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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1285 vote 0 2013.03.02 (09:56:15)

 


아래의 글에 이어집니다.

믿음은 불완전에서 완전을 지향한다. 우리는 부분에 있고 완전은 모듈에 있다. 모듈은 공간에 팀으로 있고 시간에 기승전결로 있다. 공간에서 팀이 완성될때까지, 시간에서 기승전결이 완성될 때 까지 소비를 유보해야 한다. 작동을 유보해야 한다. 그것이 영웅신의 믿음이다. 

선물은 기념일에 해야 하고, 축제는 가을 추수 후에 해야 한다. 그래야 빛나기 때문이다. 그래야 풍성하기 때문이다. 영웅신이 기도를 하고 부적을 쓰고 마나의 힘을 빌리는 것은 그 기승전결의 시간적인 절차를 견디기 위함이다. 혹은 팀의 꼭지점에 도달하기 위함이다.

커플은 발렌타인데이를 기다려야 하고, 솔로는 크리스마스에 대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하다.

시조신의 믿음은 마주보고 대칭시켜 50 대 50의 균형을 만드는 것이다. 옛사람은 거울을 쪼개서 반씩 나눠가졌다. 깨진 조각의 톱니를 맞춰보고 신용의 증표로 삼는다. 이때 반쪽을 가지고 있으면 나머지 반쪽을 가진 사람이 언젠가는 자기 앞에 나타나게 되어 있다. 

남녀관계와 같다. 세상은 대칭이며 대칭은 음양이 조합되어야 완전하고 그 음양 중에서 하나를 차지하고 있으면 나머지 반을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정치라면 진보든 보수든 한 쪽에 포지셔닝해야 한다. 중도의 자리는 없다. 

양쪽을 다가지려 하기보다, 하나를 가지고 나머지 반쪽을 가진 사람과 제휴하는게 맞다. 투수를 하든 타자를 하든, 공격수를 하든 수비수를 하든 하나를 선택하고 나머지는 믿음에 맡겨야 한다. 그래서 믿음이 필요하다.

도굴범들이 고서를 손에 넣으면 중요한 한 장을 뜯어서 숨기고 나머지를 팔아치운다. 이때 헐값에 사들인 골동품상이 진가를 알아보고 전문가에게 감정을 의뢰한다. 진품판정이 나면 수백억의 가격이 붙는데 이때 도굴범이 숨긴 한 장의 가격은 수백억이 된다. 

그것이 완전성의 힘이다. 도굴범은 무식하므로 처음부터 전문가를 찾아갈 수 없다. 자칭 전문가에게 당하는 수가 있다. 최근 훈민정음 해례본을 훔친 자가 이런 일을 저질러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예가 있다. 

누구든 인생에 있어서 숨겨둔 한 장은 있어야 한다. 50 대 50의 법칙이 작용하여 숨겨둔 한 장의 가치가 나머지 전체와 같아지며, 믿음은 그 대칭의 가치를 믿는 것이다. 팀이 발전할수록 언젠가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게 된다. 

하수는 혼자서 이것저것 다 잘하려고 하고, 고수는 자기 포지션만 잘하려고 한다. 팀이 성공하면 자기 포지션의 진가를 알아준다. 그러므로 팀플레이를 해야 한다. 그것이 시조신의 믿음이다. 보통은 종교의 교단이 팀이 된다.

보통 우리가 믿음이라고 말하는 것은 여기까지다. 강자를 섬기는 정령신의 믿음이거나 부적을 쓰는 영웅신의 믿음이거나 아니면 교단에 의지하는 시조신의 믿음이다. 관념신에 이르면 믿음의 의미가 퇴색하여 탈종교화 된다. 불교가 그렇고 유교와 도교가 그렇다. 

불교는 상당히 종교화 되어 있지만 이는 신도들의 입장이 그러하고 깨달은 사람은 경허나 김시습처럼 환속하는게 맞다. 신도들은 불교를 정령신, 영웅신, 시조신으로 받아들이지만 스님들은 관념신의 관점에서 바라보므로 어색한 장면이 연출된다. 

도교는 원래 교단조직이 없거나 희미했는데 불교의 것을 차용한 것이다. 유교 역시 종교와 과학의 애매한 경계선에 머물러 있다. 불교가 일부 종교적 색채를 드러내는 것도 대개 민간신앙과 결합한 것이다. 관념신은 을이 아닌 갑의 포지션이 되기 때문이다.

자식이 부모를 믿는 것과 부모가 자식을 믿는 것은 다르다. 관념신 단계부터는 갑이 을을 믿는 것이다. 그것은 믿음이라기보다 사랑이거나 자비거나 지배다. 신도는 석가를 믿지만 석가는 신도를 믿지 않는다. 대신 자비를 베푼다. 그런데 이 역시 믿음에 속한다. 

관념신은 기승전결의 기에 포지셔닝하여 권리를 장악하고 베푸는 것이다. 세종은 한글을 창제하고 로열티를 요구하지 않았다. 가수들 중에는 음원을 공개하고 저작권 수입을 포기하는 전략을 쓰는 사람도 있다. 

포털 사이트는 무료로 회원가입을 허용한다. 회비를 받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관념신의 믿음이다. 단 이 전략은 기에 포지셔닝한 사람만이 쓸 수 있다.

먹자골목은 경쟁자가 많을수록 이익이 된다. 바닷가에 횟집이 하나 있는데 경쟁자가 나타나면 이익이 절반으로 줄어든다. 그러나 경쟁자가 하나 더 출현하여 횟집이 셋을 넘으면 횟집골목으로 소문이 나서 더 많은 손님이 몰려든다. 

여기에는 밸런스가 있다. 애플처럼 경쟁자를 제거할 것인가 아니면 구글처럼 파트너를 모을 것인가다. 구글의 전략이 더 구조론적이다. 구글의 믿음이 관념신의 믿음이라 할 수 있다. 더 높은 단계의 믿음이다. 

소통신은 낳음이다. 그걸로 끝이다. 관념신이 기승전결로 전개하며 이득을 취하는데 비해 소통신은 한번 낳고 끝난다. 소아마비 백신을 발명한 사람이 로열티를 포기해 버린 것과 같다. 교류전기를 발명한 테슬라도 마찬가지다. 

애플이 많은 순익을 거둬가는 논리는 그 이익으로 신제품을 개발하여 되돌려 주겠다는 거다. 그러나 한글은 한번 발명하면 끝이다. 돈오와 같다. 다음 단계가 없다. 바로 종결한다.

요즘 코미디도 기승전결의 형식이 아닌 공감개그 형태로 가고 있다. 보통 멍청이가 실수를 하고 똑똑이가 응징하는 형식인데, 개콘의 일부 코너들은 그런 상투적인 장치가 없다. 남자는 이렇고 여자는 이렇다 하고 끝난다. 잘못도 없고 응징도 없으며 교훈도 없다. 그 순간에 완성한다. 손뼉이 마주치면 완성이다. 하이파이브는 그 순간에 끝난다. 

이때 구조론의 질이 세팅되어 있어야 한다. 개콘의 공감개그는 방청객들이 사전에 답을 알고있어야 한다. 웃음이 터지는 이유는 최효종이 위캔척을 하기 전에 스타크래프트의 앞마당 털기를 아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도 모른다면 웃음은 터질 수 없다.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을 끌어냄으로써 단번에 완전에 도달하는 돈오가 소통신의 믿음이다. 

[레벨:11]큰바위

2013.03.02 (11:35:24)

기존의 종교들은 신을 오해한다.

원래 신은 규정할 수 없다.

규정하면 신이 아니다.

 

대부분 종교들은 신을 박스 안에 가둔다.

그런 생각은 하지 않고 무조건 신을 무소불위, 무소불능, 영원불변의 신으로 믿지만,

그것도 결국은 신을 박스 안에 가두어 놓는 일이다.

 

부처를 만나면 쳐죽여라!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하나님(하느님)의 이름을 여호와,  I am Who I am  등으로 말하는 이유가 여기있다.

 

각본이 짜여져 있는 것이 아니라,

신과 그대가 일대일로 만나면서 관계가 형성되고,

삶이 새로워지고, 변화되는 것이라야 믿음이랄 수 있다.

 

그리고 매일 새롭지 않으면 믿음은 개털이다.

 

날마다 새로워지고, 날마다 새 창조가 일어나야 믿음이다.

그렇게 인간에게 부여된 신성을 발견해 나가는 것이 믿음이다.

 

[레벨:11]큰바위

2013.03.02 (11:45:09)

"누구든지 믿음을 받아들이도록 다른 사람을 강요하거나 힘을 행사할 수 없고, 행사해서도 안된다. 이는 믿음이 하나님께서 자의로 주시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믿음을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 강요하거나 힘을 행사하는 것. 혹은 어떤 사람의 신앙이 잘못되었다고 해서 그 사람을 죽음에 처하도록 (박해)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어떤 형태든지 간에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 대신 무력을 사용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세상에 속한 나라는 교회로부터 분리되어야 하며, 세상에 속한 어느 통치자도 교회에서 권위를 행사해서도 안 된다. 주님께서 단지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셨지 힘으로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하지 않으셨다. 진정한 그리스도의 교회는 고난을 받고 박해를 견뎌나가는 특징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그 누구도 박해하지 않는다."
 

- 기독교 분파가 약 35,000개 정도나 되는데 모든 종교중에 분파가 많기로는 챔피언이라고 합디다. 그런데 그런 기독교 중에 위와 같이 믿음을 이해하고 신을 이해하는 사람들도 있습디다 -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3.03.02 (16:02:31)

좋은 말씀이나 본질의 차이가 있는지 의문입니다.
[레벨:11]큰바위

2013.03.02 (19:02:57)

본질의 차이가 있다고 보기에 여기에 글을 올렸지요.

진리란 역사 속에서 잊혀지는 것 같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듯,

사람이 많이 따른다고 진리가 아니며,

따르는 사람이 몇 사람 안되어도 진리는 진리죠.

 

역사의 왜곡은 아주 심합니다.

특히 요즘처럼 미디어가 냅다 이끌고 갈 때는 더 심하죠.

일의 결정을 다수결로 할 때는 조작의 위험도 있고, 선동의 위험도 있고,

착시도 있지만,

본질이란 건 이런 것이 다 물건너가도 오롯이 남는거죠.

 

무엇이든 원본을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신. 믿음을 이야기하는 것도 결국 그 원본, 처음 창의된 순간, 모습을 발견하고 깨닫는 거 아니겠습니까.

 

결국 구조론도 그런 것을 늘 건드리는 거고요.

 

그리고 나중에는 종교든, 예술이든, 과학이든 거기서 다 만나져야 하는 것이고.

그래서 일원론이 맞는 거고......

 

나중에는 신, 인간, 사물, 창조, 진화 등이 한자리에서 다 만나지겠지요.

 

지금 사람들이 아는 기독교는 99% 뻥입니다. 사람 숫자로 치면 아마도 99.99%일지도 모르겠구요.

신에 대한 개념도 독대해서 만난 후, 진짜 신을 제대로 검증해 내야죠.

 

김동렬 님의 신과 독대하라는 표현은 아주 좋습니다.

진리를 만나거든 목숨을 걸어야 하고,

이거아니면 안된다는 식의 치열함, 조문도면 석사가의 정신 참 좋습니다.

 

나무 밑둥을 치지 않고 어정쩡하게 사다리타고 올라가서 나무 꼭대기 위의 가지나 몇개 치고 마는 짓은 하지 말아야죠.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3.03.03 (08:19:08)

제가 하고 있는 작업은 언어에 대한 것입니다.

신이나 믿음이 어떻다 하는 것은 그 언어를 가두는 작업이 될 수 있습니다.

 

님은 신을 가두면 안 된다고 말하지만 그 아래에 이어지는 글은 신을 가두는 것처럼 보입니다.

중요한건 신이 어떻다가 아니라 언어라는 도구를 우리가 어떻게 쓸것인가입니다.

 

 

 

 

[레벨:11]큰바위

2013.03.04 (12:21:39)

언어라는 도구도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서) 한계가 느껴지니 하는 말입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3.03.03 (21:15:00)

기존의 종교들은 신을 오해한다.

원래 신은 규정할 수 없다.

규정하면 신이 아니다.

 

이런 표현들은 매우 역겨운 표현입니다.

단호한 문장인데 그 단호함은 어떤 대상에 대한 (여기서 대상은 신) 단호함이라면

그 태도가 단호해지는 것과 같은 비례로 언어는 희미해 집니다.

언어를 죽이는 거지요.

 

이런 류의 허튼 견해들 많은데

대개 언어를 절대화 시켜놓고 프로크루스테스요법을 씁니다.

 

그러나 알고보면 사실이 잘못된게 아니고 언어가 잘못된 겁니다.

언어를 바로잡으면 모든 것은 명확해집니다.

 

가만있는 신을 애먹이지 말고

잘못된 언어를 바로잡도록 하라는 것이 제 글의 요지입니다.

 

예를 들어보자면

 

http://blog.daum.net/boodda/7745168

 

특별할거 하나 없는 보통 헛소리쟁이의 보통 헛소리입니다.

다들 이 수준에서 뒹굴고 있지요.

 

링크한 글을 각별히 문제삼자는건 아니고

검색중에 우연히 발견한 건데

 

계속 뭐라고 지껄이고 있는데 언어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장문의 글에서 규명된 사실은 하나도 없습니다.

 

황당한 일.

언어를 파괴해 놓고 즐거워하는 꼬락서니들.

 

[레벨:9]길옆

2013.03.03 (23:27:08)

진원이라는 자가 쓴 금강경 사구게 해설
읽는다고 식겁했소

 

모든게 허망함에도 불구하고
말에 얽매인 자칭 부처, 예수들을 꾸짖는 듯 한데
결국은 자신도 그 꼬라지

 

일념법, 일념윤회법은 안 허망한가?

모든게 허망한데 공부는 왜 하래?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3.03.03 (23:35:44)

어떤 것을 부정한다는 것은 동시에 다른 것을 긍정한다는 말이 되오.

모든 것이 허망하면 '모든 것'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짜릿하다는 뜻이 되오.

 

모든 것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무엇이겠소?

 

기존의 종교들은 신을 오해한다.

원래 신은 규정할 수 없다.

규정하면 신이 아니다.

 

여기서 마이너스를 세번 연속으로 구사했음을 알 수 있소.

만약 누가 어떤 것을 부정하면 관객은 그 사람을 주목하게 되오.

 

그리고 당연히 그 어떤 것의 맞은 편에서 긍정되는 것을 찾게 되오.

그러나 두 번 세 번 같은 짓을 반복하면

 

'이 양반이 재미들렸나?'.. 이런 의심을 하게 되오.

 

민주당을 갈궈서 재미보려 한 안철수 수법?

비판만 있고 방향제시는 없다는 거.

 

결국 입증된 것은 언어의 빈곤이오.

하부구조가 부정되면 상부구조가 긍정되는 것이오.

 

그것을 나타낼 언어가 없다는 것.

문제는 그 언어의 부재에 매우 재미들린다는 사실.

즐거워 하는 표정을 들키는 거.

 

어떤 언어를 쓰던 세상에 달라지는 것은 없소.

모든 것은 허망하다는 말은 그 반대의 의미와도 정확히 같소.

 

빠르다는 느리다와 같소. 어느 쪽이든 속도에 갇혔소.

길다와 짧다는 같소. 어느 쪽이든 길이에 갇혔소.

검은 것은 흰 것이다.. 김기덕.

 

범소유상 개시허망은

범소유상 개시짜릿으로 바꿔놔도 달라질 것은 하나도 없소.

 

하부구조가 부정될 때 상부구조가 긍정된다면

범소유상 각각이 모두 부정될 때 여래가 긍정된다면

범소유상=여래의 등식이 성립하는 것. 

 

[레벨:9]길옆

2013.03.03 (23:59:14)

모든 것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그 모든 것을 모든 것이게 하는 진리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3.03.04 (00:00:59)

당연히 진리도 모든 것에 포함되지 않을까요?

[레벨:6]빛의아들

2013.03.04 (00:11:25)

인간이 신을 규정한다는 것은 말이 안되지요.

창조주가 있는데 피조물이 창조주를 어찌 규정한다는 말입니까!!

 

우리는 창조주를 알수가 없습니다.

창조주를 안다고 하는 자들은 거짓말장이들이지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3.03.04 (00:12:55)

왜 알려고 하지요?

대화하면 그만인데.

[레벨:11]큰바위

2013.03.04 (12:23:08)

통하면 그만이라는 말씀인가요?

신통?

[레벨:6]빛의아들

2013.03.04 (14:13:39)

속이 시원하네요^^  하나님도 대화하기를 원하시지요. 

맞습니다.  선생님 말씀이 맞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3.03.04 (18:47:31)

무슨 대화를 한다는 건지... 그 대화가 그 대화일까요?

간혹 신을 접했다 라는 말들을 보면 마치 영매 접신 이런 의미로 사용하는 것 같은데...그 말은 아니겠지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3.03.04 (18:44:40)

여기 댓글에서 아래로 파생되었군요.
정말 읽어보니 뭔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는...아마도 반야심경의 부정의부정을 거듭하여 드러내고자 하는 어법을 차용한듯 하지만... 뭔 내용인지 오히려 더 모르겠다는...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3.03.04 (18:50:51)

제가 이야기하는 신-믿음-인간-소통의 연결고리는

우주의 본질에 대한 것일 뿐 특정 종교의 신과 상관이 없습니다.

 

굳이 거기다 맞출 필요는 없고

신의 본성이 완전성이면 그 완전성 개념에는 쌍방향 소통의 개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컨대 완벽한 영화가 있다면 그 영화는 아직 극장에 상영되지 않았더라도

관객 앞에서 상영된다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보통은 신=절대자,  

절대자는 완벽하므로 관객은 무시해도 된다는 식이지요.

 

그러나 구조론으로 보면 완벽한 것은 질이고

질에는 이미 쌍방향 소통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가장 완전한 것은 쌍방향 소통을 통해 점점 성장하는 것입니다.

이는 우주의 보편적인 원리이며 동시에 인간의 본성입니다.

 

인간은 완전성을 추구하고 소통하려는 본성이 있습니다.

예술도 그러하고 자연도 그러하고 신도 그러합니다.

 

절대라는 단어는 형용모순입니다.

구조로 보면 자기 안에 축과 대칭의 상대성을 갖춘 것이 절대성입니다.

 

신도 1+2를 3이 아닌 다른 것으로 변조할 수 없습니다.

신은 신 자신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도 할 수 없는게 있고

이미 절대는 깨진거지요.

 

막연한 절대는 논리적으로 모순인 비어입니다.

언어가 아니에요.

그런거 없습니다.

 

 

[레벨:11]큰바위

2013.03.04 (21:45:35)

"절대는 깨진거다"에 동감합니다.

종교인들이 절대자를 만들어 놓고 신을 박스 안에 가두어 놓은 셈이고 그걸 형상화 했기에 우상이 되는 거라고 봅니다.

우상을 깨고 신으로 대해야 진보하는 거죠.

 

예전에 언어의 한계에 대해 간단하게 넘어갔었는데,

요즈음 다시 언어에 대해 다시 깊이 생각해 봅니다.

접어두었던 인류학 책도 다시 열어보는데, 많이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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