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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5]오세
read 8804 vote 0 2012.02.12 (23: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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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들은 뭐든 저울에 올려 놓길 좋아한다. 그러면서 이런 관점도 있고 저런 관점도 있으며 둘이 대립하고 있다 정도 수준에서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구조론은 무언가 둘이 대칭되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양자를 통일하는 축이 존재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 둘을 저울질하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하고 다른 하나를 버리는 저울이 하나 더 있다고 말한다. 바로 상부구조다. 


"수세기 동안 역사학자들과 철학자들은 문명의 형성에 있어 기술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추적하고 토론해왔다. 일부는 사회학자 소스타인 베블렌이 말한 '기술적 결정주의'를 옹호했는데,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기술의 진보는 인간의 통제 밖에 있는 자주적인 힘으로, 인류 역사 전반에 걸쳐 핵심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카를 마르크스는 이 견해에 대해 "풍차는 사회에 봉건영주를 안겨주었고 증기 풍차는 자본주의를 안겨주었다"는 말로 자신의 의션을 피력했다. 랄프 알도 에머슨은 이를 더 재치있게 사물들은 안장에 앉아 있다. 그리고 사람을 타고 간다고 표현했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76페이지-


위의 예문은 기술결정론의 관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와 반대되는 도구주의적 관점을 예문을 통해 살펴보자


"이들은 데이빗 사르노프와 같은 이가 그랬던 것처럼 기술의 힘을 과소평가했으며, 도구는 중립적 물건으로 사용자들이 인식하는 소망에 완전히 복종하는 것으로 믿었다. 도구란 인간의 목적을 획득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이며 스스로의 목적은 없다는 것이다. 특별히 우리가 사실이기를 바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기술에 대한 가장 보편적인 견해는 이 도구주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가 어느 정도는 도구의 지배를 받는다고 생각하면 그리 유쾌하지는 않을 것이다."


기술결정론과 도구주의. 구조론 식구들은 이쯤되면 벌써 감을 잡았을 것이다. 구조론은 형식이 내용을 규정한다고 말한다, 

상부구조가 하부구조를 규정한다고 말한다. 무엇이 상부구조인가? 에너지가 있는 것이 상부구조이다. 신기술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 상호작용의 절대적 증가이다. 새로운 에너지의 도입이다. 막혀있던 것을 뚫어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것이 신기술이다.  


구텐베르크 인쇄술의 도입이 그냥 단순히 책의 대량보급에 불과한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지적 정서적 상호작용의 폭발적인 증가였다. 일부 엘리트들의 전유물이었던 읽기와 쓰기가 이제 인쇄술을 통해 대중들에게도 퍼졌다. 이로 인해 '근대적 자아', 스스로 읽고 생각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개인이 탄생했다. 


세탁기와 냉장고의 도입이 그냥 세탁을 도와주는 편리한 도구였나? 아니다. 그것은 가사노동에 얽매였던 여성의 에너지를 직장, 학교, 시민단체 같은 가족 외부 공동체로 풀어놓는 역할을 했다. 


인터넷의 탄생은 인쇄술과 더불어 가능했던 인간의 지적 상호작용의 양과 질을 한 단계 도약시켰다. 어떻게? 시간과 공간의 장벽을 허물었다. 속도로 시간의 장벽을 뚫고 네트워크로 공간의 장벽을 뚫었다. 이로 인해 우리는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얻었다. 하루 종일 도끼로 패야 겨우 쓰러뜨릴 수 있는 나무를 전기톱으로 단숨에 벨 때 얻어지는 것이 에너지다. 인터넷이 그렇다. 


인쇄술, 전화, 무선통신, 라디오, 티비, 인터넷 같은 핵심적인 신기술의 등장은 단순히 우리가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도구가 나타났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신기술의 도입은 거대한 에너지의 분출이며, 이러한 에너지는 구조론적으로 보면 질적 차원, 상부구조에 해당한다. 이 에너지는 마침내 하나의 양식을 완성할 때 까지 쉬지않고 달려간다. 


인쇄술, 화약, 라디오 같은 과거의 신기술들은 이미 나올 수 있는 거의 모든 양식이 다 나온 상태다. 양식 내에서의 끊임없는 변이가 존재할 뿐이다. 인쇄술은 구텐베르크의 대량인쇄술 이후 나머진 다 거기서 거기다. 화약도 마찬가지, 성능 개선이 전부다. 그러나 인터넷은 다르다. 아직 에너지가 남아 있다. 소셜네트워크의 탄생도 그렇고, 아직 보여줄 것이 더 남아 있다.  최후엔 새로운 삶의 양식을 창출하는 것으로 완결된다. 그 양식이 완성되고 나서야 우리는 비로서 도구주의, 인간이 도구를 활용하기 나름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 전엔? 기술이 결정한다. 형식이 내용을 규정한다. 


정리하자면, 구조론으로 보면, 신기술이 도입되어 그것이 갖는 정치, 사회, 경제, 문화적 변화 에너지가 소진될 때까진 기술결정론이 맞다. 하지만 양식이 완성되면, 세탁기와 냉장고가 그러하듯, 기술은 그냥 도구가 된다. 


인쇄술같은 신기술이 근대 지성이라는 완성된 양식을 낳기까진 몇백년의 시간이 걸렸다.  인터넷이 현대 지성이라는 완성된 양식을 낳으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 인터넷의 도입과 더불어 인간의 지적 상호작용의 양은 폭발적으로 늘었는데 그것이 과연 집단지성의 창출에 기여하는 지는 이제껏 의문으로 남아있었다. 하지만 최근들어 SNS의 등장은 집단지성의 창출을 가능케하는 양식이 출현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듯하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2.02.12 (23:54:48)

좋은 글이오.

최종적으로는 미학이 세상을 결정하오.

미학은 양식 그 자체가 양식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오.

냉장고나 세탁기는 기술이 양식을 만들어 내지만 미학은 양식이 양식을 만드는 것이오.

양식 내부의 결이 양식의 변화를 추동하는 힘으로 기능하는 것이오.

그런데 양식은 원래 인간차별이오.

지금은 돈이 인간을 차별하여 동기를 부여하는 역할을 담당하지만

미래에는 인간차별이 인간을 차별할 것이오.

이걸 좀 부드러운 언어로 순화하여 깨달음이라는 어휘로 표현하기도 하오.

인간차별이라는 표현이 끔찍하다고 말하지 마오.

백설공주도 원전은 끔찍하오.

 

(콩쥐팥쥐 설화는 팥쥐를 젓갈로 담아버리지만 백설공주의 잔혹에 못 미침.) 

 

근데 그 양식은 이미 정해져 있소.

상대어를 버리고 절대어를 쓰는 것이오.

모든 것을 판단이 아닌 게임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오.

그것은 언어 내부에 시소를 장착하는 것이오.

물론 그 시소는 자신이 설계해야 하오.

 

이는 머리싸움이지만 동시에 센스싸움이기도 하오.

머리싸움에는 지식인들이 혹해서 달려들 것이고

센스싸움에는 대중들이 멋도 모르면서 혹해서 달려들 것이오.

왜냐하면 누구든 센스로는 자기도 뒤지지 않는다고 믿으므로.

 

머리로도 밀리고 센스로도 밀리면 수구꼴통이 되어 투덜거리는 수 밖에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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