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는 없지만 IQ가 126
TV의 ‘믿거나 말거나’라는 프로그램을 보면 세상에 저런 일도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 때가 많다. 하지만
TV 프로그램이 아니라 권위 있는 학술지나 논문을 읽다가도 도저히 믿기지 않는 내용과 마주칠 때가 적
지 않다. 지난 1980년에 소개된 ‘당신의 뇌는 정말로 필요할’라는 제목의 사이언스지 기사도 그렇다. 기
사를 잠깐 살펴보자.
영국 셰필드 대학의 소아과 의사 존 로버에게 한 학생이 찾아왔다. 담당 주치의가 학생의 머리가 보통 사
람보다 큰 것을 이상히 여겨 로버 교수를 찾아보라고 권한 것이다. 주치의는 뇌수종을 의심했다. 학생의
뇌를 스캔해 본 로버 교수는 크게 놀랐다. 보통 사람이라면 4.5㎝ 정도의 뇌조직이 있어야 할 부분에 1㎜
남짓한 막만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이 학생은 로버 박사의 표현을 빌리면 사실상 뇌가 없는 상태였다. 그
러나 이 학생은 평소 생활에 아무런 지장이 없었을 뿐 아니라 아이큐도 126으로 높은 편이었다. 게다가
우등상을 받은 적도 있는 우수한 수학 전공 학생인 것이었다.
로버 교수는 뇌수종을 앓고 있는 253명의 환자 뇌를 스캔해 4그룹으로 분류했다. 거의 정상적인 뇌를 갖
고 있는 그룹. 두개강의 50~70%가 뇌척수액으로 차 있는 그룹. 두개강의 70~90%가 뇌척수액으로 차
있는 그룹. 두개강의 95%가 뇌척수액으로 차 있는 그룹 등이다. 마지막 그룹은 샘플의 10% 미만인 9명
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들은 극적인 결과를 보여줬다. 정상인의 5% 정도 뇌조직을 가졌을 뿐인 이들 가
운데 4명은 IQ가 일반인의 평균인 100을 넘고 있었다. 게다가 4명 중 2명은 정상인보다도 IQ가 높았다.
로버 교수의 연구 결과는 엄청난 논쟁의 불씨가 됐다. 비판자들은 스캔 결과를 해석하는 데 오류가 있었
다고 비난했다.
그런데 27년이 지난 올해. 임상 의학의 권위지 랜싯에 흥미로운 논문이 실렸다. 프랑스 지중해 대학의 교
수들이 작성한 이 논문 내용은 다음과 같다.
3년 전에 44세의 남성이 지중해 대학 병원에 내원했다. 왼쪽 다리에 힘이 빠지는 증상으로 병원을 찾았
다는 것이다. 이 환자의 뇌를 CT 촬영해 본 의사들은 경악했다. 뇌가 있어야 할 장소의 대부분을 유체로
가득 찬 공동이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남성의 뇌는 얇은 막에 불과했다. 그런데 테스트에서 남성의 IQ
는 75인 것으로 확인됐다. IQ 75는 낮은 편이긴 하지만 정상인의 하한에 속한다. 이 남성은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결혼해 아이 둘을 둔 가장이기도 했다. 이 남성은 병원 치료로 완치돼 퇴원했지만 뇌
크기에는 변화가 없었다고 한다.
의사들의 설명으로는 뇌의 변형이 서서히 진행되면서 뇌의 한 부위가 다른 부위의 기능을 대신하게 됐
고. 이 덕분에 남성은 지극히 작은 뇌에도 불구하고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뇌는 참 알 수
없는 것 투성이라는 느낌이다.
유멘시아(umentia.com)
구조론으로 보면 뇌의 용적과 인간의 진화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대신 미학적인 평형원리가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