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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2503 vote 0 2010.09.26 (21:10:13)


-동영상 강의 자료입니다.-




  지성의 역사


  무질서하게 흩어진 지식을 하나의 체계아래 조직하여 일정한 방향성과 계속성을 부여함으로써, 지식이 스스로 지식을 낳는 구조로 작동하는, 저절로 돌아가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그 지식의 나무를 키워가는 것이 지성의 태도이다. 구조의 밸런스 원리에 지식을 올려태움으로써 가능하다.


  제 기특한 생각을 떠드는 것은 의미가 없다. 작은 개울물이 또다른 물과 만나 큰 강을 이루고 마침내 한 바다에 이르듯, 무수한 만남을 통하여 지식은 결집된다. 자신의 포지션을 어디에 둘 것인가이다. 세상의 모든 만남 앞에서 자신을 개방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열린 마음을 얻어야 한다.


  학문은 인류의 공동작업이다. 편벽한 구석에 포지션을 두고 세상과 만나는 문을 걸어잠근 채 자기탐닉에 빠진 종교나 주술과 다르다. 그들은 대중을 통제하기 쉬운 구석자리에 포지션을 정하므로 폐쇄성과 배타성을 가진다. 너른 광장으로 걸어나와 세상 전부와 승부해야 한다. 보편주의로 가야 한다. 세상의 모든 질문에 답하고 말겠다는 태도가 필요하다.


  구조는 존재의 에너지 진행원리다. 자연에서는 생명의 진화원리로 나타난다. 이를 인간사회에 반영하면 개인의 가치판단원리가 되고, 나아가 집단의 의사결정 원리가 된다. 이를 조직의 성장발달 원리에 올려태우면 지성의 시스템이 작동을 시작한다. 일찍부터 그러한 시도와 노력이 무수히 있었다.


  최초로 이러한 관점에서 사유한 인물은 ‘물 일원론’을 주장한 탈레스다. 물이라는 원소는 현대의 개념이고, 고대인물인 탈레스의 의도를 알려면 물의 속성을 봐야 한다. 물은 지류와 지류가 만나 본류를 이루고, 개울과 개울이 만나 강을 이루며 마침내 바다에 이르러 하나가 된다.


  인류의 지식 역시 물이 낮은 데로 모여들듯이, 전부 모여들어 하나의 패러다임을 성립시킨다. 탈레스는 지식의 자동증식 시스템을 구상하고 진화형 생장구조를 세팅한 것이다. 아이디어에 그쳤지만 말하자면 포드시스템으로 자동화된 지식공장을 차린 것이며 인류 집단지능의 소스코드를 개발한 셈이다.


  인류의 지식을 하나로 통섭하려면  먼저 표준을 정해야 한다. 진시황이 도량형을 통일하여 시장을 건설한 바와 같다. 표준은 구석에 있는 것을 광장으로 끌어내게 한다. 지식이 스스로 새끼를 치는 진화형 생장구조를 세팅할 수 있다. 지성의 엔진에 발동이 걸리면 눈덩이가 커지듯 지식이 저절로 자란다.


  한 방울의 물이 더 많은 물방울과 만나 큰 바다를 이루듯이 한 사람 한 사람의 지혜를 결집하면 큰 지성이 이루어진다. 세상이 바로 그러한 원리에 의해 창조되었으므로 인간의 삶도 마땅히 그 방향으로 가야 한다. 신이 우주를 건축한 원리와 인간이 지성을 건축하는 원리는 같다.


  소스코드가 호환되어야 지식의 개발자들 사이에 알고리듬을 주고받을 수 있다. 소스코드에는 물의 통섭하는 속성이 반영되어야 한다. 여러 개발자들이 각자 따로 작업한 실적을 하나의 플랫폼으로 통합시키려면 추상클래스의 표준화가 필요한 것이다. 그것은 첫째 일원론이고, 둘째 합리주의이며, 셋째 이상주의다.


  일원론은 물이 바다로 모여들듯 지식의 개발자들이 각자 개발한 개별적 지식을 전부 연계하여 하나의 입체적 모형 안에서 각자의 포지션을 부여하여 적절히 배치하는 것이다. 합리주의는 원인과 결과를 일치시켜 지식의 계속성을 보장하는 태도이다. 토막토막 끊어져 있는 지식을 전부 링크하여 하나로 이어주는 것이다. 포털사이트의 역할과 같다. 구글검색이 몇 단어의 검색어만으로 모든 웹페이지로의 도달가능성을 보장해 주는 바와 같다. 이상주의는 지식의 진보에 일정한 방향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최근에 올라온 새로운 지식을 상부 카테고리에 배치하여 지식들 상호간의 충돌을 막아준다. 낡은 지식과 새 지식이 뒤죽박죽으로 섞이는 일이 없도록 조정하는 것이다.


  일원론이라는 한 척의 배가, 합리주의라는 하나의 항해를 하며, 이상주의라는 하나의 등대를 바라본다. 배는 바람따라 흔들리며 오른쪽으로도 가고 왼쪽으로도 가지만 결국은 하나의 등대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일원론이 문제찾기라면, 합리주의는 문제의 풀이가 되고, 이상주의는 문제의 답이 된다. 문제를 찾는 것은 철학이고, 문제를 푸는 것은 과학이고, 답이 되는 것은 미학이다. 과학적 사실은 탐구대상인 자연의 사정일 뿐 근본은 인간 안에서 답을 찾아야 하므로 미학이 궁극적 답이다. 철학이라는 면화를 심고, 과학이라는 직조를 해서, 마지막에 미학이라는 재단사가 옷을 만드는 것이다.


 ◎ 철학적 일원론 -≫ 과학적 합리주의 -≫ 미학적 이상주의


  철학은 사과를 심고 과학은 사과를 가꾸고 미학은 그 사과를 먹는다. 설사 과학의 사과가 잘 가꾸어졌다 하더라도 인간이 그 사과를 먹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촛불투쟁에서 보듯이 이명박의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이 결코 촛불소녀의 미학적이고 이상주의적인 판단을 이기지 못한다.


  최종적으로는 인간을 탐구하여야 한다. 모든 포커스가 인간에게 맞춰져야 하며 그 과정에서 한 번 걸러져야 한다. 예컨대 아무리 위생적으로 제조된 물질이라도 공업용으로 생산된 것을 인간에게 먹이려 한다면 그것은 인간의 존엄에 대한 모독이 된다. 적어도 먹는 문제 앞에서 이명박식 실용주의 기준을 들이댄다면 그것이 야만의 폭력이다. 최종적으로는 미학적 이상주의가 결정한다.


  일원론은 나무가 하나의 뿌리로부터 자라남이며, 합리주의는 나무가 가지와 가지로 빠짐없이 전부 연결됨이며, 이상주의는 나무가 태양이 있는 하나의 방향으로 가지를 뻗음으로써 서로간의 충돌과 모순을 방지하는 것이다. 나무는 항상 새로 난 잎이 위로 간다. 인터넷도 항상 새로운 정보가 위에 뜬다.


  굶주림만 면할 수 있다면 광우병 위험 쇠고기라도 사양하지 않겠다는 이명박 생각은 625를 경험한 낡은 세대의 감수성이다. 광우병 위험 쇠고기를 거부하겠다는 촛불소녀의 생각은 새로운 세대의 젊고 예리한 감수성이다. 이명박이 촛불소녀를 이기려 한다면 새로 난 잎이 낡은 잎 밑으로 들어가서 햇볕을 못받게 되는 셈이니 그 나무는 결국 말라죽고 만다. 이것이 미학의 방향성 원리다. 애초에 방향을 잘못 잡으면 앞으로 나갈수록 손해다.


  일원론 출발점≫합리주의 계속성≫이상주의 방향성이라는 지성의 원칙이 지켜질 때 비로소 지식은 인격성을 획득하여 독립적 가치판단이라는 자발적 호흡을 시작한다. 개미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서로 협력한다. 지성이 자발적인 호흡을 시작할 때 지식의 개발자들은 누가 명령하지 않아도 사전에 교육받은 것처럼 스스로 오류를 시정하고 부단히 새로운 목표를 생산해낸다.


  일원론은 사유의 최초 출발점을 명확히 찍는다. 합리주의는 개인 플레이를 방지하고 힘을 모아 커다란 세력을 만든다. 이상주의는 인류가 나아갈 새로운 목표를 제시한다. 셋은 실상 하나다. 일원론으로 시작하고, 합리주의로 전개하며, 이상주의로 완결한다. 셋 중에서 하나가 무너지면 전부 무너진다.


 인간이 처음 태어날 때 모두 평등하게 빈손으로 태어나는 것은 일원론이고, 살아가면서 서로 협력하는 자가 더 쉽게 목표에 도달함은 합리주의며, 젊은이의 생각을 존중하고 격려하는 것은 이상주의다. 누군가는 처음부터 황금을 양 손에 쥐고 태어나거나, 혹은 반칙하는 사람이 더 쉽게 성공하거나, 혹은 젊은이의 발랄한 생각을 억압하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 지성의 호흡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이는 지성의 결이다. 지식 자체의 작동원리다. 어떤 이유로도 여기에 인간이 끼어들어 변개하거나 조작하면 안 된다. 시스템이 죽기 때문이다.


  철학은 일원론이 있을 뿐이며 이원론이라든가 다원론이란 것은 원래 없다. 그것은 언어적으로 불성립이다. 일원론(一元論)의 원은 으뜸이니 1이다. 일원은 이미 동어반복이며 원론(元論)으로 충분하다. 2는 버금이며 차(次)다. 2는 원(元)이 될 수 없으므로 이차(二次)가 맞다. 2차는 1원을 따르므로 결국 일원론으로 환원된다. 다원(多元)도 언어적으로 불성립이다.


  현대철학이 구조주의로, 언어철학으로 방향을 잡아가는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다. 구조로 보고 언어로 보면 반드시 답이 나온다. 이름이 수상한 것은 대개 가짜다. 부시가 ‘핵무기’라는 구체적인 팩트를 지칭하지 않고, ‘대량살상무기’라는 듣도보도 못한 이름을 들고 오는 것이나, 이명박이 ‘운하사업’이라 하지 않고 ‘사대강사업’이라는 어색한 이름을 들고 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름이 불투명하면 실상도 불투명하다. 무기면 무기 이름을 대고 사업이면 사업명을 대야 한다. 도로사업이면 도로사업이고 댐사업이면 댐사업이다. UFO를 예로 들 수 있다. 미확인비행물체는 허어(虛語)다. 비행이면 항적이 확인되어야 하고 물체면 질량이 확인되어야 한다. 비행사실이 확인되지 않고, 물체인지도 확인되지 않았다면 그냥 ‘수수께끼 기상현상’이거나 ‘미확인 관측정보’지 UFO는 될 수 없다. 이름 자체가 속임수다.


  텔레파시라든가, ESP라든가, 미스테리서클이라든가, 기(氣)라든가, 경락(經絡)이라든가, 사상체질이라든가 하는 식으로 실체가 없이 요상한 이름만 지어놓고 그것을 기정사실화 하는 방법으로 사람을 현혹하는 속임수는 매우 많다. 무턱대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의혹을 제기해놓고, 받아쓰기 언론에서 묻지마 보도하여, 특정지역 중심으로 여론이 일어났으니 뭔가 의혹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우기는 되치기 수법이다. 원인과 결과를 뒤집는 것이다.


  구조는 언어에 반영된다. 언어의 구조가 있으므로 언어를 속일 수 없다. 논리로 추적해 보면 거짓은 반드시 걸러진다. 결론적으로 이원이나 다원은 언어적으로 성립할 수 없으며, 굳이 들이대려면 이단론(二段論) 혹은 다각론(多角論)이 되어야 한다. 사회에서 흔히 이원론이나 다원론을 말하는 이유는 모든 일원은 사건으로 전개하면서 시작과 끝, 원인과 결과, 음과 양, 여성과 남성, 앞과 뒤, 좌와 우, 상과 하, 겉과 속, 안과 밖의 이단을 거치게 되며, 또 다른 대상과 만나 짝을 지으면서 다각화 되기 때문이다. 이를 입체적 모형으로 이해해야 한다.


  어떤 하나는 기능을 태우면서 반드시 둘로 변하고, 둘로 된 것은 반드시 짝을 지으면서 여럿으로 나눠진다. 하나의 엔진이 운전자를 태우면 승용차가 되든 화물차가 되든 반드시 보디와 섀시 둘로 나뉜다. 마차라도 앞에서 끄는 말과 뒤에서 따르는 차체로 나눠진다. 이렇듯 2단으로 전개한 것은 필연적으로 바다로 가서 배가 되고, 공중으로 가서 비행기가 되며, 땅속으로 가서 전철이 되는 식으로 짝짓는 대상에 따라 다각화 된다. 도로와 짝지으면 자동차가 되고, 물과 짝지으면 배가 되고, 공기와 짝지으면 비행기가 되고, 땅속과 짝지으면 전철이 되는 식이다. 이는 구조적 필연이다.


  하나의 존재가 일원에서 이단으로, 다각으로 전개한다. 하나의 뿌리에서 여러 가지가 나오고, 다시 제각기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일원에서 출발하고 이단은 합리주의, 다각은 이상주의다. 이는 포지션 구분일 뿐 본래 하나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하나의 바다로 합류시키려는 일원론적 태도를 처음 주장한 사람이 탈레스라면, 종교가 이 방향으로 전개한 것은 고대 이집트의 태양신 신앙에서 비롯된 일신교다. 고대 수학을 이 방향으로 전개시킨 사람은 기하학 원론을 쓴 유클리드다. 논리학으로는 인과율이 이 포지션에 가 있다. 일원론-일신교-기하학 원론-인과율에 기초한 논리적 사고가 서구 합리주의 사고를 맹아단계에서 촉발시켰다. 근대성의 뿌리가 된다.


  고대 이집트는 해마다 나일강의 홍수가 모든 것을 쓸어버렸으므로 원점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발상법이 존재했다. 해마다 측량을 다시 해야 하는데 이때 첫 단추를 잘못 꿰면 이후 많은 일이 피곤해진다. 초기세팅의 중요성을 인식한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라면 다르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그렇다. 누군가가 ‘일을 이런 식으로 안 된다. 확 쓸어버리고 깨끗하게 처음부터 다시 하자’고 하면, ‘수천년 이어온 전통을 어떻게 뒤집겠는가. 그냥 하던대로 하자’고 응수한다.


  이집트에서는 매년 홍수가 나므로 매년 초기화 작업을 해본 경험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그러한 초기화 세팅에 동의하는 문화가 깔려 있었던 것이며 그것이 일신교≫일원론적 사고≫기하학 원론으로 나타난 것이다. 중국은 그런 초기화 경험이 없으니 그 일을 시작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근대에 있어서는 데카르트의 제 1원인 개념이 일원론의 관점에 서 있고, 한국에서는 화담과 율곡, 혜강으로 이어지는 기 일원론이 있고, 중국에서는 동중서의 천인합일 개념이 이와 유사하며, 한국의 사단칠정론도 마찬가지다. 사계절의 변화를 낳는 하늘의 운행법칙 ‘원형이정’이 인간에게로 옮아와서 ‘인의예지’ 사단의 이성이 되고, 다시 희노애락애오욕 칠정의 감정으로 전개하며 이는 일원론≫합리주의≫이상주의로 전개하는 패턴과 정확히 같다.


  하나의 근본에서 사유가 전개되어야 함을 우리조상들도 인식한 것이다. 다만 서구는 그 하나의 근본을 수학으로는 유클리드의 원론, 논리학으로는 인과율로 구체화 한데 비해, 한국의 유림들은 그냥 막연히 하늘의 법칙이라고만 말하고 말았던 차이다. 그러나 진리가 하나로 통섭한다는 발상 자체는 진보한 생각이다.


  합리주의는 조각을 이어붙여 크게 세력화 한다. 동양에서는 공자가 이 분야의 일인자다. 서구의 소피스트가 각개약진하며 개인플레이를 해서 그 시대 사람들의 웃음거리로 전락한데 비해 공자는 스스로 자신을 요임금과 순임금 밑에 종속시킴으로써, 그를 따르는 이들이 모두 자신에게 종속되게 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를 계승한 순자나 맹자, 주자 등은 모두 공자의 설계도 밑에 자신의 사상을 건축하게 되었던 거다.


  공자는 어떤 이론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학문의 시스템을 설계한 것이다. 공자가 인의를 주장하고 예를 강조하였지만 이는 공자 개인의 발명품이 아니라 당시 학자집단 다수의 의견이었으며, 공자는 군주에게 유세하여 제사에나 통용되던 이 원리를 정치에 반영시키려고 한 점이 각별하다.


  공자사상의 핵심인 왕도정치는 요즘 식으로 말하면 ‘지속가능한 정치’다. 군주 1인의 힘에 의존한 패도정치는 지속불가능한 것이며 다수의 의에 의존한 왕도정치는 지속가능하다는 것은 결국 세력화 된다는 거다. 이 부분이 핵심이다.


  서구에서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학문의 계보를 만들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분류학이 획기적이었다. 공자의 육예가 산술적 나열인 데 비해, 아리스토텔레스는 하위카테고리를 넣은 입체적 모형을 제시한다. 공자의 예, 악, 사, 어, 서, 수 사이에는 서열이 없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분류학에는 간지(幹枝)가 있다.


  알렉산더와 카이사르의 세계정부 구상은 진시황의 여러 아이디어와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일원론적인 구상이다. 한비와 마키아벨리의 근대적 사고 역시 시스템 원리를 따른다는 점에서 합리성이 있다. 인간의 의도를 배제하고 정치 자체의 내재한 법칙을 따른다는 점에서 근대적인 인식이다. 순수하고 존재 자체의 결을 따라가야 우주의 진리가 모두 합쳐진다.


  계몽사상가들의 백과전서 운동이나, 명대의 영락제, 청대의 강희제, 건륭제가 추진한 대학술사업, 다산의 백과사전식 지식, 다빈치의 방대한 저술 역시 합리주의의 흐름을 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400여권의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고 한다. 헤겔의 변증법에 반영된 구조적 접근과 토대와 상부구조를 사색한 마르크스의 구조적 사고 또한 합리주의 흐름 속에 있다.


  기독교의 삼위일체 개념은 매우 중요하다. 대부분의 종교가 폐쇄성과 배타성을 가지는데 비해 3위1체 개념은 현실정치를 상당부분 반영한다는 점에서 합리성을 가진다. 신과 인간의 소통 개념을 제시함으로써 경전을 화석화 시키지 않고 생명성을 부여한 것이다. 마호멧교의 꾸란이 수 천년이 지나도 한 자도 고칠 수 없는데 비해, 카톨릭은 정치적 입장에 따라 스스로 변신한다. 카톨릭이 최근에 갈릴레이를 사면한 것이 그 예다.


  인터넷에서 최신정보가 위에 오듯이 현실을 반영하여 스스로 변화해야 하며 그 논리가 삼위일체 개념이다. 신의 모습을 셋으로 나눴기 때문에 이를 통합할 교단이 역할이 부각된 것이다. 신과 인간이 카톨릭 교단을 매개로 직접 소통함으로써 하느님의 모습이 성경 안에 갇히지 않고 자유로운 생명성을 획득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점은 정치에 의해 악용될 수 있다는 위험도 있다.


  원시 기독교는 내일이나 늦어도 모레쯤 당장이라도 예수가 재림하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하늘로부터 소식이 없다는 사실은 큰 부담이었다. 예수의 약속에 얽매여 보폭이 좁아진 결과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화석화 된 것이다. 일부 세속주의 노선을 따르는 교파를 제외하고 아직도 터번을 벗지 못하는 마호멧교 역시 그러하다. 마호멧교는 사실 카톨릭의 3위1체를 반대하고 1위1체를 주장하며 상당부분 원시 기독교로 되돌아간 것이다.


  3위1체의 의미는 교단 중심으로 조직된 기독교 세계의 진보 그 자체를 하늘의 메시지로 보는 것이다. 카톨릭의 3위1체 개념이 기독교 안의 여러 조각난 사건들을 이어붙여 하나의 큰 방향성을 제시함은 불교가 소승불교에서 대승불교로 발전한 것과 비슷한 패턴이다. 현세의 여러 변화를 긍정하고 그 변화의 흐름 안에서 개별적인 사건을 해석하는 것이다.

 

  이상주의는 고대 그리스의 미(美) 숭배와 관련이 있다. 신라의 화랑도가 미소년을 위주로 선발되듯이 고대문화에서 미인숭배는 일반적인 것이었다. 고대인들은 미(美)의 원소가 존재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사람의 몸에는 아름다움의 엑기스가 충만되어 있으므로 발바닥에 입만 맞추어도 아름다움이 내게로 살짝 묻어온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하여 금화를 바치고 비너스상의 발에 입을 맞추려는 사람이 신전에 줄을 섰던 것이다. 비너스의 어원은 ‘받는다’는 뜻이며, 받는 것은 복이다. beauty의 어원도 ‘받는다’는 뜻이다. 비너스는 미의 신이면서 동시에 복의 신이다. 미인과 접촉하면 복을 받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불교의 카르마 개념도 이와 유사한 데가 있다. 오쇼 라느니쉬가 사이비인 이유는 시스템을 앞세우는 합리주의를 따르지 않고 교주 개인에 대한 숭배를 조장하기 때문이다. 롤스로이스를 바쳐서 라즈니쉬의 발바닥에 키스할 기회를 얻으려는 사람이 줄을 섰던 것이다. 그 결과로 라즈니쉬는 한때 1백 여대의 롤스로이스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카르마를 추상적인 논리가 아닌 어떤 구체적인 물질로 여기게 오도한 것이다. 모호성 속에 감추어 놓았다가 돈이 필요할 때만 카르마가 마치 거래될 수 있는 물질인 것처럼 군중을 현혹하곤 한다.


  그리스인은 건축과 조각에서 황금비례를 연구하거나 혹은 가장 이상적인 인간상에 집착하거나 하는 형태로 이상주의를 발전시켰다. 이 점은 일리아드와 오딧세이에 잘 나타나 있다. 승리한 아킬레스는 격정에 사로잡힌 불완전한 인간상의 전형으로 설정되고, 패배한 헥토르야말로 냉철하고 이성적인 점에서 최고의 인간상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는 패망한 트로이의 후예들이 서쪽으로 옮겨와서 오늘날의 로마를 건국한 것으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미에 대한 숭배를 기초로 하는 이상주의는 고대인의 일반적인 인식이었으나 부계사회가 정착되며 장자상속이 일반화 되자 유전자 개념이 대두되어 미에 대한 숭배는 사라졌다. 미인이 아름다운 이유가 신으로부터 복을 받아 그 몸에 미의 엑기스가 충만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부모로부터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고대사회에는 근친혼이 일반화 되었으므로 친족의 얼굴이 대개 비슷했다. 그 시대에는 용모를 친족집단의 일반적인 특성으로 여겼을 뿐 부자간에 얼굴이 닮는다는 사실은 잘 몰랐던 것이다.


  공자의 요순 개념이나 노자의 무위자연 개념, 석가의 깨달음, 모세의 구원 개념, 성경의 창세기, 르네상스인의 빛나는 예술, 플라톤의 이데아 개념이 모두 일정부분 이상주의를 담고 있다. 이상주의 본질은 새로운 것이 위에 올라가는 것이다. 날로 새로워짐으로써 내부에서 교착되지 않고 외부로 활로를 열어간다. 이는 인간의 진보가능성을 의미한다.


  공자의 요순정치 개념은 복고주의에 치우쳐 있으나 야만을 극복하고자 하는 문명의 진보에 대한 생각은 명확히 존재했다. 석가의 깨달음은 인격의 진보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젖혔다. 양적인 진보가 아니라 질적인 진보. 곧 레벨의 진보를 석가는 말하고 있다. 양적인 승부라면 상대의 것을 빼앗거나 상대를 제거하는 방법으로 우위에 설 수 있지만, 레벨이라면 남의 것을 뺏을 수 없다. 상대를 제거한다고 해서 자신의 레벨이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석가의 깨달음이 개인의 발전인데 비해 모세의 구원은 집단의 발전이라는 점이 각별하다. 소승에 머물렀던 불교가 합리주의를 채택하여 대승불교로 발전하듯이, 개인의 구원에서 머무르지 않고 집단의 구원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지성의 궁극적인 목적이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권력의 폭압에 맞서 의연하게 버틴 죽림칠현의 사귐이 큰 이정표를 세웠으며 이를 계승한 것이 꽃피운 남조문화이다. 현대 중국정신의 정수는 남조문화에 그 뿌리가 있다. 서원아집도에 묘사된 것처럼 유교의 선비와 불교의 승려, 도교의 도사가 함께 어우러지는 소동파의 사귐이나 차를 매개로 한 승려 초의와 추사의 사귐, 다산과의 교우도 그 연장선 상에 있다.


  최종적으로 선종불교가 동양정신의 스타일을 결정했다고 볼 수 있다. 출발점을 찍은 석가가 일원론이라면, 민중과 더불어 커다란 세력을 형성한 대승불교가 합리주의가 되고, 선종스타일의 심플한 문화를 창안한 선종불교가 이상주의를 완성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패턴은 기독교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모세와 예수가 일원론의 관점을 제시했다면, 카톨릭의 3위1체 개념이 합리주의를 열어 교단을 중심으코 크게 세력화 되었으며, 개신교가 탈정치화 하고 대중화 한 것은 선종불교와 유사하다. 선종불교는 미학적 스타일이 분명한데 비해 개신교는 미학적 이상이 불분명하다. 그러나 청교도의 엄격한 삶의 자세 속에는 명백히 미학적 추구가 반영되어 있다. 이는 모든 발달하고 진보하는 것이 거쳐가는 패턴이다.


  근대에 있어서는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개념이나 이후 한동안 유행한 이상주의 문학과 마르크스주의 등이 있다. 르네상스 이후 전개된 바로크식이니, 로코코식이니, 고딕식이니 하는 예술양식이나, 또 고전주의 음악이니, 낭만주의 음악 이니 하는 예술사조나, 인상주의 회화의 등장, 현대회화의 경향, 패션의 유행도 이상주의와 깊숙하게 연관되어 있다.


  된장녀니 명품녀니 하는 사치의 경향도 이상주의와 연결되어 있으며 구조원리에 따라 필연적으로 등장하게 되어 있다. 그 정점에 스티브 잡스의 명품 아이폰이 있다. 물론 다른 사람이 만든 명품을 추종하는 된장녀보다 자신이 직접 명품을 만드는 스티브 잡스가 더 명품이다. 명품을 몸에 걸치려 들 것이 아니라 스티브 잡스처럼 자신이 스스로 명품이 되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명품녀나 된장녀가 등장하지 않고 바로 스티브 잡스와 같은 명품인간이 탄생하는 일은 결단코 없다는 거다. 왜냐하면 르네상스인의 건축과 회화야말로 돈 잡아먹는 귀신이었으며, 그 당시 권력자들의 허세로 인한 명품건축 경쟁이 르네상스의 대반전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명품광 루이 14세가 민중의 고혈을 쥐어짜서 베르사이유 궁전을 건축하는 등 사치를 일삼은 결과로 문명이 진보했다. 물론 모든 사치가 진보를 낳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첨단의 사치는 진보를 낳는다. 미국과 러시아의 우주개발 경쟁도 사치에 불과하다. 아무런 소득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 유일한 소득이었다. 타인의 사치를 추종하는 모방의 사치가 아니라 앞에서 길을 개척하는 첨단의 사치이므로 가치가 있다.


  일본만 해도 그들이 찬양하는 이도다완에는 한국의 소박한 미가 반영되어 있을 뿐이지만 그것을 수집하는 수집가의 열의는 한국의 명품녀 못지 않은 야단스런 것이었다. 그러한 극단적 이상주의 추구가 오늘날 일본의 기술발전을 낳은 것이다. 한국식으로 대충 현대차 대충 소나타 하지 않았던 거다. 요즘도 일본에는 일년동안 열심히 저축하여 모은 돈으로 유럽에서 확 쓰고 오는 풍조가 있다고 한다. 일본 특유의 오타쿠 문화도 그 연장선 상에 있다. 단 10 분의 극치감을 위해 일 년 고생을 감수하겠다는 식의 열의가 있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확산되는 한국의 장비수집 붐도 이와 관련이 있다. 최신의 값비싼 자전거 장비나 텐트 장비를 쓰지도 않으면서 골고루 구색맞춰 갖추어놓고 자랑하는 식이다.


  일원론은 철학적 태도이며, 합리주의는 과학적 태도이고, 이상주의는 미학적 태도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철학은 모든 지혜를 하나의 바다로 결집하려는 태도이고, 과학은 크게 세력화 하여 단계적으로 문제를 풀어가려는 태도이며, 미학은 새로운 목표를 제시하려는 것이다. 이들은 실상 하나이다.


  공자의 왕도정치나 노자의 무위자연 개념은 모두 저절로 돌아가는 시스템을 지향하고 있다. 다만 공자의 경우 합리주의에 치우쳐 미학적 관점을 소홀히 한데 비해, 노자는 미학에 치우쳐 합리주의 관점을 소홀히 하고 있다. 동양정신의 큰 획을 그은 선종불교는 유교의 합리주의 경향과 도교의 미학을 동시에 통섭하고 있다. 다만 일원론적인 태도가 약하다. 최초의 출발점에는 논리학과 기하학이 와야 하는데 그 점을 대충 뭉개고 지나간 것이다.


  서구의 경우 어느날 갑자기 학문이 출현했다. 나일강에 홍수가 나면 모든 것을 새로 구획해야 하듯이, 갑작스럽게 새로 시작하면 최초의 출발점이 중요하게 된다. 게르만족은 원래 문자를 몰랐기 때문에 십자군 전쟁 때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에서 흘러나온 파피루스 문서를 훔쳐온 것이 그들에게는 학문의 시작이었던 셈이다. 아랍인 학자 이븐 루슈드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물을 라틴어로 번역하자 갑작스럽게 학문에 눈을 뜨게 되었다. 그 결과 전통과 관습을 무시하고 객관적인 눈으로 학문의 출발점을 탐색할 수 있었던 것이다.


  중국의 경우는 그 출발점이 없다. 학문이 어느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맨 처음의 포지션을 잃어버린 것이며, 일원론적인 관점을 잃어버렸고 따라서 실용주의 관점이 득세하게 되었다. 학문을 위한 학문, 공리공론의 순수한 학문이 아니라, 군주를 위한 쓸모있는 학문이 되었다. 이는 학문의 타락이다. 모든 현실의 쓸모는 미래의 방해자이기 때문이다. 반면 현세의 쓸모없음은 미래로 초대하는 관문이 되곤 한다. 봄에 뿌린 씨앗은 가을이 되기까지 공리공론이다. 소크라테스의 기행은 아테네인의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았지만 2500년 후 지금에 와서야 제대로 빛을 내게 되었다. 다빈치의 방대한 연구도 오백년동안 창고에서 잠 자고 있다가 근래에 빛을 보았다.


  유교와 도교의 미학은 공통적으로 교착되어 있는 어떤 것, 서로 충돌하고 있는 힘의 대립을 타개하고 바깥으로 길을 열어가는 태도로 볼 수 있다. 힘은 방해물을 제거하는 것이다. 칼로 자르는 것이다. 반면 의(義)는 끊어진 것을 잇는 것이다. 개인의 흩어진 생각을 하나로 이은 것이 대의다. 힘과 의는 반대방향을 보고 있다. 물질로 문제를 해결하려면 무언가 끊고 자르고 부수게 되지만 정신으로 해결하려면 무언가 잇고 합치고 세우게 된다.


  합리주의는 부서진 조각을 잇지만 이상주의는 그 토대를 넓힌다. 두 사람이 충돌하고 있을 때, 한 명을 죽이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생각이 법가적, 보수적, 야만적, 비합리적, 실용적 사고라면 두 사람을 화해시키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주의다. 두 사람을 화해시키려면 제 3자의 중재가 필요하다. 그 세 사람이 또 충돌하게 된다. 네 번째가 개입하며 또 다섯 째가 필요하다. 합리주의로 가면 세력화, 대형화 경향으로 가서 결국 백과사전을 편찬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박물학이나 다산의 여유당전서나 다빈치의 방대한 저술은 나름대로 백과사전을 쓴 것이다. 보편적이고 종합적인 지식을 추구한 것이다. 한 방으로 반전의 묘수를 짜내는 만사형통의 묘약이나 기적의 연금술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시대를 초월하여 적용되는 보편타당한 시스템을 개척한 것이다. 이러한 구조가 점점 커지는 동안에는 문제가 잘 해결된다. 남한과 북한의 충돌은 중국과 일본이 중재하고, 다시 러시아와 미국이 가세하는 식으로 점점 커지는 동안은 냉전구조가 유지되며 전쟁이 방지된다. 그러나 역시 한계가 있다.


  이상주의는 다른 방법을 쓴다. 이상주의는 백과사전을 쓰지 않는다. 대신 백과시점을 제시한다. 정상에서 보면 모두 보인다. 눈높이를 정상에 올려놓으면 만물이 모두 한 눈에 들어온다. 무엇인가? 싸우는 두 사람을 최종적으로 화해시키는 방법은 영토를 두 배로 늘리는 것이다. 영토가 넉넉하면 싸우지 않는다. 하나의 공간에 둘이 들어서므로 싸우는 것이다. 지구가 작아서 물리적 영토를 두 배로 늘릴 수 없으므로 마음의 영토를 늘리는 것이 이상주의다. 자유의 영토를 늘리고 영혼의 영토를 늘리며 진리의 영토를 늘리는 것이 이상주의다.


  공자의 요순 개념이나 노자의 무위자연 개념이나 소동파의 교유나 다빈치의 원근법이나 모두 일정한 정도로 영토를 늘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공자는 각기 다른 개인의 목적을 의 하나로 통합하여 마찰을 줄이는 방법으로 영토를 늘렸다. 이는 도둑을 두려워 하여 쌓아 놓은 담장을 허물 때, 그만큼 땅이 넓어지는 것과 같다. 그러나 공자의 방법은 한계가 있다. 담장면적 만큼만 넓어진다.


  노자의 무위자연 역시 물질적 추구에서 정신적 추구로 삶의 목표를 바꿈으로써 관심을 다른데로 돌려 마찰의 소지를 줄이고 영토를 늘린 효과를 얻었다. 모두가 정치투쟁에만 매몰되어 있으면 돌파구가 없다. 문화쪽에서 새로 활로를 개척하는 것이 노자의 이상주의다. 이는 모두가 오프라인 경쟁에 매몰되어 있을 때 온라인으로 진출하여 신규시장을 개척함으로써 영토를 늘린 효과를 얻는 바와 같다. 전화와 인터넷으로 연결되면 직접 집으로 찾아가지 않아도 간 것과 같으니 확실히 영토를 늘린 효과가 있다. 좁은 세상을 넓게 살자는 거다.


  소동파와 추사가 전범을 보인 선비의 사귐은 서원아집도에 묘사된 것처럼 생각이 다르고 종교가 다르고 가치관이 다른 사람과 공존함으로써 영토를 늘린 것과 같은 효과를 얻었다. 그것은 소통의 속도를 빠르게 하는 것이다. 이는 도시에 도로를 확충할 때 영토를 늘린 것과 같은 지가하락 현상이 일어남과 같다.


  이명박과 김문수는 요즘 GTX다 뭐다 해서 도로공사에 혈안이 되어 있다. 도로를 대거 건설하면 강남의 지가는 내려가게 되어 있다. 소통의 속도 증가가 영토확장과 같은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이는 유체역학으로 입증된다. 태풍이 나타나면 풍속이 빨라진다. 풍속증가는 기압하락으로 나타난다. 태양이 지구를 달구어 북태평양 고기압을 확장시켰을 뿐인데 돌연 강력한 저기압이 나타난다. 강남을 중심으로 도로가 충분히 개설되면 돌연 강력한 저기압이 강남에 들어선다. 그 순간 지가는 폭락한다.


  모든 종교나 사상의 2인자 혹은 중흥조들은 이원론을 만들어 일원론적 사고, 통합적 사고를 교란하는 패턴을 보인다. 유교는 본래 일원론적 관점을 가졌지만 증자가 효를 강조하면서 이원론적 경향을 보이기 시작한다. 증자의 효 개념은 군주를 위한 충 개념으로 변질되어 군주에 의해 통치술로 이용된다. 실상 효 개념은 중국인의 전통적인 관념일 뿐 공자와 무관하다. 공자는 증자를 별도로 인정하지 않았는데 증자가 자가발전하여 2인자 행세를 한 것이다. 맹자가 증자의 후예이기 때문에 공자와 효 개념을 등치시키는 논리를 기정사실화한 것 뿐이다. 이런 식으로 철학에 용도와 기능을 부여하기 시작하면 반드시 왜곡된다.


  성리학의 주희는 문약해진 송나라가 거듭 거란족의 침입을 당하자 오랑캐의 침략에 맞서 민중의 단합을 꾀할 목적으로 중화와 만이를 구분하고 남성과 여성을 차별하는 이분법을 주장했다. 학자의 양심을 팔아 군주를 위한 어용학문을 한 것이다. 한국의 퇴계 역시 고려가 몰락하고 조선이 들어서자 조선왕조를 창업한 서북세력의 지배에 맞서 남쪽으로 도망간 신라계 귀족세력의 정서를 대변하는 이원론을 주장한다. 어용학문은 아니래도 정치와 연계된 점은 분명하다.


  소크라테스를 계승한 플라톤 역시 스승을 죽인 아테네인에 대한 증오를 담아 질료와 형상을 구분하며 이원론 경향을 보인다. 플라톤은 아테네를 스파르타에 팔아넘긴 매국노의 후손이다. 가난한 소크라테스가 부유한 매국노 자제들과 어울려다니자 분노한 아테네 시민이 탄핵한 것이다.


  대부분의 종교나 사상의 중흥조들은 어떤 정치적 목적에 써먹을 목적으로 사상을 왜곡하며 차별을 강조하는 이원론으로 변질시킨다. 기독교는 사탄 개념을 도입하고, 유일신을 주장하는 마호멧교 역시 천사 개념을 도입하여 사실상의 이원론을 만든다. 이원론이란 사상을 현실정치에 이용하기 위해 기능을 부여하며 왜곡시킨 것이다.


  철학은 그냥 하나의 엔진일 뿐인데 여기에 트레일러를 달아 쓸모를 추구하면서 이원화 시킨다. 모든 차별과 억압과 통제와 왜곡은 문제해결에 상당히 쓸모가 있다. 다만 부작용의 악순환을 낳으므로 지속가능하지 않을 뿐이다. 문제해결의 가장 손쉬운 방법은 싸우는 둘 중 하나를 제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두환의 싹쓸이식 실용주의 해결방식을 선호한 결과 역대 중국의 제왕들은 대개 단명하였다. 중국역사는 정사만 24사나 되어 학습이 곤란하게 되었다. 삼국사, 고려사, 조선사 합쳐서 3사 뿐인 한국과 비교된다. 


  비합리주의 노선의 실패 사례로는 아나키즘을 들 수 있다. 암살이나 테러에 의존하는 방법은 세력화를 꾀하는 합리주의 노선과 어긋나는 지극히 비합리적인 태도이다. 법가주의자들이 주로 이 방법을 쓰다가 몰락했다. 이 경우 북한처럼 고립되고 만다. 우연한 행운에 기대거나 일회성의 돌발적인 방법을 쓰거나 교주 개인을 신격화 하는 행동, 화석화된 경전에 몰입하는 행동 역시 비합리적인 태도이다. 모든 실용주의는 비합리적 태도로 빠질 위험이 있다.


  군주 1인이 정보를 독점하는 비밀정치를 하다가 몰락한 광해군의 외교실패가 대표적이다. 광해군은 일본과 수교하면서 촉발된 대중의 분노를 잠재우려 한 독재자 박정희에 의해 과대평가된 대표적 인물이다. 오랑캐 일본과 수교한 친일행각을 면피하기 위해 오랑캐 여진족과 손잡은 광해군을 방패막이로 내세운 것이다. 광해군은 혼자만의 아이디어로 원칙을 어기는 정치를 해서 진작에 민심을 잃었다. 누구는 국수를 잘 만들어 바쳤기에 정승자리를 주어 국수정승이 되고 또 누구는 잡채를 잘 만들어 바쳤기에 정승자리를 주어 잡채정승이 되는 등의 괴상한 행태로 군주의 위엄을 잃고 민중의 조롱거리가 된 것이다.


  역시 소통의 실패다. 대중의 마음과 함께 하지 않고 정보를 차단한 채, 군주 1인의 아이디어로 은밀히 지령하여 공작정치를 하는 모험주의 노선은 반드시 실패하고 만다. 광해군은 뒤로 꼼수 쓰다가 망한 전형적인 예다.


  민중의 지지를 등에 업은 인조가 거국적으로 청나라에 대적했기 때문에 한국은 지금 중국의 한 지방이 되지 않고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거다. 반면 중국의 여러 변경지역은 실용주의를 추구한 결과, 결사적으로 대항하지 않았기 때문에 쉽게 청조에 편입이 되었다. 정치가의 기술이 아니라 대중의 마음이 역사의 큰 방향성을 결정한다. 이것이 합리주의요 이상주의다.


  합리주의와 이상주의는 상당부분 겹쳐 있으며 연속된다. 최근에 다원주의가 강조되며 상대론적 사고가 환영받고 있지만 이는 일원론의 입체적 모형 안에서 이단으로 전개하고 다시 다각화 되는 패턴일 뿐, 일원론 밖에 별도로 상대주의나 다원주의 포지션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에는 일정한 법칙이 있다. 다음 단계의 전략을 제시할 수 있는 자가 승리한다. 철학적 일원론≫과학적 합리주의≫미학적 이상주의는 하나의 연속된 궤도이며 이 노선으로 가면 항상 다음 단계의 전략이 나와준다. 그러므로 지속가능한 것이다. 설사 자신이 실패한다 해도 누군가 와서 뒤를 잇기 때문에 결국 승리하게 된다. 이는 진리의 결이기 때문이다. 진리가 스스로 작동하는 흐름에 인간이 올라타는 것이지 인간이 임의로 목적지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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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 1년간 책을 한 달에 한권 꼴로 내보려고 하는데 자금이 순환될 정도로만 홍보를 부탁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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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5]오세

2010.09.26 (22:42:50)

5분만에 지성의 역사를 탐구했소.
구조론은 알고보니 빛보다 더빠른 타임머신이구려
[레벨:9]모다

2010.09.27 (18:33:04)

광해군과 인조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새롭습니다.  참고할 만한 역사서가 있는지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0.09.27 (18:35:52)

광해군 일기만 봐도 됩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0.09.27 (19:20:18)


 요즘 오마이뉴스에
동이와 관련하여 엉터리 소설을 쓰는 것은 정말이지 참을 수 없는 왜곡입니다.

제멋대로 숙종을 폭군으로 몰아가는 식입니다.
실록도 안 읽어본 티가 너무 나는 거죠.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니까 왜곡되었을 거라는 식으로 넘겨짚으면 안 됩니다.
1차사료가 중요한 것이며 현대인의 기준으로 왜곡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겁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2]이상우

2010.09.27 (22:05:06)

숙종의 정치적 균형감각과 결단은 조선시대 따를자가 없는 듯 합니다.
숙종의 정치 테크닉을 영조가 익히 보고 자랐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첨엔 정조에 관심을 갖다가, 영조없이 정조없다는 것을 태종-세종, 필립왕-알렉산더, 다윗-솔로몬 구도를 통해 귀납적으로 알 수 있었고, 지겹도록 반복되는 장희빈 드라마에서 전체와 부분, 안정과 변화, 세력을 적절히 교착시키고 주도권을 발휘하는 성동격서식의
숙종 리더십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공과사를 구분못하는 오마이뉴스 특유의 물고늘어지기이겠죠.
기사 안읽어봐도 숙종때문에 왕비들이 개고생한 것, 정치판의 숙청피바람을 탓하겠지요.
여권어쩌구 저쩌구, 인간답지 못하다 요딴 식으로 말할 뿐, 비판머리는 있어도 난국을 타계할 대책은 내놓지 못하는 인간들의 잡소리.
그런 얼치기 진보들이 권좌에 앉으면 권력 스트레스 받아서 정신줄 놓다가 반정에 고꾸라지는 것은 기본 구도.
하긴 그렇게 개혁할 용기나 있을라나 모르것소.  

....

이렇게 글쓰고 보니 혹시 숙종도 효종에게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추측이 되네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0.09.27 (22:16:39)


오마이뉴스 등의 접근방식은
여인의 암투를 위주로 한 궁중비사에 매몰된 개무식한 경우고
역사를 똑바로 알려면 민중사를 알아야 합니다.

조선후기 역사의 전개는 중국의 변화,
즉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의 치세와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중국에 명군이 잇따라 등장하니
같은 패턴으로 숙종, 영조, 정조의 치세가 등장하고
영조의 사도세자 죽이기는 옹정제의 주변인물 죽이기와 패턴이 완벽하게 같고
중국이 서태후가 매관매직으로 말아먹으니 명성황후가 매관매직으로 대거 말아먹고
거의 비슷하게 흐름이 갑니다.

조선후기는 담배 감자 고구마 옥수수 등이 전래되고
거름농사가 소개되어 농사기술이 비약적으로 진보하며
(명나라 때만 해도 한국이나 중국이나 똥은 똥돼지 먹이고 거름은 안썼음.
조선후기는 똥돼지 제주도에만 남고 전국에서 전멸, 똥은 전부 거름으로 변함.)
계급구조가 변하는 한편 소위 자본주의 맹아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데
(스페인의 금은이 대거 중국으로 흘러들어 중국 산서상인은 런던과 파리에 지점을 낼 정도 떼돈을 벌음.)
(당시 독일사신은 신제품 시계와 음악상자 따위를 강희제에게 바치려 하다가
강희제의 시계방에 무려 40개의 시계와 많은 숫자의 음악상자가 있는 것을 보고
쪽팔려 죽을뻔. 당시 세계의 부 3/4은 중국의 차지였음.)

개성의 인삼장사가 성공하여
아편중독에 빠진 중국인들을 상대로 크게 재미를 본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인삼은 아편치료 특효약임. 영조는 한 달에 스무근씩 인삼을 먹음.)
화폐경제가 크게 일어났기 때문에 이에 따른 온갖 고소고발 소송분쟁이 들불처럼 일어나서 
영조임금이 암행어사 박문수를 노상 파견하고
숙종도 민간인 복장으로 수시로 미행을 납시고
하는 등 민중문화가 크게 흥성하게 됩니다.

민중의 여론이 정치에 깊숙하게 영향을 미친 거지요.
이 때문에 여론정치라는 새로운 정치패턴이 등장하게 되는데
모르는 자들은 그냥 당쟁 이 한 마디로 끝내지요.

그 당시에 정신없이 변화가 일어나 어제 없던 문물이 새로 생기고
갑자기 어떤 넘이 중국 가서 떼돈 벌고 하는 황당한 현상이 많이 생겼기 때문에
그게 정치에 반영이 된 것입니다.

김만중의 사씨남정기나 궁중의 누군가 쓴 인현성후덕행록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 등은 당시 여론정치가 어떤 식으로 전개되었는지 알만한 단서입니다.
당시 남인들이 서얼을 차별하면서 크게 민중의 미움을 받았고
노론은 북벌을 주장하면서 이를 구실로 국민의 총화단결 분위기를 조장한답시고
서얼을 우대하는 등 민중 편을 들어 민주주의 비슷한 이상한 정치를 내세웠기 때문에
그 바람에 무수리 아들인 영조는 임금이 되고(민주주의니까 아무나 임금 되어도 상관없음)
민주주의라서 아무나 되어도 상관없으니까
사도세자는 졸지에 아무나로 몰려서 죽여버리고
아무나 된 임금이 영조니까 졸지에 노론은 역적으로 몰리고
(무수리 아들이나 아무나 임금이 되어도 좋다는 논리는 임금이 별거없는 아무나라는 논리가 됨)

남인은 뿌리깊은 악랄한 차별주의라서
혈통을 강조하니까 무수리 자식인 영조를 부정하고
반대로 혈통을 강조하니까 일단 임금이 된 다음에는 아무나 취급을 안 하고 특별히 섬기고
이런 것이 있습니다.

이런 흐름은 백성의 지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당시 화폐경제의 등장으로 인한 중인과 서얼의 권력강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무수리인 동이가 괜히 후궁이 되는게 아니라는 말이지요.

당시 상업경제의 등장으로 중인 부자들이 권력에 줄을 대는 현상이 생겼고
장희빈도 그 덕을 본 사람입니다.
장희빈 뒤에 부자 후견인이 있었지요.

그런데 이런 현상이 점점 심해져서
처음에는 임금과 서민이 친해지다가 (서민의 임금 숙종 이미지 좋아.)
어느 순간 서민이 임금 머리 꼭지 위로 기어올라요.
서민과 친한 임금님에서 갑자기 서민 수준의 한심한 임금님으로 격하된 거지요.

그래서 권력이 위태로워진 임금이
문득 정신차리고 갑자기 장희빈과 동이를 동시에 축출합니다.

이런 배경을 하나도 설명 안하고
여인네 궁중암투 수준으로 논하는 오마이뉴스는
역사를 말할 자격이라곤 없는 겁니다.

효종 이후로도 북벌분위기가 한 동안 계속 되었기 때문에
서민의 지지를 받으려고 동이를 대접한 것이며 이는 임금이 술수를 쓴게 아니라
실제로 임금의 인식이 시대분위기를 따라 바뀐 것이며
중국이 부강해져서 중국과 거래한 중인 부자들의 등장으로
북벌계획이 점점 암담해지자 숙종도 출구전략을 고심하게 된 것이며
그냥 동이 말 한마디 듣고 미친넘처럼 돌변해서 장희빈을 죽인게 아니라
이미 금권과 결탁한 권력이 궁중 깊숙히 침투한 상황이라 정리가 필요했던 것이며
숙종의 고심한 출구전략입니다.

열하일기를 쓴 박지원의 글에 보면
똥상 엄씨는 똥계의 실력자로 엄행수라 불리는데(행수는 상인 우두머리) 
서울 똥만 팔아서 일년에 6천냥의 거금을 벌어들입니다.
똥수레 하나 끌고 슬금슬금 다니며 왕십리 배추밭에 팔아 돈을 번 거지요.
양반들 눈 뒤집어지는 현상이지요.
양반중심 유교질서를 흔드는 이런 황당한 사건이 매일 일어납니다.
역사는 실제로 일어난 무수한 사건과 변화들의 집적이지
그냥 궁중 여인이 무슨 잠꼬대 소리하고
숙종임금이 쓸데없이 무슨 음모나 꾸미고 잔머리 굴리고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과학적 근거라곤 하나도 없는 초딩 수준의 인식이지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0.09.28 (13:23:10)

"일원론이 문제찾기라면, 합리주의는 문제의 풀이가 되고, 이상주의는 문제의 답이 된다. 문제를 찾는 것은 철학이고, 문제를 푸는 것은 과학이고, 답이 되는 것은 미학이다. 과학적 사실은 탐구대상인 자연의 사정일 뿐 근본은 인간 안에서 답을 찾아야 하므로 미학이 궁극적 답이다. 철학이라는 면화를 심고, 과학이라는 직조를 해서, 마지막에 미학이라는 재단사가 옷을 만드는 것이다.


 ◎ 철학적 일원론 -≫ 과학적 합리주의 -≫ 미학적 이상주의  "


그렇군요.그래서 다른 걸로는 풀리지 않는 것들이 미학을 통하면 해결(답이 나와줌)이 되는군요. 미학이 궁극적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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