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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4085 vote 0 2002.12.13 (14:21:02)

-민중의 지도자는 무엇이 다른가?-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박사바람이 분다. 박사동네 아이들이 떼거리로 이회창 지지를 선언하고 있는 모양이다. 신바람박사 황수관박사, 옥수수박사 김순권박사, 낚시박사 김동길박사 등이 이회창 지지를 선언하고 있다 한다. 도올박사 김용옥박사가 그 박사바람에 휩쓸리지 않고 있는 것이 기특할 정도이다.

소감 한마디가 없을소냐!

"유유상종이라더니 과연 끼리끼리 잘도 노는구나!"

그런가 하면 이쪽 동네에도 바람이 있다. 문화예술인 165명이 권영길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있다. 소설가 조세희, 영화감독 박찬욱, 화가 임옥상씨, 문화평론가 진중권씨, 영화감독 변영주씨 등이 이름을 내밀고 있다. 이건 또 무슨 바람일까?


[민중의 지도자를 고대하며]
필자는 요즘 백범 김구에 대해 찾아보고 있는 중이다. 백범과 노무현의 삶에서 많은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 상해 임시정부는 본래 해외에서 활동하던 명망가 위주로 구성되었다. 시골에서 서당이나 다녔던 상놈 출신의 백범은 말석에도 끼지 못하는 신세였다.

독립운동가들은 거의 전부가 양반 출신이다. 갑오개혁으로 신분제도가 철폐되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반상의 차별이 엄격하던 시대였다. 임시정부가 상놈 출신인 백범이 함부로 들어와도 되는 그런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를 주도한 이승만이 독립운동 1세대의 자격으로 상석에 앉고, 연해주의 이동휘, 상해의 신규식, 샌프란시스코의 안창호 등 해외의 명망가들이 독립운동 2세대로 중간 정도의 위치에 앉았다면, 시골에서 소학교 교사를 지낸 백범은 안창호가 주도한 신민회에 참가하였던 인연으로 임시정부 내무총장이 된 안창호에 줄을 대어 임시정부 문지기라도 시켜주십사 하는 형편이었다.

그 후 임시정부는 몰락했다. 이승만을 필두로 미국에 유학한 자들은 친미파가 되어 조선을 미국의 한 주로 편입시켜 주십사 하였고, 춘원 이광수를 필두로 한 일본 유학파는 일본에 아부하여 지방자치제나 얻어보자 하며 변절하였고, 또 초대 임시정부 총리를 지낸 이동휘 등은 러시아에 줄을 대더니 임정을 해체하고, 코민테른의 하부조직으로 들어갈 궁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임시정부는 무너졌다. 왜?
한국인의 타고난 분열근성 때문인가? 아니다! 본질은 따로 있다.

임정요인들은 자신에게 경력을 보태준 출신지를 따라 각기 미국과, 러시아와, 일본에 줄을 대었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이념이란 허울좋은 것이고 결국은 인맥싸움이고 돈 싸움이더라는 것이다.

오늘날 좌파들의 노는 꼴새도 마찬가지다. NL이니 PD니 하고 있지만 허울좋은 것이다. NL은 민주당 들어가고 PD는 한나라당 들어가는 공식은 인맥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고, 그 인맥을 만드는 것은 궁극적으로 돈이다.

이동휘는 레닌에게 200만 루불을 얻어왔고, 춘원 등은 일본에 진출한 교포들에게 돈줄을 의지하고 있었고, 이승만 등은 미국과 하와이 동포들에게 자금줄을 대고 있었던 것이다. 임정에 충분한 자본이 있었다면 분열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자중지란 끝에 임정청사 문지기나 하려던 백범이 졸지에 임시정부 주석이 되었다. 즉 친미파와 친일파와 친러파가 서로 상대편을 조진 결과, 아무 파도 없었던 백범이 어부지리로 임정의 국무령에 오른 것이다.

상놈 출신으로 시골 소학교 교사를 한 백범이 쟁쟁한 양반들 틈에서 임정의 요인으로 참여한 것도 신기한 일이거니와, 백범이 임정의 주석으로 떠오른 과정은 그야말로 한 편의 드라마라 할 것이다.

노무현도 비슷하다. 노무현은 줄을 댈 곳이 없었다. 배운게 없어서 학벌로 줄을 댈 수가 없고 성질이 고약하니 어디 다른 집단에서 잘 끼워주지도 않았다. 밖으로 빙빙 떠돌다가 졸지에 민주당 대통령후보가 되었다.

무엇인가? 이념은 구실에 불과하다. 지식인들에게는 내부에서 서열과, 평판과, 인맥과, 선후배관계와 친분에 의해 서로 밀어주고 땡겨주는 시스템이 있다. 그 시스템에 안주하는 것이다. 그것이 없고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스스로 민중과 격리되는 것이다. 권영길을 지지한다고 선언한 165명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들의 동네가 존재한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다. 이렇게 '우리 동네' 여기 있소 하고 명함을 내미는 것이다.

패를 짓고, 살롱에 모여 저거들끼리 쑥덕거리고, 인맥을 형성하고, 평판과 서열과 상하관계를 꾸미고, 그 뒤에 물주노릇 하는 자도 있고, 바람잡이 하는 넘, 설레발이 치는 넘, 벼라별 놈들이 다 제 역할을 하나씩 맡아서, 잘도 돌아가는 그 쪽 동네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며, 진중권 따위는 그 쪽 동네를 택하고 네티즌을 버린 것이다.


[누가 민중의 지도자가 되는가?]
결단의 시점이 있다. 그런 식으로 자기들끼리 짜고 치는 고스톱의 멤버로 가담할 것인가, 그렇지 않고 아무도 보호하여 주지 않는 황야에서 홀로 고립될 것인가를 결단해야 하는 시점이 있다.

백범은 어느 쪽에도 끼지 못했다. 어부지리로 국무령이 되었다. 노무현은 어느 쪽에도 끼지 못했다. 어부지리로 대통령후보가 되었다.

민중의 지도자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민중의 편에 서야만 민중의 지도자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민중을 위한다고 간판을 걸어놓은 당에 소속하는 것이 아니라, 선배가 땡겨주고 후배가 밀어주는 그들만의 시스템에 안주하지 않고, 밖으로 나와서 스스로 민중의 도움을 요구할 때 가능한 것이다.

권영길은 한번도 민중에게 손 벌린 적 없다. 민중에게 도움을 요청한 적이 없다. 참다운 의미에서 민중과 대화한 적이 없다. 민중과 격리되어서는 민중의 지도자가 될 수 없다. 진중권 등도 마찬가지다. 그쪽 동네의 일원으로 소속된다는 것은 이쪽 네티즌동네와 정서적으로 격리된다는 의미이다. 그것이 전부다. 누구의 힘으로 크는가이다.


[오프라 윈프리의 교훈]
흑인으로 출세하는 것은 백인이 출세하는 것과 다르다. 백인의 순전히 자기의 능력으로 큰다. 흑인은 플러스 알파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흑인사회 내부에서의 평판이다.

오프라 윈프리의 출세담에 나오는 이야기다. 한때 어떤 회사의 명목상 대표였는데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고 있었다. 어떤 일로 직원 대다수가 불만을 품고 회사를 떠난다고 선언하는 것이었다. 오프라 윈프리는 직원들을 모아놓고 현찰로 1만달러씩 나누어주었다. 직원들은 감격하여 충성을 맹세했다고 한다.

거지왕 김춘삼은 돈이 생기는대로 부하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야인시대의 김두한도 마찬가지다.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는 손에 잡히는 대로 현찰을 주어버렸다. 왜? 가지고 있어봤자 득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 돈을 어디에 쓸거냐이다.

백인들은 지위가 상승하면 더 높은 지위에 속하는 사람들과 사교해야한다. 과거의 친구들은 끊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집단에 소속할 자격이 있다는 증거로 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출세의 사다리를 한 계단씩 밟고 올라갈 때마다 더욱 돈이 필요하다.

흑인은 지위가 상승해도 사교할 더 높은 지위에 속하는 사람들이 없다. 김두한이 상승한 지위로 사귈 더 높은 지위에 속하는 친구들이 없는 것이다. 거지왕 김춘삼이 신분상승을 했다 해서 재벌과 사귀고 국회의원들과 사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본질이다. 지위가 상승할수록 더 높은 지위에 속하는 사람들과 새로 사귀어야 하는 이러한 시스템에 갇히는 즉 민중과 멀어지는 것이다. 노무현과 김구의 공통점은 지위가 상승되어도 더 높은 지위에 속하는 사람들과 사귈 기회가 원초적으로 없었다는데 있다.

노무현에게 있어 그 이유 중의 하나는 계속 낙선했기 때문이다. 노무현이 선거에서 떨어질 줄 알면서 낙선의 길을 고집한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이다. 한 단계 지위가 상승할 때마다 소형차를 중형차로 바꾸듯이, 과거의 친구들과 인연을 끊고 새로이 엘리트들과 인맥을 형성하는 부담을 벗어던진 것이다.

왜? 그 인맥 만들어 껌붙고 진드기 붙는 재주도 수업료 내고 학습을 해야만 한다. 그런데 상놈출신으로 혹은 상고출신으로 그것은 매우 쪽팔리는 일이다. 백범일지에 반복적으로 묘사되는 것 중의 하나가 양반에 대한 적개심이다. 지위가 상승할 때 마다 업그레이드된 새로운 양반들의 모임에 나가기가 어색해지는 것이다.

예컨데 어떤 높으신 양반들의 모임에 정식 멤버로 초청되어 스스럼없이 대화하는 중에 문득 상놈출신임이 들통나 분위기가 매우 어색해지는 식이다. 노무현의 자서전에도 이와 유사한 내용이 반복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일종의 콤플렉스다. 그것은 부자연스럽고 어색하고 창피한 것이다. 어느새 바깥으로 기어나와 겉돌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네티즌을 버린 진중권류의 길]
아무나 민중의 지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소수이지만 힘들어도 그 길을 가는 사람이 있다. 고독을 택하므로서만이 가능하다. 지위가 상승할 때 마다 새로이 인맥을 형성하자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문전박대할 때 만이 가능하다. 김구처럼! 노무현처럼!

민중의 지도자는 인격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타고난 재주 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가 만드는 하나의 드라마이다. 노무현이 명패를 던진 사건이나 인천에서 속된 말을 함부로 사용한 것이나 그 사건 하나만 두고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한 인간이 지위가 상승할 때 마다, 새로운 더 높은 단계의 그룹과 사교를 틀라치면 이런 소소한 문제들이 끊임없이 갈등을 유발한다. 재주있는 자는 쉽게 적응하여 그 갈등을 수습해 낸다. 그러나 노무현에게는 그런 재주가 없다.

노무현은, 김구는 바보여서 끝내 적응하지 못한다. 그것을 불편해하고, 어색해하고, 못견뎌 하는 사람들이 있다. 노무현의 자서전에 반복적으로 묘사되듯이 노무현에게는 그것이 상처가 되어 두고두고 자신의 양심을 찌른다. 그것이 분노가 되고, 열정이 되어 사회를 향하여 폭발시키면 문득 민중의 지도자로 우뚝 서게 되는 것이다.

갈림길이 있다. 진중권은 네티즌들에게 얻은 허명으로는 출세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재빨리 알아채고, 네티즌들의 인기에 연연해 하는 길을 버리고, 절대 다수의 네티즌들에게 아부하는 길을 버리고 독야청청, 현명하게도 자기를 뒤에서 밀어주고 앞에서 땡겨줄 인맥의 정글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박수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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