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개새끼 일 수 없습니다. 절대성의 자리에 있으니까요.
예수님도 개새끼 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같은 자리인 절대성으로 가버렸으니까요.
그러나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하나님을 마주 앉아 바라보는 상대성의 자리에 있었고
바울은 예수님을 마주 앉아 바라보는 상대성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상대성의 자리는 해석하기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독사의 자식이라고 비난 받을 수 있듯이
바울또한 개새끼라고 비난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각각 스승이라고 추앙받을 수 도 있습니다. 상대성이니까요.
하부구조는 현실과 직접 맞댄 구조입니다. 망가지면 고통이 말도 못하죠
그러므로 잘못된 문제는 하부에서 상부로 넘겨버리고 차라리 상부가 망가지고
하부를 살리는 것이 당장 사는 것에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러면 서서히 망해가는 것이 필연이죠
상부구조와 하부구조가 다 좋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 는 없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좋아지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틀어졌던 상부구조를 다시 바로 세우면 그만큼 하부구조가 틀어지는 현상이 발생하고
이는 지독한 하부구조의 고통을 수반합니다. 이 점을 너무 등한시 했었습니다.
빛의 아들님에게 너무 한꺼번에 많은 고통을 요구했나 봅니다. 미안합니다.
시간을 두고 서서히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인간이 하나님이 되고자 했던것이 하부구조가 망가진 이유인데...
인간보고 하나님이 되라고 하는것이 과연 답이 될것인가?
너무 깝깝해서 한마디 남깁니다.
위의 말이 빛의아들님의 요지같군요.
하느님이 되고자 해서 망가진게 아니라, 그 반대라니까요..
뱀에 속아서 선악과 따먹으려는 의도가 하느님이 되는건가요?
속여서 하느님이 될 수 있나요?
참 하느님이 되지못하고 인간 중에서도 나약하고 비열한 족속을 닮으려다가 코가 깨진겁니다.
예수는 하느님이 되라고 했습니다.
모세도 우상숭배하지말고 니가 하느님 되라고 한겁니다.
하느님을 하늘에, 벽에, 지붕에 올려놓은 채, 자기들 꼴리는대로 살지말고 니가 하느님이 되라..
니 인생 니가 책임져라.. 아시겠어요?
자기가 하느님이라면 꼴리는대로 살 수 있어요?
당신이 진정한 입법자라면 법을 마음대로 입법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 입법을 대신해주는 권위자가 있으니, 나는 법만 지키면돼. 법이 잘못된건 입법자 잘못이니까..
이런 노예심리가 크리스찬들을 그토록 비굴하게 만드는겁니다.
거지같은 새끼들이 이미지메이킹한 거짓 하느님의 권세를 휘두르라고 하느님이 되라는게 아닙니다.
진짜 하느님이 되면 마음대로 입법 못합니다. 마음대로 세상 못 주물러요.
님은 하느님이 된다는 것이 제멋대로 세상을 주무르고 파괴하고 탐욕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어요.
제가 보기에 님께서는 엄청난 권력욕의 소유자이십니다.
자잘한 가짜 하느님이 아니라, 먼저 진짜 하느님이 되어 보세요. 마음대로 할 수 있는게 있나..
부모가 되어보면, 사랑을 해보면, 회사를 차려보면.. 마음대로 할 수 있는게 팍팍 줄어드는걸 알 수 있을텐데요.
하느님? 정말 골치아픈 역할이에요.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저와같은 기독교인은 법에 의해서 살아가지 않습니다. 저희는 입법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하나님의 법을 지켜가면서 사는 노예도 아닙니다. 성경의 율법을 지켜서 사는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잘 압니다. 율법은 지키라고 준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법을 지킵니다. 성령의 생명의 법이라고 불리는 법인데 이 법은 님이 말하는 밤로 그 책임입니다. 하나님앞에 책임지는 인간으로 서는것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과 동등한 입장에서 서는것을 의미하는것이 맞습니다. 내가 내 인생을 책임져야 하는것이 맞습니다. 하나님이 그걸 원하는것도 맞습니다. 이것이 생명의 법입니다. 생명의 법은 법규정이 아닙니다. 법이 규정하는것은 그것만 지키면 되지만 법이 규정하지 않는것은 안지켜도 된다는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사도님이 말한 복음의 핵심은 바로 규정된법을 잘 지켜라가 아니라 규정되지 않는 법조차도 지켜야 한다는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양심의 법입니다. 남이 안본다고 다른 사람이 없다고 법을 안지키는것이 아니라 아무도 없어도 누가 보지 않아도 양심에 꺼리낌없이 행동하는것 이것이 규정된 법을 지키려는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의 책임을 갖고 행하는것.....그럼에도 우리는 그것을 완벽히 지킬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래서 행위가 아니라 마음을 보신다고 말씀하신것이구요..
님들이 말하는것은 정말 초보적인 기독교를 보는 것입니다. 차원이 높은 기독교는 님의 생각과 전혀 다릅니다.
하느님도 아닌데 하느님의 법을 어찌 압니까? 그걸 모르니까, 교리와 율법에 매이는 노예가 되는거죠. 성령이 내려와야 하느님의 법을 깨닫게 될테고, 비로소 기도를 통해서 하느님과 이어질텐데요. 성령이 내렸다면 그 이전의 인간으로서의 '나' 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됩니다. 성령이 내 몸에 임하는 것은 곧 내가 신이라는 뜻, 신이 내 몸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곧 하느님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성령도 받지 못한 빛의아들님이 이것을 모르는 것은 당연합니다.
노예가 아닌 인간으로서 책임을 지고, 행위가 아니라 마음의 양심으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제가 말한 하느님이에요. 성령을 받았다고 하면 속이 편하고, 당신이 하느님이라고 하면 불경스럽다면 이미 우상에 세뇌가 된 것이지요. 벌써 님은 신을 소외시키고 있습니다. 신이 과연 자신을 떠받들기를 바랄까요? 하느님 개세끼라든가, 바울 씨팔세끼라고 하면 마음이 울적해지나요?
불완전한 인간의 언어의 의미부여하지 마세요. 진정 성령을 받은 사람이라면 인간의 언어따위에 갇히지않습니다. 차원높은 기독교? 구조론에서 말하는 신과 기독교의 신은 다른거라고 믿는군요. 누구 신이 강한지 대결이라도 하고싶은겁니까?
빛의아들님같은 포지션에 있는 사람들은 각자 이유가 있을겁니다. 쉽게 바뀔수가 없죠. 머리로만 이해한다? 이게 가능하지않아 보입니다. 뭘 기대하는것 조차 오만한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진리는 좀 깨져본 사람들이나 알 수 있는거지
하나님품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진리가 무슨 소용입니까. 하나님이 늘 함께하는데. 진리의 왕국은 스스로 들어오는거지
누가 불러서 오는게 아니잖아요. 이런분들은 하나님에게 배신을 한번 당해보는 일생일대의 사건이 있어야만 바뀝니다. 스스로는 절대 못합니다.
상동님....바울사도님이 토기장이 비유를 내세운 이유는 하나님에게 그런 권세가 있다는것을 의미하는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때문에 바울사도님이 개새끼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로마서 9장의 토기장이 비유는 그 이후장에 나오는 자기 백성들 유대인을 향해서 복음이 무엇인지 언약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권세를 내세운것일 뿐입니다.
이 권세의 핵심은 너희 유대인만 하나님의 택함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된것이 아니다. 너희들도 이방인과 똑같이 심판을 받을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유대인을 택할때 언약을 했고 이 언약을 지키실것이다. 이 약속을 지키는것이 바로 하나님의 권세 곧 하나님의 이름으로 약속한것이기 때문에 지킬것이다.
내 백성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이 버리지 않을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이다. 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토기장이 비유를 내세운 것입니다. 이 토기장이 비유의 핵심을 봐야지...토기장이 비유만 가지고 바울사도님을 개새끼로 몬다면 그것은 한면만보고 다른 면이나 그 내용을 보지 못하고 표면만 보고 욕하는것과 같습니다.
가장 미련한 사람들이 하는 짓이 마음과 진심을 보지 않고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사람들입니다. 님이 바로 그 가장 미련한 짓을 하는 것입니다.
지키지 않아도 되는 법을 왜 만드는지.
하나님의 법과 성령의 법과 율법의 대 강령의 상관관계를 잘못 설정하셨습니다.
법은 지키라고 있는 겁니다. 특히 법의 정신은 조금도 경시되어서는 안되지요.
기독교의 잘못은
율법은 폐지되었다.
율법은 지킬 수 없다.
인간은 무조건 죄 중에서 태어났다. - 원죄론
완전한 인간은 없다.
고로 신이 된다고? 말도 안된다.
라는 식으로 본다는데 있습니다.
빛의 아드님이 믿는 신은 우상이거나 누군가 잘못 만들어놓은 신에 대한 개념을 아주 잘 배운 결과입니다.
기독교 역사 자체가 사랑의 역사가 아니라, 전쟁의 역사고, 왕따시키는 역사고, 마녀사냥한 역사입니다.
중세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현실도 그렇습니다. 부분적으로 그렇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지금 나는 역사의 산물이다.
잘못된 역사로부터 헤어나오기란 쉽지 않습니다.
자유를 주어도 먹고 사는 것 때문에 다시 애굽/이집트로 돌아가려 하거든요.
차라리 못본다고 하면 죄가 없지만, 본다고 하니까 죄가 있는 겁니다.
율법은 기독교인에게 준게 아니고 유대인에게 준 법이지요. 그 법은 일종의 국가시스템법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운영하기위한 하나님이 제정한 시스템입니다. 기독교에서 말한 구원과 관련된것은 율법이 아니라 언약과 할례입니다. 율법을 지켜 구원얻는것이 아니라 언약과 할례를 통해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언약과 할례를 받은 자들은 율법을 지킬 의무가 생깁니다. 언약과 할례를 받은 자에게는 원죄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님이 말한 원죄론을 전 인정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원죄때문에 심판받는것이 아니라 자기가 지은죄때문에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이 되는게 아니라 신과 하나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지전능한 신이 되는게 아니라 신과 하나되어 신의 사고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그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글을 찬찬히 읽어보시면 왔다 갔다 하는 걸 아실겝니다.
율법은 기독교인에게 준게 아니고, 유대인에게 준거다.
기독교의 구원은 율법이 아니라 언약과 할례다.
언약과 할례를 받은 자들은 율법을 지킬 의무가 생긴다.
??????? 물음표만 남습니다.
전 기성 신학하는 사람과 전혀 다릅니다. 보통 신학자들의 주장은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폐했고 믿는자들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이 되게했다는 것이 신학자들이 주장입니다. 곧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은 없어졌고 이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곧 이는 신학적으로 대체신학이라고 합니다. 믿는 자들이 이스라엘 민족을 대체했다는 주장입니다.
이 주장에 따르면 율법이 이방인에게 적용됩니다. 그래서 십일조를 강조합니다. .십계명을 강조합니다. 결국 안식일을 지키라는 것인데? 안식일은 토요일입니다. 교회는 율법을 지킬수 없습니다.
. 할례 받는 것은 “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지는 ” 것이며 ( 갈라디아서 5:3)
저는 교회에서 율법을 강조해서도 안되고 십일조와 안식일을 강요해서도 안된다고 봅니다. 왜? 성경에 그렇게 나와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 성경대로만 말하고 있습니다. 물음표를 갖지 마십시요. 님이 기독교인이라면 기존의 신학을 버리고 성경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기존의 신학은 구약을 버린 신학입니다. 구약은 폐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울 사도님이 주장하는 것입니다.
할례와 언약의 문제는 할례는 율법을 범함으로 무할례자가 되는 것입니다. 무할례자는 언약에서 쫓겨나는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회복해야합니다. 할례를 회복해야하는데 다시 할례를 받을수 없으니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하는것입니다. 이 마음의 할례가 바로 신약에서 세례입니다. 세례는 죄를 사함받는 행위입니다. 이 세례가 물로 받는것도 있고 성령님으로 받는 것도 있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말이 바로 이런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시지만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난 다르다 하지만, 별로 다른 점이 없습니다.
구조론은 참고할 철학적 사고일뿐 그것이 진리를 찾아가는 방법일뿐 진리가 아닙니다.
진리는 존재하고 구조론은 그 진리를 찾는 방법입니다. 그 방법이 연역적이냐 귀납적이냐는 것인데..
저는 그런 복잡한 철학적 사고를 잘 모릅니다. 그러나 이렇게 진리를 찾아가는 방법에서
저는 하나님의 창조 원리를 배워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복적 신앙도 아니고 천국만을 위해서 하나님을 믿는 종교도 아닙니다.
기독교가 진리이기 때문에 이 진리를 믿는것이고 세상에서 기독교만한 진리가 없기 때문에
이곳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리라고 믿는것은 나만 믿는 것이 아니니 나에게 묻지 말라는 것입니다.
거기까지 설명할정도로 나는 천재도 아니고 창조주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님이 기독교를 진리로 믿는다면 구조론을 통해서 얻을수 있는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전 기독교가 더욱더 진리라는것을 굳게 믿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맘대로 하는 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기 멋대로 하는 신이 아니라 합리적으로 소통하면서 세상을 다스리는 신이기 때문입니다.
사단이라고 해서 하나님이 사단을 무시하지 않으며 사단의 의견을 존중하여 그 의견을 청취하시고
합리적이면 그것을 행하도록 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모든것이 협력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되는것이 진리입니다. 솔로몬이 세상의 부와 세상의 지혜를 다 가졌어도 모든것이 헛되고 오직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지혜만이 헛되지 않다고 고백한것을 볼때....
하나님은 우리를 강제로 끌어다가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지 않으시고 우리를 설득하셔서
내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고백하게 하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은 바로 하나님이 합리적이며 기다리시는 분이시고
전지전능하시지만 맘대로 행하지 않으시고 우리와 소통하시며 우리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어하시고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을 듣고 싶어하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은 바로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심을 알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구조론적인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맘대로 할수 있지만 맘대로 안하시는 분 이땅의 세누리를 싹 쓸어 엎으실수 있지만 그들을 엎지 않으시고 그냥 놔두시는 분.....내 가슴이 시릴정도로 아프게 하면서 까지 세누리를 놔두시는 하나님 밤세워 잠을 못자게 만들면서 까지도 세누리를 싹쓸어 버리시지 않는 하나님.....전 그 하나님을 원망하지만 하나님은 맘대로 세누리를 쓸어버리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사실에.....말로 표현하지 못할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세누리가 싹 쓸려 이 지구상에서 사라질것임을 하나님은 저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냥 놔두라고 때가되면 스스로 망할거라고...기다리면 된다고 저들은 스스로 망하게 될것이라고 하나님이 손 안대도 스스로 무너질것이라고.........
우리는 이미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님이라는 착한 대통령을 만나고 그 시절을 10년 살았기 때문에.....세누리가 아무리 발악해도 그들은 더이상 살길이 없다는것을 하나님은 저에게 보여주고 계십니다. 때가되면.....그렇게 될거라고.....구조론 적으로도 그들은 망하지 않을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빛의아들' 님에게 -
여기 계신 분들은 세상에 대해 '전체적인 시각'을 얻으려고 노력합니다. 통합적인 시각이라고 할 수 있죠. 말하자면, 개나 소나 말이나 전체적으로 보면 '동물'로 통합됩니다. 그런데, 집오리 한마리가 자신의 모든 동물의 대표자라고 주장할 수는 있겠지만, 아무도 인정 안하겠죠.
기독교는 불교나 기타 신념체계의 한 부류로서, '종교의 하나'에 지나지 않습니다. 님의 주장을 보면, 제가 보기에 일부에 지나지 않는 '부분'이 '전체' 노릇을 한다는 겁니다.
남들은 세상에 동물도 있고 식물도 있고 바이러스도 있고, 이들을 통합적으로 바라보아 '생명체'라고 종합을 하고, 우리가 보는 것과 다른 형태의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겠나... 이런 얘기를 논하고 있는데, 뜬금없이 집오리 만이 유일하고 진정한 동물이라고 주장한다면, 이게 귀에 들어올까요?
요는, 자신이 처한 입장의 '밖에서' 자신을 바라보지 못한다는 겁니다.
기독교계 안에서야 바울이 옳으네 베드로가 옳으네 박이 터지게 싸우겠지만 (불교에서도 마찬가지), 밖에서 보면, 어허~ 종교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어디든 교리의 해석을 놓고 죽기살기로 싸우는 게 당연지사로군~ 하고 있단 말입니다.
안에서나 통하는 주장을 밖에서는 하면 안됩니다.
이슬람 국가에서 도박을 하면 손목을 자르는 형벌이 있다 칩시다. 그 법을 온세상 모든 나라들이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미친넘 소리 듣겠죠. 나같으면, 너네들 손목이나 잘라라~ 한국사람인 나에겐 그딴 법 소용없다~ 이렇게 되는 것이죠. 그 나라가 도대체 지구의 대표자라도 된답니까?
여튼 님의 주장을 듣노라면 아집과 편견을 느낍니다. 내 말은 성경에 있고, 그러니 내 말은 무조건 옳다. 이거 아닙니까?
결국 다원이님의 주장은 무엇입니까? 상동님께서 바울은 개새끼라고 표현한것이 세상에 대해 전체적인 시각안에서 한 말입니까? 그럼 만약 제가 석가모니가 개새끼라고 하면 어떻겠습니까? 마호메트도 개새끼고 공자도 개새끼입니다. 어떻습니까? 전세계의 모든 깨달음을 입은 사람들은 다 개새끼들이라고 표현해도 됩니까?
이 논쟁의 시작이 어디부터인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저보고 편협하다고 해도 할말이 없습니다. 저는 바울사도님을 변호하기 위해서 시작한 일이고 그가 토기장이 비유를 내세운 이유가 바로 하나님의 권세를 유대인들에게 가르치기 위함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토기장이가 진흙이 없으면 토기를 만들수 없습니다. 그럼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신 분이 아니네요. 진흙이 존재해야 하니....제가 천제가 아니고 하나님이 아니니 전부를 알수 없습니다. 그러나 토기장이의 비유는 김동렬 선생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권세를 내세워 인간을 굴복시키기 위함입니다.
그럼 바울사도님이 토기장이 비유를 로마서 9장에서 꺼낸 이유가 무엇때문인가! 바로 자기 백성들인 유대인(이스라엘)민족에게 하나님이 이런 분이라는것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들이 몰라서? 그랬을까요? 유대인들이 하나님이 토기장이인걸 모를까요? 알죠 알지만 그들은 자기들의 하나님으로만 생각하는 겁니다. 온 인류의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들만의 하나님! 바울이 이스라엘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온 인류의 하나님이라는것을 그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님은 이 논쟁의 시작이 무엇인지 부터 생각하시고 뎃글 다시기 바랍니다. 밖이 어떻고 안이 어떻고...그런 쓸데 없는 소리말고....기독교에서 가장 존경받는 그리고 최고의 신학자인 바울사도님을 개새끼라고 부른것에 대해서 저는 인정할수 없기 때문에 이런 논쟁이 벌어진것이니..........
끼어드실려면 제대로 끼어드시기 바라니다.
그럼 하나님을 뺀 나머지는 다 개새끼들이겠네요....
이걸로 해답을 가지라고?
하나님이 상부구조고 인간이 하부구조라면
인간이 하나님이 되고자 했던것이 하부구조가 망가진 이유인데...
인간보고 하나님이 되라고 하는것이 과연 답이 될것인가?
아담은 하나님이 되고자 곧 선악을 알고자 선악과를 먹었고
선악을 알게된 뎃가로 망가진것인데......
휴~ 나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