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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2393 vote 0 2011.12.05 (00:13:19)

 

창의 이렇게 하라

 

창의의 첫 번째 법칙은 자기를 배제하는 것이다. 99프로 여기서 막힌다. 초등학생 일기장 첫 줄에 ‘나는 오늘.....’ 하고 써버리면 끝난 거다. 애초에 방향이 틀렸다. 방향이 틀리면 열심히 할수록 더 틀리게 된다.

 

자기라는 존재가 모든 아이디어와 창의와 혁신과 진보의 절대적인 방해자임을 알아야 한다. 예컨대 이런 거다. (약간 각도가 빗나간 이야기가 될 수 있지만 이건 중요한 거니까 굳이 언급한다.)

 

한겨레나 오마이에 흔히 보이는 사이비들 말이다. 그들은 노무현 대통령을 언급할 때 무의식 중에 자기 자신과 비교하여 “쟤가 내보다 나은게 뭐야?”하는 심리를 들켜버린다. 자기와 소속집단의 입장을 개입시키면 끝난 거다.

 

그 지점에서 비인간성을 들켜버린 것.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의 문제로 된다. 대화는 더 이상 진전될 수 없다. 비인간과 대화할 수 있나? 없다. 역사의 무게를 느낄 수 있는 정도의 안목이 없는 자와의 대화는 없다.

 

먼저 자기를 배제하고 더 나아가 자기 소속집단의 입장을 배제해야 한다. 건조하게 구조를 드러내는 것이어야 한다. 

 

 만약 내가 2000년 전 이스라엘의 어느 골목을 걷다가 청년 예수를 만났다면 어떨까? “쟤 상당히 웃기네.” 하는 인상을 받았을 수 있다. 물정을 모르는게 철부지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순수한 사람 같기도 하다. 얼마 후 골고다 언덕에서 그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면 “전에 깝치던 걔 아냐? 그럴줄 알았어.” 하고 웃었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예수의 이름에는 역사의 무게가 실려있다. 그건 다른 거다. 전태일도 마찬가지다. 그냥 한 청년이 나대다가 죽었다. 그러나 이후 대한민국의 진로는 바뀌었다. 무엇인가? 그때 예수는 인류의 대표자였고, 그때 전태일은 모든 노동자의 대표자였고, 노무현 역시 모두의 대표자로서의 노무현인 것이다. 자연인 노무현에 대해서는 논할 이유가 없다.

 

그냥 한 청년일 수도 있고 모두의 대표자일 수도 있다. 대표자면 역사의 무게가 실린다. 그때는 다른 눈으로 봐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에고’를 개입시키는 실패를 저지른다.

 

예수가 대표자인가? 전태일이 대표자인가? 노무현이 과연 대표자인가? 유시민이 뭔데 대표자인가? 그럴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유시민의 경우 얼마전까지는 유일한 대표자였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들 중의 하나로 위상이 낮아졌다.

 

여기서 대표자인가 혹은 그렇지 않은가가 중요한게 아니라 대표성만이 대화의 의제가 될 수 있다는 거다. 그런 점을 포착하지 못하는 자와는 대화할 이유가 없다. 대화한다는 것은 피아간에 상호작용을 통해서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마을의 공동우물을 파는 일과 같다. 그 자체로 공적 영역이다. 그러나 대개는 어떤가? ‘나는 뭐가 좋아.’ 하고 말하지만, 그 좋아하는 뭐가 핵심이 아니라 그 뭐를 기준으로 한 자기소개인 경우가 많다.

 

그런 자와는 대화할 필요없다. 열심히 의견을 말하는데 가만이 들어보면 전부 자기소개인 자 있다. 마땅히 축출해야 한다. 대화는 공(公)이고 창의는 공(公)이다. 창의는 공적영역에서 가능하다. 사(私)가 개입하는 순간 끝났다.

 

대개는 무의식 중에 자기와 비교하여 “걔가 나보다 나은게 뭐지?” 하는 데서 콤플렉스를 들키고 마는 것이며 그 점은 그 사람의 언어사용에서 다 드러난다. 실패다. 자기를 감추어야 한다. 자기를 배제해야 한다. 그래야 역사가 보이고 전모가 보인다.

 

철저하게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 건조하게 뼈대를 드러내야 한다. 대표성을 중심으로 접근해야 한다. 사건을 중심으로 보아야 한다. 그래야 창의가 된다. 자신을 개입시키고 역할을 찾는 순간 모든 것은 망해버린다. 창의는 날아가 버린다.

 

세르지오 레오네의 무법자 시리즈를 보면서 ‘저 무법자가 왜 주인공이야?’ 하고 화를 내는 사람은 극장에서 쫓겨나야 한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Bonnie and Clyde)나 ‘내일을 향해 쏴라’(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 혹은 ‘와일드 번치’처럼 희대의 악당이나 살인마가 주인공인 영화를 보면서 화를 내는 사람은 당연히 쫓아내야 한다.

 

인상주의 그림과 그 이전시대 회화의 차이는 자기를 배제하는데 있다. 나를 즐겁게 하고, 나를 만족시키는 그림은 가짜다. 나에게 어떤 감동이나 묵직한 주제의식을 전달하면, 나를 가르치려들면 가짜다.

 

나와 상관없이, 관객과 상관없이, 이쪽이 멀면 저쪽은 가깝고, 이쪽이 우뚝하면 저쪽은 움푹하고 이쪽이 어두우면 저쪽은 밝고 하며 대칭을 만들어 가는 것이 근대회화다. 철저하게 그림 자체의 논리를 따라가기다. 내게 필요한 것을 그림에서, 음악에서, 작품에서 구한다는 식이면 틀렸다.

 

이현세, 박봉성과 함께 80년대 대본소 만화 붐을 일으켰던 불청객시리즈의 고행석 화백을 예로 들 수 있다. 박기정 화백의 문하생으로 있으면서 스토리를 못 쓴다고 꾸지람을 들었다. 소주 한 병 들고 한강에 가서 ‘저기를 뛰어들어야 하나’하고 고민할 정도가 되었다. 40세를 넘은 80년대 초의 일이다.

 

그의 초기작을 보면 한결같이 재미가 없다. 왜? 자기를 반영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첫 작품은 자기 이야기를 쓸 수 밖에 없고 불운한 자기 신세타령으로 가면 우울해지고 만다. 그러니 재미없을 밖에.

 

첫 히트작의 원제는 ‘먼데서 왔어요.’인데 편집부 언니가 ‘제목이 이게 뭐야?’ 하고 핀잔을 주며 즉석에서 ‘요절복통 불청객’으로 제목을 바꾸어 버렸다. 이게 대박이 났다.

 

그 이후는 일사천리다. 한 순간에 모든 것이 결정된 것이며 그것은 깨달음과 다르지 않다. 무슨 일을 저질렀는가? 첫째는 자기를 배제했다. 만화를 보면 작가가 어떤 심리상태로 있는지 알 수 있는데 이거 들키면 안 된다.

 

둘째 주인공의 키를 낮추었다. 원래 주인공 구영탄은 키가 180 정도로 컸는데 줄인 거다. 마이너스를 행하여 결함있는 인물 캐릭터를 완성한 것이다. 캐릭터에 결함은 필수다. 람보시리즈나 록키시리즈나 다 주인공이 어벙해서 뜬 것이다.

 

실베스터 스탤론은 출생당시에 돌팔이 의사가 쇠집게로 아기를 당겼는데 신경을 건드려서 왼쪽 왼쪽 눈이 처지고 입술도 처지게 되었다. 신경이 죽어서 발음이 안 된다. 람보나 록키나 바보같은 발음을 하는데 이것이 결함있는 영웅의 공식과 맞다. 대박은 당연한 거다. 구영탄의 눈이 꺼벙한 것과 실베스터 스탤론의 눈이 꺼벙한 것이 일치한다는 점도 흥미롭다.

 

◎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 – 역사상 최초의 어벙한 주인공 캐릭터. 마이너스적인 결함을 통해서 피아간에 상호작용은 시작되며 그 상호작용의 메커니즘을 발명하는게 창의고 거기에 다양한 요소를 차례로 올려태우는게 창작행위다.

 

셋째 주인공은 집도 절도 없는 불청객에 떠돌이다. 역시 마이너스를 투입한 것이다. 구영탄은 정체가 모호한 인물이다. 그 정체는 박은하와 충돌하며 그 상호작용 과정에서 조금씩 드러난다. 한꺼번에 드러나지는 않는다.

 

넷째 원래 아이큐 250이다. 지옥훈련은 필요없다. 이현세 만화에 등장하는 지옥훈련이야말로 플러스 사고의 폐해다. 이 경우 끝을 맺지 못한다. 결말이 허무해지고 마는 것이 이현세 만화의 실패다.

 

이현세 만화와 고행석 만화의 결말이 완전히 상반된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마이너스를 행했는데 플러스로 보답받는 것이 고행석 공식이라면 플러스를 행했는데 마이너스 되는 것이 이현세 공식이다. 결국 엄지는 떠나고 만다.

 

주인공은 점점 강해지는 것은 일본만화의 공식이다. 이현세가 일본만화의 영향을 받았다는 말은 예전부터 있었다. 일본만화 번안으로 업계의 일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일본만화는 주인공이 점점 강해지다가 우주적으로 강해져서 장풍으로 달을 날려버리고 허무해진다. 결말이 아리송해진다.

 

김성모 만화도 계속 인물이 추가되며 플러스로 가다가 결국 모든 주인공이 다 죽는 ‘동귀어진’으로 끝나고 마는데 이 역시 실패다.

 

  ◎ 플러스는 완벽한 결말을 짓지 못한다. 끝이 허무해진다.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영화 무법자 시리즈도 주인공이 원래 강하다. 허무한 결말이 아니다. 마지막 엔딩신이 짜릿하게 끝나는 것이 세르지오 레오네의 특징이다. 아주 똥꼬가 뻑적지근한 상태에서 끝난다. 완벽하게 결말을 짓는 것이다. 고행석 만화와 비슷하다.

 

 

소설은 관객에게 무언가 주지 않아야 한다. 그림은 관객에게 감동을 선사하지 않아야 한다. 음악은 관객에게 무언가 주지 않아야 한다. 게임의 규칙만 제시하고 본인은 뒤로 빠져야 한다. 코미디는 전유성처럼 웃지 않아야 한다. 주는 순간 창의에서 상품으로 전락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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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소 습격사건부터 신라의 달밤, 광복절 특사 등을 연달아 히트시킨 박정우 작가도 전형적인 마이너스법을 쓰고 있다. 소년 탐정 김전일이 '범인은 이 안에 있다'고 선언하듯이 모두 한 장소에 모아놓고 일시에 폭파시키는 방법을 쓴다.

 

주유소에 찾아온 손님과 습격한 일행들 사이에 '네가 이렇게 하면 나는 이렇게 응수한다'는 대칭의 시소를 작동시킨다. 주유소 주인과 주유소 4인방간에 작동하는 시소, 경찰과 중국집배달원간에 작동하는 시소 등 다양한 시소들이 차례로 작동한다.

 

차례로 시소에 올려놓고 한놈씩 꽈당시키는 것이 영화의 마이너스 공식이다. 주유소습격사건 속편에는 모두 한꺼번에 시소에 올려놓고 휘발유를 뿌린다음 라이터를 던져버린다.

 

 

자기를 배제하는 문제에 대하여 내용을 추가한다면

 

자기를 배제한다는건 이런 거다. 코미디를 하더라도 그렇다.(역시 약간 초점이 빗나간 이야기가 될 수 있으나 본의에 주목하고 경청하기.) 자기 이야기를 해도 마치 남 이야기 하듯이 하는 사람이 코미디를 아는 사람이다.

 

예능프로에서 동료를 ‘선배님’이라고 깍듯이 대접하거나 혹은 소속사 사장을 출연시켜 ‘사장님’ 하고 부르는 것도 미친 짓인데 방송사가 이걸 왜 그냥두는지 모르겠다. 스포츠 팀의 감독이 선수를 ‘우리 애’라고 부르는 것도 마찬가지다. 원초적으로 자격미달에 함량미달이다.

 

달인을 하면서 류담이 김병만에게 ‘김병만 선배님 한 대 맞으십시오.’라고 하면 코미디가 되겠나? 엄태웅이 강호동 앞에서 기를 못펴는게 대개 이런 거다. 공사구분이 애매해서 통째로 망하는 거다.

 

자기와 자기집단을 개입시키는 자, 선보는 자리에서 자기 엄마에게 물어보고 애프터를 결정하겠다는 자와는 원초적으로 대화할 수 없다. 싸대기 날리고 일어서야 한다. 1초도 같이 있어줄 필요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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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5]오세

2011.12.05 (23:5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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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로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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