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문제는 언어의 문제다. 언어의 문제는 관점의 문제다. 관점의 문제는 변화의 문제다. 변화의 문제는 사건의 문제다. 사건은 원인과 결과가 있고 전체와 부분이 있다. 우리는 어떤 둘을 동시에 추적하지 못한다. 엄마곰과 새끼곰이 흩어지면 사냥꾼은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사건은 변화를 일으키고 우리는 그 중에서 일부를 포기하게 된다. 오류가 일어나는 이유다. 인간의 실패는 사건의 내막이 복잡한데 그것을 언어로 충분히 나타낼 수 없다는 언어적 한계에서 비롯된다. 말하기 쉬운 부분만 말하는게 언어의 병폐다. 구조론은 숨은 내막을 들추어 표현한다. 언어의 걸림돌은 관점이다. 관측자와 관측대상이 있다. 둘이다. 벌써 헷갈린다. 하나는 쉽지만 둘은 추적하기 어렵다. 관측대상이 움직인다. 관측자도 움직인다. 관측대상과 그 움직임, 관측자와 그 움직임까지 넷을 동시에 추적해야 한다. 이를 추적하여 언어로 나타내기 어렵다. 움직임 속에서 움직이지 않는 것을 기준으로 삼으면 관측할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다. 그것은 나란히 가는 것이다. 상호작용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건의 밸런스다. 그것이 구조다. 사물은 움직이나 사건은 움직이지 않는다. 우리는 변화를 일방작용으로 착각한다. 사실은 상호작용이다. 화살이 날아가는 것은 일방작용이다. 테니스공이 오고가며 랠리가 길게 이어지는 것은 상호작용이다. 공은 움직이나 랠리는 유지된다. 공을 추적하면 정신없지만 랠리를 추적하면 편하다. 랠리를 유지시키는 것은 밸런스다. 사건의 밸런스를 추적하면 2가 1로 환원되므로 간단하다. 내가 공을 세게 치면 상대방도 세게 쳐서 랠리가 계속 이어진다. 선수는 공을 네트 너머로 보내면서 다음에 어디로 날아올지 예측할 수 있다. 문제는 심판의 개입이다. 랠리가 길게 이어지지 않으면 재미가 없다. 주최측은 룰을 바꿔서라도 랠리가 이어지게 만든다. 그것을 알아야 한다. 랠리가 끊어지면 일방작용이고 랠리가 이어지면 상호작용이다. 세상은 작게 보면 일방작용이고 크게 보면 상호작용이다. 세상을 상호작용으로 보는 관점을 얻어야 한다. 그러려면 판을 키워야 한다. 개인전은 일방작용이고 단체전은 상호작용이다. 국지전, 제한전, 단기전은 일방작용이다. 전면전, 총력전, 장기전은 랠리가 이어지는 상호작용이다. 작게 보면 변화가 보이고 크게 보면 불변이 보인다. 우리는 보는 방법을 바꿔야 한다. 그것이 관점이다. 대동소이라 했다. 크게 보면 같고 작게 보면 다르다. 크게 같은 것은 연결이고 작게 다른 것은 단절이다. 연결로 보면 같고 단절로 보면 다르다. 연결은 도로고 단절은 집이다. 도로는 같이 쓰고 집은 다른 집에 산다. 연결은 마이너스고 단절은 플러스다. 연결되어 있으므로 마이너스할 뿐이고 단절되어 있으므로 플러스할 뿐이다. 단절을 플러스 해봤자 상대가 맞대응 하므로 도로아미 타불이다, 상대가 대응하기 전까지 일시적 승리가 가능할 뿐이다. 반면 연결을 끊으면 영원히 종결된다. 사건이 해결된다. 플러스는 마이너스의 일부, 부분은 전체의 일부, 단절은 연결의 일부, 일방작용은 상호작용의 일부다. 우리는 원인과 결과의 시간추적에 능할 뿐 전체와 부분의 공간추적을 못한다. 원인에서 뿌린 것은 결과에서 수확하고 전체에서 뿌린 것을 부분에서 수확한다. 상호작용은 사건 전체고 일방작용은 한쪽 부분이다. 둘이 맞물려 돌아가는 사건 전체를 보는 눈을 얻지 않으면 안 된다. 언제나 전체가 먼저고 전체가 원인이고 전체가 앞서며 전체에 답이 있다. 사건과 사물이 있다. 사물은 짧고 사건은 길다. 교통사고가 났다면 사물의 문제다. 자동차에 결함이 있다. 같은 장소에서 사고가 반복된다면? 사건의 문제다. 도로를 잘못 설계했다. |
집이 또 다른 집을 농락하거나 희롱하면
공유자산인- 도로는 없다
집과 집은 한 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