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노/정 단일화에 반대하는 민노당식 입장에 대한 대응을 위하여 씌어졌습니다)
[정몽준은 유권자가 노무현에게 요구하는 담보물]
오늘 문화일보 여론조사가 몽측에 유리하게 나왔으므로 몽의 태도가 또 바뀔지 모르겠다.(내일 다른 결과가 나오면 또 바뀌겠지만 - 사실 개인적으로는 투표 10일쯤 남겨두고 단일화 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예상보다 빠르게 가는 것이 오히려 걱정되지만 이번에 파토나도 낙담할 일은 아닙니다.)
상황은 단순하다. 이나라에 민노당 지지세력 2프로 있고 민주당 지지세력 20프로 있다. 주제파악을 해야한다. 우리는 여전히 다수가 아니라 소수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이 아니라 만장일치다. 다수결은 소수의 동의를 구하는 절차에 불과하다. 다수가 결정했는데 소수가 승복하지 않으면 나라를 쪼개는 수 밖에 없다. 나라를 쪼개려면 반정부투쟁을 해야한다.
선택은 둘 중 하나다.
1. 반정부투쟁을 한다.
2. 의회민주주의를 존중한다.
민노당은 5프로, 민주당은 20프로의 지지를 받고 있다. 이 숫자로는 정권을 잡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능이다. 우리는 이미 패배한 것이다. 반정부투쟁을 하겠다면 선거를 거부하는 것이 옳다. 의회민주주의를 하겠다면 어떻게든 타협하여 산술적 다수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가 이미 패배하고 있다는 이 현실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고작 20프로 가지고 뭘 하겠다는 말인가? 물론 부동표도 있으니 투표 들어가면 민노당은 최대 10프로 까지, 민주당은 40프로 까지는 가망이 있다. 그래도 어차피 지는 게임이다. 10프로나 40프로로 정권을 잡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산술적 다수가 될 때 까지 늘 져주어야만 하는가? 그렇지 않다. 정치는 옳은가 그른가를 판단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요는 누가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어 권력을 위임받는가이다.
옳은 자가 권력을 잡는 것이 아니라 신뢰를 얻은 자가 권력을 위임받는다. 어떤 경우에도 권력은 이념의 것이 아니라 국민의 것이다. 어떤 권력도 국민 개개인이 가진 천부의 권리를 위임받은 것에 불과하다.
우리가 기대는 근거는 이념이다. 몽측이 기대는 언덕은 이념이 아니라 장삿속이다. 이념과 이념은 충돌한다. 이념과 장사꾼은 충돌하지 않는다. 김용갑이나 정형근과 같이 이념에서 적인 자와는 절대로 손을 잡을 수 없다. 그러나 장사꾼과는 거래할 수 있다.
(민노당은 장사꾼도 적으로 돌린다고? 민노당의 강령은 모르지만 만약 그러하다면 민노당은 정몽준과 손잡을 수 없다. 만약 장사꾼을 적으로 규정하고 있다면 민노당은 정권획득을 목적으로 하는 정당이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국민의 요구는 믿을 수 있는가이다.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는 것이며 그 대신 신뢰라는 이름의 보증금이 필요하다. 정몽준은 국민이 믿음직스럽지 못한 노무현에게 요구하는 담보물 같은 것이다.
[유권자의 다수는 늘 보수이다]
유권자는 옳은 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믿을 수 있을 것을 선택한다. 보수주의자는 믿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의 주장은 주로 뭐를 안하겠다는 것인데, 뭔가를 안하기는 매우 쉽기 때문이다.
그들은 남북통일도 안하고 동서화합도 안하고 개혁도 안하고 아무것도 안하겠다는 거다. 이 약속은 믿을 수 있다. 아무 일도 안하기놀음은 서살 먹은 애도 할 수 있다.
진보주의자는 믿을 수 없다. 왜냐하면 진보주의자들은 주로 이전에 없던 뭔가를 새로이 하겠다는 건데, 그것이 생각처럼 잘 될지는 해봐야 알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권자는 기본적으로 보수적이다.
진보는 이념이 아니라 실력으로 평가받는다. 노후보가 고작 20프로의 지지율에 그치고 있는 것은 노후보의 노선이 옳은가에 대한 불신이 아니라, 과연 그것을 해낼 실력이 있는지에 대한 불신이라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유능하게 보여야 한다. 정몽준을 영입하므로서 유능하게 보여질 수 있다.
지식인은 옳은가 그른가만 판단한다. 유능한지의 여부는 누구나 판단할 수 있지만 옳은지에 대한 판단은 지식인만이 할 수 있다. 지식인이 '유능한가'에 대한 판단을 버리고 '옳은가'에만 집착하는 것은 제 밥그릇을 지키자는 이기적인 태도에 불과하다.
진중권씨 등이 권영길을 옹호하는 논리는 옳은가 그른가에 대한 판단에 불과하다. 설사 그 판단이 논리적으로 완벽하다 하더라도 입증된 것은 아니다. 권영길은 현재 2프로의 지지를 받고 있을 정도로 무능하다. 무능한 사람은 대통령이 될 수 없다.
장사꾼에 불과한 정몽준 하나도 잡아먹지 못하는 무능한 노무현에게 나라를 맡길 수 있는가이다. 노무현은 절대적으로 유능함을 증명해야 한다. 정몽준을 잡아먹어야 한다.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다. 두가지 요구가 있다. 하나는 옳은가이고 둘은 유능한가이다. 둘은 서로 모순된다. 옳기는 쉽지만 유능하기 어렵다. 유능하기 쉽지만 옳기는 어렵다. 서로 모순되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한다.
가능한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예술이다. 불가능에 도전해야 한다. 실패할 지도 모른다. 브라질의 룰라 당선자가 그랬듯이 곡예를 하는 수 밖에 없다. 설사 실패하더라도 성의를 보이고 신뢰를 얻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나가야 한다.
"노무현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정몽준은 유권자가 노무현에게 요구하는 담보물]
오늘 문화일보 여론조사가 몽측에 유리하게 나왔으므로 몽의 태도가 또 바뀔지 모르겠다.(내일 다른 결과가 나오면 또 바뀌겠지만 - 사실 개인적으로는 투표 10일쯤 남겨두고 단일화 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예상보다 빠르게 가는 것이 오히려 걱정되지만 이번에 파토나도 낙담할 일은 아닙니다.)
상황은 단순하다. 이나라에 민노당 지지세력 2프로 있고 민주당 지지세력 20프로 있다. 주제파악을 해야한다. 우리는 여전히 다수가 아니라 소수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이 아니라 만장일치다. 다수결은 소수의 동의를 구하는 절차에 불과하다. 다수가 결정했는데 소수가 승복하지 않으면 나라를 쪼개는 수 밖에 없다. 나라를 쪼개려면 반정부투쟁을 해야한다.
선택은 둘 중 하나다.
1. 반정부투쟁을 한다.
2. 의회민주주의를 존중한다.
민노당은 5프로, 민주당은 20프로의 지지를 받고 있다. 이 숫자로는 정권을 잡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능이다. 우리는 이미 패배한 것이다. 반정부투쟁을 하겠다면 선거를 거부하는 것이 옳다. 의회민주주의를 하겠다면 어떻게든 타협하여 산술적 다수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가 이미 패배하고 있다는 이 현실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고작 20프로 가지고 뭘 하겠다는 말인가? 물론 부동표도 있으니 투표 들어가면 민노당은 최대 10프로 까지, 민주당은 40프로 까지는 가망이 있다. 그래도 어차피 지는 게임이다. 10프로나 40프로로 정권을 잡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산술적 다수가 될 때 까지 늘 져주어야만 하는가? 그렇지 않다. 정치는 옳은가 그른가를 판단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요는 누가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어 권력을 위임받는가이다.
옳은 자가 권력을 잡는 것이 아니라 신뢰를 얻은 자가 권력을 위임받는다. 어떤 경우에도 권력은 이념의 것이 아니라 국민의 것이다. 어떤 권력도 국민 개개인이 가진 천부의 권리를 위임받은 것에 불과하다.
우리가 기대는 근거는 이념이다. 몽측이 기대는 언덕은 이념이 아니라 장삿속이다. 이념과 이념은 충돌한다. 이념과 장사꾼은 충돌하지 않는다. 김용갑이나 정형근과 같이 이념에서 적인 자와는 절대로 손을 잡을 수 없다. 그러나 장사꾼과는 거래할 수 있다.
(민노당은 장사꾼도 적으로 돌린다고? 민노당의 강령은 모르지만 만약 그러하다면 민노당은 정몽준과 손잡을 수 없다. 만약 장사꾼을 적으로 규정하고 있다면 민노당은 정권획득을 목적으로 하는 정당이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국민의 요구는 믿을 수 있는가이다.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는 것이며 그 대신 신뢰라는 이름의 보증금이 필요하다. 정몽준은 국민이 믿음직스럽지 못한 노무현에게 요구하는 담보물 같은 것이다.
[유권자의 다수는 늘 보수이다]
유권자는 옳은 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믿을 수 있을 것을 선택한다. 보수주의자는 믿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의 주장은 주로 뭐를 안하겠다는 것인데, 뭔가를 안하기는 매우 쉽기 때문이다.
그들은 남북통일도 안하고 동서화합도 안하고 개혁도 안하고 아무것도 안하겠다는 거다. 이 약속은 믿을 수 있다. 아무 일도 안하기놀음은 서살 먹은 애도 할 수 있다.
진보주의자는 믿을 수 없다. 왜냐하면 진보주의자들은 주로 이전에 없던 뭔가를 새로이 하겠다는 건데, 그것이 생각처럼 잘 될지는 해봐야 알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권자는 기본적으로 보수적이다.
진보는 이념이 아니라 실력으로 평가받는다. 노후보가 고작 20프로의 지지율에 그치고 있는 것은 노후보의 노선이 옳은가에 대한 불신이 아니라, 과연 그것을 해낼 실력이 있는지에 대한 불신이라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유능하게 보여야 한다. 정몽준을 영입하므로서 유능하게 보여질 수 있다.
지식인은 옳은가 그른가만 판단한다. 유능한지의 여부는 누구나 판단할 수 있지만 옳은지에 대한 판단은 지식인만이 할 수 있다. 지식인이 '유능한가'에 대한 판단을 버리고 '옳은가'에만 집착하는 것은 제 밥그릇을 지키자는 이기적인 태도에 불과하다.
진중권씨 등이 권영길을 옹호하는 논리는 옳은가 그른가에 대한 판단에 불과하다. 설사 그 판단이 논리적으로 완벽하다 하더라도 입증된 것은 아니다. 권영길은 현재 2프로의 지지를 받고 있을 정도로 무능하다. 무능한 사람은 대통령이 될 수 없다.
장사꾼에 불과한 정몽준 하나도 잡아먹지 못하는 무능한 노무현에게 나라를 맡길 수 있는가이다. 노무현은 절대적으로 유능함을 증명해야 한다. 정몽준을 잡아먹어야 한다.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다. 두가지 요구가 있다. 하나는 옳은가이고 둘은 유능한가이다. 둘은 서로 모순된다. 옳기는 쉽지만 유능하기 어렵다. 유능하기 쉽지만 옳기는 어렵다. 서로 모순되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한다.
가능한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예술이다. 불가능에 도전해야 한다. 실패할 지도 모른다. 브라질의 룰라 당선자가 그랬듯이 곡예를 하는 수 밖에 없다. 설사 실패하더라도 성의를 보이고 신뢰를 얻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나가야 한다.
"노무현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