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이 없는 문제는 없다. 꿩먹고 알먹는 경우는 없지만, 적어도 꿩과 알 중에서 무엇을 먼저 먹을지 우선순위를 정할 수는 있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방안은 없지만 모두가 납득할만한 방안은 있다.
시행착오와 오류시정을 통한 지구촌 인류의 총체적인 문제해결능력의 향상과정으로 보는 진취적인 관점이 필요하다! |
요는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 혹은 문제를 대하는 마인드에 관한 것이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도전과 응전』의 관점에서 보자는 것이다. 우리 앞에 놓여진 것은 『하나의 문제』이다. 우리는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관객의 갈채를 받으며 2003년 이 시대의 스타트라인에 선 것이다.
게이머는 하나의 스테이지를 돌파할 때 마다 새로운 도전자를 만난다. 적은 끝도없이 나타난다. 한 단계를 올라갈 때 마다 적의 화력은 두배씩 강해진다. 그렇다 해서 게이머가 불평을 터뜨리는 없다. 문제의 난이도에 비례하여 포인터를 벌고 레벨이 상승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얻는 것은 『문제해결능력』이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할 때 마다 우리는 그만큼 더 성숙해진다. 시행착오와 오류시정에 관한 데이터가 확보되고 노하우가 축적된다. 이런 점에서 긍정적인 마인드 없이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새만금스테이지는 대한민국의 화려한 성년식
새만금보호..! 사실 배부른
소리다. 70년대라면 불도저와 트럭이 없어서 바다를 못 메웠을 뿐이지 세발낙지가
불쌍해서 바다를 메우지 않은 일은 없다.
왜 새만금인가? 그만큼 우리는 더 성숙해진 것이다. 우리가 더 어른스러워졌기 때문에 예전이라면 문제가 안되는 일도 이제는 새로이 문제삼게 된 것이다.
개발시대는 지났다.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안목은 더 성숙해졌고 우리의 삶은 더 여유로와졌다. 그렇다면 그 성숙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다면 그 여유를 받아들여야 한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총체적으로 청소년기를 지나서 장년기가 된 것이다. 청년은 열심히 뛰어야 하지만 장년은 건강을 돌아보아야 한다. 술도 줄이고 담배도 끊을 때가 되었다. 그러므로 과거라면 무시하던 환경문제를 제기하게 된 것인데, 그 문제를 제기하는 방법이 유아틱하다면 곤란하다.
『아 씨바.. 새만금.. 족됐다.. 배째라.. 난 몰겠다..정부가 다 책임져라. 응애에요!!』
이런 식의 마구잡이 드러눕기식 접근은 유아틱한 것이다. 우리가 성숙해졌기 때문에 생겨난 문제라면 문제해결과정 역시 성숙한 태도로 접근되어야 한다.
『핵 폐기장이 온댄다 .. 아 족됐다. 어쩌꺼나...』
이런 정신상태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김정일넘이 핵개발 한다는데..아 씨바..우짜면 존노...』
이런 정신상태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책임을 떠넘기려는 비겁하고 무책임하며 미성숙한 태도가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
관리되지 않는 이념적 증폭은 위험하다. 환경문제를 지나치게 이데올로기화 해서 교조적으로 접근해서 안된다. 개발과 환경은 『균형의 문제』, 『우선순위 판단의 문제』, 『정도의 문제』이다.
균형 - 환경보호에 드는 비용은 어디서 조달할 것인가? 우선순위 - 무엇부터 우선으로 보호할 것인가? 정도 - 어느 정도의 속도로 사업을 추진할 것인가? 이 세가지를 판단해야 한다.
꼬리를 무는 노동자의 파업, 전교조와 네이스소동, 일가족 자살사건.. 다 마찬가지다. 동정이나 분노, 어설픈 감상주의로 문제를 바라봐서 안된다. 귀찮아하고 두려워해서도 안된다. 역사가 우리에게 숙제를 내주었다면 그 숙제를 해야한다. 대책없는 드러눕기는 방법할매가 용서하지 않는다.
새만금! 핵 폐기장! 과연 답은 있는가? 있다. 양쪽이 다 교조적인 논리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해결할 수 있다. 용도변경을 할 수도 있고 수질개선을 할 수도 있다. 합리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진취적 사고를 가져야 한다. 새만금 스테이지의 돌파는 대한민국의 화려한 성년식이라 할 수 있다.
개발시대는 끝났고 오사마리가 문제다.
멈추시오. 개발은 여기까지가 적당하오! |
만리장성이 오랑캐의 침략을 막아준 것은 아니다. 그러나 2000년전 로마인들이 만든 아피아가도는 지금도 제 구실을 하고 있다. 파나마운하는 건설과정에서 수만명의 인부를 희생시켰지만 그래도 없는 것 보다는 낫다. 개발이 모든 것을 보장해주지는 않지만 그것이 역사의 도전이라면 굳이 피해갈 필요는 없다.
아무리 답답하다 해도 대공황시대의 루즈벨트 대통령만큼은 아닐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시행착오와 오류시정의 과정을 통하여 인류의 문제해결 능력이 향상되었다는 점이다. 그랬기에 루즈벨트는 축적된 노하우를 활용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핵무기, 냉전, 이라큰전쟁, 다 마찬가지다. 선과 악 사이에서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총체적인 관점에서 인류의 문제해결능력의 점진적인 향상과정으로 수렴된다. 이라크전의 후과를 교훈삼아 김정일과 부시는 전쟁을 피하는데 성공하는 것이 문제해결능력의 향상이다. 균형, 우선순위, 정도, 이 세가지만 유념한다면 인류는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문제는 지도자의 리더십이다.
나름대로 대안을 생각해보지 않은 바는
아니나, 아마추어가 이러쿵저러쿵 하는건 도올 김용옥식의 주제넘은 발언이 된다.
대안은 전문가에게 맡기고 우리는 어떤 자세로 접근할 것인가만 이야기하자.
문제는 리더십이다. 좋은 해결방안을 제시해도 국민이 믿고 따라주지 않으면 반드시 탈이 나는 법이다. 리더십의 절반은 지도자의 능력이고, 나머지 절반은 국민의식의 성숙한 정도임을 알아야 한다.
정치가는 어차피 국민이 믿어주지 않을 것으로 지레짐작하고 무리한 정치적 고려를 해서 탈을 내고는 하는 것이다. 한가지 주문한다면 정치가는 어떤 경우에도 국민의 판단력을 믿어야 한다는 점이다. 당장은 불평을 늘어놓겠지만 결국은 성과를 인정하게 되어 있다.
환경이건 개발이건 21세기라는 한 시대의 스타트라인에 선 한국인의 첫 도전대상이다. 우리는 이 문제들을 해결하므로서 그만큼 더 성숙해지는 것이다. 이념을 앞세운 맹목적 반대나 강행은 안된다. 꼬인 것은 풀고, 막힌 것은 뚫고, 굽은 것은 펴고, 차근차근 잘 해나가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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