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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787 vote 0 2023.12.18 (17:43:44)

    민족이란 무엇인가?


    영국과 프랑스가 제국주의를 구가하며 세계를 식민지로 만들었을 때 독일은 식민지가 없었다. 나폴레옹이 민족주의를 수출하자 거기에 가장 열광적으로 호응한 나라는 독일이다. 괴테는 나폴레옹을 찬양했고, 베토벤은 영웅교향곡을 바쳤고, 니체의 초인사상을 앞세워 나폴레옹 우상화에 나섰다. 


    헤겔은 나폴레옹을 보고 '보라! 저기 세계정신이 온다'고 외쳤다. 아부의 극치. 철학자 망신. 내 얼굴이 화끈거려. 독일인들이 감격한 이유는 나폴레옹이 민족주의를 자극하여 오늘날의 독일을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신교와 구교의 갈등에 분열된 독일을 민족주의 복음으로 치유해 준 거다.


    그러나 독일인은 폭주했다. 그들은 민족을 얻은 다음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제국주의로 나아갔다. 영국과 프랑스가 저지른 추악한 세계범죄에 그들도 합류하고 싶었던 것이다. 너희만 나쁘기냐? 나도 나쁘고 싶다. 이런 그림. 프랑스는 나폴레옹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타고난 제국주의자였다. 


    제국은 민족 위에 있다. 그들은 전후에 알제리인을 학살하고 베트남 독립지사 3만 명을 단두대에 세워 목을 잘랐다. 이미 제국을 얻었기에 민족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나폴레옹 덕에 오늘날의 유럽이 만들어졌고 루이 14세가 만든 프랑스의 패권은 사라졌다. 영국은 나폴레옹을 싫어한다. 


    프랑스가 싫기 때문이다. 백 년 동안 프랑스를 괴롭힌 과거가 켕기는 거. 일본인이 한국을 싫어하는 이유와 같다. 왜구 시절에 저지른 그들의 추악한 과거를 한국인들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난 네가 지난 왜정 때 저지른 일을 알고 있어.' 인간은 어떤 단위를 기준으로 사유하고 행동하는 동물이다. 


    가족이나 부족이 단위가 된다. 더 큰 무대를 발견하면? 민족이 존재하는 이유는 세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넓은 운동장이 있으면 축구를 하고 좁은 공간에서는 족구를 한다. 인류가 세계를 발견했기 때문에 민족주의 대두는 필연이다.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이유다. 30년전쟁부터 계산해야 한다. 


    나폴레옹 전쟁, 크림전쟁이 모두 세계대전이다. 1차대전은 사실 4차대전이라 할 것이다. 민족주의 부정은 세계 부정이다. 민족과 제국과 세계전쟁은 동시에 발생한다. 민족이 등장했을 때 양차 세계대전은 예약되었다. 30년전쟁은 종교전쟁으로 시작했지만 사실 독일을 찢기 위한 전쟁이었다. 


    독일이 통일되면 인류에게 해롭다. 이게 본질이다. 민족주의가 뜨면 독일이 통일되고 독일이 통일되면 유럽이 중국된다. 그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러시아가 통합되면 독일보다 해롭다는 사실도 명백하다. 프랑스는 작아 상관없고 영국은 섬이라 무해하다. 지구에 해롭지만 유럽에는 해가 없다.


    인류 단위로 보면 민족주의는 피해 갈 수 없는 관문이다. 필연적으로 등장하게 되어 있다. 인간에게는 의사결정구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말을 하려면 단어가 있어야 하고, 물질을 다루려면 원자가 있어야 하듯이, 세계로 나아가려면 민족이 필요한 것이다. 힘을 쓰려면 지렛대가 필요한 것이다.


    민족주의를 잠시 누를 수 있지만 사라질 리는 없다. 결국 독일은 일어났고 러시아는 발호했다. 미국이 없었다면 유럽은 진작에 중국화 되었을 것이다. 지식인이 민족주의를 부정하는 이유는 그들이 세계를 장악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실이지 민족주의는 세계로 진출하지 못한 촌놈들의 것이다. 


    그들이 더 높은 세계를 발견하고 그만 흥분해 버린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우빨들은 왜 우파의 전매특허인 민족주의를 반대하고, 줄기차게 민족타령을 늘어놓던 박정희를 부정하고, 일제히 친일파가 되었는가? 박정희는 세뇌교육을 목적으로 만든, 이른바 국민교육헌장 첫 줄에 민족을 박아놓았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거 안 외어 본 사람 있나? 하긴 요즘 2030은 모를 수도. 이찍이 이찍 되는 데는 이유가 있지. 우빨은 민족 대신 이념을 선택했다. 계략은 조갑제 머리에서 나왔다. 그들은 민족보다 더 큰 단위가 있다고 믿는다. 냉전은 끝났지만 신냉전을 만들어야 한다. 


    민족이 의사결정의 단위가 되면 피곤하고 중러 대륙세력 대 미일 해양세력으로 새로운 이념대결구도가 만들어져야 한다. 독일과 러시아는 덩치가 크고 유럽 가운데 있어서 민족으로 밀어볼 수 있지만 한반도는 구대륙의 귀퉁이라서 민족으로 밀 수 없다. 일단 쪽수대마왕 13억 중국 한족에 막힌다. 


    민족을 단위로 삼든 냉전을 단위로 삼든 그들의 목적은 촌놈이 더 큰 세계 무대로 뛰어드는 것이다. 좌파들은 민족주의를 반대한다. 그러나 민족주의와 제국주의가 역사적으로 대결해 온 사실에는 눈을 감는다. 민족주의가 선을 넘으면 제국주의로 변질된다. 민족이냐 제국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인간은 싸움을 붙을 건덕지만 있으면 어떻게든 싸운다. 민족이 구실이 되든 이념이 구실이 되든 본질은 싸우고 싶은 인간이 그만 흥분해 버린 것이다. 어린이가 공터를 발견하면 곧 집에 가서 축구공을 가져오듯이 말이다. 우리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 쿨해져야 한다. 더 높은 세계를 봐야 한다. 


    세계사의 도도한 흐름 안에서 용해된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인간을 믿고 다음 스테이지로 올라서는 수밖에 없다. 민족주의는 반드시 한 번은 거쳐야 하는 문명사의 통과의례다. 잠복할 수 있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인간은 당면한 위기를 통제하려고 어떻게든 지렛대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나폴레옹과 조제핀


    프랑스는 사교계와 무도회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나라다. 영국인 리들리 스콧이 프랑스의 사교계 문화를 이해할 리 없다. 조제핀은 사교계를 장악할 능력이 있었고 나폴레옹은 프랑스인답게 연기했을 뿐이다. 잠시 동안 그들은 합이 맞았다. 황제가 된 다음부터는 연기를 할 이유가 사라졌다. 망했다.


    사교계는 민중의 분위기를 귀족들에게 전달하는 창구다. 숙종의 환국정치가 사교계 정치다. 루이 16세가 죽은 이유는 마리 앙투아네트가 사교계를 방치했기 때문이다. 사교계는 바람을 피우는 공간이다. 왕비가 그걸 좋아할 리가 있나.


    고상한 오스트리아 왕족이 미개한 프랑스 바람둥이 문화를 이해할 리가 있나? 왕은 정부를 이용하여 사교계를 장악하는데 루이 16세는 정부를 두지 않아 사교계가 망했고 이에 언론은 민중의 분위기를 왕실에 전달하는 창구를 잃었다. 언론이 일제히 등을 돌렸다. 망했다.


    보통은 민중의 분위기가 험악해지면 왕이 정부를 갈아치우고 새로 떠오른 사교계의 여왕을 중심으로 다시 해보자 하는 분위기가 되는데 조선의 숙종도 한 것을 루이 16세가 하지 않은 것이다. 눈치가 없어.


    나폴레옹은 조제핀과 이혼하고 적국 오스트리아 황녀 마리 루이즈와 결혼하면서 마리 앙투아네트 시즌 2를 찍기 시작하는데. 닮은 꼴로 소멸. 왕의 바람기가 사교계를 먹여 살리는 원동력인데 시민계급 조제핀과 이혼하고 왕족과 결혼했다는 것은? 루이 16세 시절로 돌아가 버린 것. 단두대를 피할 수 없다.


    사랑? 장난하냐? 조제핀과 나폴레옹의 사랑놀음은 프랑스 사교계 문화에 잘 맞아떨어지는 연기였을 뿐. 나폴레옹은 프랑스 특유의 사교계 정치를 했을 뿐.


    영화 '서울의 봄'을 봐도 쿠데타 세력의 주력무기는 육사 인맥이었다. 모든게 인맥 위주로 돌아가는데 그 인맥은 조제핀이 무도회에서 어떤 장군과 춤을 추느냐로 결정되는 것이다. 젊은 장군은 조제핀의 눈에 들려고 나폴레옹에게 충성을 바치는 것이다. 이걸 또 언론이 교묘하게 부추긴다. 그 구조가 깨지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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