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입과 글쓰기>
감정이입.....에 대하여..
과연 감정이입 이란게....뭔가 대상이나 행위를 보고 일어나는 자기감정을 대입시키는게 감정이입인 것일까....?
아니라고 여겨진다.
감정이입이란, 자기감정과 상관없이 건조하게 상대의 맥락을 그대로 따라가 보는 것이다. 거기서 자기안을 자극하는 느낌과 만나서 반응점이 형성될때 공감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여긴다. 그러므로 감정이입은 느낌과 느낌의 접속인 것이다. 미리 습관지어진 감정이 둥둥 떠나니다 그 순간에 일어나는 자기감정을 개입시켜 얻어지는 그런 느낌은 아닌 것이다.
감정이입이란, 느낌의 자극이다. 가만히 있다가도 어떤 무엇인가를 접하면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내안의 느낌이 자극을 받아 마음이나 행위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런 느낌에 민감한 사람은 촉이 발달했다.
이런 느낌의 발달이 뭔가에 대한 열정을 촉진 시킨다. 즉 자기 감정 투사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맥락을 따라가다 뭔가 자기와 통할때 그때 얙션을 취하게 된다.
그러나, 감정이입을 자기감정 투사로서의 감정만을 받아 들이게 되면 감정 놀음에 허덕이게 된다. 즉, 주체적인 입장이 아니라 감정에 끌려가는 형국이 된다.
행위를 보는 것도 말을 듣는 것도 글을 보는 것도...
또, 행위를 하는 것도 말을 하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이러한 관점에서 살펴보자면,
언어가 가지는 맥락과 언어의 힘을 잘 파악만 하여도 그림이든 그 무엇이든가에서 어떤 느낌 전달과 맥락 파악이 수월해져서 자기 스스로의 소통이 원활해진다.
언어는 집약되져 있고 압축되어져 있다. 명사가 되고 개념어가 만들어지는 이유는 그 형태가 그릇이기 때문이다. 무엇인가를 담아 놓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 담아놓은 것에서 어떻게 제대로 꺼낼 것인가이다. 명사도, 개념어도, 한 문장도, 한 편의 글도 모두 그릇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모두 거기에 담고자 하는 그 무엇을 담아 놓았다. 사유의 출발점이다. 왜? 그릇 형태를 취하고 있는가...? 틀이 있어야 무엇인가를 담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인가를 담아낼 형식을 만들어 내는 것이 사유이다.
또,담겨진 것을 어떻게 꺼낼 것인가?...내용을 잘 풀어내는 사유가 명상이기도 하다. 자연이란 그릇, 인간이라는 그릇,철학이라는 그릇, 명사라는 그릇, 개념어라는 그릇, 글이라는 그릇.책이라는 그릇...
잘 꺼내도록 풀어내는게 동사의 형태이다. 정을 동으로 다시 정과동에서 중으로...비약하는거...대칭에서 비대칭으로의 도약(이미 있는 것에서)...다시 업그레이드된 정으로의 비상(새롭게 자신에게 생겨난 자기 그릇..공간)... 다시 동으로 풀어내기(자기 그릇안에서 풀어내어 자기 글쓰기..시간)...다시 대칭을 깨고 비대칭으로의 비약(자기 에너지를 확보).
공간에 시간을 투여하면 에너지가 생긴다.이것이 일의 한 사이클이다.
감정이입은 무엇인가를 통하여 한 사이클의 결과를 접할때 일어날 때가 많다. 시작일때는 뭔가 잘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눈에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부터 언제나 무엇인가는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감정이입은 자신이 어떤 결과를 보고 반응한 지점이 다시 자기 자신에게는 시작점이 되는 것과 같다. 이는 곧 피드백이다. 예로 영화는 이미 만들어진 상태에서 사람들이 영화를 본다. 그리고 어느 지점마다 감정을 자극할 장치를 한다. 인간이 어떤 내용에서 어떤 반응을 한다를 미리 계산해서 그 지점에 감정이입이 될 장치를 해놓게 된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 장치에 반응을 한다해도 그 반응의 깊이는 각자 다르다. 감정이입이란, 그 깊이가 어디까지 침투하느냐이다. 느낌과 느낌의 접속인지, 습관지어진 감정의 자극에 불과할지에 대해서는, ...그 자신만이 알 수 있다. 자신이 느낀 감정이입이 맥락을 따라 흘러가 어떤 느낌과 접속 하였는지, 아니면 자기감정 투사른 한 것인지에 대해서.
* 막내동생이 보내준 시크한 것인지 연애편지 보내는 초딩의 포즈인지 암튼, 복을 주는 소녀의 그림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 ....
구조론님들께....시크하게~~~ 슬쩍...."복" ......놓고 갑니다. ㅎㅎ
* 요~~~귀요운 그림을 곳곳에 써먹고 있음....ㅋ
감정이입.....에 대하여..
과연 감정이입 이란게....뭔가 대상이나 행위를 보고 일어나는 자기감정을 대입시키는게 감정이입인 것일까....?
아니라고 여겨진다.
감정이입이란, 자기감정과 상관없이 건조하게 상대의 맥락을 그대로 따라가 보는 것이다. 거기서 자기안을 자극하는 느낌과 만나서 반응점이 형성될때 공감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여긴다. 그러므로 감정이입은 느낌과 느낌의 접속인 것이다. 미리 습관지어진 감정이 둥둥 떠나니다 그 순간에 일어나는 자기감정을 개입시켜 얻어지는 그런 느낌은 아닌 것이다.
감정이입이란, 느낌의 자극이다. 가만히 있다가도 어떤 무엇인가를 접하면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내안의 느낌이 자극을 받아 마음이나 행위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런 느낌에 민감한 사람은 촉이 발달했다.
이런 느낌의 발달이 뭔가에 대한 열정을 촉진 시킨다. 즉 자기 감정 투사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맥락을 따라가다 뭔가 자기와 통할때 그때 얙션을 취하게 된다.
그러나, 감정이입을 자기감정 투사로서의 감정만을 받아 들이게 되면 감정 놀음에 허덕이게 된다. 즉, 주체적인 입장이 아니라 감정에 끌려가는 형국이 된다.
행위를 보는 것도 말을 듣는 것도 글을 보는 것도...
또, 행위를 하는 것도 말을 하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이러한 관점에서 살펴보자면,
언어가 가지는 맥락과 언어의 힘을 잘 파악만 하여도 그림이든 그 무엇이든가에서 어떤 느낌 전달과 맥락 파악이 수월해져서 자기 스스로의 소통이 원활해진다.
언어는 집약되져 있고 압축되어져 있다. 명사가 되고 개념어가 만들어지는 이유는 그 형태가 그릇이기 때문이다. 무엇인가를 담아 놓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 담아놓은 것에서 어떻게 제대로 꺼낼 것인가이다. 명사도, 개념어도, 한 문장도, 한 편의 글도 모두 그릇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모두 거기에 담고자 하는 그 무엇을 담아 놓았다. 사유의 출발점이다. 왜? 그릇 형태를 취하고 있는가...? 틀이 있어야 무엇인가를 담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인가를 담아낼 형식을 만들어 내는 것이 사유이다.
또,담겨진 것을 어떻게 꺼낼 것인가?...내용을 잘 풀어내는 사유가 명상이기도 하다. 자연이란 그릇, 인간이라는 그릇,철학이라는 그릇, 명사라는 그릇, 개념어라는 그릇, 글이라는 그릇.책이라는 그릇...
잘 꺼내도록 풀어내는게 동사의 형태이다. 정을 동으로 다시 정과동에서 중으로...비약하는거...대칭에서 비대칭으로의 도약(이미 있는 것에서)...다시 업그레이드된 정으로의 비상(새롭게 자신에게 생겨난 자기 그릇..공간)... 다시 동으로 풀어내기(자기 그릇안에서 풀어내어 자기 글쓰기..시간)...다시 대칭을 깨고 비대칭으로의 비약(자기 에너지를 확보).
공간에 시간을 투여하면 에너지가 생긴다.이것이 일의 한 사이클이다.
감정이입은 무엇인가를 통하여 한 사이클의 결과를 접할때 일어날 때가 많다. 시작일때는 뭔가 잘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눈에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부터 언제나 무엇인가는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감정이입은 자신이 어떤 결과를 보고 반응한 지점이 다시 자기 자신에게는 시작점이 되는 것과 같다. 이는 곧 피드백이다. 예로 영화는 이미 만들어진 상태에서 사람들이 영화를 본다. 그리고 어느 지점마다 감정을 자극할 장치를 한다. 인간이 어떤 내용에서 어떤 반응을 한다를 미리 계산해서 그 지점에 감정이입이 될 장치를 해놓게 된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 장치에 반응을 한다해도 그 반응의 깊이는 각자 다르다. 감정이입이란, 그 깊이가 어디까지 침투하느냐이다. 느낌과 느낌의 접속인지, 습관지어진 감정의 자극에 불과할지에 대해서는, ...그 자신만이 알 수 있다. 자신이 느낀 감정이입이 맥락을 따라 흘러가 어떤 느낌과 접속 하였는지, 아니면 자기감정 투사른 한 것인지에 대해서.
* 막내동생이 보내준 시크한 것인지 연애편지 보내는 초딩의 포즈인지 암튼, 복을 주는 소녀의 그림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 ....
구조론님들께....시크하게~~~ 슬쩍...."복" ......놓고 갑니다. ㅎㅎ
* 요~~~귀요운 그림을 곳곳에 써먹고 있음....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