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숙 교수가 뭔가 이론을 제시한 모양이다. 문재인 왕따현상을 분석하는 책을 냈다고. 물질주의 구진보와 집단주의 구보수에 대해서 문재인 세력을 개인주의 신진보로 규정한 모양이다. 개인주의를 탈물질, 탈권위로 보고 있다. 일견 그럴듯하나 자의적인 규정으로 본다. 자세한 것은 ‘왕따의 정치학’을 읽어봐야 알겠고 하여간 대략 살펴보니 그렇다.
◎ 구보수 – 물질주의 이게 맞는지 모르겠다. 필자가 보기에는 구보수나 구진보나 다 집단주의다. 한국은 그렇다. 봉건시대에서 벗어난지 얼마 안 된다. 할배들이 똘똘 뭉치는게 집단주의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진보 집단주의는 봉건적 학벌과 인맥집착에 노조 이기주의다. 보수의 집단주의는 지역주의와 전통적인 가족주의다. 진보도 가족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 구보수 – 지역중심 집단주의 : 권위주의, 지역주의, 정실주의 조기숙은 미국에서 공부했으니 서구기준으로 보는 것이다. 한국은 봉건전통에서 벗어난지 얼마되지 않았다. 필자가 깨달음의 대화에서 사랑이 현대의 산물이며 개인이 의사결정 주체로 등장한데 사랑의 의미가 있다고 했다. 개인이 의사결정의 주체로 등장한 것은 80년대 이후다. 개인이 아니면 가족이다. 가족이 의사결정주체면 중매결혼 해야한다. 한국은 아직도 중매로 결혼하는 사람이 있다. 개인주의가 척박하다. TV드라마에는 아직도 ‘이 결혼 반댈세.’ 하는 장면이 있다. 미친 거다. 동성애가 찬반의 문제가 아니듯이 남의 결혼에 찬반을 논하는 미친 넘이 버젓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면 황당하다. 일본은 5년에 한 번 정도 시댁을 방문한다던데 한국은 부모가 자식집을 제집처럼 드나든다. 웃겨주거. 이게 말 되냐고. 이래서 집단주의다. 한국의 집단주의는 진보나 보수나 예외가 없다. 나는 가족포함 남의 결혼식에 가본게 평생 동안 세 번밖에 없는데 한국은 아직도 많은 사람이 남의 결혼식에 부조금을 낸다. 우와! 질기다. 이게 말이 되냐고? 이게 얼빠진 집단주의가 아니고 무엇인가? 진보도 부조금 내고 보수도 부조금을 낸다. 똑같다. 부조금 낸다는게 뭐냐? 알음알음으로 인맥으로, 꽌시로, 뒷구멍으로 짜고친다는 거 아닌가? 나는 남의 결혼식에 가서 태연하게 부조금을 내는 사람을 진보로 보지 않는다. 그런 짓 왜 하나? 심지어 진보인사가 말이다. 말이 돼? 봉건시대 구닥다리 행동이다. 뒷구멍으로 붙어먹기는 진보도 보수도 예외가 아니다. 진보도 설렁탕 사주고 보수도 사준다. 노무현은 설렁탕을 사주지 않았다. 그래서 죽었다. 빌어먹을 이게 진보냐 말이다. 한국의 보수는 지역주의다. 한마디로 자기 지역에 예산 빼돌리자는 거다. 새누리당과 국민의당의 공통점은 결국 예산 빼먹기로 투표한다는 거 아닌가? 한국의 모든 언론이 문재인을 왕따시키는 것은 다른 이유가 있다. 엘리트 진보의 운동권 인맥중심 집단주의다. 한겨레, 오마이의 일부 간부들은 자기 출신지역이 호남이기 때문에 그러는 거다. 오마이 김당은 출신지가 광주다. 정의당을 밀고 있는 노조는 기업이 울산과 창원에 있다. 역시 지역주의가 작동한다. 울산창원 공단에 일하는 노동자가 잘난 척하는 서울내기당을 지지하고 싶겠는가? 권영길 시절부터 진보정당이 민주당을 외면한 것이 반은 지역주의다. 지역주의에서 자유로운 진보인사가 한국에서 몇이나 되겠는가? 결론적으로 한국의 정치지형을 규정하는 것은 봉건적 지역주의와 집단주의이며 이는 산업화 역사가 일천하기 때문이다. 300년의 산업화 역사를 가진 서구에는 없다. 한국은 지나치게 급속하게 산업화가 일어나서 특정지역이 혜택받고 다른 지역은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유럽이라면 어떤 도시가 공업화 된다 해도 300년 동안 일어나는 일이라서 의미가 없다. 산업이 발달한 북이탈리아와 농업에 의존하는 남부 이탈리아가 대립한 것이나, 과거 공업을 일으킨 북부와 면화농사를 지은 남부가 대립한 미국 정도가 그러할 뿐이다. 한국은 여전히 지역주의다. 탈지역주의야말로 한국에서 제 3의 물결이며 신진보가 그렇다. 결국 한겨레, 오마이, 경향의 봉건성은 산업화이후 세대 그러니까 70년대 이후 출생자가 본격 데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개인주의는 산업화의 산물이며 한국에서 40대 이하의 영역이다. 50대 초반인 필자만 해도 형제가 다섯이 되고 친척집은 형제가 무려 11명이나 되었다. 11형제가 한 집에 오글오글 모여살다보면 집단주의가 될 수밖에 없는 거다. 한국에서 가족계획이 실시된 70년대 중반부터 개인주의 시대가 시작된다. 그 나이는 45살 이하다. 이들이 개인주의 세대이다. 물질주의라는 것도 그렇다. 왜 물질에 집착할까? 대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서다. 75년 기준으로 그 이전 출생자의 물질주의와 그 이후 출생자의 물질주의가 다르다. 물질적 욕망이라면 80년대 출생자라도 예외가 아닌 거다. 기성세대의 물질주의가 대가족에 기반한 권위적 물질주의라면 신세대 물질주의는 해외여행을 하고 소비향락 즐기려는 개인주의적 물질주의다. 둘 다 물질주의지만 내용이 다르다. 그렇다면 왜 한겨레, 오마이, 경향은 문재인을 미워하나? 통제가 안 되기 때문이다. 한국정치는 지역주의가 지배한다. 지역주의는 약점이다. 약점을 찔러 통제할 수 있다. 한국의 정치인은 대부분 특정지역에서 인기있고 타 지역에서 인기가 없다. 그렇다면 그 타지역을 결집시켜 어떤 정치인이든 견제할 수 있다. 그런데 문재인은 그런 약점이 없다. 지역주의 정치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통제가 안 된다. 통제 안 되면 왕따시키는게 당연하다. 그렇다면 왜 통제가 안 될까? 비대위 때문이다. 선거때만 되면 임시독재를 한다. 로마는 전쟁을 할 때 임시로 독재관을 선출했다. 한국은 독재관에게 비대위원장이라는 완장을 채워준다. 독재관이 비민주적인 공천학살을 자행하면 큰 박수를 받는다. 어디서 학살을 할까? 국민의당은 광주학살 할 수 있다. 그런데 광주에서 금뺏지가 몇 안되니 대학살이 불가능. 박근혜는 대구에서 공천학살을 자행했다. 그래봤자 10여 명에 불과해. 이번에 민주당이 승리한 것은 대범한 공천학살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노무현은 엄청난 숫자의 탄돌이를 생산했는데 박근혜 박돌이가 몇 명이나 되냐고? 쪽수싸움에서 밀리는 것이다. 이번에 등원한 문재인 문돌이 숫자가 적지 않다. 박돌이보다 훨 많다. 새누리당은 대구절반+전국구 절반을 해도 총재몫 혹은 대통령 몫이 10여 석밖에 안 되는 거다. 지난 총선에서 박근혜 몫으로 당선된 숫자는? 국민의당에서 안철수몫으로 당선시킨 숫자는? 많아야 10여 명이다. 문재인은? 꽤 된다. 그 와중에 김종인도 슬그머니 자기몫을 챙겼다. 문재인은 원래 계보의원이 0명이었는데 순식간에 민주당 절반이 친문으로 분류되는 판이다. 미국은? 미국은 국회의원 후보의 호별방문이 가능하다. 지구당의 독재다. 지역위원장이 절대권 가지고 마음껏 권력을 휘두른다. 민주당이 무소속 샌더스를 떨구려고 표적공천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당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지역위원장이 버티고 있으면 도리없다. 결론을 내리자. 문재인을 미는 신진보세력은 있다. 그러나 이는 전통적인 진보, 보수 이념과 상관없다. 한국 정치지형을 규정하는 것은 여전히 지역주의다. 대가족제도 영향을 받은 세력이 구진보, 구보수다. 그렇다면 해법은? 제도를 바꾸는 수밖에 없다. 문재인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 몫으로 공천하고 비대위원장 몫으로 공천하는 나쁜 관행 없애야 한다. 공천학살이 웬말인가? 지구당을 강화하고 상향식 공천을 정착시켜야 한다. 정실주의, 연고주의 관행 없애야 한다. 부단한 개혁밖에 없다. 한겨레들의 인위적인 문까행동은 어리석다. 과도기로 문재인의 비상대권을 받아들여야 한다. 결론은 지역주의 약점을 찔러 정치인을 통제하는 나쁜 습관을 한겨레들이 갖고 있으며, 지역주의 모순을 해결하는 장치로 기능하는 여야의 공천학살 관행이 ‘문재인을 통제할 수 없다.’는 좌절감을 준 거다. 공천학살 멈추고 지역주의 없애야 해결이 된다.
지역주의에서 탈지역주의로 가는 과도기에 일시적으로 문재인의 권한이 커져버린게 맞습니다. 그러나 이를 정상적인 정치과정으로 받아들여야지 인위적으로 꺾으려고 하면 소인배의 못난 행동입니다. 문재인 비상대권은 앞으로의 정치과정을 통해 자연히 용해된다고 봅니다. 지금 한국은 위기이고 역사의 커다란 전환기이며 그럴 때는 항상 강한 카리스마가 등장하는 법입니다. 인정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