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곳단상
* 송곳의 용도는, 작지만 꼭 필요한 부분을 뚫어 주는 도구이다.
어찌보면, 진리도 송곳 같아서..., 진실은 숨기면 송곳처럼 어딘가를 뚫고 나온다. 진리는 직관이란 송곳을 사용해서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어찌보면, 자연은 인간이란 송곳을 통하여 진리를 드러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송곳을 보다.
송곳을 보면서... 살갗이 아팠다.
대기업, 대규묘 공단, 대형 마트...
일자리들이 몰려 있는 곳...
서로 대립하지 않고서는 생존이 보장되지 못하는 구조...
왜? 대립하게 되는 것일까?
개인적인 생각으론, 굳이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이쪽저쪽 모두...이런 생각도 든다. 그러나 보다 더 힘이 센 쪽을 먼저 족치지 않으면 답이 없어서, 모두 정글 상태로 내몰리게 된다. 누구라도 다 때려치고 한적한 곳에서 조용히 사는게 더 나을거 같다.라고 생각치 않을수 있겠는가...그러나, 현실은 모두의 생각대로 실현할 수 있는게 아니고,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모두 방법을 찾아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편을 들려면, 확실하게 들어야 한다. 편을 든다는 것은 편파적이다. 중립 같은 것은 없다.
세력을 만든다는 것은 자기와 다른 것보다는, 자기와 같은 것을 규합해 나가는 것인데, 사람은 기계적 중립이 옳다라는 착각도 한다.
문제는, 기계적 중립이 떠밀리듯이 이루워 진다는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중립이라는 착각 말이다.
또한, 노동법에 대한 확고한 기반도 없다.
듣기론, 판사도 변호사도 노동법을 전공한 사람은 손가락으로 셀 정도라고 한다. 노동법관련 법 분량이 상당히 많고 난해하다고 한다.
노동의 문제와 노조가 사람들에게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 이유는, 사회구조가 그런 전문 인력을 생산해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여긴다.
이리되니, 제도의 공급이 노동 수요를 따라가지를 못해서, 사회구조 자체가 노동 그 자체를 탄압하는 형태로 가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정당한 요구들을 투쟁으로만 얻어낼 수 있는 이유도, 요구하지 않으면 무엇이 좋고 나쁜지에 대한 가늠이나 평가를 할 수 없기 때문이라 여긴다. 알아서 해준다는 것은 있을수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서로 입장을 바꿔보지 않거나 입장은 늘 바뀌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동에 대한 제도적 정립이 약하다보니, 늘 뒤에서 거래하고 협박에 익숙해진 환경탓이라고 여긴다.
혼자는 약해서 큰 힘이 자신을 눌러오면 굴복하게 된다. 여럿이 있으면, 서로라는 의지처가 있어서 목소리도 커진다. 의지처인 사람들이 빠져나가면, 사람은 악에 받친다. 그리고 자신을 단련시켜 투사가 된다. 자기안에서 의식혁명을 이뤄낸다. 그리고 버티게 된다. 노동이 만들어 내는 투사나, 민주주의가 만들어 낸 투사나 모두 본질에서 같다.
모든 일은, 진행방식의 전개된 양상은 달라도 복제가 되기에 그 과정을 들여다 보면 같다. 결국, 고립을 타파하는 형태로 갈때만이 일은 전개 될 수 있다. 자기 안에서의 두려움이란 고립을 타파하고, 의식혁명을 이뤄내고, 그 다음 자신이 99%를 채운다. 이게 안되서 대체로 무너진다.
다시, 이차 의식혁명이 필요한 이유는 연대에 대한 안팎의 경계 때문이다. 연대는 어찌되었든 자기와 혹은 친밀한 집단과는 다르다. 다르기 때문에 연대하는 것이므로. 안팎의 경계를 더 밖으로 확장시켜야 한다. 작은 크기를 더 크게 키워 내야 한다. 자기를 키우는 것이 곧 집단을 키우는 것과 같다. 그리고, 여기에는 희생이 전제 된다. 누군가는 인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크기를 키웠으면, 편은 분명해져야 한다. 그곳이 보이지 않는 전선이기 때문이다. 무엇과 싸우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아야 한다.
일상에서는 혼재되어 있다. 다 뒤섞여 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선명하지 않는 전선을 자기 안에서 명확하게 그어야 한다. 인문과 반인문, 민주와 반민주, 민주와 독재...
사람이 살면서 구태여 이걸 가를 필요는 없으나, 어느 순간에는 분명히 명확하게 갈라야 할때가 있다. 그런 순간에 분명하게 자신이 의사결정을 수행했다면, 그 한번의 경험은 자신에게 체득되어 복제 된다. 전개된 상황은 달라도, 그때에 맞게 판단 해낼 수 있다. 그것이 자기다움이고, 자기 길을 만들어 낸다.
놔두면 모래처럼 흩어진다는 것도...관념일 뿐이겠지요.
단지, 먼저 본 사람들이 지나치지 못하니, 그 일을 하는 것 뿐...그래서 운명인지도...
피하거나..피하지 않았거나...
알고보니 최규석 작가의 웹툰이 원작이더군요.
한국은 소설이 부흥하지 못하는 사이
스마트시대에 걸 맞게
웹툰이 리얼리즘으로 파고들어
웹툰 장르를 개척했습니다.
노르웨이에서 노벨문학상을 안 줄거면
노벨웹툰상이 제정이 시급합니다.^^
리얼리즘, 부조리 등
웹툰에서 먼저 제작되어
드라마나 영화로 파급되고 있습니다.
ㅋ...어쩌면 웹툰이라면 가능할지도...
"놔두면 모래처럼 흩어질 사람들을
왜 뭉쳐서 부서지게 만들어요"
이과장 : "내가 누군가의 인생을 망칠지도 모르는 행동을 하는건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소장 : "그건 지병같은 거요 평생 앓고 사는 지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