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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4188 vote 0 2017.01.24 (18:50:23)

     

    제 3의 관점을 획득하라.


    두가지 태도가 있다. 하나는 흑인과 백인이 다르고, 여자와 남자가 다르고, 전라도와 경상도가 다르고, 독일의 국민성과 일본의 국민성이 다르고 하며 분별하는데 흥미를 가지는 것이다. 보통 이렇게 간다. 대칭을 만들면 뇌가 긴장하기 때문이다. 분별이야말로 모든 사유의 출발점이라 하겠다.


    그러나 일차원적이다. 분별로 시작하되 거기서 끝나면 안 된다. 분별이 서론이 될 수는 있어도 결론이 될 수는 없다. 분별은 대칭이다. 대칭이 있으면 마땅히 호응이 따라야 한다. 분별로 문제를 일으키고 호응으로 벌여놓은 일을 수습한다. 통합이다. 두 번째 태도는 모두 같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흑인과 백인이 같고, 여자와 남자가 같고, 전라도와 경상도가 같고, 일본과 독일이 똑같다고 주장한다. 보통은 배운 사람이 계몽의 목적으로 써먹는 소리다. 그런데 허무하다. 막연한 통합주장은 문제를 해결하는 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답이 있어야만 한다고 선언하는 것에 불과하다.


    여자와 남자가 같은 것이 아니라 마땅히 같아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런데 왜 같아야 하지? 같아야 권력측에서 통제하기가 편하다. 이는 권력측의 편의다. 공허한 안희정의 민주주의 타령과 같다. 어떻게 민주주의라는 바른 결과에 도달할 것인지 과정에 들어갈 방법론을 제시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라야 한다는 선언문을 반복해서 읽는다. 이는 가마솥에 불을 지피지 않고 밥이 지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밥은 지어져야 하지만 불을 지펴야 지어진다. 남녀는 같은 것이 아니라 최종적으로 같아져야 하는 것이다. 함께 나아가 모두 같음을 확인하는 지점에 도달해야 한다.


    왜? 같지 않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은 같은 부분도 있고 다른 부분도 있고 서로 공유하는 부분도 있다. 뭐든 처음 시작은 같게 출발한다. 나란히 출발점에 선다. 중간에 달라진다. 일등부터 꼴등까지 한 줄로 늘어선다. 마지막에 같아진다. 무덤에 들어간 다음이면 제왕이든 거지든 차별이 없다.


    굳이 말하자면 다름에 주목하는 것은 본성결정설이고 같음에 주목하는 것은 환경결정설이다. 다르거나 같은게 아니라 사람이 거기에 주목하는 것이다. 옛날에는 부부유별이니 하여 남자와 여자가 다르다고 말하는 것을 교육이라고 여겼다. 인간과 짐승이 군자와 소인이 어떻게 다른지 강조했다.


    이 수법은 쉽게 먹힌다. 경찰과 도둑으로 구분하기만 해도 다섯 살 꼬마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본다. 인간의 뇌구조가 원래 그런 거다. 진보니 보수니 논쟁이 그렇게 돌아간다. 진보와 보수가 다른게 아니라 다름에 주목하는 것이다. 왜? 자신이 다수파라고 믿기 때문이다. 근데 다수파 맞다.


    20대는 진보가 다수파고 60대는 보수가 다수파다. 각자 자기가 소속한 집단에서 자신이 다수파에 속하도록 하는데 성공한다. 일본은 혐한이 다수파고 한국은 반일이 다수파다. 역시 쉽게 목표를 달성한다. 분별은 쉬운 목표다. 난이도가 낮은 만큼 초딩에게 적합하다. 초딩은 분별을 배워야 한다.


    남자가 실수로 여자화장실에 들어가거나 여자가 실수로 남자목욕탕에 들어가면 안 되기 때문이다. 중딩이 되면 다른 것을 배운다. 다름보다 같음에 주목한다. 근래에는 교육에 의해 여자 혹은 남자로 만들어진다는 설이 우세해졌다. 다만 특이하게 동성애자는 원래 다르다는 쪽으로 정리되고 있다.


    왜 같음에 주목하는가? 반일, 반중, 반북, 반미 하며 모두 반대만 외치면 집단이 통제되지 않는다. 같음의 강조는 권력측 의도다. 자신이 권력측에 속한다고 믿는 사람은 같음을 주장한다. 자신이 피지배층에 속한다고 믿는 사람은 차별에 분주하다. 조선족과 외노자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 있다.


    그들은 권력에 대항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이다. 과거에는 ‘병신’이라고 해서 장애인을 차별했다. 역시 다수파에 속하려는 의도이다. 문제는 권력에 대항할 의도가 있지만 권력에 대항하는 권력도 역시 권력이라는 딜레마다. 오합지졸의 딜레마다. 권력에 반대해 산적에 든다. 산적두목 말을 안 듣는다.


    노예 검투사 스파르타쿠스의 부하들은 스파르타쿠스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로마의 지배를 벗어나 어렵게 자유를 얻었는데 다시 로마군처럼 군대의 규율을 강조하는 스파르타쿠스의 명령에 복종하고자 하니 뭔가 이상하다. 자유를 얻은 검투사부대의 패배는 필연이다. 무조건 같은 것은 아니다.


    다를 때 다르고 같을 때 다르다. 다름은 초딩때 배우고 같음은 중딩때 배운다. 그걸로 끝이 아니다. 제 3의 관점을 얻어야 한다. 우리는 무뇌좌파들이 주장하는 같음을 지식으로 알지만 거기에 권력측의 의도가 개입해 있음을 간파해야 한다. 우리가 같음을 강조하는 것은 우리가 지배자일 때다.


    회사와 노동자는 한 몸이라고 주장하는 자는 그 회사의 사장이다. 노동자는 당연히 다름을 주장해야 한다. 진보가 무작정 같음만을 주장하므로 트럼프들이 날뛰고 일베충들이 소동을 부리는 것이다. 왜? 통제되지 않기 때문이다. 통제하려는 지식측의 의도가 들켜버리므로 더욱 통제되지 않는다.


    무조건 민주주의를 외치는 안희정의 방법도 권력측 의도를 들킨다. 민주주의라는 가상의 동앗줄로 묶어버리는 수법이다. 추상적인 어휘로 묶어서 그들의 동선을 제한하려는 것이다. 패권주의를 입에 달고 사는 자도 같다. 신자유주의를 입에 달고 사는 자도 같다. 사실과 거리가 먼 추상적 구호다.


    집단을 통제하려는 저급한 의도를 들킨다. 내막은 훨씬 복잡한데도 말이다. 정답은? 선택이 정답이다. 다름을 강조하는 전자가 본성결정론이고 같음을 강조하는 후자가 환경결정론이라면 구조론은 게임 안에서의 전략선택론이다. 무엇이 다른가? 결정론은 일방적이다. 구조론은 상호작용론이다.


    리처드 도킨스는 진화에 일정한 방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통설로 자리잡은 자연선택설과 배치된다. 구조론은 상호작용론이며 역시 방향성이 있다. 생물이 어떻게 진화하는지는 백퍼센트 우연에 의해 혹은 환경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되는게 아니라 환경과 유전자의 상호작용으로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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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라니 족은 평발이 많다. 엄지발가락이 바깥쪽으로 잘 벌어져 나무타기에 적합하다. 이는 자연선택이 아니라 유전자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다. 무엇인가? 환경에 적합하지 않은 종은 퇴화해서 사라지는게 아니라 그래도 유전자를 은밀히 남겨둔다. 숨겨진 유전자가 겉으로 표시나지 않을 뿐이다.


    인류가 모두 멸종하고 백인 혹은 흑인 중에 남녀 한 커플만 살아남았다고 치자. 백만년 후에 가보면 다시 백인과 흑인으로 나뉘어져 있다. 유전자는 잠복해 있다가 찬스를 만나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인간은 나무에서 내려와 직립하게 되었지만 평지환경에 너무 많이 적응해도 곤란해진다.


    환경변화가 일어나 숲으로 돌아가야 한다면? 나무를 타던 시절의 유전자를 일부 남겨 두었으니 평발이 그들이다. 평발은 확실히 생존에 불리하지만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혹시 인류가 다시 나무로 되돌아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최근 연구로 보면 인류는 700만년 전부터 직립보행을 해왔다.


    그때부터 평발 아저씨들의 삶은 힘들어졌다. 그러나 도태되지 않았다. 이것은 유전자의 전략이다. 무엇인가? 본성결정이나 환경결정은 일방작용이다. 구조론은 상호작용론이다. 상호작용에는 반드시 방향성이 있다. 예컨대 이런 거다. 조선왕조를 건국할 때 명나라가 국명을 승인하는 절차가 있었다.


    이성계는 조선과 화령 둘을 종이에 적어서 올렸다. 첫 번째를 낙점하게 되어 있다. 박근혜는 미쳐서 낙하산에 두 번째를 낙점하는 바람에 일이 꼬였다. 복수의 선택지는 형식적인 거고 원래 첫 번째를 찍어야 한다. 두 개의 선택지를 두고 하나를 고르게 하는게 바로 자연의 진화원리이다.


    환경과 유전자는 둘 다 서로의 존재를 의식하며 게임을 벌인다. 팽팽하게 대결하는 것이다. 선택하고 선택을 요구하며 집요하게 밀당을 한다. 그러므로 진화의 전략은 대결구도를 지속적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흑인과 백인으로 분리되고, 여성과 남성으로 분리된 것은 전략이다.


    분별이 전략이므로 우리는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동성애자는 원래 동성애자다. 일부 타락한 기독교 집단은 이를 부정한다. 동성애자의 존재는 신의 전략이다. 그것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유전자는 환경변화에 대비하여 또 하나의 카드를 손에 쥐려고 하는 것이다. 남녀의 다름도 유전자의 전략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대결구도를 유지해야 한다. 문제는 학교공부다. 경찰과 도둑 중에서 경찰을 찍으면 백점을 맞고 도둑을 찍으면 빵점을 맞는다. 시험문제에 길들여진 한국은 흑인과 백인 중에서 백인을 찍는다. 남자와 여자, 강자와 약자, 백수와 취직, 결혼과 미혼, 커플과 솔로로 칸을 나눈다.


    둘 중에서 하나를 찍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진다. 그러나 유전자는 둘을 대결시키려는 의도를 가진다. 문제가 있으면 답이 있다는 강박관념에 빠진 나머지 무턱대고 둘 중하나를 배제하려고만 드는 것이다. 진짜는 따로 있다. 진짜는 정답을 찍는게 아니라 쫄깃하게 게임을 운용하는 것이다.


    게임은 계속되어야 한다. 팽팽해야 한다. 지역과 지역간에, 성별과 성별간에, 강자와 약자간에, 다수파와 소수파간, 몰락하는 서구와 떠오르는 동아시아간에 팽팽한 긴장이 유지되어야 하며 한쪽으로 너무 기울면 망하고 팽팽한 교착상태가 지속되어도 망한다. 답은 부지런한 정권교체의 서스펜스다.


    한 번은 여자가 이기고 한 번은 남자가 이겨야 한다. 한 번은 강자가 이기고 한번은 약자가 이겨야 한다. 처음 출발선은 평등해야 하고 다음 중간 과정은 승자와 패자가 교대되어야 하고 막판에는 다시 평등해야 한다. 무조건 평등만을 주장하며 게임을 거부하고 긴장을 회피하는 집단도 망한다.


    우리는 게임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일방적인 게임은 곤란하며 팽팽하되 교착되면 곤란하고 그래도 승부가 나야 한다. 이에 전략이 나와주는 것이며 게임은 장기전과 단기전, 전면전과 국지전, 내전과 외전이 중첩되어 있다. 하나의 게임 안에 또다른 게임이 작동한다. 그 중첩을 받아들여라.


    예컨대 이런 거다. 오프모임 참가자는 남자가 많고 여자가 적은 경우가 많다. 남자 아홉에 여자가 하나면 여자는 여러가지로 부담을 느낀다. 어떤 상황에 처해서 의논할 상대가 없는 것이다. 모임은 망한다. 최소 두 명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 두 명이 왔다면 다음은 0명이 온다.


    왜냐하면 상대방이 다음에 안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여자가 서너명이면 좋지만 이 경우 경쟁심 때문에 마찰이 일어난다. 여자가 서로 저 사람은 좀 안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여자가 다수면 여자는 남자와 전선을 만들어 대결하는 방법으로 여자를 지배하는게 낫다고 판단한다.


    여자파와 남자파로 분열된다. 결국 모임은 망한다. 보통은 친목질로 망한다. 친할수록 이런 점이 더욱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모임의 목적은 친목인데 친목하면 반드시 망하게 되니 딜레마다. 친목은 각자가 요령껏 알아서 하는 것이고 겉으로는 공부하는 분위기로 진지하게 가야 모임이 된다.


    구조론연구소는 친목질 금지다. 여자 입장에서 여자가 경쟁자일 수도 있고 동료일 수도 있고 부하나 상관일 수도 있다. 거기에 따라 다른 전략이 결정된다. 어떻든 상대에게 선택을 요구하는 자가 승자가 되고 선택해야 하는 쪽으로 몰린 사람이 패배자다. 각자 자신이 원하는 게임을 설계한다.


    동성애자는 여자를 경쟁자로 보거나 혹은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존재로 여길 수 있다. 반대로 여자는 게이를 도움이 되는 존재로 여긴다. 일단 본인이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없다. 그리고 대화가 통한다. 같은 약자 혹은 소수자끼리 연대해서 패거리에 능한 남자의 지배에 맞서야 한다. 쉽지 않다.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그것을 실천하려면 누가 제안해야 하는데 거기까지 가기가 어렵다. 각자의 전략이 충돌하는 것이다. 모두 상대방이 자신의 게임으로 들어오길 기대한다. 잘 안 된다. 남북전쟁에서 북군은 대통령제라 임박한 대통령 선거에서 이길 목적으로 공격적 전략을 구사하려 한다.


    그러나 전쟁은 언제나 방어쪽이 유리하므로 북군은 참호를 파놓고 남군을 유인하여 당시의 신무기인 후장식 소총으로 섬멸하려고 장기전을 선택한다. 그러다가 이를 꿰뚫어본 남군의 신속한 기동에 의해 각개격파된다. 북군이 장기전을 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아챈 남군은 허장성세를 한다.


    장기전을 꾀하는 북군이 배후를 치는 기동전을 하지 않을 것이므로 적은 병력을 남겨 교착시켜 놓고 본진을 옮겨 북군의 약한 고리를 찾아 일점을 타격하는 제파공격을 한다. 포도탄이 쏟아지는 가운데 굉장한 돌격으로 돌파하려고 한다. 몇 번 재미를 봤지만 게티스버그에서는 오지게 털렸다.


    안개가 끼거나 갑자기 내린 비로 강물이 불어 도하에 실패하는 등의 날씨가 영향을 미친다. 현지 지형에 익숙한 부대가 유리하다. 먼저 지리를 선점하고 기다리는 쪽이 유리하다. 그러다가 시간을 끌어 여론이 불리해진다. 장군들의 소극적인 전략 때문에 링컨은 대장을 다섯명이나 교체해야 했다.


    공격은 축차투입으로 망하고, 방어는 예비대 운용으로 흥한다. 링컨은 방어 위주로 가는 북군의 소극적 태도를 질타했지만 게티스버그의 승리는 유리한 지형을 선점한 방어전의 성공이다. 전쟁을 모르는 정치가 링컨이 북군을 말아먹었다. 반드시 상부구조가 있어야 한다. 게임을 선택해야 한다.


    조지 매클렐런은 링컨의 대통령 재선을 위해 자기 부하 10만을 죽음으로 내몰 것인가 아니면 근대전의 특성인 대량살육을 막고 침착하고 끈질긴 지구전으로 남부인의 인심을 얻어 링컨의 후임으로 대통령이 될 것인가다. 그는 대통령이 되고자 하다가 짤렸다. 맥아더와 비슷한 길을 간 것이다.


    부하들 모아놓고 자기 상관인 링컨을 까는게 김한길, 박지원, 이종걸, 김부겸 부류다. 무작정 그런 매클렐런를 비난할 수도 없다. 그랜트는 링컨이 시키는대로 무지막지한 돌격을 했다가 방어전에 능한 리에게 6만 5천을 잃었다. 링컨이 매클렐런을 끝까지 믿었다면 살았을지도 모르는 인명이다.


    그러나 보통은 그렇게 좌고우면하며 시간을 끌다가 링컨이 재선에 실패하고 북부가 분열하면? 때로는 정치적인 방법으로 해결해야할 일이 있다. 트로츠키는 정치장교를 투입하여 자기편 뒤통수를 치는 맥아더짓을 막고 승리를 끌어냈다. 스탈린이 이를 답습하여 주코프를 통제했음은 물론이다.


    독소전에서 히틀러를 비난하고 로멜을 찬양하는 자들은 전쟁의 이러한 본질을 모르는 것이다. 일선의 지휘관들이 바른 판단을 하는데 현장을 모르는 정치가들이 망친다고 여긴다. 그렇지 않다. 로멜의 승리는 리의 승리와 같은 것으로 전술적 승리일 뿐 전략적 승리로 이어질 수 없는 것이다.


    다양한 게임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 원칙적으로는 장기전, 전면전, 외전으로 가되 일정한 국면에서는 반대로 단기전, 국지전, 내전에 이겨 전쟁수행역량을 키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투에 이기고 전쟁에 지는 리의 실패를 답습한다. 리가 전술에서는 북군을 몰아붙였지만 항우에 불과했다.


    정리하자. 본성설과 환경설이 있다. 전자는 차별성을 강조하고 후자는 동일성을 강조한다. 게임의 형태에 따라 취사선택해야 한다. 무조건 어느 한쪽이 절대로 옳다고 믿는 자는 절대로 무식한 자다. 정답은 전략적 선택이며 우리는 게임을 선택할 수 있다. 문제는 큰 게임을 선택할 수 있느냐다.


    동성애자와 여성과 장애인과 흑인 등 다양한 사회적 약자를 하나로 묶어낼 대담한 리더십이 요구된다. 보통은 자신이 약자이면서 또다른 약자를 공격한다. 그것이 본인에게 쉬운 게임이기 때문이다. 무뇌진보는 자기편 진영의 절대패배를 주장하면서 본인의 명성을 위해 튀는 행동을 한다.


    패배주의를 전파하는 것이다. 문재인이 저렇게 오버하다가 지는 수가 있지 하고 발목을 잡는다. 어차피 못이기니까 장렬하게 전사하여 명성이라도 얻자거나 분풀이라도 하자는 식으로 간다. 우리가 찾아야 하는 정답은 서스펜스다. 대칭된채 공중에 매달려 있는 것이다. 그것은 게임이다.


    게임은 이렇게 될 수도 있고 저렇게 될 수도 있다. 거기에 방향성이 있다. 장기전을 하는척 위장하면서 단기전을 먹는 패턴을 반복하면 된다. 우리는 백년대계의 민주주의 원칙을 밀면서 눈앞의 안철수를 조져버려야 한다. 봐주는거 없다. 전면전을 하는척 하면서 국지전을 이기는 패턴이다.


    국지전을 이긴 다음 그 상황에서 소수의 병력으로 전선을 교착시키면 된다. 외전을 하는척 하면서 내전을 하는게 새누리당 방법이다. 북한과 맞서는척 하면서 민주당을 종북으로 몰아붙인다. 대통령에 도전하는척 하면서 박원순을 관광태우고 서울시장을 차지하면 되는 것은 이재명 입장이다.


    그것이 매달려 있는 것이다. 우리가 찾아야 할 방향성이 거기에 있다. 우리는 곧 죽어도 전면전과 외전과 장기전을 설계해야 한다.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깃발로 띄워놓고 왼쪽 깜박이를 켠채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어 단기전과 국지전과 내전에서 이겨야 한다. 힘을 보충한다.


    큰 원칙에만 집착하면 단기전을 계속 져서 전쟁수행능력을 잃어버린다. 진보가 흔히 저지르는 실수다. 독립군이 승산이 없어도 가끔 한번씩 작은 싸움을 이겨야 신병이 들어온다. 너무 큰 그림을 그려서 어차피 못 이기는 게릴라전 필요없다고 포기하면 망한다. 지더라도 집요하게 싸워야 한다.


    큰 그림이 어그러져도 작은 싸움을 이기고 그것을 발판으로 삼아 다음 라운드를 또이기면 된다. 게임이 작동하고 있어야 한다. 밀당이 그 안에 있다. 1초만에 판단할 수 있다. 매달려 흔들리면 수렴되거나 확산된다. 그것이 파악해야할 방향성이다. 권력이 문재인에게 수렴될수록 지지세는 확산된다.


    반면 반기문은 덧셈을 하고 있다. 일단 신당을 창당한다. 이단은 바른당과 합당한다. 삼단은 국민의당과 연대한다. 사단은 손학규와 빅텐트 친다. 오단은 문재인과 양강구도 간다. 이 모든 단계에 대칭이 성립하며 대칭되면 좁은 길목이 생기고 그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삥을 뜯는 자가 반드시 있다.


    한 단계를 거칠때마다 비용은 5배로 증가한다. 의사결정의 난맥상이다. 어느 쪽이 옳다고 할 수 없다. 그들은 모두 각자의 게임 안에서는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다만 애초에 좋은 게임을 선택해야 한다. 당신은 어떤 게임을 선택했는가? 당신은 동료를 경쟁자로 보는 전략을 선택했는가?


    당신은 동료를 팀원으로 설정하는 전략을 선택했는가? 어느 쪽이든 거기에 맞는 기동이 존재하는 법이다. 일관되게 그 길을 가면 된다. 그렇다면 나쁜 것은 누구인가? 상부구조에 거역하는 자다. 북군이 전투에 이겨도 그러다가 정치에 지면 곤란하다. 충돌할 때는 전체의 그림을 우선해야 한다.


    명분으로 모이고 실리로 흩어지는게 인간이다. 대통령이라는 명분을 깃발로 모여서 서울시장이라는 실리를 먹으면 된다. 그런데 하극상은 안 된다. 지휘부에서 전체의 명분을 위해 개인의 실리를 희생하라면 희생해야 한다. 이재명 너는 거기까지. 적색신호등이 켜지면 거기서 멈추어야 한다.


    어떻든 상대에게 선택을 요구하는 자는 승자가 되고 선택해야 하는 쪽으로 몰린 사람이 패배자다. 상부구조를 일으켜야 상대에게 선택을 강요할 수 있다. 리는 이겼지만 그냥 혼자 힘으로 이긴 것이다. 혼자 힘으로 이기면 곤란하고 패권세력 덕분에 이겨야 한다. 그것이 예를 갖추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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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자의 게임 안에서는 각자 옳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절대 설득되지 않습니다. 말로 설득되는 사람은 미성년자입니다. 미성년자는 아직 자신의 게임을 확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게임이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 게임이 초딩이냐 중딩이냐 깨달음이냐 하는 레벨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하극상은 안 됩니다. 낮은 게임으로 높은 게임을 치면 안 됩니다. 그것이 악입니다. 단 높은 게임을 하는 사람이 상황에 임하여 낮은 게임을 쓸 수는 있습니다. 초딩게임은 중등게임을 겸할 수 없지만 중등게임은 초딩게임을 겸할 수 있습니다. 먼 미래를 바라보는 원대한 계획을 세운 사람은 단기적으로 명박이를 조져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기전에 집착하는 실용주의자는 원대한 계획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것은 원래 안 되는 것입니다. 큰 게임을 정해놓고 일시적으로 단기전을 겸하는 것이 방향성입니다. 방향성을 깨달았다면 모두 깨달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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