 정치적 자산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만큼 더 강해진 것입니다.
지난 5년간 우리는 길도 모르고 갔습니다. 많은 부분에서 주저했고 많은 부분에서 망설였습니다. 시행착오의 경험을 얻었기 때문에 이제는 길을 알고 갑니다. 지난 5년간 우리가 일구어온 성과가 결코 작은 것은 아니라고 저는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당선자의 취임을 앞두고 지난 5년간 우리의 싸움을 돌이켜 봅니다. 자랑스러워 해도 좋습니다. 이 작은 전진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안다면 말입니다. 하여간 저는 상고나온 노무현이 자전거포 하던 라이트형제라고 믿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