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를 배울 때는 주의해야 한다. 여성어와 남성어가 다르기 때문이다. 여자는 여자에게 배우고 남자는 남자에게 배워야 한다. 대구 사투리를 잘못 배운 로버트 할리처럼 우습게 되는게 아니라 아주 문법 자체가 다르다는 거다. 중국 일부 지역에는 여자들간에만 사용되는 언어도 있다고 한다. 최근에 여자어를 쓰는 사람이 없어져서 언어가 소멸할 위기에 처했다는 보도가 얼마전에 있었다. 여자의 금성어와 남자의 화성어는 실제로 언어의 의미와 용법이 다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소통이 막혀서 먹통이 되어 있는데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이건 뭐 촛불소녀와 이명박이 대화하는 식이라 아예 대화가 되지를 않는다. 야후에 연재되는 곽백수 작가의 트라우마 215화 ‘용개의 마음-변명’ 편을 부분 인용한다.
만화에서 두목은 규화보전을 연마하여 동방불패의 임청하처럼 점점 여자가 되어가고 있다. 성격도 여자처럼 바뀌어 간다는 거다. 그러나 이것이 단지 성격의 차이라고만 여긴다면 곤란하다. 실제로 언어의 쓰임새가 다르다. 문제는 이 만화의 작가 곽백수 역시 진상을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다라 이 만화를 보고 거기에 리플을 단 많은 독자들도 역시 모르고 있었다. 만화 속의 용개가 두목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듯이 이 만화의 작가도 이 만화에 공감하고 많은 추천을 누른 독자도 실제로 두목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문제가 크다. 확실히 소통이 막혔다. 막힌 것은 뚫어야 한다. 이 만화에 대한 독자의 리플을 인용하면.. “그 야후 재미존인가에도 있더군..남자가 잘못한 경우랑 여자가 잘못한 경우...마지막 컷은 전부 남자가 미안하다고 말하고 있더만....남자로 태어난게 죄냐?...젠장...’ 찬성수(81)” 이 리플에 찬성을 누른 81명은 역시 소통이 막힌 남자들인 거다. 그렇다면 확실히 문제가 있다. 다음 아고라에서 본 글에 이런 것이 있었다. 추운 겨울에 데이트를 하는데 여자가 두 시간이나 약속시간에 늦었다. 두시간 동안 추위에 떨며 기다린 남자는 여자를 위해 애써 미소를 짓고 있는데, 두시간이나 늦게 온 여자는 도리어 화를 내는 것이었다. 누가 붙잡고 누가 어쩌고 차가 막히고 해서 늦었다며 그 관련된 방해자들을 탓하며 일일이 화를 내는 것이다. 남자가 달랜다며 ‘괜찮아.’ 하고 말했더니 여자는 더 크게 화를 내는 것이었다. ‘오빠는 그 사람들 때문에 데이트 시간을 두 시간이나 손해봤는데도 괜찮다구? 나랑 같이 있는 시간이 두 시간이나 줄어도 괜찮은 거야? 나랑 같이 있는게 싫어?’ 이렇게 된다면 소통은 먹통이다. 남자가 말한 ‘괜찮다’는 말의 의미를 여자는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소통의 실패가 남자만의 잘못은 아니다. 여자 역시 남자의 입장을 전혀 배려하지 않고 자기 감정을 그대로 노출시키고 있다. 남자는 ‘문제의 해결’ 관점에서 생각한다. 더 이상 문제가 확대되지 않고 여기서 그친 사실이 다행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래서 괜찮다고 말한다. 이제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본 것이며 거기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자가 원하는 것은 데이트에 늦어져서 힘들었던 두 시간 동안의 아픔을 남자가 공감해 달라는 것이다. 물론 추위에 떨며 기다린 남자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입장만 주장하는 여자에게도 잘못은 있다. 문제는 이 남녀가 결국 답을 찾지 못하고 그대로 마음의 앙금을 남겼다는 거다. 삐치고 말 안 하게 되는 거다. 서로 바라보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소통의 장벽이 생겨난다. 문제는 이것이 단순히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언어 자체의 차이라는 데 있다. 여자와 남자 사이에 언어의 용법에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문제가 풀린다. 두목이 화가 난 진짜 이유는 ‘용개가 사과를 함으로써 문제가 해결되었으므로 이제 사태가 종결되었다’는 식으로 대응했기 때문이다. 두목은 용개가 두목의 마음 속으로 들어와서 두목의 고통을 함께 느끼길 원한 것이다. 두목 입장에서 보면 용개는 일방적으로 사태의 종결을 선언하고 있다. 남자는 전투적인 속성이 있기 때문에 상황이 더 악화되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을 항상 가지고 있어서 말이 그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다. 예컨대 여자가 넘어져서 다쳤다면 남자는 ‘괜찮아.’하고 여자를 안심시킨 다음 바깥을 둘러보며 또다른 위험요소가 있는지 살핀다. 전투적인 속성 때문에 항상 주위를 경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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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어와 여자어가 다르고, 그에따른 감성적인 훈련이 덜 되어있기 때문에 소통의 문제가 생기는 일은 빈번한데,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야 좋겠소? 드라마처럼 여자의 다친부위를 어루만지며 "얼마나 아플까?" 를 해야 하는게요? 아니면 연애초기부터 여자어와 남자어의 차이점에 대해서 차근히 설명을 해야 하는게요?
후자의 경우는 애초에 씨가 안먹힐 말이고... 전자의 경우는 나도 소싯적 좀 해봤소. 문제가 생기면 먼저 여자를 안심시키고나서 차근히 이런저런 문제의 근원과 해결방법을 알려주는 것이오. 실제로 이 방법이 여자가 원하고 이로서 단편적인 문제는 해결이 되지만, 장기적으로보면 여자 스스로 문제해결을 하지 않고, 남자에게 전가하는 결과에 되오.
여자어를 배운다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통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머리에 쥐나는 해결법이오. 결국 지금 기대하는 해법은 강한 개인이면서, 지성인 이면서, 멋진 지구인 여자를 찾는 것이오. 남녀사이의 소통의 문제는 늘 있는 문제(량)이고, 남자어와 여자어의 차이는 가치판단의 기준(힘)이라면, 질 단위에서 문제해결법은 바로 문제해결능력이 있는 여자를 만나는 것이오. 그리고 이러한 해결책을 가지고 있는 남자 중에는 나 말고도 르페님, 바라님, 박현천님 등이 있소.
오 달보기 맴버들이 해결책을 가지고 있소? 아마도 문제해결능력이 있는 여자를 못만난듯하오만.
개그콘서트에 나오는데
<시간을 돌리고 싶나 ?> 에 남자와 여자의 대화가 이것이군요
소통의 문제
소통 이전에 기본은 기본
기본이 없는 명바기는 기본이 있는 촛불소녀와 영원히 소통 불가능
기본이 없는 것은 쓰레기장으로 버리는 것이 기본
명바기와 소통을 시도하는 것은 무의미한 짓
동렬님의 글처럼
기독교를 전파하기위해 기독교의 미를 먼저 전파하는 것이 소통의 기교
명바기 이것에게는 먼저 무엇을 전파하나 ?
소통을 위한 새로운 언어를 깨닫는 것은 역시 재미가 있소~
ㅎㅎ 그런데 여자인 나도 가끔 여자의 언어를 이해하려면 마음의 노력이 필요할 때가 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