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도 궁합이 있다면 필자와 김두관은 안 맞는 궁합이다. 반면 유시민과는 희한하게도 궁합이 맞는다. 정치적 센스가 비슷한 것일까?
필자가 유시민을 두둔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유시민이 개혁당을 팽개치고 우리당으로 튀었을 때는 비판도 많이 했다. 그 일로 필자에게 유감을 가지고 있는 유시민 지지자들도 많다.
그러나 필자는 평소 유시민이 정치 하나는 시원하게 잘한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보안법 문제와 파병문제에서 필자와 의견이 맞지 않는 점도 있었지만 그런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예컨대 이런 거다.
“유시민의 결정이 반드시 옳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이 양반이 꼬여있는 정치판을 시원하게 풀어가는 능력 하나는 있네.”
옳으냐 그르냐 보다는 상황이 막히느냐 뚫리느냐로 보는 것이다. 유시민은 뭔가 교착된 상황을 뻥 뚫어준다는 느낌을 가지게 한다. 정치 한번 시원시원하게 잘 한다. 최악의 정치는 상황이 교착되어 도무지 진도가 안 나가주는 것이다. 그런데 유시민은 어떤 경우에도 진도를 나가준다.
예컨대.. 파병문제라면 가치관이 중요하다. 실제로 파병이 이루어졌는가 보다는 그 사람의 가치관이 전쟁우선인가 평화우선인가가 중요하다. 우리는 파병문제를 이슈화 하여 국민을 설득하려는 목적을 하나 더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본질을 보지 못하는 정치인이라면.. 그 사람이 설사 파병 저지에 상당한 열의가 있다 해도 답답할 뿐이다. 한숨 나온다. 꽉 막혀서 안풀리는 느낌 말이다. 그런 인간과는 대화를 포기해야 한다. 소통은 불가, 상황은 교착, 되는 일은 없음이다.
유시민이 말을 바꾸었다는 주장도 있는데 필자가 보기에 유시민은 말을 바꾼 적이 없다. 다만 사회자 노릇을 했다. 유시민은 토론을 이끌어 가면서 이사람 저사람에게 말을 시켰다.(그것이 바보들에게는 말을 바꾸기로 보일 수도.) 그 과정에서 국민을 설득하여 내는 소득을 올렸다.
말바꾸기 전문으로 악선전 된 DJ도 그렇고 노무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말을 바꾼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사회자의 역할을 맡아서 국민들에게 말을 거는 방법으로 응수타진을 하면서 국민참여형으로 토론을 이끌어 가는 것이다.
보안법 문제도 마찬가지다. 보안법이 왜 나쁜가를 국민들에게 인식시켜 주는 절차가 보안법의 개폐 그 자체보다 더 상위의 가치다. 이거 알아야 한다.
명계남류도 보안법 철폐를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어떻게든 보안법을 철폐해야만 신나게 실용을 해먹을 수 있는데, 보안법에 발목이 잡혀서 하고 싶은 실용을 맘대로 못하다니’ 하면서 울상을 지었다.
분명히 말한다. 보안법 라운드는 우리가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소중한 찬스였다. 우리는 외면하여 고개를 돌리고 있는 국민들에게 말을 붙여야 했고 그들을 설득해야만 했다.
보안법은 언제가 되든 어차피 폐지될 수 밖에 없다는 인식을 심어주는데 주력해야 했다.
그러나 국민을 상대로 하지 않고 오직 국회의원 얼굴만 쳐다보면서, 의원들 바짓가랑이에 매달려서 ‘의원님! 어떻게 이거 하나만 처리해 주시면 안될깝쇼’ 하고 애걸하는 표정을 지은 명계남들의 모습은 가짜였다.
진정한 개혁세력이라면 국민을 직접 설득할 수 있는, 몇 십년에 한번 올까말까한 절대찬스를 만나 신이 났어야 했다. 그 상황에서 울상지은 자들은 우리와 함께 끝까지 같이 갈 사람들이 아니다. 보안법 철폐라는 표면의 목적은 같지만 실제로는 그 시점부터 그들과 우리는 완전히 다른 길을 갔던 것이다.
●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애걸하여 한건 올려보려는 자.. 가짜다.
● 국민을 직접 설득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활용하며, 특히 정치에 무관심한 젊은 층 유권자들을 상대로 어필하여 정치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는 방법으로 장차 100만 표를 벌어오는 자.. 진짜다.
명계남류의 공통점은 국민을 바라보고 정치하지 않는다는 거다. 그들은 금뺏지들 얼굴만 쳐다보았다. 보안법 철폐에 한건주의로 매달려서 천정배를 압박해 보다가, 그 한건이 성사가 안되니 돌연 천정배를 두둔하는 식으로 좌충우돌 했다. 그들은 보안법 라운드가 국민설득의 장이었다는 본질을 간과한 것이다.
명계남류가 보안법 철폐에 관심이라도 있는 척 연극을 한 이유는 이 문제가 우선 해결이 안되면 실용파가 두고두고 개혁파에 발목이 잡힌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안법 이거 한건만 성사시키면 두고두고 생색을 낼 수 있는데. 개혁파들에게 보안법 철폐라는 떡 하나 던져주면 그들도 당분간은 조용해 지겠지.”
이런거. 그래서 심지어는 실용의 왕 김혁규도 보안법 철폐를 주장하였고 한 때는 안개모까지 보안법 철폐 대열에 합류했던 것이다. 거짓된 표정연기나 하면서 말이다.
이번 경선도 마찬가지다. 본질에 충실해야 한다. 싸움판을 달구어 저쪽의 감추어둔 힘을 최대한 끌어내기, 우리당 안에서 우리가 모르는 질서로 군림하고 있는 연청의 압박을 백일 하에 드러내기.. 그 자체가 성과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과 대화한다는 것은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우리에게 경선의 목표는 특정 후보의 당선이 아니었다. 저쪽의 숨은 힘을 노출시키기, 정당개혁 어젠다 세팅, 당권파에 맞서는 범개혁 연대로 힘의 균형을 도모하기.. 이게 더 중요하다.
보라! 지금은 한나라당도 책임당원제니 뭐니 하며 우리당의 기간당원제를 때라배우기 하고있지 않는가. 이 얼마나 멋진 성과인가. 박근혜의 그저먹기 라운드가 되는 책임당원제를 시행하면 한나라당은 그날로 붕괴할 것이 뻔하다.
참고로 말하면 한나라당에게 민주주의는 독이다. 그들은 옛날 방식으로 얌전하게 회창님을 섬기며 제왕적 총재의 당내독재를 하는 것이 그나마 남은 목숨을 하루라도 늘리는 길이다.
관포지교를 꿈 꾸며
김두관의 탈락은 아쉽지만 그를 위해서 필자가 도울 수 있는 일은 없을듯 하다. 그분도 훌륭한 한 사람의 정치인이라고 보지만 김두관의 정치하는 방식이 필자와는 맞지 않는다. 이심전심이 되지 않는다.
이번 경선도 마찬가지다. 그는 당차게 문희상을 비판하며 앞으로 치고나가지 못했다. 혹시 문희상의 2순위표를 바랬던 것은 아닐까? 당선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최대한 저쪽을 두들겨서 저쪽의 본질이 드러나게 하기, 정당개혁의 어젠다를 천명하기, 유감없는 승부를 펼쳐서 경선 흥행의 일등공신 되기.. 등으로 멋진 승부를 펼쳤어야 했다.
이해찬 총리의 말인데.. 노무현 대통령은 판짜기의 명수이고 자신은 노무현 대통령이 짜놓은 구도대로 기획하고 실행하기의 명수라 했다. 유시민은 당의장에 도전하는 척 하며 저쪽의 시야를 혼란시켜 놓고 판짜기를 한 것이다.
어떤 바보는 이걸 두고 유시민의 교묘한 정치기술이라고 폄하는데 그 논리를 노무현 대통령에게는 왜 적용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천만의 말씀이다. 당선이라는 사심을 버리고 최선을 다해서 우리당 경선을 흥행시키는 거.. 멋진 거다.
노무현 대통령도 그렇지만 유시민은 판을 짜는 방법을 안다. 유시민이 판을 잘 짜놓았기 때문에 우리는 앞으로 편해질 것이다. 그것이 승자인 국참연이 울상을 짓고 있고 패자인 서프라이즈가 도리어 신이 나 있는 이유다.
“나중에 무엇이 되려고 하지 말고, 지금 무엇을 할것인가를 생각하라.” (김대중 전 대통령 어록)
판짜기에 능한 사람도 하나의 목표를 일관되게 밀어붙이는 데는 서투른 경우가 많다. 판을 짜려면 먼저 판을 비워야 하는데, 판을 비우려면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양동작전을 구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필연 이쪽 저쪽으로 뛰어다니며 행동반경이 넓어져서 하나의 타켓에 집중하지 못한다.
반면 기획과 실행에 능한 사람이 판짜기에는 미숙한 경우도 많다. 기획과 실행은 시스템에 의존해야 하는데 그 경우 보폭이 좁아지고 행동반경이 축소되기 때문에 역으로 포위되고 만다.
유시민과 김두관은 정치 스타일이 다르다. 둘은 안맞는 궁합이지만 역으로 그것이 더 잘 맞는 궁합일 수도 있다. 남녀 간에도 그렇다. 서로 취미와 기호가 비슷하면 언뜻 잘 맞을듯 하지만 실제로는 잘 안맞는다.
남녀가 둘 다 영화를 좋아하면 멜로를 볼것인가 액션을 볼것인가를 두고 티격태격 한다. 둘 다 TV를 좋아하면 채널 선택권 가지고 밤마다 싸운다. 반면 취향이 다르면 상대방이 잘 하는 분야를 서로 배우면서 맞춰갈 수 있다.
관중과 포숙아의 고사가 그러하다. 둘은 잘 맞는 콤비였지만 실제로는 역할이 달랐다. 포숙아가 잘 나갈 때 관중은 빈한하였다. 둘이 동업을 했지만 관중은 삥땅을 일삼았다. 포숙아는 모른 체 했다. 관중은 늘 사고를 쳤고 포숙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관중을 도왔다. 관중은 보란듯이 성공했지만 그 작품은 포숙아가 빚어놓은 작품이었던 것이다.
김두관과 유시민이 관포지교를 보여줄 것인가? 척박한 이 나라 정치판에서 그런 기적을 기대한다는 것은 순진하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나는 늘 기적을 믿는다.
필자가 유시민을 두둔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유시민이 개혁당을 팽개치고 우리당으로 튀었을 때는 비판도 많이 했다. 그 일로 필자에게 유감을 가지고 있는 유시민 지지자들도 많다.
그러나 필자는 평소 유시민이 정치 하나는 시원하게 잘한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보안법 문제와 파병문제에서 필자와 의견이 맞지 않는 점도 있었지만 그런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예컨대 이런 거다.
“유시민의 결정이 반드시 옳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이 양반이 꼬여있는 정치판을 시원하게 풀어가는 능력 하나는 있네.”
옳으냐 그르냐 보다는 상황이 막히느냐 뚫리느냐로 보는 것이다. 유시민은 뭔가 교착된 상황을 뻥 뚫어준다는 느낌을 가지게 한다. 정치 한번 시원시원하게 잘 한다. 최악의 정치는 상황이 교착되어 도무지 진도가 안 나가주는 것이다. 그런데 유시민은 어떤 경우에도 진도를 나가준다.
예컨대.. 파병문제라면 가치관이 중요하다. 실제로 파병이 이루어졌는가 보다는 그 사람의 가치관이 전쟁우선인가 평화우선인가가 중요하다. 우리는 파병문제를 이슈화 하여 국민을 설득하려는 목적을 하나 더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본질을 보지 못하는 정치인이라면.. 그 사람이 설사 파병 저지에 상당한 열의가 있다 해도 답답할 뿐이다. 한숨 나온다. 꽉 막혀서 안풀리는 느낌 말이다. 그런 인간과는 대화를 포기해야 한다. 소통은 불가, 상황은 교착, 되는 일은 없음이다.
유시민이 말을 바꾸었다는 주장도 있는데 필자가 보기에 유시민은 말을 바꾼 적이 없다. 다만 사회자 노릇을 했다. 유시민은 토론을 이끌어 가면서 이사람 저사람에게 말을 시켰다.(그것이 바보들에게는 말을 바꾸기로 보일 수도.) 그 과정에서 국민을 설득하여 내는 소득을 올렸다.
말바꾸기 전문으로 악선전 된 DJ도 그렇고 노무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말을 바꾼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사회자의 역할을 맡아서 국민들에게 말을 거는 방법으로 응수타진을 하면서 국민참여형으로 토론을 이끌어 가는 것이다.
보안법 문제도 마찬가지다. 보안법이 왜 나쁜가를 국민들에게 인식시켜 주는 절차가 보안법의 개폐 그 자체보다 더 상위의 가치다. 이거 알아야 한다.
명계남류도 보안법 철폐를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어떻게든 보안법을 철폐해야만 신나게 실용을 해먹을 수 있는데, 보안법에 발목이 잡혀서 하고 싶은 실용을 맘대로 못하다니’ 하면서 울상을 지었다.
분명히 말한다. 보안법 라운드는 우리가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소중한 찬스였다. 우리는 외면하여 고개를 돌리고 있는 국민들에게 말을 붙여야 했고 그들을 설득해야만 했다.
보안법은 언제가 되든 어차피 폐지될 수 밖에 없다는 인식을 심어주는데 주력해야 했다.
그러나 국민을 상대로 하지 않고 오직 국회의원 얼굴만 쳐다보면서, 의원들 바짓가랑이에 매달려서 ‘의원님! 어떻게 이거 하나만 처리해 주시면 안될깝쇼’ 하고 애걸하는 표정을 지은 명계남들의 모습은 가짜였다.
진정한 개혁세력이라면 국민을 직접 설득할 수 있는, 몇 십년에 한번 올까말까한 절대찬스를 만나 신이 났어야 했다. 그 상황에서 울상지은 자들은 우리와 함께 끝까지 같이 갈 사람들이 아니다. 보안법 철폐라는 표면의 목적은 같지만 실제로는 그 시점부터 그들과 우리는 완전히 다른 길을 갔던 것이다.
●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애걸하여 한건 올려보려는 자.. 가짜다.
● 국민을 직접 설득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활용하며, 특히 정치에 무관심한 젊은 층 유권자들을 상대로 어필하여 정치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는 방법으로 장차 100만 표를 벌어오는 자.. 진짜다.
명계남류의 공통점은 국민을 바라보고 정치하지 않는다는 거다. 그들은 금뺏지들 얼굴만 쳐다보았다. 보안법 철폐에 한건주의로 매달려서 천정배를 압박해 보다가, 그 한건이 성사가 안되니 돌연 천정배를 두둔하는 식으로 좌충우돌 했다. 그들은 보안법 라운드가 국민설득의 장이었다는 본질을 간과한 것이다.
명계남류가 보안법 철폐에 관심이라도 있는 척 연극을 한 이유는 이 문제가 우선 해결이 안되면 실용파가 두고두고 개혁파에 발목이 잡힌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안법 이거 한건만 성사시키면 두고두고 생색을 낼 수 있는데. 개혁파들에게 보안법 철폐라는 떡 하나 던져주면 그들도 당분간은 조용해 지겠지.”
이런거. 그래서 심지어는 실용의 왕 김혁규도 보안법 철폐를 주장하였고 한 때는 안개모까지 보안법 철폐 대열에 합류했던 것이다. 거짓된 표정연기나 하면서 말이다.
이번 경선도 마찬가지다. 본질에 충실해야 한다. 싸움판을 달구어 저쪽의 감추어둔 힘을 최대한 끌어내기, 우리당 안에서 우리가 모르는 질서로 군림하고 있는 연청의 압박을 백일 하에 드러내기.. 그 자체가 성과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과 대화한다는 것은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우리에게 경선의 목표는 특정 후보의 당선이 아니었다. 저쪽의 숨은 힘을 노출시키기, 정당개혁 어젠다 세팅, 당권파에 맞서는 범개혁 연대로 힘의 균형을 도모하기.. 이게 더 중요하다.
보라! 지금은 한나라당도 책임당원제니 뭐니 하며 우리당의 기간당원제를 때라배우기 하고있지 않는가. 이 얼마나 멋진 성과인가. 박근혜의 그저먹기 라운드가 되는 책임당원제를 시행하면 한나라당은 그날로 붕괴할 것이 뻔하다.
참고로 말하면 한나라당에게 민주주의는 독이다. 그들은 옛날 방식으로 얌전하게 회창님을 섬기며 제왕적 총재의 당내독재를 하는 것이 그나마 남은 목숨을 하루라도 늘리는 길이다.
관포지교를 꿈 꾸며
김두관의 탈락은 아쉽지만 그를 위해서 필자가 도울 수 있는 일은 없을듯 하다. 그분도 훌륭한 한 사람의 정치인이라고 보지만 김두관의 정치하는 방식이 필자와는 맞지 않는다. 이심전심이 되지 않는다.
이번 경선도 마찬가지다. 그는 당차게 문희상을 비판하며 앞으로 치고나가지 못했다. 혹시 문희상의 2순위표를 바랬던 것은 아닐까? 당선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최대한 저쪽을 두들겨서 저쪽의 본질이 드러나게 하기, 정당개혁의 어젠다를 천명하기, 유감없는 승부를 펼쳐서 경선 흥행의 일등공신 되기.. 등으로 멋진 승부를 펼쳤어야 했다.
이해찬 총리의 말인데.. 노무현 대통령은 판짜기의 명수이고 자신은 노무현 대통령이 짜놓은 구도대로 기획하고 실행하기의 명수라 했다. 유시민은 당의장에 도전하는 척 하며 저쪽의 시야를 혼란시켜 놓고 판짜기를 한 것이다.
어떤 바보는 이걸 두고 유시민의 교묘한 정치기술이라고 폄하는데 그 논리를 노무현 대통령에게는 왜 적용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천만의 말씀이다. 당선이라는 사심을 버리고 최선을 다해서 우리당 경선을 흥행시키는 거.. 멋진 거다.
노무현 대통령도 그렇지만 유시민은 판을 짜는 방법을 안다. 유시민이 판을 잘 짜놓았기 때문에 우리는 앞으로 편해질 것이다. 그것이 승자인 국참연이 울상을 짓고 있고 패자인 서프라이즈가 도리어 신이 나 있는 이유다.
“나중에 무엇이 되려고 하지 말고, 지금 무엇을 할것인가를 생각하라.” (김대중 전 대통령 어록)
판짜기에 능한 사람도 하나의 목표를 일관되게 밀어붙이는 데는 서투른 경우가 많다. 판을 짜려면 먼저 판을 비워야 하는데, 판을 비우려면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양동작전을 구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필연 이쪽 저쪽으로 뛰어다니며 행동반경이 넓어져서 하나의 타켓에 집중하지 못한다.
반면 기획과 실행에 능한 사람이 판짜기에는 미숙한 경우도 많다. 기획과 실행은 시스템에 의존해야 하는데 그 경우 보폭이 좁아지고 행동반경이 축소되기 때문에 역으로 포위되고 만다.
유시민과 김두관은 정치 스타일이 다르다. 둘은 안맞는 궁합이지만 역으로 그것이 더 잘 맞는 궁합일 수도 있다. 남녀 간에도 그렇다. 서로 취미와 기호가 비슷하면 언뜻 잘 맞을듯 하지만 실제로는 잘 안맞는다.
남녀가 둘 다 영화를 좋아하면 멜로를 볼것인가 액션을 볼것인가를 두고 티격태격 한다. 둘 다 TV를 좋아하면 채널 선택권 가지고 밤마다 싸운다. 반면 취향이 다르면 상대방이 잘 하는 분야를 서로 배우면서 맞춰갈 수 있다.
관중과 포숙아의 고사가 그러하다. 둘은 잘 맞는 콤비였지만 실제로는 역할이 달랐다. 포숙아가 잘 나갈 때 관중은 빈한하였다. 둘이 동업을 했지만 관중은 삥땅을 일삼았다. 포숙아는 모른 체 했다. 관중은 늘 사고를 쳤고 포숙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관중을 도왔다. 관중은 보란듯이 성공했지만 그 작품은 포숙아가 빚어놓은 작품이었던 것이다.
김두관과 유시민이 관포지교를 보여줄 것인가? 척박한 이 나라 정치판에서 그런 기적을 기대한다는 것은 순진하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나는 늘 기적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