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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7350 vote 0 2016.04.29 (12:03:46)

     

    유교의 몰락과 부흥


    공자는 은나라의 점술에서 비롯된 바, 주역의 음양론에 따른 밸런스 개념과, 스키타이 유목민의 역할분담 관습에 따른 봉건질서에 근거하여 일의 맥락을 찾아 깨달음을 얻어 그것으로 일이관지 했는데, 이후 제자들은 공자의 깨달음에서 멀어졌으니 그들은 어떤 속성에서 찾으려 했다.


    구조론은 에너지로 설명한다. 에너지는 형태도 없고 속성도 없다. 단 일에 올려태우면 의사결정 과정에서 형태도 취하고 속성도 부여된다. 그것은 2차적으로 부여되는 것이지 원래부터 그런 것이 아니다. 의사결정에 따른 대칭과 호응에 의해 공간과 시간의 질서가 유도되는 것이다.


    그러나 공자의 제자들은 모두 고유한 속성에서 찾으려고 했다. 인간은 원래 선하다거나 혹은 원래 악하다거나 하는 식이니 점차 산만해져서 다원론으로 흘러갔다. 대개 천天에서 속성을 찾아 유교를 종교화 시키려는 맹자그룹과, 민民에서 찾아 유교를 제도화시키려는 순자그룹이 있다.


    천에서 답을 찾는 그룹
    ◎ 증자는 효孝만 찾았고
    ◎ 자사는 성誠만 찾았고
    ◎ 맹자는 의義만 찾았고


    민에서 답을 찾는 그룹
    ◎ 순자는 예禮만 찾았고
    ◎ 묵자는 애愛만 찾았고
    ◎ 상앙은 법法만 찾았고


    이는 필자의 대략적인 분류고 꼭 이런 것은 아닐 것이다. 논쟁은 복잡하게 흘러가기 때문이다. 이러한 천과 민의 대립은 학문의 왜소화로 치달았다. 이것만 있으면 되고 저것은 필요없다는 식이다. 서로를 적대하고 증오하여 배제하니 결국 최후의 승자는 진시황의 법가로 되었다.


    나머지는 말살되었다. 한나라 이후 법가도 말살되니 유교는 통째로 말살되었다. 지금도 순자는 이단으로 몰려 있는데 최악이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순자야 말로 정통의 유가다. 공자의 예를 계승한 인물이다. 순자가 말한 성악설의 악은 계몽되지 않은 부족민의 원시상태를 말하는 거다.


    후대에 유교를 종교화 시켜 이득을 취하는 무리가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순자를 배제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근대의 민주주의 관점과 가장 가까운 사상이 순자의 예다. 한비자가 이를 극단화 시켜 법으로 간 것은 진시황의 통치술에 이용된 것이고 근본으로 보면 순자가 공자와 가깝다.


    천을 섬기는 자사와 맹자의 부류는 민은 필요없다는 논리로 가고 반대로 순자와 법가의 부류는 천은 필요없다는 논리로 가니 점차 형해화 되어 유교가 통째로 필요없게 되었다. 진시황이 민도 부정하여 오로지 법만 필요하고 나머지는 전부 필요없다로 정리했는데 최악이 된 것이다.


    심지어 묵가도 진시황을 지지하여 스스로의 존립근거를 없애버렸다. 그러다보니 최종적으로 유가도 필요없게 된 것이다. 자살골의 연속이다. 이에 나온 것이 동중서의 천인감응설이다. 천과 민이 서로 다투다가 서로를 죽여서 동귀어진 되었는데 천과 민의 합작으로 되살린 것이다.


    천을 따르려면 제사를 잘 지내야 하고 민을 따르려면 법을 잘 만들어야 한다. 천자는 법으로 민을 통제하고, 민중은 흉년이나 천재지변으로 천을 제어한다. 흉년이 들면 임금을 쫓아내야 한다. 그러나 이 또한 신통치 못한 것이라 민간은 도교세상이 되고, 궁정은 불교세상이 되었다.


    오랫동안 유교는 관료들의 시험과목에 불과했다. 과거제도는 형해화 되어 문벌귀족이 관직을 세습하게 되었다. 선비들은 청담사상을 떠들며 현실에서 멀어져 신선이 되었다. 관료들은 정치를 모르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다. 재상은 전쟁에 자식을 보내놓고도 바둑이나 두고 있었다.


    “동진의 재상 사안은 승전보가 올 무렵 손님과 바둑을 두고 있었다. 승전보를 받자 사안은 한 번 눈으로 훑어보더니 치워놓고 다시 바둑을 두었다. 손님이 보고서에 뭐라고 써 있냐고 묻자 평소처럼 아무 일 없다는 태도로 "집안 애들이 적을 물리쳤다는구먼."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애들은 조카인 사령관 '사현'과, 함께 출전한 사안의 동생, 아들들이다. 단 기쁨을 완전히 감추지는 못해서 바둑돌을 쥔 손이 떨렸는데 이를 본 손님이 "나쁜 수인가 보군." 하고 지적하자, 사안은 "이 정도에 동요하다니 이 노인이 주책이군."이라며 허허 웃었다고. 손님이 돌아가자 문턱에 나막신을 부딪혀 굽이 박살이 났는데도 모를 만큼 기뻐했다고.”(나무위키)


    현실을 무시하는 도교사상의 극치다. 비수대전은 오랑캐 저족출신 전진의 부견이 100만 대군을 동원하고, 이에 맞선 동진의 8만 대군이 승리한 역사상 초대형 대첩이다. 북방 오랑캐와 남방의 한족이 제대로 붙은 것이다. 아군의 패배가 90퍼센트 확실한 상황에서 기적적인 승리다.


    그런 판에도 재상이 바둑이나 두며 딴전을 피우니 당연히 나라가 망한다. 승리한 효무제는 질투한 후궁이 베개로 눌러서 살해했다. 이렇게 쪽팔리게 죽은 임금은 역사에 없다. 이후 20여년도 못가서 망했음은 물론이다. 11명의 동진황제 중에 40살까지 산 사람은 세 명 밖에 없다.


    대부분 20대나 30대 한창 나이에 죽었다. 임금이 5년을 채우면 많이 한 경우다. 얼마나 막장이었는지 알만하다. 정치를 소인배의 짓으로 보고 전쟁을 집안 애들이나 하는 일로 보는데 나라가 안 망하는게 이상하다. 당연히 망했다. 이게 도교다. 이 판국에 주자의 성리학이 나타났다.


    주자 역시 천과 민의 합작을 주장했다. 무엇인가? 이거 두 단어다. 그동안은 백가쟁명이 죄다 효, 성, 예, 도, 의 등 한 글자로 승부보려 하다가 뭔가 후달려서 천과 민의 통합, 이와 기의 통합으로 진도를 나간 것이다. 음이 양을 배척하고 양이 음을 배척하다가 중도통합을 꾀한다.


    그러나 통합이 될 리가 없다. 그래서 이를 앞세우고 기를 밑에 받치게 한다. 천은 이, 민은 기다. 하늘이 백성을 지배한다는 거다. 물론 백성에게도 숨구멍은 열어준다. 임금이 죄다 먹으면 곤란하니까. 퇴계와 남인이 이런거 좋아한다. 영국과 일본, 미국의 섬나라 근성도 그러하다.


    그런데 이건 딱봐도 사기임을 알 수가 있다. 그래서 다시 한 글자로 통합하자는 분위기가 있으니 율곡과 화담의 기 일원론이요, 양명학의 심 일원론이다. 양명학은 불교 아이디어를 빌린 것이니 논외고 정통은 율곡 외에 없다. 어떻게 가능한가? 임금은 하나고 백성은 숫자가 많다.


    그래서 천과 민이 대등해지지 않는다. 즉 통합되지 않는 것이다. 구조론으로 말하면 확산을 수렴으로 바꿀 때 통합된다. 로마라면 원로원이요 조선이라면 선비들의 공론이다. 윤선도와 송시열이 상소문으로 대결하면 조선의 모든 선비가 그것을 공유하여 토론에 참여하니 일원이다.


    의사결정원리 안에서는 일원적으로 통합된다. 효, 성, 예, 도, 의 등 한 글자로 미는 자들이 안 되는 이유는 결과물을 들이대기 때문이다. 국회는 하나고 원로원도 하나고 공론도 하나고 여론도 하나다. 사건의 원인측은 하나다. 의사결정되기 전은 하나, 결정된 후에는 반드시 둘로 갈린다.


    싸우기 전에는 한 뜻이지만, 싸우고 난 다음에는 이득과 손실로 갈린다. 시합하기 전에는 의기투합하지만 끝나면 누구는 맥주마시고 웃는데 누구는 울고 있다. 이걸 보면 이원론이다. 이는 무지의 소산이며 직관적으로 안다. 왜 일원론이어야 하는지를. 언어로 표현하기가 어려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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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는 학이라는 근본에 붙잡혀서 각론에 소홀했습니다. 우선 배울 생각이 없는 사람을 배움의 길로 인도하는게 급했지 그 배움의 이론은 중요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 이론이 중요해집니다. 대결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예송논쟁은 한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국가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것이며 인류의 운명을 가늠하는 것입니다. 지금 문재인과 안철수의 대립도 예송논쟁과 같은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의 고립주의도 윤선도의 탄핵과 같은 것입니다. 세계가 혼란한 이유는 이론가들이 침묵하자 종교가들이 날뛰기 때문입니다. 논쟁으로 제압해야 합니다. 유교가 침묵하자 도교가 중국을 말아먹은 것과 같습니다. 로마 말년처럼 이 시대 임금의 평균 재위기간이 10년을 채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조선왕조 임금들이 20년씩 해먹은 것은 형편이 나은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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