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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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6134 vote 0 2008.12.30 (13:46:45)

 

 ###계통###

나무나 풀은 겉보기엔 전혀 다르다. 그러나 같은 과의 초본이 다년생인가 일년생인가에 따라 나무가 되기도 하고 풀이 되기도 한다. 분류학상 속씨인가 겉씨인가의 구분은 있어도 나무와 풀의 구분은 없다.

속씨냐 겉씨냐는 주변적인 아주 작은 것이고 나무인가 풀인가는 본질적인 매우 큰 것이다. 그러나 유전정보의 차원에서 보면 개념이 달라진다. 파리도 털이 있고 사람도 털이 있지만 파리가 진화해서 사람이 된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뱀도 비늘이 있고 닭도 비늘이 있지만 파충류가 진화해서 조류가 되었다는 주장은 파리가 진화해서 사람이 되었다는 주장만큼 황당한 것이다. 남자는 수염이 있고 숫사자는 갈기가 있다.

여자는 수염이 없고 암사자는 갈기가 없다. 그러나 사자와 사람사이엔 진화계통상 아무런 상관이 없다. 송충이는 긴 털로 몸을 부풀려서 적을 위협하므로서 자신을 보호한다.

두꺼비도 몸을 부풀려서 자신을 보호하고 고양이도 몸을 세워 크게 보임으로서 적을 위협한다. 그러나 송충이가 진화해서 두꺼비가 된 것은 아니고 두꺼비가 진화해서 고양이가 된 것은 아니다.

잠자리도 날개가 있고 박쥐도 날개가 있고 참새도 날개가 있다. 그러나 잠자리가 진화해서 박쥐가 된 것은 아니고 박쥐가 진화해서 참새가 된 것은 아니다. 잠자리와 참새와 박쥐의 날개는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날아가는 원리는 같다.

진화는 외형에서 일어나는게 아니라 유전정보의 차원에서 일어난다. 외형에서 보면 전혀 다른 것도 유전정보의 차원에서 보면 매우 근접해 있으며 외형에서 비슷한 것도 유전정보의 측면에서 보면 전혀 다를 수 있다.

남자의 수염이나 숫사자의 갈기는 동일한 유전정보에 의해 지배된다. 이점은 매우 중요한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 진화는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로 조금씩 축적된 것이 아니라 어떤 특정한 유전정보가 종에 따라 암수구분에 따라 나타나기도 하고 숨어들기도 하는 것이다.

여자는 수염의 유전정보를 가지지 않은게 아니라 여성 호르몬이 수염의 성장을 억제하므로 있는 수염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염소는 사람과 달라서 암 염소의 여성호르몬은 수염의 성장을 억제하지 않으므로 암염소는 수염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원숭이는 꼬리가 있는데 사람은 없는 것은 사람은 아예 꼬리의 유전정보가 없는 것이 아니라 사람도 꼬리가 있는데 자궁의 태내에서 일정한 시기가 되면 꼬리의 성장이 멈추어 버려 있는 꼬리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유전정보의 이상에 의해 꼬리달린 사람이 태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 사람만이 가진 모든 특징은 사람만이 특별히 진화하여 가진 것이 아니라 다른 동물도 모두 가지고 있는데 다른 동물은 발생과정에서 사라져 버리고 사람만 그 특징이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사람만 웃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당나귀도 웃는다. 사람만 눈썹을 가진 것은 아니다. 개도 눈썹이 있다. 원숭이만 꼬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도 꼬리를 가지고 있다. 다른 점은 사람은 그 꼬리를 감추고 원숭이는 감추지 않는 차이다.

진화는 없는 것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감추거나 드러내거나 하는 것이다. 사람이란 특별한 고등동물이 다른 종보다 더 우월하게 많이 진화한 것은 아니다.

사람은 특정한 것을 드러내고 다른 것을 감추는데 비해 다른 종들은 다른 것을 드러내고 특정한 것을 감추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파리가 진화하여 새가 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파리의 나는 기술과 새의 나는 기술과 박쥐의 나는 기술이 우연히 일치한 것은 아니다. 파리의 비행기술은 유전정보로 남아서 새의 나는 기술과 박쥐의 나는 기술로 이어졌다.

외형의 차원에서 전혀 진화의 계통이 다른 것도 유전정보의 차원에서는 계통을 뒤어 넘어 하나로 이어질 수 있다. 송충이와 두꺼비와 고양이의 적을 위협하는 기술은 각자가 따로 개발한 것이 아니라 송충이의 기술이 두꺼비로 이어지고 두꺼비의 기술이 고양이로 이어진 것이다.

개구리도 몸을 부풀리는 기술의 유전정보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다만 감추어져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진화###

풀과 나무는 다르다. 그러나 나무에서 풀로 진화한 것이 아니고 풀에서 나무로 진화한 것이 아니다. 기존의 진화론으로 말하자면 어떤 풀이 진화하여 겉씨에서 속씨로 바뀌었다면 그 풀과 같은 과에 속하는 속씨의 나무는 없어야 한다.

진화의 시간적 순서에서 나무와 풀이 먼저 갈라지고 다음에 겉씨와 속씨가 갈라지거나 아니면 겉씨와 속씨가 먼저 갈라지고 다음에 나무와 풀이 갈라져야 하는데 같은 나무에도 겉씨와 속씨가 있고 같은 겉씨에도 나무와 풀이 있다.

이것은 계통 분류로는 설명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어떤 풀이 겉씨에서 속씨로 나눠질 때 풀에서 나무로 변하는 유전인자도 이미 가지고 있었다고 봐야 하는 것이다.

겉씨와 속씨가 갈라지고 난 다음에 우연히 모든 속씨의 풀들이 한꺼번에 제각기 나무와 풀로 갈라졌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겉씨식물에도 나무와 풀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겉시와 속씨로 갈라지기 전에 이미 나무와 풀이 갈라졌고 그 나무나 풀 중 하나가 겉씨에서 속씨로 변했는데 그것이 나무였다면 한번 갈라졌던 것이 다시 반복하여 갈라져 다시 풀이 생겨났고 그것이 풀이었다면 그 풀에서 예전에 일어난 풀에서 나무로의 변이가 다시 또 일어났다고 봐야 하는데 어떻게 동일한 변이가 모든 식물에 공통되어 우연히 동시에 일어날 수 있는가하는 문제가 제시된다.

그것은 물리적으로 가능하지 않으므로 결론은 하나다. 모든 풀은 나무가 될 수 있고 모든 나무는 풀이 될 수 있다. 나무는 다년생이고 풀은 일년생이거나 혹은 그에 가까우므로 풀이 먼저 생기고 나중에 나무가 생겼다고 봐야 한다.

그 풀이 겉씨에서 속씨로 진화할 때 나무로 변하는 유전인자도 함께 가지고 갔다고 봐야 하는 것이다. 이 점을 동물에게도 적용하면 진화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어떤 식물이 나무에서 풀로 변이를 일으켰다면 그것은 변한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던 유전정보가 나타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여자가 예쁜 것은 예쁘게 진화했기 때문이 아니라 모든 식물이 나무와 풀로 갈라지듯 모든 동물은 남자와 여자로 나눠지는데 그 성의 특징이 인간적으로 나타난 것에 불과하다. 사람이 털이 별로 없듯 돼지도 털이 별로 없다.

돼지는 돼지대로 털이 많은 멧돼지와 털이 없는 집돼지로 나눠지고 사람은 사람대로 털이 많은 고릴라와 털이 없는 사람으로 진화한 것이 아니라 모든 동물은 털의 양을 조절하는 유전정보를 가지고 있고 그 유전정보가 사람과 돼지에게 나타난 것이다.

그렇다면 고릴라도 우연히 기형 고릴라가 생긴다면 사람처럼 털이 없는 고릴라가 생길수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동물은 백화현상을 가지고 있다. 소도 흰소가 있고 호랑이도 백호가 있으며 염소도 흰 염소가 있고 사슴도 흰 사슴이 있으며 코스모소도 흰 코스모스가 있고 사람도 백인이 있다. 그렇다면 백인은 흑인보다 더 진화한 것이 아니라 이런 백화현상이 나타난 것에 불과하다.

플러스 진화는 없다. 모든 진화는 마이너스 진화다. 진화는 앞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뒤로 가는 것이다. 있는것이 드러나지 없는 것이 생겨나지 아니한다. 흑인이 먼저 생기고 흑인이 가진 유전정보에서 하나가 숨어 드러나지 않으면 흑인의 피부를 검게하는 멜라닌 색소가 부족해서 황인이 되고 여기에서 다시 하나가 숨으면 멜라닌 색소가 사라져서 백인이 된다. 있는 것이 감추어질 수는 있다. 그러나 없는 것이 생겨날 수 는 없다.

우리가 진화라고 착각한 모든 변이는 진화가 아니라 유전적 다양성이 나타난 것이다. 흑인이 유전적 다양성으로 탈색해서 황인이 되고 백인이 된다. 그러나 백인이 유전적 다양성으로 어찌해서 황인이 되거나 흑인이 되는 것은 물리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있는 것이 감춰질 수는 있어도 없는 것이 생겨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고로 만약 진화한 최초의 인간이 흑인이 아니고 백인이었다면 인간에게는 유전적 다양성이 없어서 황인이나 흑인은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고 그만큼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어려워져서 인류문명은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최초의 인간이 흑인이었기에 가능한 것, 이것이 유전적 다양성이다.

모든 변이는 유전적 다양성에 지배된다. 갈라파고스 군도에 처음 날아간 한쌍의 핀치새는 사람에 비하면 흑인처럼 다양한 유전적 환경을 갖춘 핀치새였을 것이다. 멸종위기에 빠진 치타의 경우는 백인처럼 다양한 유전적 환경을 갖지 못한 치타가 최초의 치타로 변이했을 것이다.

따라서 종이 진화하고 적응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흑인 같아야만 한다. 곧 한꺼번에 많은 것을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 종은 조금씩 진화해 온 것이 아니라 흑인처럼 한꺼번에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진화는 거기서 유전정보가 하나씩 감추어지는 형태로 일어났다.

파충류에서 포유류로 진화할 때 이미 모든 포유류는 머리에 가마를 가지고 턱에 수염을 가지고 목에 갈기를 가지고 날씨에 따라 털갈이를 하며 이빨이 빠지면 하나가 새로나고 음부(사람만이 아니라 소도 국부는 털로 가린다)를 털로 가리며 손톱은 계속 자라고 지방을 엉덩이나 등에 저장하며 얼굴로 감정을 표현하고 혀나 땀이나 귀로 체온조절을 하는 유전정보를 가지고 태어났다.

이것은 파충류와 엄청난 차이를 한꺼번에 얻은 것이므로 파충류와 게통적 연관을 따지는 것이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포유류는 파충류가 진화한 것이 아니라 파충류가 생겨난 다음에 온 것이며 조류는 시조새가 진화한 것이 아니라 시조새가 온 다음에 온것이며 시조새와 조류의 공통점은 잠자리와 참새의 유사함과 같은 것이다.

잃어버린 고리는 없다. 있을 수가 없다. 화석이 증명하는 바 포유류는 어느 순간에 갑자기 나타나 생태계를 완전히 장악했으며 공룡은 순식간에 멸종했다. 공룡보다 훨씬 하등동물인 거북이나 악어도 살아남았는데 유독 공룡만이 멸종했다는 것은 운석과의 충돌이나 기상이변 등 어떠한 이유로도 설명될 수 없다.

유전정보의 차원에서 볼 때 인간은 쥐보다 조금도 나아진게 없다. 인간은 꼬리가 퇴화했지만 자궁속의 태아는 꼬리를 가지고 있다. 그 정도의 차이인 것이다. 양적인 차이일 뿐 질적인 차이는 없다. 양 속에 질이 없으나 질은 양을 예비한다. 종은 분명히 진화해왔고 또 진화할 것이다.

 그러나 질이 양을 규정하므로 질에 예비되지 않은 양이 나타나지 못한다. 진화엔 명백히 한계가 있다. 자동차가 있으면 빠르게 달릴 수도 있고 느리게 달릴 수도 있고 사고가 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코 하늘을 날 수는 없다. 그것이 자동차이기 때문이다. 종은 진화해 왓다. 그러나 자동차의 모든 변이가 땅바닥에서 이루어지듯 종의 모든 변이는 최초의 유전정보가 예비한 한게를 벗어나지 못한다.

현상을 말하자면 몇종의 미생물을 제외한 대부분의 종들이 변이의 한계, 교잡의 한계에 도달했다. 더 나아갈 데가 없다.

 ###잃어버린 고리###

다윈의 진화론은 대체로 소설이다. 우선 이론의 형식을 갖추고 있지 않다. 이미 일어난 사건을 짜맞출 뿐 아직 잃어나지 않은 사건의 일어나는 과정을 을 설명하지 못한다. 진화하기 위해선 변해야 한다.

모든 돌연변이는 기형일 뿐 변이가 아니다. 변이는 외형의 변화가 아니라 유전정보의 변화인데 특정한 방법으로 유전정보를 파괴할 수는 있어도 유전정보를 생산하지는 못하기 때문에 변이는 인위로 만들어 낼 수 없다.

기껏 교잡을 변이라고 우기는 정도이다. 격리설이나 그밖의 여러가지 가설들도 한결같은 허점, 변화 그 자체를 설명하는게 아니라 변화이후를 설명하는 후건 긍정의 오류, 곧 이론의 형식을 갖추지 못하여 이론으로 볼 수 없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진화론은 이론이 아니므로 현재로선 진화론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이론이려면 일단 가설을 세우고 다음 그 가설을 증명하는 순서를 밟아야 한다.

다윈의 생존경쟁, 적자선택은 하나의 언어적 상징일 뿐 그 자체로 가설이 아니다. 약육강식이다 생존경쟁이다 하는 것은 인간의 정서가 개입된 감정적인 표현이지 논리적인 사실이 아니다. 생태계에는 강약이 없다.

단지 역할분담이 있을 뿐이다. 호랑이는 사슴의 가족계획을 거들어주고 사슴은 호랑이의 식량을 조달해 준다.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르게 판단될 수 있는 것이다. 감정적인 연민을 가지고 사슴을 동정하는 것이 문학일 수는 있어도 과학일 수는 없다.

진화는 유전정보가 변하는 것이고 있는 유전정보가 자리바꿈 하는게 아니라 없는 유전정보가 생겨나는 것이다. 유전정보는 유전정보의 집에서 생겨난다. 무엇이 유전정보를 만드는가?

그 유전정보를 생산하는 유전정보의 집을 찾아야 비로소 진화가 이론으로 성립할 수 있다. 현재의 과학이 밝혀낸 바로는 유전정보는 없는 것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고유하게 있는 것이 복제될 뿐이다.

라디오 기능과 텔레비젼 기능, 노래방 기능까지 갖춘 멀티미디어형 컴퓨터가 있다. 그런데 이 컴퓨터가 고장나서 라디오 기능만 작동한다면 다윈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컴퓨터가 돌연 변이를 일으켜 라디오로 진화했다’ 한꺼번에 두가지를 할 수 없으므로 라디오가 작동할 때 텔레비젼 기능은 숨어야 한다. 모니터가 하나 뿐이므로 텔레비젼이 나올때는 노래방을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보이지 않을 뿐 그 안에 숨어 있다. 환경의 변화에 따라 그 숨은 것이 하나씩 불거져 나오는 것은 진화가 아니라 유전적 다양성이다.

진화한 것은 명백하다. 확실한 것만 말한다면 진화는 아직 보고되지 아니한 유전정보의 집에서 일어나며 조금씩 진보하여 쌓여가는 것이 아니라 한꺼번에 비약한다. 변이는 외형이 아니라 유전정보의 차원에서 일어나며 유전정보는 유전적 다양성을 예비하고 생태계에서 관찰되는 모든 변화는 유전적 다양성에 기초한다.

유전적 다양성은 무한히 변하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예비된 변화만 일으킨다. 이에 의해 종은 고유한 유전적 안정성을 지니고 외부의 돌연한 변화유발을 경계하여 방어한다.

  

 ***잡론***

소금에다 물을 섞어 소금물을 만들기는 쉽다. 소금물에서 소금을 분리해내기는 매우 어렵다. 소금물은 소금이나 물보다 크다. 커지는 변화는 쉽게 일어난다. 작아지는 변화는 일어나기 어렵다.

커지는 양적인 변화는 쉽다. 작아지는 질적인 변화는 어렵다. 소금물에서 소금을 분리해내기 위해선 소금과 물을 붙잡고 있는 운동보다 더 높은 단계인 열이 있어야 한다. 소금과 물이 섞여 소금물이 되는 것은 물 분자의 운동 때문이다.

열은 힘이고 물 분자의 움직임은 운동이다. 힘은 운동보다 높은 단계이다. 모든 운동은 높은 단계에서 낮은 단계로만 이행한다. 이 모든 변화를 제어하는 변화의 일정한 지향성이 지향성 때문에 진화론은 이론으로 성립할 수 없다.

우연이 만들어내는 모든 변화는 질에서 입자로, 입자에서 힘으로, 힘에서 운동으로, 운동에서 양으로 이행한다. 엔트로피의 원리에 따라 변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질은 줄어들고 양은 늘어나며 질에서 양으로 이행한다. 희랍의 분수와 같다.

분수물은 밑에서 위로 올라온다. 그러나 분수전체로 보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위에서 아래로 이행한다. 밑에서 위로 올라온다고 착각하는 것은 부분을 보되 전체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줄다리기 시합과 같다.

언뜻보면 서로 잡아당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알고보면 줄을 당기는게 아니라 줄로 버티고 땅을 밀고 있는 것이다.

    가  ---------------------  나

            ←←     →→

      ( 눈에 보이는 힘의 방향 )...줄을 당긴다. 운동의 효과가 바같쪽에 나타나야 한다.

    가  ---------------------  나

           →→      ←←

        ( 실제의 힘의 방향 )...땅을 민다. 실제의 운동효과는 힘의 중심에서 일어난다. 예를 들면 줄이 끊어질 경우 힘의 중심에서 끊어진다.

모든 운동은 높은 단계에서 낮은 단계로만 이행하고 그 역은 없다. 불안정한 단계에서 안정한 단계로만 이행하고 그 역은 없다. 질에서 양으로 가고 그 역은 없다. 이 지향성에 의해서 모든 존재자의 운동법칙이 성립한다.

다윈주의는 이 절대의 법칙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바이칼호는 바다에서 수천키로 떨어져 있다. 거기에 민물 해표가 있다. 해표는 바다짐승이다. 바다짐승이 강을 거슬러 올라왔다가 지각변동으로 육지에 고립되어 호수에 갇혀 버렸다.

바다해표는 민물에서 살수 없으므로 대부분 멸종하고 특별히 한 종만 적응, 진화하여 민물해표로 변해버렸다. 이것이 진화론자의 주장이다. 이것은 외형의 관점에서 본 것이고 유전정보의 관점에서 보면 달라진다.

해표의 조상은 원래 육지의 호수나 강에 살았다. 이 중 일부가 바다에 적응할 수 있는 유전정보를 나타내어 바다로 들어갔다. 그러나 태아가 꼬리를 가지고 있듯 바다해표는 민물에서 살 때의 유전정보를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그 중 일부가 동물의 백화현상처럼 민물에 적응하는 옛날의 유전정보를 나타내어 바이칼호로 돌아왔다. 이것은 진화가 아니다.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유전정보이기 때문이다. 이 원래의 유전정보는 바다해표의 조상 이전에 개구리 시절부터 이어져 온 것이다.

아마존 강에는 민물 고래가 살고 있다. 비버도 민물에 사는 수달이 있고 바다에 사는 해달이 있다. 민물해표와 민물고래와 수달이 각각 우연히 개별적으로 민물에 적응했다고 보기 어렵다.

그와 같은 유사성이 모든 종에 걸쳐 너무 많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종들은 원래 민물과 바다 양쪽의 유전정보를 다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두가지 유전정보를 동시에 가지고 있을 경우 그 중 하나만 나타난다.

하나는 숨은 채 잠재해 있다. 인간은 호모 에렉투스의 유전정보를 버리고 호모 사피엔스의 유전정보를 갖춘 것이 아니라 호모 에렉투스의 유전정보를 그대로 지닌채 호모 사피엔스의 유전정보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 숨겨진 유전정보가 교잡 등의 계기에 의해 드러나면 다윈은 새로운 종이 진화하여 생겨났다 하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메뚜기는 몇년에 한번씩 이상번식한다. 보통의 메뚜기는 살이쪄서 잘 날지 못하므로 대이동을 할 수 없다. 그런데 몇년에 한번씩 모든 메뚜기가 풀을 적게 먹고 다이어트를 하여 일제히 수천키로를 대이동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같은 종의 메뚜기가 전혀 다른 생태를 가진다는 것은 상식으로 설명될수 없다. 메뚜기들이 서로 연락하여 몸을 가볍게 하기로 담합이라도 했다는 건가?

그런데 옛날 기록을 보면 우리나라의 메뚜기도 가끔 대이동을 하곤 했다. 그런데 조선조 이후 메뚜기의 이동 습성은 사라져 버렸다. 왜 메뚜기들이 갑자기 자기들의 본능을 바꾸어 버렸을까?

메뚜기들이 생존경쟁을 하여 이동습성을 가진 메뚜기들을 도태시켜 버렸을까? 그럴리는 없다. 우리나라의 메뚜기는 아주 드물게 몇십년에 한번씩 이동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나라에 있는 메뚜기도 언제 이동습성을 나타내어 대이동을 할지 모른다. 메뚜기의 이동은 농사기술이나 기후 또는 지구의 궤도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가뭄이 들거나 하여 먹을 풀이 귀해지면 새로 태어나는 메뚜기들은 일제히 어미와는 다른 유전정보를 나타내는 것이다. 여왕벌이 로열제리를 먹고 여왕벌이 되듯 이미 가지고 있던 유전정보가 어떤 계기에 의해 드러나 어미와는 다른 생태를 보이는 것이다.

우리가 진화라고 여기는 것은 모두 위와 같은 식으로 사전에 이미 기억되어 있던 유전정보가 특별한 계기에 의해 드러나 생겨난 것이다. 최초의 핀치새는 여러가지 핀치새로 교잡될 유전적 다양성을 예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더이상 종의 진화는 관찰되지 않는다. 유전정보의 예비는 한계가 있어 교잡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모든 잡종을 만들어 냈을 때 거기서 진화는 끝나는 것이다.

사람이 암에 걸리는 것은 암유발 유전인자 덕분이고 암에 안걸리는 것은 암억제 유전인자 덕분이다. 당뇨병은 당뇨체질(빙하기에 적응한 체질)을 가진 사람이 잘 걸리고 알레르기는 알레르기 유전인자를 나타내는 사람이 잘 걸린다.

사람의 수명이 정해져 있는 것 또한 유전정보가 세포의 자기복제 회수를 지정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유전자 조작으로 늙어죽지 않는 사람을 만들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것은 생존경쟁과 아무 관련이 없다.

개체변이로 유전정보가 변한다면 수명이 만살인 사람, 수명이 천살인 사람, 수명이 백살인 사람이 섞여 있어야 한다. 다행히 그런 경우는 없다.

호랑이는 운동을 안해도 힘이 세며 코끼리는 보디빌딩을 하지 않았는데도 근육이 우람하다. 소는 단백질을 섭취하지 않아도 고깃살이 있고 말은 소금을 먹지 않아도 그만이고 개는 예방주사를 맞지 않아도 감기나 홍역에 잘 안걸린다.

사람에게 중요한 것이 다른 동물에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중요해서 중요한 것이 아니라 중요하도록 되어 있어서 중요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따지면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의 대부분이 궁극적으로는 필요하지 않은 것이라는 답이 나온다.

여기서 제시되는 것은 그 불필요한 것이 어떤 이유로 존재하게 되었냐 하는 것이다. 상어는 이빨이 빠져도 그만이다. 새 이빨이 나니까. 인간도 상어같다면 사람들은 아마존의 정글족처럼 무엇이든 이빨로만 해치우려 할 것이다.

이 경우 문명이 맨 먼저 죽는다. 사람도 개처럼 몸이 털로 덮여 있다면 생존에 매우 유리할 것이다. 그러면 또한 문명이 죽는다. 사람이 가진 많은 것들이  생존에 불필요하고 불리하나 문명을 위해 그 불리함이 필요한 것이다.

 ### 발생###

태내에서 태아가 발생하는 순서를 보면 손끝에 세포들이 번식하여 손가락을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손 사이에 세포들이 제거되어 손가락이 만들어 진다. 즉 더하기의 플러스 방식이 아니라 빼기의 마이너스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이다.

이것이 진화론을 뒤집는 결정적인 증거이다. 모든 발생은 없는 것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이 지워진다. 돌연변이 등 모든 돌발적인 변수들은

이 발생순서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변이도 진화를 일으킬수 없는 것이다. 초파리의 돌연변이 실험을 일억번해도 매번 기형만 나오는 것은 돌연변이는 있는 것을 없앨수 잇어도 없는 것을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진화는 낮은 단계에서 조금씩 고등한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한꺼번에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뒤 거기에서 마이너스 방식으로 하나씩 제거된다. 곧 진화는 곧 퇴화인 것이다.

백인은 흑인이 없는 것을 가진 것이 아니라 흑인이 가진 것을 잃었다. 그러나 우리에겐 마치 없는 것이 생겨난 것처럼 보인다. 갈라파고스의 핀치새들은 없는 것을 얻은게 아니라 있던 것을 잃은 것이다.

그런데 이 마이너스 진화엔 명백한 한계가 있다. 일정한 정도로 진화하다간 더 이상 진화할수 없는 벽에 부닥친다. 예를 들면 말이 커지는 것은 말의 성장을 촉진하는 유전자가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말의 성장을 억제하는 유전자가 제거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우리가 보기에는 말이 커지니까 진화로 보이지만 유전체계로 볼때에는 하나씩 잃어 퇴화하는 것이다. 생겨나는 것은 무한이지만 제거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말의 신체균형을 무너뜨리는 한계에 다다르면 더이상의 진화가 불가능하다. 이것이 잃어버린 고리가 생겨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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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구조 진화론 (정리중) 김동렬 2008-12-30 7059
2 태초에 있었던 일. 김동렬 2008-12-30 7431
1 극한의 법칙에 따른 브레이크와 방아쇠의 문제 - 진화론 김동렬 2008-12-30 7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