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UoKXW-_dj8Y
인간의 마음은 기계와 같은 메커니즘이 있다.
입력이 있으면 출력이 있고 동일한 조건에서 동일하게 반응한다.
마음은 상당부분 호르몬과 본능과 무의식에 지배된다.
그러므로 많은 학자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정하고 있다.
결정론, 운명론, 숙명론이 그러하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다.
세상은 물질의 집합이 아니라 사건의 연결이기 때문이다.
사건이 연결되는 마디에서 인간은 운명의 기로에 선다.
갈림길에서 선택해야 하고 그 선택에 연동되어 일어나는
다른 많은 사건에도 책임져야 하며 그러므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러나 자유의지는 사건의 도입부에 있을 뿐이고
사건이 상당히 진행된 단계에서는 자유의지가 없거나 약하다.
핸들을 잡을지 말지는 자유의지로 선택하지만
이미 핸들을 잡았다면 선택의 여지가 없이 상황에 끌려가게 된다.
무엇을 하는 YES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유행따라 친구따라 분위기 따라 거센 에너지 흐름에 끌려가는게 보통이다.
사건의 흐름에 말려들어 무의식적으로 집단이 원하는 행동을 하게 된다.
변희재 윤서인들의 관종짓처럼 자신의 판단이 아니라 남이 원하는 행동을 한다.
그러나 무엇을 하지 않는 NO는 선택의 여지가 있다.
3월의 만세, 4월의 혁명, 5월의 저항, 6월의 투쟁
그리고 촛불은 민중의 자유의지에 따른 NO의 선언이었다.
인간은 NO 할 수 있는 동물이므로 자유의지가 있다.
BTS의 방시혁이 증언하듯이 무언가 긍정하는
야망, 탐욕, 도전, 희망, 의지, 신념, 의욕들은 대부분 가짜다.
긍정하고 도전하는게 아니라 그냥 분위기에 휩쓸리는 것이며
야심이니 의도이니 욕망이니 하며 변명을 그럴듯하게 하는 것이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진정한 용기인 것이며
그것이 동물에게 없고 인간에게만 주어진 특권인 것이며
그러므로 환경과의 긴말한 관계를 통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조건을 미리 만들어 두어야 한다.
이념과 이상주의와 철학과 사상과 정당과 진영을 따르고 가담할 때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노숙자들처럼 세상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있다면
박근혜가 설쳐도 이명박이 나대도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끊을 수 있는 것은 끊어야 하며
그러므로 끊을만한 연결점들을 미리 챙겨놓고 있어야 한다.
이미 연결이 끊어져 있는 사람은 끊을 수 없다.
이념도 없고 사상도 없고 철학도 없고 정당도 없고 진영도 없다면 끊을 수 없다.
친구도 있고 가족도 있고 동료도 있고 동지도 있고 이상주의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아니다 싶을 때는 과단성있게 끊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