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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층의 대거 기권>

1991년도 봄, 그러니까 노태우 정권 4년차때였으며 90년 3당합당으로 노태우,김영삼,김종필이 민자당을 만들어 거대 여당을 이루고 있었던 때의 일이다. 명지대학교 신입생이었던 강경대군이 학교 앞에서 시위에 참가를 하다가 전경들 (흔히 백골단이라고 하는 사복조)에게 쇠파이프로 맞아 사망을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전국적으로 시위가 확산되어 한달 이상 지속되었고 이 와중에서 많은 학생, 시민들이 연이어서 분신, 투신을 하는 일이 벌어 졌다. 실로 규모로 볼 때 87년 6월 이후 최대 규모였으며 노태우 정권에 대한 분노도 극에 달했었다. 그런데 시위 항쟁 자체는 별 성과 없이 결말이 나게 되었다. 물론 그때 흘린 피와 땀이라는 것은 당장 결실이 나오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에 값진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여하튼 그때 시위의 불을 껏던 사건은 이른바 정원식 계란 사건이었다. 정원식총리는 외대에 무슨 일로 가게 되었는데 그것이 학생들의 눈에 띄게 되었다. 수많은 학우들의 죽음으로 분노하고 있던 젊은 학생들은 흥분하여 계란과 밀가루를 던지고 아마 정원식을 좀 끌고 다녔던 것 같다. 총학생회가 진정을 시키려 했지만 통제 불능이었다. 계란과 밀가루를 뒤집어쓴 정원식의 처참한 모습이 조선일보를 비롯한 많은 신문에 적나라하게 실렸다. 학생들은 단번에 패륜아의 멍에를 뒤집어 쓰게 되었고 이사건을 계기로 시위 열기는 급속히 식게 되었다. 이 사건을 두고 정원식을 의도적으로 외대에 보낸 것이 아닌가하는 추측이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광역의회 의원선거가 있었는데 이때 민자당은 마치 올해 있었던 지방선거처럼 압승을 하게 된다. 참으로 충격적인 결과였다. 민자당은 그 선거로서 면죄부를 받은 셈이었다. 그런데, 그 원인을 분석해보니 낮은 투표율에 젊은 층이 대거 투표에 기권을 한 것이었다. 대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투표도 안하는 것들이 데모나 하고 정원식 사건이나 일으켜 민자당만 도와 주었다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나도 깊은 충격을 받고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수구세력들도 평소에 노태우, 김영삼, 민자당 나쁜놈 이라고 말은 하지만 그들은 막상 투표일에는 그들이 해야할 바를 수행한다. 투표소에 가서 1번을 찍는 것. 반면에 개혁세력들은 평소에 말은 많지만 막상 투표일에는 자신들이 해야할 바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

개혁 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젊은이들이 투표를 하지 않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우선, 정치에 별 기대를 가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 여기게는 여당이나 야당이나 똑같은 놈들이라는 조선일보의 양비론이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였고 많은 운동권들도 대안도 없이 그 조선일보의 주장을 똑같이 입에 담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 지고 있었다. 이것은 간단한 사안이 아니므로 당장 어쩔 수 있는 일은 아니었고, 그 말고도 젊은이들이 투표를 많이 하지 못하는 기술상의 이유가 있었다. 학업이나 생업 등으로 주소지를 떠나있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특히 대학생들은 다른 지역의 대학교로 입학을 해도 주민등록을 옮기지 않는다. 그래서 투표를 하려면 고향으로 귀향을 해야 하는데 학기중에 현실적으로 실효성이 없는 말이었다.

<부재재투표 운동 전개>

그러다 해가 바뀌어 92년이 되어 국회의원 총선거가 다가오게 되었다. 나는 학생들이 투표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전에 부재자 투표는 군인들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었다. 나는 선관위를 가서 선거법을 찾아 보았다. 그 당시만 해도 인터넷이 없었던 때였으니까 다리품을 팔아야 했다. 선거법을 보니 부재자 투표를 할 수 있는 조항에 '주소지를 떠나 장기여행 중인자'라는 조항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조항이 학생들에게 적용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될지 안될지는 확신이 없었다. 특히 그때는 아직도 군사독재정권이었기 때문에 관이 순순히 학생들의 부재자 투표를 협조해 줄지도 미지수였다. 이번에도 선관위는 적극적으로 유용한 정보를 주지 않는 모습을 본 바 있다.

미리 "해도 되요?" 하고 물었다가 "안되!" 하면 일이 안되므로, 되든 안되든 해보자고 작당을 하고 우리는 일을 꾸몄다. 지방 학생수에 해당하는 신청서를 복사를하고(동사무소에 비치된 신청서는 몇십장 되지 않았다.), 부재자 투표 신청일 전날에 부재자 투표 권유를 하는 대자보를 붙이고, 각 단대별로 신청서를 받았다. 학생들의 호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그리고 때마침 한겨레신문이 이것을 대서특필 해주어 전국에 부재자투표가 알려지게 되었다.

나는 부재자 투표 방법을 정리한 문건을 가지고 전대협 사무실이 있었던 대학으로 가서 마침 회의차 모였던 태재준 전대협 의장을 비롯한 서총련 지구 의장들을 만나 축구한판 같이 하고 저녁 회의때 발표를 하였다. 그때 전국적으로 부재자투표 운동이 전개된 데에는 때마침 보급되기 시작했던 팩시밀리의 역할이 컸다. 지금은 인터넷이며 팩시밀리며 신기한 물건이 아니지만 당시 대학 학생회에 팩시밀리는 대단히 귀한 물건이었다. 대신 학교마다 있었던 학보사에 팩시밀리가 거의 보급이 완료된 시기였다. 이 학보사의 팩시밀리를 통해 부재자 투표 방법을 담은 문건이 하루만에 방방곡곡으로 전달이 되고 전국적으로 꽤많은 학생들이 부재자 투표를 참가하게 되었다.

이런 학생들의 투표 참여 운동 속에서 그해 총선은 일반의 예상을 깨고 민자당은 과반수도 얻지 못하는 참패를 당하게 되었다.

한편 그때 군대에서 대규모 부재자 투표 부정이 있어고 이지문중위가 폭로를 하게 되는 사건이 있었다. 당시 부재자 투표는 투표소가 없이 그냥 투표용지에 펜으로 기표를 하고 우편으로 보내면 되었다. 본인 확인과 투표 참관이 불가능하였고 심지어 다른 사람이 훔쳐 기표하고 우체통에 넣어도 그만이었다. 대학가 부재자 투표와 군 부재자 투표 두군데서 '사건'이 터지자 급기야 선거법을 개정하게 되었다. 부재자 투표소를 시군구마다 만들어 설치하고 특히 군은 반드시 영외에서 투표를 하도록 법을 개정했다. 그리고, 부재자 투표인이 2,000명이 넘는 시설, 기관에는 부재자 투표소를 설치해 줄 수 있는 조항이 만들어졌다.

<다시 10년만에 재점화된 부재자투표 운동과 국가파탄세력 재집권 저지>

세월이 흘러 10년이 지났다. 그동안 많은 정치구호가 난무하던 대학에서 투표 참여 운동은 별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정확히 10년만에 부재자 투표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나는 부재자투표 운동을 발의한 사람으로서 감개 무량을 느낀다. 다만 실무적인 문제에서 좀더 치밀한 연구가 부족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7개 학교가 2,000명을 넘기고도 거소를 학교로 지정하지 않고 분산을 시켜 기록하여 4개 학교가 부재자 투표소를 설치하지 못했다. 선관위가 그것까지 친절하게 가르쳐 주지 않았던 모양이지만 원래 선관위는 정해진 법에 따라 집행만 하는 곳이다. 애초에 선관위에 기대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 더욱 실사구시적인 접근이 아쉬웠다.

높은 이상도 좋지만 수구세력들과의 싸움에서 가장 직접적인 무기는 투표이다. 국가파탄 수구세력의 재집권을 막기 위한 필수 불가결한 무기는 투표이다. 개혁세력은 수구세력에 비해 힘이 턱없이 부족하다. 아마 한나라당에 투표한 사람들의 재산을 다 합치면 민주당과 민노당에 투표한 사람의 재산보다 못해도 10배는 많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다행이 선거는 1인 1표이다. 그래서 개혁세력은 수구세력과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다행한 제도를 십분 활용하지 못하고 젊은이들이 투표장을 가지 않는 것은 비극이다.

내일까지 부재자투표이다. 마지막 한표까지 포기하지 말고 국가파탄세력 재집권 저지에 동참하여야 할 것이다. 다행이 이번 선거에서 국가파탄세력은 지지율에서 큰 차이로 뒤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최후까지 경계를 늦추면 안된다. 젊은층이 대거 기권을 하면 이회창이 당선될 수도 있다. 그런 역사적 대재난을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기필코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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