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모 역사관련 사이트에 올린 글입니다]

골동품을 감정한다고 치자. 진짜라는 증거는 없다. 진품으로 판정하는 근거는 단 하나다. 그것은 가짜라는 증거가 없다는 점이다. 결론은 확률이다. 즉 골동품 감정은 궁극적인 단계에서는 100프로 '확률의 논리'에 뒷받침되며 그 이외에 다른 논리는 없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박물관의 모나리자가 가짜일 확률도 약간은 있다는 이야기다. 고흐의 많은 작품들은 가짜로 의심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진위판정에 있어서 최후의 근거는 '확률의 논리'인데 확률의 논리는 믿을만한가이다. 여기서의 정답은 '믿을만 하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UFO는 과연 있는가?'라든가 혹은 '진화론은 사실인가?" 이런 논란들도 궁극적으로는 확률에 의해서만 판정될 수 있다. UFO가 있다는 여러 증거들 혹은 없다는 여러 증거물들은 대부분 완벽한 증거가 되지 않는다. 진화론을 뒷받침하는 여러 증거들도 대부분 부실한 증거물들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증거물들이 확률을 약간 올리거나 낮추는 것은 사실이다.

확률의 논리가 인정받는 것은 다단계의 잠그는 문들이 있기 때문이다. 즉 어떤 하나의 확실한 증거가 아니라 여러 가지 증거들이 확률을 점차 높여가거나 혹은 낮춰가기 때문이다. 화랑세기의 진위판정도 궁극적으로는 '확률의 논리'에 의해서만 판정될 수 있다.

빼도박도 못하는 확실한 증거가 나올 가능성도 상당히 있기는 하지만, 지금까지의 경과를 두고 보면, 분명 빼도박도 못하는 증거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낮은 확률의 단서들로 치부된다. 증거의 효력을 깎아내리는 논리가 부단히 개발되곤 하는 것이다.

그러니 더 이상 증거를 찾아봤자다. 지금까지 나온 증거들로도 충분하다. 중요한건 확률이다. 무수한 단서들이 그 하나하나의 가치로는 100프로 명백한 증거가 되지는 못하지만, 전체적으로 화랑세기의 신빙성을 높이는 쪽으로 조금씩 확률을 높여왔음은 부인할 수 없다.

진위판정은 그렇다치고 결국은 저항감이다. 문화다. 화랑세기가 조명되어야 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문화충돌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필자는 교과서를 학습하면서 커다란 저항감을 느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중학교 2학년때 학교에서 나눠준 작은 불교설화집을 읽었는데 고려장이야기가 나와있었다. 그렇다면 고려장은 고려시대의 장례법이 아니라 불교설화였다는 말이 아닌가?

도서관에서 두꺼운 불교설화집을 읽었는데 알고보니 그 당시 텔레비전에서 하던 전설따라 삼천리의 절반이상이 그 불교설화집에 똑같은 내용이 나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있는 우리나라의 전설이 대부분 불교설화였다는 말인가?

그렇다. 우리는 우리나라의 전래설화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6할 이상은 스님들이 포교의 방법으로 절에서 설법한 불교설화가 민간에 퍼져서 전설따라 삼천리로 둔갑한 것이다. 전설따라 삼천리 마지막 장면에서는 반드시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이 이야기는 강원도 횡성군 둔내리에 지금도 전해져오는 전설로서 아직도 그 바위가 남아있는데 어쩌구 저쩌구.."

문제는 이것이 다 뻥이었다는 점이다. 그게 알고보니 인도에서 수입한 외국전설이었던 것이다. 하여간 전설따라 삼천리의 6할 이상은 가짜전설이다. 이런 식이다.

우리가 당연히 그렇다고 여기든 것들도 어느 순간에 "어? 이게 아닌데.." 뭐 이렇게 되는 것이다. 국사교과서도 그렇다. 처음에는 모르고 받아들였다. 뭐 교과서에 그렇다고 나오니 그렇겠지..그러나 아니었다. 머리가 굵어지고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너무나 당연히 그렇다고 생각한 것이 "어 이게 아닌데?" 로 180도로 바뀌는 것이다. 다시 읽어본 교과서는 너무나 어색하고 부자연스럽다. 소설의 냄새가 난다. 어느 시점부터 필자는 교과서를 불신하게 되었다.

이런건 어린 시절 간첩은 다 뿔달린 도깨비로 알고 있다가 어느 시점에 "어 그렇다면 간첩이 실은 사람이었다는 말인가?" 하다가 좀 더 생각이 진전해서 "그렇다면 우리가 북으로 보낸 간첩들은 없다는 말인가?"로 바뀐다.

필자는 우연히 박통시절부터 5공시절에 걸쳐 기관에 근무했었다는 어떤 사람으로부터 박정희정부의 대북공작에 대한 적나라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뭐 상상을 초월하는 이야기들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일방적으로 북한에 줘터지기만 한 것이 아니고, 이곳저곳에서 보복하고 충돌했었던 것이다.

이번 서해교전만 해도 그렇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느닷없이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하겠지만, 박통시절부터 이곳저곳에서 부딛혔다는 이야기를 들은 입장에서 보면 이번 서해교전은 충분히 예견되었어야 했다.

이런 저런 방식으로 머리가 좀 굵어지고 세상을 보는 눈이 뜨이게 되면 초딩때 배웠던 것과는 180도의 다른 세계가 있음을 알게된다. 안목이 갖춰지고 상식이 바뀌는 것이다. 길들여진 것에서 탈출하여 스스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바뀐 눈으로 다시 본 국사교과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소설이다. 그 소설의 작의가 너무나 뚜렷이 드러난다. 뻔한 속내가 읽혀진다. "그건 아니야 이사람들아~"

주류학계가 화랑세기를 부정하는 이유는 하나다. 부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기존에 그들이 알고있던 안목과 관점과 세상을 보는 눈과 머리에 저장해둔 지식과 충돌이 일어난다. 생경하다. 어색하다. 이건 아닌데 싶다.

그러나 필자가 보는 화랑세기는 정반대이다. 나는 삼국사기가 너무 부자연스럽다. 나는 삼국유사가 너무 부자연스럽다. 기존의 학계의 통설들이 너무 부자연스럽다. 물론 필자는 한국의 역사를 모른다. 그러나 외국의 역사들과 인류학의 상식들과 세계 보편의 어떤 흐름들과 너무 어긋난다.

문천님이 지적한 내셔널리즘문제만 해도 그렇다. 이건 굉장히 어색한 거다. 한국은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과 다른 돌연변이국가란 말인가? 현재로서 한국의 국사교과서는 한국사를 돌연변이역사로 만들어놓고 있다.

물론 돌연변이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2000년대의 가치관이 2000년전의 옛날로 거슬러올라가는 기괴한 돌연변이는 있을 수 없다.

문제는 이런 돌연변이 역사에서 그들은 전혀 부자연스러움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는 너무나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운데 그들은 왜 그 부자연스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서해교전만 해도 그렇다. 박정희시대 무수한 북한과의 충돌을 들어서 아는 필자의 입장에서 보면 예정된 참사였다. 일어날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그러한 내막을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느닷없이 뒷통수를 얻어맞은 것이다. 충격이다.

상식과 비상식이다. 무엇이 상식일까? 우리는 상식이 전도된 시대를 살고있다. 화랑세기가 조명되어야 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이러한 부분, 즉 거대한 상식의 전도, 가치관의 바뀜이 요청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러하듯이 그 시작은 기성권위에 대한 도전으로부터 촉발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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