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레방아는 물레와 방아의 연결이다. 물레는 위치에너지를 생성하고 방아는 운동에너지를 전달한다. 에너지를 주는 쪽은 에너지를 받는 쪽보다 더 많은 질서를 가져야 한다. 그것이 엔트로피다. 전체는 부분보다 구조가 복잡해야 하고 엔진은 바퀴보다 구조가 복잡해야 하고 닭은 달걀보다 구조가 복잡해야 한다. 질서도의 차이가 있다. 주는 쪽인 위치에너지는 받는 쪽인 운동에너지보다 더 높은 질서를 가져야 한다. 인간의 언어라도 마찬가지다. 언어는 전제와 진술의 연결이다. 전제는 진술보다 높은 질서를 가져야 하고, 주어는 동사보다 높은 질서를 가져야 한다. 이 부분을 살펴서 상대방이 거짓말을 하는지 진실을 말하는지 알아낼 수 있다. 바람은 불다보다 높은 질서를 가져야 한다. 불다는 그냥 공기 입자의 이동이지만 바람은 고기압과 저기압이 대칭된 구조 속에 그 둘이 대결하는 전선과 둘의 균형과 부단한 밀당과 치고나가는 방향성과 가속도가 있어야 한다. 추가되는 매개변수로서의 벡터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단 질서도를 판단할 때 복잡 곧 중복과 혼잡은 제거되어야 한다. 겉보기의 복잡이 아니라 매개변수가 추가된 정도인 질서도가 높아야 한다. 겉으로 복잡해 보이지만 뒤섞여서 혼잡한 것은 질서도가 낮다. 같은 것이 여러 번 중복된 것도 배제해야 한다. 량의 복잡이 아니라 질의 복잡이어야 한다. 시스템 대결이 진짜다 사회의 모든 대결은 궁극적으로 시스템의 대결이다. 개인의 선악에 대한 평가의 문제가 아니라 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시스템 간의 우열이 드러나는 것이 중요하다. 삼국지로 말하면 조조와 유비와 손권의 개인적 역량이나 도덕성이 아니라 세 사람이 각기 다른 환경에서 다르게 발달시켜온 시스템 간의 우열을 비교해야 한다. 손권은 지방 호족들을 수평적으로 연결시켜 방어에 능한 시스템을 만들었고, 유비는 선비의 지지를 끌어내고 민중을 끌어들여 원대한 비전을 제시했으며, 조조는 일족인 조씨와 하후씨에 성씨가 다른 외부인을 짝지어 전투에 파견하는 방법으로 밸런스를 이루었다. 통제가능한 구조를 만든 것이다. 그러나 그 구조는 전투에만 한정되었다. 유비는 천하의 민심을 얻어 거대한 비전을 보여주었으나 당대에는 비전으로 끝났다. 이후 촉한은 망했으나 그 비전은 계속 살아남아 21세기까지 이어졌다. 보수도 달고가는 노무현 시스템과 보수는 빼고가는 정의당 시스템과 기회가 주어지면 남이 지어놓은 밥상에 숟가락 들고 끼어드는 가로채기 전문 안철수 시스템과 그냥 강탈하는 홍준표 시스템 간의 대결이다. 우리는 개인의 선악이나 도덕성을 평가하려고 하지만 유비도 알고보면 음흉한 바가 있고 조조도 알고보면 순진한 구석이 있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에 따라 역량과 도덕성이 반영되는 것이다.
홍준표 시스템 – 물리력 우선주의 시스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