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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6270 vote 0 2013.03.26 (00:50:18)

    모임에서 사발님이 ‘라마나 마하리쉬와의 대담’이라는 책을 권한다. 이 양반이 1950년에 죽었다고 하니, 약간 오래된 옛날 사람인데 라즈니쉬를 비롯한 80년대 히피명상붐의 원조가 되는 모양이다.


    대충 훑어본 바로 말하면 책만 두꺼울 뿐 같은 말의 끝없는 반복이다. 맞는 말도 있고 허튼소리도 있는데, 720페이지는 종이 낭비다. 아니 두터운 종이 소유를 욕망하는 허영심을 파는 상술이 맞겠다.


    이 양반의 종지는 진아(眞我)를 찾는 것이다. 720페이지가 이 한 줄로 요약된다. 뭐 좋다. 그런데 걸리는 것이 있다. 이 양반은 스승없이 17살 때 혼자 깨달았다면서도 스승을 섬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당연히 항의하는 사람이 있다. ‘당신은 스승없이 깨달았다매?’ 변명한다. ‘나의 스승은 아마도 나의 전생에 만났었나 보다.’ 이는 인도 명상가들의 특징이다. 이른바 구루병이다. 구루를 섬기는 병이다.


    소승불교의 굴레를 벗지 못한 것이다. 대승은 ‘달마를 만나면 달마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고 한다. 스승 좋아하네. 구루를 숭배한다면 명상이 아니고 사설종교다. 대승은 무엇이 다른가?


    대승은 스승의 자리에 세력을 놓는다. 세력이 있으면 상호작용이 있고 가는 길이 분명해지며 구루는 필요없다. 문제는 세력을 형성할 수 있느냐다. 생장점이 있고 현대성이 있느냐다. 상호작용이 있느냐다.


    “나는 육체가 아니다. 정신도 아니다. 인격도 감정도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매일신문)


    “뼈와 살로 이루어진 이 몸은 내가 아니다. 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 등의 다섯가지 감각기관은 내가 아니다. 말하고, 움직이고, 붙잡고, 배설하고, 생식하는 다섯 가지 운동기관은 내가 아니다. 호흡 등의 다섯 가지 기능을 수행하는 프라나 등의 다섯 가지 기(氣)는 내가 아니다. 생각하는 마음도 내가 아니다.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무의식도 내가 아니다. 이 모든 것들을 ‘내가 아니다’고 부정하고 나면 그것들을 지켜보는 각성만이 남는다. 그것이 바로 나다.”(한겨레)


    마하리쉬가 쓴 ‘나는 누구인가?’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이란다. 필자가 근래에 말한 ‘나는 나의 육체도 아니고, 나의 정신도 아니고, 나의 독립적인 의사결정 영역이다.’는 말과 비슷한 느낌이 있다.


    문제는 아니다, 아니고, 아니며, 아니매라 하는 부정어법의 남발이다. 부정어법만으로는 진리를 전달할 수 없다. 긍정어법을 써야 한다. 이는 필자가 노상 써먹는 썰매개의 딜렘마와 비슷하다.


    16마리 썰매개의 대장개는 NO밖에 말할 수 없다. Y자 모양의 갈림길에서 길잡이 개가 방향을 잘못 잡으면 사납게 짖어 NO를 구사한다. 오류는 바로잡힌다. 그런데 개들이 방향을 제대로 잡으면?


    곤란하다. 이 경우 개들이 속도를 못 낸다. 방향이 맞는데도 혹시나 잘못되었을까 하여 전전긍긍하며 대장개의 눈치를 본다. 이때 대장개가 사납게 짖어 길을 재촉하면? 더 큰 혼란이 일어난다.


    개들이 ‘아 길을 잘못들었나보다’ 하고 공연히 방향을 트는 수가 있다. 이때 대장개는 다시 사납게 짖어 NO를 해야 한다. ‘아냐 아니라니깐. 계속 가자니깐. 이 방향이 맞다니깐.’ 대장개 속 터진다.


    NO병을 극복하고 긍정어법으로 정답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무엇인가? 완전성이다. 무엇이 완전한가? 입자는 불완전하고 질이 완전하다. 나의 질은 무엇인가? 나의 질은 나의 탄생이다.


    흔히 아기는 완전하다고 한다. 왜 아기는 완전한가? 북은 북에 있지 않다. 그것은 가죽에 불과하다. 북은 북채에 있지 않다. 그것은 나무막대에 불과하다. 몸이 북가죽이면 나의 마음은 북채다.


    몸도 마음도 내가 아니다. 진정한 북은 북소리에 있다. 북에는 북소리가 없다. 북채에도 북소리는 없다. 북소리는 북과 북채의 관계에 있다. 둘의 연주에 있다. 악보 속에 있다. 관객의 마음에 있다.


    울려퍼짐에 있다. 아기가 완전한 이유는 아기가 북소리이기 때문이다. 북소리는 북과 북채 사이에 있다. 아기는 아빠와 엄마 사이에 있다. 아기가 완전한 이유는 관계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때 아기는 어른 곧 성인과 비교한 아기가 아니다. 전혀 다른 의미다. 이쯤 되면 완전성의 의미를 이해했을 것이다. 아기는 결코 완전하지 않다. 아기는 걷지도 못하고 말도 못한다. 불완전하다.


    이런 이야기를 길게 할 필요가 없다. 질, 입자, 힘, 운동, 량만 알면 된다. 질은 자궁이다. 자궁은 엄마와 아빠의 관계다. 입자는 아기다. 부모 사이의 아기는 완전하지만 부모를 떠난 아기는 죽는다.


    아기가 완전하다고 말하면, 엄마 품에서 아기를 떼어놓고 아기를 섬기며 아기교를 만들 판이다. 엄마품을 떠난 즉 아기는 죽는다. 북을 떠난 즉 북소리는 죽는다. 질을 떠난 즉 입자는 죽는다.


    무엇인가? 라마나 마하리쉬는 질의 개념을 알고 있다. 그는 질과 입자의 관계를 바다와 파도의 관계로 비유한다. 파도는 바다 안에서 유의미하다. 바다를 떠난 파도는 물거품이 되어 사라진다.


    북을 떠난 북소리, 엄마를 떠난 아기, 관계를 떠난 입자는 죽는다. 질에서 떼어낸 입자는 죽는다. 마하리쉬는 진아를 찾으라고 말하지만 무리다. 그런 식으로는 부정어법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마하리쉬가 아무리 북에서 북소리를 떼어낼 수 없다고 강조해도 제자들은 1초만에 떼버린다. 필자가 늘 말하듯이 스승이 일원론을 해도 제자는 잽싸게 2원론으로 변질시켜 버린다. 공식이다.


    북과 북소리를 분리하지 않는 것이 일원론이면 북과 북소리를 분리하는 것은 이원론이다. 그런데 반드시 이원론으로 변질된다. 스승이 아무리 진아를 찾으라고 해도 제자는 가짜 나를 찾는다.


    스승의 꾸짖음은 끝없이 계속된다. 수행은 계속된다. 돈오는 실패하고 점수에 머물러 있다. 왜? 세력이 없기 때문이다. 악보가 없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진리를 전달할 언어가 없는 것이다.


    왜 서양음악이 발전했는가? 누군가 오선지에 콩나물대가리를 그렸기 때문이다. 세력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그래야 돈오가 가능하다. 돈오를 이루어야 비로소 제자는 스승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다.


    상부구조가 세팅되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자가당착적인 마하리쉬의 구루타령은 상부구조의 부재, 자궁의 부재, 북에서 북소리를 뗄 수 없는 딜렘마, 엄마품에서 아기를 뗄 수 없는 딜렘마 때문이다.


    누군가 오선지에 악보를 그림으로써 문제는 해소된다. 한 방에 끝난다. 악보만 있으면 북이 없어도 북소리는 남는다. 바하는 없어도 연주는 남아있다. 베토벤은 갔어도 그의 연주는 영원하다.


    악보를 그렸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언어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매뉴얼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구조론이다. 언어가 없이 진리를 전달하려고 하니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의 덫에 걸린다.


    문제는 사람들이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의 오류를 매우 즐거워 한다는 것이다. 진리를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니 참 다행이다. 악보로 그리면 우리 악사들은 졸지에 실업자 된다네 이런다.


    사진기를 발명하면 화가는 굶어죽는다. 방해해야 한다. 구조론이 등장하면 사이비들은 더 이상 속일 수 없다. 방해해야 한다. 악보를 그리면 개나 소나 다 연주를 하겠다고 덤빈다. 곤란하다.


    세종이 한글을 창제하면 상놈들이 아는 척을 해서 곤란하다. 개나 소나 진리를 알아버리면 구루들은 밥을 굶게 된다. 방해해야 한다. 이거다. 병통에서 벗어나야 한다. 언제까지 그러고 살텐가?


    존재는 입자가 아니다. 그러므로 자궁에서 독립한 아기, 질에서 떼어낸 낱개, 관계를 잃은 나는 없다. 포지션을 잃은 축구선수는 없으며, 투수도 아니고 타자도 아니면 그는 야구선수가 아닌 것이다.


    야구선수는 그라운드에 서야 선수이고, 축구선수는 포지션을 가져야 선수이고 북소리는 악보를 가져야 살아남고, 아기는 엄마 품에서 완전해지며, 돈오는 세력 안에서 생장점을 얻는다.


    진리는 구조론이라는 바른 언어를 얻어야 비로소 위대해진다. 그림이 카메라를 얻어야 만리 밖의 사람도 고흐를 알게 되고, 소리가 악보를 얻어야 베토벤을 알게 되듯, 진리가 언어를 획득해야 한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때문에 개나소나 성경을 해석해서 기독교가 난장판이 된 것은 사실이다. 아랍의 회교가 처한 문제가 바로 그 때문이다. 회교는 성직자가 없기 때문에 아무나 해석한다.


    아무나 경전을 해석하면 극단주의가 무조건 이긴다. 마호멧이 ‘그건 삼가야 하지 않을까?’ 하면 경전을 해석하는 이맘들과 율법사들은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하지 말라.’ 강조해야 명성을 얻는다.


    그렇다고 해서 성경해석의 권한을 카톨릭이 독점한다면 중세의 암흑시대를 벗어날 수 없다. 이런 문제 때문에 소승불교가 구루의 기득권을 강조하게 된 것이다. 그냥 놔두면 개판 되니깐.

 

    민주주의 시스템이라는 상부구조가 없으니 독재를 해야한다는 식이다. 실제로 러시아 돌아가는 꼴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아프리카는 섣불리 민주주의 하려다가 전쟁만 끝없이 계속된다.

 

    그렇다면? 민주주의 시스템을 건설하면 된다. 상부구조를 만들면 된다. 구조론을 만들면 된다. 긍정어법을 만들면 된다. 카메라를 만들면 된다. 악보를 그리면 된다. 안 되면 되게 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소승의 문제는 질에서 입자를 떼어내는 문제이고 소승은 이 문제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구루에 대한 숭배를 강요하며 이는 독재자의 속임수이고 소승의 실패이며 대승은 세력으로 민주주의 시스템의 질을 세팅하여 이를 해결한다는 거다.

 

    ◎ 소승 - 구루 없으면 개판
    ◎ 회교 - 성직자 없어서 극단주의로 파탄
    ◎ 대승 - 세력으로 힘 만들어 해결

      

    세력의 방향성이라는 자궁 안에서 제자는 독립하고 돈오는 가능하다. 아기는 엄마를 가진다. 깨달음은 힘을 얻는다. 비로소 완전해진다.


    소승불교는 답을 찾지 못하며 허무에 빠져서 결국 윤회로 도피한다. 과거로 도망치는 것이다. 대승은 답이 있으므로 현실과 투쟁한다. 역사의 현장 안에서 진보라는 방향타를 찾아내고 문명이라는 항해를 쉬지 않는다.


    정답은? 힘이다. 힘은 에너지의 순환 안에 있다. 야구선수의 힘은 시즌에 있고 축구선수의 힘은 시합에 있고 정치인의 힘은 선거에 있고 작가의 힘은 작품에 있고 깨달음의 힘은 ‘우리편’에 있다.


    크게 무리를 이루어 장벽을 깨뜨리고 미래로 나아가는데서 우리의 힘은 있는 것이며 명상은 거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힘을 주지 않는 명상은 필요없다. 명상의 의미는 당신에게 힘이 되어주는데 있다. 누가? 우리편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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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문제의 정답은 오직 하나 힘입니다. 소승은 혼자이고 혼자서는 힘이 없고, 그 때문에 허무하고, 따라서 윤회로 도피하거나 혹은 구루를 섬기라고 강요하며, 사이비로 일탈하거나입니다. 대승은 우리편이고, 우리편이므로 함께 하고, 함께 하므로 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스승으로 부터 독립하고, 반복적인 수행을 벗어나 돈오합니다. 수행을 벗어나 세상으로 나와서 제 목소리를 내야 진짜입니다.

 

  

 




[레벨:15]오세

2013.03.26 (03:44:24)

전송됨 : 트위터

전율의 새벽이오. 

참된 명상을 힘을 불어 넣는 것이고 집단을 상승시키는 것!


프로필 이미지 [레벨:21]사발

2013.03.26 (04:21:18)

구루병이란 병이  실제로 있소...ㅎㅎ

비타민 부족으로 허리가 굽는 병일거요...아마도...

 

내가 비장의 한 수로 꿍쳐놓았던 "라마나 마하리쉬"를 풀어놓고 김동렬 선생님의 일 掌을 맞고 정신이 번쩍 들었소!

역시 혼자서 꿍쳐놓는 것은 망조가 드는 것이고 청천백일하에 다 드러내야 피가 되고 살이 되오...

프로필 이미지 [레벨:14]곱슬이

2013.03.26 (10:31:58)

꿍쳐놓을 그 무언가가 있었다는 것만해도 대단하오.  

프로필 이미지 [레벨:21]사발

2013.03.26 (12:09:37)

말씀 감사하오!! ^^

[레벨:11]큰바위

2013.03.26 (04:50:23)

누구나 글을 읽는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글을 읽는다고 다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글을 읽고 진리를 발견하고 거기에 목숨을 거는 자만이 자격이 있는 거요. 

구텐베르그 활자 덕에 많은 사람이 눈을 떴으나 역시 많은 사람들이 죽었소. 

소승이 대승을 죽이려 들었기 때문이오. 


처음에는 이래도 되는가 하다가도 일단 깨닫게 되면 세상이 달라지는 거라고 보오. 

이런 글은 열심히 퍼날라야되오.  


기독교는 목사들 없애고, 평신도들이 일어나야하고, 

불교는 스님들 목탁을 중생들이 두들겨잡아야 하는 거고,

무슬림은 이맘들의 강론을 누구나 할 수 있게해야 할 거요. 


한 사람이 힘을 독점하는 데서

모든 사람이 힘으로 나누어가짐으로 모두 부처가 되고 모두 예수가 되는 세상이 참 세상이 아니가 하오.


옴마니반메홈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3.03.26 (09:26:53)

기독교는 목사들 없애고, 평신도들이 일어나야하고, 

가 아니고 목사(카톨릭)를 없애고 평신도들이 일어나서 개판된 결과가 지금의 기독교죠.

 

무슬림은 목사가 없습니다.

개판된 거죠.

 

대승의 상부구조를 건설해야 합니다.

세력을 만들고 세력 내부에 구심점이 있고

치고나가는 방향성과 에너지가 있어야 합니다.

 

상부구조 없이 그냥 자유를 선언하면

어제 길가다가 성모마리아 봤다파와 빨갱이들이 위험하다파가 나타나서

명성획득을 위한 극단주의 행동으로 개판됩니다.

 

그렇다면 정답은?

대학시스템은 논문과 리뷰로 되어 있습니다.

민주 시스템은 선거로 되어 있습니다.

이런 자체적인 의사결정구조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이게 없으면 자극적인 뜬금발언을 하는 자가 나타나는데

지구종말을 주장하거나 성모마리아를 만났다고 주장하거나

외계인이 침략한다고 주장하는 자가 힘을 얻게 됩니다.

 

[레벨:11]큰바위

2013.03.26 (10:08:03)

좀 더 명확하게 말하자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반대를 위한 반대를 부르짖은 평신도들 때문에 개신교가 이렇게 된거죠.

중세시대를 암흑기라고 하는 건, 가톨릭의 절대권력의 절대적인 부패에 기인했기 때문이고

자유조차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지요.

 

가톨릭도 아니고 개신교도 아닌

즉 성모마리아 봤다파도 아니고 빨갱이들이 위험하다파도 아닌

제 3의 의사결정구도가 나타났을 때, 양쪽에서 공격을 받은게 역사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자체적인 의사결정구조가 있었지만, 결국 역사는 이런걸 별로 좋아하지 안았더라........그래서 몇 백년 동안 종교가 개판이 되었더라......... 로 흘러왔지요.

 

역사가 아무리 개판이 되더라도,

보이지 않는 상부구조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은 언제나 존재한다고 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흐르는 하천이 없는 것이 아니라,

복류천으로 흐르다가 때를 만나면 터져 나오는 거죠.

 

아마도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종교, 과학, 예술, 인문학의 전성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동안 복류천으로 흐르던 물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와 강물을 이루고, 바다로 흘러 한데 모이는 형국같아 보입니다.

 

얼씨구~

 

 

 

[레벨:3]불휘

2013.03.26 (18:32:40)

목사를 없애려면 목사가 있어야겠죠?

무슬림은 목사가 없다 - 이 말은 너나 나나 다 목사라고 믿고 있다는 말인가요?

목사가 할 일이란, 너는 목사가 아니다 라고 판가름 해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무슬림이겠지요?

 

지금 개신교 문제는 목사가 "기"어야 하는데 기승전결을 다 끌어안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목사는 목사없는 교회를 만들어야 하고, 목사없는 교회란 늘 목사가 있어야만 이루어지겠죠?

 

프로필 이미지 [레벨:21]사발

2013.03.26 (18:51:52)

저한테 물어보신 것은 아니지만서도.....

 

이슬람은 신과의 직접적인 대면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기독교나 천주교에서 신의 대리인인 목사나 사제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건물에 들어가도 아무 상징물도 없다고 하지요. 그냥 벽이라능...(...)

 

이맘인가 뭔가 있다고 하는데 하는 일이 뭔지는 확실히 모릅니다.

 

김동렬선생님 말씀은 그런 대리인이 없다보니 중구난방 떠들게 되고 결과는 목소리 큰 놈이 득세해서 과격해지게 된다는 말씀이라고 봅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3.03.26 (18:55:59)

중요한 것은 기독교 안에
일의적인 작동원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카톨릭은 교황이 있고 조계종은 종정이 있습니다.
기독교는 종교개혁을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상당부분 종교개악을 했습니다.

최초의 종교개혁은 마호멧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그 결과는 여러분이 보시는 바와 같습니다.

마호멧은 카톨릭의 성직자 집단이

성경에 없는 사이비 조직이라고 보고 폐지한 결과

내부에 의사결정구조가 없어져서
무조건 목청 큰 놈이 이기는 정글게임을 하게 되었고

목청 큰 놈은 보나마나 수구꼴통 중에서도 마녀사낭꾼입니다.
마녀가 나타났다고 소리만 지르면 천하에 명성을 떨치고

율법사 중에서 최고위직에 오릅니다.

미국마녀가 나타났다고 소리를 질러서 호메이니 율법사가 왕잡았습니다.
칼빈과 루터가 전설적인 마녀사냥꾼이라는 것은 잘 아실테고.(이건 과장된 표현)

물론 제가 여기서 하는 여러 표현들은
말하자면 그렇게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의 비유니까 곧이 곧대로 들으면 안 됩니다.

조용기와 문선명, 정명석의 특징이 무언지 아십니까?
한 마디로 빡셉니다.

이 자들은 김미경의 자기계발을

50년 전에 이미 독학으로 터득하신 분인데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새벽기도(정화수 떠놓고 기도하는 무속)를

서너시간 동안 쉬지않고 빡세게 하는데 여러분이 보면 감동받습니다.

잠도 하루에 서너시간 이상 안 잔다고 들었습니다.
문선명은 한겨울 영하 10도에 난방도 안 하고 냉돌에 자는 인간입니다.

정명석은 삽을 한번 들었다면 4시간 동안 허리를 펴지 않습니다.
극단주의, 빡센 인간, 나치스트들이 다 먹는 게임이라는 거죠.

사이비들의 특징은

보통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괴력을 과시하여
추종자들의 숭배를 받는 것입니다.

결국 이런 식으로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깡다구들이 다 먹는 거에요.
최악의 의사결정구조로 가는 겁니다.

하긴 동학의 전봉준 장군도
한겨울에 3일동안 동헌 앞에 엎드려 꼼짝 않는 깡다구로 떴다고 하니까요.

그렇다면 정답은 분명합니다.
내부에 일의적인 의사결정구조를 만드는 겁니다.

그것은 교육, 개방, 언론, 민주주의에 의해 가능합니다.
한국은 언론이 썩어서 안 되고 있는 거구요.

물론 기독교도 한기총인지 하는 단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일의적인 결정구조를 저는 기독교 안에서 발견한 바가 없습니다.

조계종 스님들이나 카톨릭 신부들은

내부에 일의적인 결정구조가 있어서 맘대로 사고 못 칩니다.

목사들은 제멋대로인게 그게 없기 때문에

사이비스러운 구루놀음을 하고 있는 겁니다.

목사를 없애라는게 아니라

목사가 오야붕처럼 되어 있는 구조를 타파하고

내부에 민주적인 의사결정구조를 갖추고

사고가 나면 책임지고 물러나게 하는 시스템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해석 권한이 목사 개인에게 있다면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일단 성경해석 권한을 몰수해야 합니다.(국외자인 제가 잘 모르지만)

대승은 여러 사람의 집단지능에 의해 굴러가는 시스템이고

소승은 그냥 잘난 인간에 의해 굴러가는 시스템입니다.

기독교도 대승으로 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물론 교회에 따라서는 나름대로 합리적인 시스템을 갖춘 교회도 있겠지요.

서울의 유명교회들은 전부 구루놀이에 빠져있다고 봅니다.

물론 외부에서 보는 시선이니까 틀릴 수도 있겠지만.

[레벨:11]큰바위

2013.03.27 (09:59:51)

김동렬 님의 통찰력은 알아주어야 한다니까요.

하신 말씀이 구구절절이 맞습니다. (국외자로 모르시는 게 아니라, 국외자로 바로 보고 계십니다)

성경해석의 권한은 기독교의 핵심입니다.

종교개혁가들도 사실 이거 제대로 하지 못해

개혁을 주장하다가 가톨릭으로 다시 돌아섰죠.

가톨릭에서 나와서 다시 돌아갈 수 없으니까, 개혁교회나 루터교회를 만든거죠.

그러나 결국은 같은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제대로 성경해석을 한 그룹이 있었는데,

개혁교회나 가톨릭 양쪽에서 마녀사냥을 해서 칼맞아 죽었죠.

 

목사를 없애는 게 문제가 아니라, 모두가 목사가 되어야 한다는게 맞습니다.

그러니까

 

"그렇다면 정답은 분명합니다.
내부에 일의적인 의사결정구조를 만드는 겁니다.

그것은 교육, 개방, 언론, 민주주의에 의해 가능합니다."

 

"목사를 없애라는게 아니라

목사가 오야붕처럼 되어 있는 구조를 타파하고

내부에 민주적인 의사결정구조를 갖추고

사고가 나면 책임지고 물러나게 하는 시스템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해석 권한이 목사 개인에게 있다면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요게 정답.

 

 

[레벨:3]불휘

2013.03.29 (11:22:54)

사이비스러운 구루놀이에 빠져 있다는 말씀이 가장 마음에 와 닿는군요.

지금 개신교 문제가 다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개신교에서

성경해석 권한이 목사 개인에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신도들에게 성경 해석은 열려있습니다만,

동렬님 말씀을 빌자면

그들은 성경해석 않기로 결정을 한 것이지요.

목사들은 그런 결정을 이끌기도 하며, 박수를 쳐주며, 등 두들기며 잘했다 라고 하고 있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4]꼬치가리

2013.03.26 (10:23:37)

의사결정구조!

교육-민주주의-개방!

 

시스템의 건강진단 툴!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3.03.26 (19:18:17)

기독교의 문제는

민주화 문제, 동성결혼문제, 낙태문제 같은

사회문제가 새롭게 대두되었을 때

통일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의사결정구조가 없다는 데 있습니다.

그냥 목사 개인 성격에 따라 가는 길이 정해지는데

진보목사도 있고 보수목사도 있습니다.

문제는 이 경우 보수화 될 수 밖에 없다는데 있습니다.

무조건 보수가 이기는 게임입니다.

왜냐?

대중들이 의사결정할 수 없다는 좌절감에 빠지면

의사결정을 하지 않기로 의사결정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이때 보수꼴통들이

대중을 좌절시키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전매특허 발목잡기.

게임끝.

현대성 획득 실패.

저주받은 몰락.

영원한 암흑.

대안은

전국단위 단일 기독교단체 결성

목사의 개인적인 성경해석 금지

기독교 언론의 활성화

신도들의 쌍방향 참여

새로운 배후지의 발굴인데 현실적으로 무리.

 

[레벨:6]빛의아들

2013.03.27 (00:56:13)

기독교인으로서.....

목사라는 암이  교회에 너무 많이 퍼져서 문제입니다.

이 암을 치료할수 있는 치료제가 있는데

그것은 암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암이 본래는  건강한 세포였다는 것입니다.

건강한 세포가 무슨일이 있었는지 암으로 변했습니다.

그것은  기득권 밥줄이라는 것이 암으로 변하게 한

발암물질인것이었습니다.

 

건강한 목사님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암이 너무 많이 퍼지다 보니 건강한 세포도

다 죽게생긴것이 바로  기독교의 현실입니다.

 

암을 제거해도  이미 건강한 세포마저도 살길이 막막해졌지요.

치료해도 치료해도 치료가 되지 않은 말기암환자처럼

몸이 죽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죽을것은 죽어야합니다.

교회안에 암적인 존재인 목사들이 교회를 죽이게 나둬야 합니다.

그렇게 죽어야!  사기로 박사학위 받고 사기로 목사된 자들

그리고 지식에 갖혀있고 밥줄에 갖혀있는 목사들!!!

진리는 버리고 자기 안위와 영원한 기득권을 위해서

예수님을 버려버린 쓰레기 목사들이 죽어야!!!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기대할수 있을 것입니다.

신도들은 바보들이니....평신도가 교회를 깨운다는 말은 거짓말이지요!

교회를 깨울수 있는 평신도는 교회에서 쫓겨납니다.

암을 치료할수 있는 치료제가 있어도  그 치료제는

채택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암은 치료받으면  몸에서 제거되기 때문입니다.

이미 암이 몸의 주인이 되어버렸으니.....

몸의 주인이  예수님이고  모든 인간은 그 지체이고

목사들도 지체중에 하나인데.......

평신도들은 자기 위치에 맞게 잘 살고 있는데...

목사들이  암종이 되어서

자기 위치를 벗어나  이곳저곳 암을 퍼트리고 다니고 있으니......

 

이게 목사들이 현재 하고 있는 짓이지요!

결국은  하나님의 수술대에서  암종들은 제거되어

몸에서 버려질것입니다.

[레벨:11]큰바위

2013.03.27 (10:01:45)

"대중들이 의사결정할 수 없다는 좌절감에 빠지면

의사결정을 하지 않기로 의사결정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이거 명문입니다.

진짜 그렇게 합니다.

 

다른데서 언급했지만,

제가 가장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의사결정을 물어보면 기껏 하는 대답이

 

"나는 다른 사람들이 결정하는대로 따르겠습니다" 입니다.

 

사람 미칩니다. 증말~

 

그래서 안듣는 사람에게 말 할 필요 없고,

계몽이 필요하기는 하나, 배우기 싫어하는 사람은 아예 제껴놓아야 한다고 봅니다.

 

 

[레벨:6]빛의아들

2013.03.27 (00:56:50)

저는 교회에서 쫓겨났습니다.   목사라는 암과 싸우다가.......

[레벨:11]큰바위

2013.03.27 (10:02:54)

목사랑 싸우는 건, 승산없는 싸움이고, 역설로 들리겠지만 직접 목사가 되어야 합니다.

 

직접 그룹을 꾸려 나가세요. 김동렬 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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