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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4045 vote 0 2017.02.01 (17:46:49)

    

    한국말을 배웁시다


    “시간을 돌려서 15년 전으로 되돌아간다면, 난 버스비 50센트가 없어서 망고나무 아래에서 앉아있었을 것이다. 오늘날 난 뉴욕시의 관심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다. 그 점을 신에게 감사드린다.[페드로 마르티네즈]”


    말은 이렇게 해야 한다. 한국사람은 이런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나도 과거에는 버스비가 없어서 집에까지 걸어가야만 했던 어려운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출세해서 뉴욕시내 한 복판에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며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서술했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구조론에서 하지 말라는 자기소개가 된다.


    언어는 당신에게 관측된 사실이 아니라 자연의 에너지가 움직여가는 그대로의 사건을 반영해야 한다. 페드로 마르티네즈는 언어는 훌륭하다. 너와 나의 묶여있음을 강조하여 드러낸다는 점이 각별하다. 신에게 감사드린다는 말은 너와 내가 신을 공유한다는 말이다. 너와 내가 신의 주시에 의해 하나로 묶여 있다는 거다.


    그러므로 나는 당신에게 말을 걸 수 있다. 이는 발언권의 획득이다. 여기에 방점을 찍고 밑줄쳐야 한다. 당신도 언젠가 망고나무 아래서건 어디에서건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렸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러한 체험의 공유로 인하여 우리는 하나로 묶여 있다. 먼저 너와 나의 묶여있음을 드러내야 한다. 발언권이 주어진다.


    어색한 자기소개가 아닌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상대방에게 말을 걸 수 있다. 그것을 평면적인 서술이 아니라 보다 입체적인 시각적 이미지로 묘사하는 것은 페드로 마르티네즈의 기술이다. 서술이 아니라 묘사라는 의미다. 묘사가 더 구조적인 엮여있음을 잘 반영한다. 묘사를 하려면 의도를 가지고 한 번 꼬아줘야 한다.


    언어는 사건을 기술한다. 사건은 다른 사건으로 복제된다. 자기완결형서술은 곤란하다. 언어는 그 글을 읽고 그 말을 듣는 다른 사람과 상관있어야 한다. 화자와 청중이 혹은 작가와 독자가 서로 묶여있음을 드러내야 한다. 지구가 태양을 도는건 시간적으로 서술되는 사실이고 만유인력은 공간적으로 묘사되는 사건이다.


    도는건 시간이 걸린다. 인간이 사건을 관찰함은 시간을 추적하는 것이다. 그 경우 엮여있음을 놓치게 된다. 곧 구조를 꿰뚫어보지 못하는 것이다. 공간을 추적해야 한다. 페드로 마르티네즈는 15년 전과 비교해서 더 많이 환경과 엮여졌다. 더 긴밀하게 상호작용하며 맞물려가고 있다. 사이트에 더 많은 링크가 걸린 것이다.


    만유인력 개념은 지구와 태양의 서로 묶여있음을 드러낸다. 둘의 상호작용을 반영한다. 지구와 태양 사이에 많은 링크가 걸려 있다. 사실의 서술은 당신의 관측을 반영하고 사건의 묘사는 링크가 걸린 에너지를 반영한다. 언어가 자신의 관측을 반영하면 자기소개다. 에너지를 따라가야 한다. 링크의 무게를 따라야 한다.


    내가 뉴욕에 왔다고 말하면 안 된다. 뉴욕이 나를 불러들였다고 말해야 한다. 그것이 사건의 묘사다. 뉴욕과 나 사이에 걸려 있는 링크를 반영하기다. 에너지 낙차에 의해 빨려들어간 것이다. 그렇게 된 이유는 보스턴 소속인 페드로 마르티네즈가 양키즈를 무수히 비판했기 때문이다. 보스턴과 양키즈가 앙숙이 된 것이다.


    초딩일기는 무언가를 저질렀다는 앞부분과 그것을 반성했다는 뒷부분으로 되어 있다. 둘은 호응한다. 두 개의 사건을 나란히 병렬시킨 것이다. 왜 반성할까? 저질렀다만 쓰면 안 물어본 자기소개가 된다. 누가 물어봤냐고? 어색하다. 반드시 반성하거나 다짐하거나 한다. 이는 남의 일기를 검사하는 선생님에 대한 배려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는 어떤 다짐도 없고 반성도 없다. 선생님이 난중일기를 검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선생님의 지켜보는 시선을 의식하는 즉 일기가 망한다. 자기 마음을 위조하는 거짓일기가 되는 것이다. 어찌 어색하지 않겠는가? 거짓을 꾸며내야 한다는건 고문이다. 어쨌든 언어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이다.


    옛시조를 보더라도 종장은 ‘어즈버’ 하고 감탄사로 간다. ‘아이야 잔가득부어라 내뜻대로 하리라’ 하며 타인에게 말을 건다. 감탄은 타인과 감정을 공유하는 장치다. 서로 공유하는 것이 있으니 우리는 말을 걸 수 있다. 누차 언급했던 초딩 때의 자석실험이다. 자석이 쇠를 당기는건 사실이다. 그 보고가 내게는 어색했다.


    사건이 아니면 언어는 불완전하다. 어색하다. 그 어색함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박그네 어록에도 불구하고 그 너절하기 짝이 없는 언어의 어색함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과는 대화할 수 없다. 자석과 쇠붙이의 묶여있음을 드러내야 한다. 당기려면 먼저 잡아야 한다. 어떻게 잡았지? 자기장이다. 자기장을 봐야 사건이 된다.


    자석실험을 마치고 선생님은 실험결과를 보고하게 했다. 누구도 선생님의 맘에 드는 표현을 제출하지 못했다. 화가 난 선생님이 스스로 발표한 실험결과는 자석이 쇠를 당긴다는 거였다. 나는 그 말을 납득할 수 없었다. 그건 복제되는 사건이 아니고 포착해야할 메커니즘이 아니고 단지 인간의 눈에 관측된 값에 불과하다.


    관측값은 사건을 추적하는데 소용되는 단서에 불과하다. 묶여있음을 드러내야 한다. 자석과 쇠붙이는 자기장에 의해 묶여 있다. 지구와 태양은 만유인력에 의해 묶여 있다. 묶여있음에 의해 하나의 사건이 다른 사건으로 복제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을 하는 것이다. 말한다는 것은 링크를 따라가며 사건을 복제한다는 거다.


    왜 인간은 말을 하는가? 묶여있지 않으면 닥쳐! 그 묶여있음을 말하려면 반드시 전제와 진술이 들어가서 명제를 이루어야 한다. 내가 아프면 너도 아프다. 이렇게 서로가 아픔의 공유로 묶여있을 때 전제와 진술이 성립한다. 묶여있음의 전제를 드러내지 않으면 누가 뭐라고 말해도 나는 콧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무시한다.


    반기문은 자신과 국민이 어떻게 묶여있는지를 말하지 않았다. 이제부터 묶어보겠다고 말했다. 이건 웃긴 거다. 그게 자기소개다. 반드시 발언권을 획득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이미 한국과 묶여 있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자판기도 쓸줄 모른다는 것은 묶여있지 않기 때문이다. 반기문은 생수를 사는 것도 힘들어 했다.


    에비앙이 생수라는건 반기문도 알겠는데 삼다수가 생수인지 혹은 게토레이 변종인지 사이다 일종인지 알 수 없는 것이다. 반기문은 삼다수를 집을 수도 있었다. 근데 생수가 아닐지도 모르므로 망설이다가 확실히 생수라고 확신할 수 있는 에비앙을 집은 것이다. 그는 한국과 묶여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일단 발언권 없다.


    발언권 없으면 닥쳐! 반기문은 국민 앞에서 입을 열 자격조차 없다. 말하기 기술은 3초 안에 상대를 바보 만들 수 있으므로 일베충과 우리를 차별화 하는데 소용된다. 단번에 상대를 제압할 수 있다. 바보들에게 바보임을 알려줘야 한다. 바보들을 제압하는 그것이 우리의 권력이다. 우리는 당연히 그 권력을 누려야 한다.



   20170108_234810.jpg


    유독 한국사람과 일본사람에게 관측되는 특징이 말할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말은 그냥 씨부리는게 아니고 상대방 말의 숨은 전제를 들추어 치는 것입니다. 유시민이나 전원책이나 말할줄 모르는게 도대체 초등학교를 어디서 나왔는지 그냥 망부석 수준입니다. 말은 그렇게 하는게 아닙니다. 사실을 나열식으로 주워섬기면 이미 언어가 아닌 겁니다. 언어는 계단을 오르듯이 밟고 올라서며 지평을 열어젖히는 것입니다. 왜 한국넘과 일본넘은 말을 못할까요? 안 배웠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교과서에도 안 나오더군요. 말 할줄 아는 사람은 절대 상대방의 주장을 반박하지 않습니다. 반박하면 지는 겁니다. 쪽팔려서라도 그렇게 말하면 안 되죠. 말하기는 상대방의 안면에 어퍼컷을 먹이는게 아니라 상대방이 앉아있는 의자를 빼버리고 상대방의 의자밑을 다이너마이트로 폭파시켜버리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몸에는 손끝하나 대지 않습니다. 상대방과 지구중심 사이에 링크로 걸려있는 중력을 제거해 버리는 방법을 씁니다. 서로 공유하고 있는 태도를 건드리고 엮여있는 구조를 파괴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9]무득

2017.02.02 (08:49:56)

내가 외로움을 즐길지 모르는지 외로움을 두려움으로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살다가 외로움을 하소연하고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보면 그를 보고 비로소 안심을 한다.  나만 그러는 것이 아니구나.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잖아.  마음 속으로 이런 말을 스스로에게 하며 자신의 외로움을 안심 시키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고 있는 나를 가끔식 한심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윗 글처럼 쓰면 자기 소개가 되는 것인지 감정 부탁드립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7.02.02 (10:44:32)

전체적인 맥락이 중요합니다.

단편적인 한 부분만 보고 판단할 수 없지만 

그다지 좋은 글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하나의 이야기는 하나의 독립적인 사건을 반영합니다.

이 구절만을 두고 독립적인 사건이라고 볼 수는 없고 

앞뒤로 더 이야기가 붙어있을듯 한데

인용하신 부분은 뭔가 제자리에서 맴도는듯한 느낌입니다.

70년대 한국문학에 많이 보이는 지식인의 자기연민,

한국문학이 망한게 또 족보가 있지요.

제목부터 무슨 초상 어쩌구 하며 자서전 비슷하게 감상주의로 가면서 

하긴 군부가 지배하고 굴뚝이 위협하고 지식인은 죄다 실업자가 되어 

포장마차에서 깡술이나 마시던 때라 문학도 지리멸렬해져서 

술 쳐먹고 혀가 꼬여서 같은 소리 무한반복하는듯한

마치 개가 제 꼬랑지 물고 제자리에서 뱅뱅 도는 듯한 

그런 문학이 판을 치니 한국문학이 아주 망해버린 거지요. 

하긴 이게 다 박정희 개놈 때문이다 하고 선언하면 됩니다.

외로움이라는 개념이 보편적인 정서라고 볼 수 있지만

거의 자기소개에 가까운 글입니다. 

지평을 열어젖히지 못하는.

외부로의 탈출구가 없는

꽉 막힌듯한 답답함

공간을 보는 눈이 없는 거지요.

지평을 열어젖히려면 타자와의 접점을 이루는

토대의 공유를 이루고 있는 공간을 봐야 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9]무득

2017.02.02 (11:27:23)

상대방의 안면에 어퍼컷을 먹이는게 아니라 상대방이 앉아있는 의자를 빼버리고 상대방의 의자밑을 다이너마이트로 폭파시켜버리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몸에는 손끝하나 대지 않습니다.


추가글을 보면 상대방을 대화의 상대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공격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상대방의 논리에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논리의 근본적인 헛점을 발견하여 상대방 논리 자체가 성립이 안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는지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7.02.02 (13:14:10)

남의 글을 맘대로 해석하지 마세요.

왜 적군을 대화상대로 여깁니까? 미쳤어요?

강도가 칼을 휘둘러도 대화상대로 여길 겁니까?

권투선수가 상대방을 입으로 때려야 합니까?


이런 질문에 답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제 글을 읽어보기는 했는지 참 어처구니가 없네요.

무기는 여러개가 있고 그 중 최강의 것을 말하는 거.

데이트 하면서 연인에게 그렇게 말하다간 바로 채이죠.


왜 제 말을 음 연애할 때는 의자 빼고 뒤통수 치고

폭탄을 던져야 하는구나 하고 제멋대로 해석해 버리는 거죠.

손자하고 대화할 때도 폭탄을 던지고 미사일을 쏩니까?

좀 진지해 집시다. 여기서는. 진지한 공간이잖아요.


최강의 수를 가르쳐주면 겸허하게 배워야지

애인에게 최강수 써먹고 어린애를 최강수로 조지고

일베충이나 변희재에게는 좋은 말로 대화하고 이래서 되겠습니까? 

칼을 쓸 줄 아는 무사에게만 검을 쥐어주는 겁니다.


나는 무사가 아닌데 왜 내게 최강수를 알려주는거죠?

이런 자기소개 계속하면 피곤해지는 겁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9]무득

2017.02.02 (15:51:08)

죄송합니다.  아직 구조론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네요.  그럼에도 이런 질문에 답해 주시니 감사할 뿐입니다.

[레벨:4]태엽감는 농이

2017.02.02 (14:17:22)

며칠전 구정에 작은아버지와 잠깐 대화를 했습니다.저의 요즘 삶과 직업 그리고 소박한 선택들에 대해 작은아버지께서 단 한마디 해주셨는데 '지금 니 선택을 니 자손이 똑같이 선택한다고 해도 지지해줄수 있느냐'고요 . 그래서 그자리에서 바로 그렇다고 말씀드렸는데 지금 며칠 내내 작은아버지의 물음에 계속 생각하게 되네요.


오늘도 구조론연구소에서 제가 느낄수있는 정도만 얻어서갑니다 .더 많이 볼 수있는 날을 기다리며.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7.02.02 (14:37:39)

신의 선택을 내가 지지하는 거죠.

[레벨:30]이산

2017.02.02 (15:39:55)

"언어는 당신에게 관측된 사실이 아니라 자연의 에너지가 움직여 가는 그대로의 사건을 반영해야 한다."

이 명문을 토대로 말하기 글쓰기 훈련을 해봐야 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7.02.02 (16:04:24)

제 이야기는 

상대방 말을 맞받아치면 안 된다는 겁니다.


말대꾸하면 안 됩니다.

맞받아치는건 상대방 언어의 술어에 주목하는 건데


1차 주어를 봐야 하고 

2차 숨은 전제를 봐야 합니다.


주어를 치고 전제를 친다는 거죠.

그건 상대방 말이 틀렸다고 반박하는게 아닙니다.


물론 맞받아칠 때도 있지만 그런건 논외고

여기서는 최고의 기술을 논하는 거죠.


맞받아치고 말대꾸 하는건 최고의 기술이 아닙니다.

변희재 같은 쓰레기와 논쟁할 때


팩트를 가지고 맞받아치면 수렁에 빠지는 수가 있습니다.

팩트는 부지런한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니까.


소인배에게는 소인배의 언어로 맞서면 안 되고

귀족의 언어로 제압해야 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9]무득

2017.02.02 (18:12:46)

이렇게 떠 먹여줘야 알아 듣는 수준입니다.

구조론이 쉽다고 하지만 저에게는 아직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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