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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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7501 vote 0 2019.01.28 (16:56:48)



    닫힌 구조냐 열린 구조냐?


    깨달음의 대화 게시판에서 ‘생각을 잘하는 기술’을 연이어 네 편 썼는데 영화 극한직업을 보고 ‘생각을 잘하는 사람’이 떠올랐다. 과거 스포츠투데이에 연재했던 웹툰 시민쾌걸의 김진태 화백이다. 이 사람은 그야말로 생각의 달인이라 하겠는데 이야기를 끝도 없이 지어낸다.


    그런데 포드시스템으로 대량생산한다는 점이 각별하다. 머리가 하얗게 세도록 골똘히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도구를 써서 공장제품을 쉽게 쉽게 찍어내는 것이다. 내용이 아닌 형식을 틀기 때문이다. 시민쾌걸의 등장인물 중에 걸작은 마이더스인데 나무위키를 참고하자.


    전 세계의 0.0000001% 정도에 해당한다는 우주적 조만장자. TV 채널을 돌리는 대신 방마다 다른 채널이 있어서 저택을 돌아다녀야 된다든가, 화장실에 가기 위해서는 2km를 군악대의 행진과 함께 가야한다든가, 도둑이 들었는데 저택 부지가 워낙 넓어서 그 안에서 조난을 당한다던가 잠을 잘 때 숙면을 위해 교향악단이 연주를 해 준다든가, 뒷마당에는 예전에 가지고 놀았다던 장난감이라고 어디서 많이 본 로봇(태권V.마징가.)들이 버려진 채로 반쯤 파묻혀 있다던가 하는 에피소드들이 있다. 저택 내에 바다와 빙산도 있다. 애완용 펭귄 펭돌이와 집사와 함께 산다. 라이벌로는 빌 게이츠가 있는 듯. 나이는 49세로 정의봉보다 연상이나 성형수술로 젊음을 유지하고 있다. 사주에는 돈복밖에 없는 인물로, 복권은 긁으면 무조건 1등에 어렸을 때 어머니가 용돈관리를 배우게 하려고 다 쓰고 오라고 준 돈 3억(당시 아파트 한 채에 1000만 원)을 가지고 돈을 버리기 위해서 강남구에 땅을 샀다. 그런데 이게 대박나서 쓰라고 준 용돈을 불려왔다고 황금 덩어리를 들고 서 있는 벌을 섰다. (하략)


    하려면 이 정도쯤 해줘야 한다. 설명이 길어서 반을 생략한게 이렇다. 중요한 것은 서로 연동되어 있다는 점이다. 간 크게 우주적 조만장자로 설정하는 순간 거기에 맞추어 다른 모든 것들도 바뀔 수밖에 없다. 이야기를 지어내려면 이 정도 해야 한다. 찌질하게 굴지 말라는 거다.


    구조론에서 하지 말라는 자기소개, 대상화, 타자화, 대칭행동, 흑백논리, 이분법, 이원론, 귀납적 사고를 단번에 해결하는 방법은 자신을 우주적 조만장자를 넘어 신과 맞먹는 급으로 설정하는 것이다. 우주적 조만장자 마이더스 정도는 집사로 부리고 살아야 이야기가 살아난다.


    세게 가야 한다. 무협지의 상투적인 설정처럼 비리비리한 약자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길을 나섰다가 기인을 만나 동굴에서 수련하고 어쩌고 하는 이분법적 레파토리를 벗어나 있다. 시민쾌걸에 등장하는 다른 등장인물과 달리 마이더스만 특별히 설명이 길다는 점에 주의하자.


    마이더스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 끝도 없다. 너무 임팩트가 커서 주인공 정의봉을 능가할 정도가 되었다. 자체 에너지가 있으면 이렇게 된다. 이야기든 생각이든 대칭을 따라가므로 보통은 닫히게 된다. 닫히면 망한다. 열린구조라야 한다. 초딩일기라면 잘못을 저지르고 반성한다.


    잘못과 반성의 대칭이 닫힌 구조를 이룬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자체 에너지가 없기 때문이다. 하긴 초딩에게 무슨 에너지가 있겠는가? 돈이 있냐 힘이 있냐? 그러므로 이야기가 앙상해진다. 미국이라면 돈 많은 나라에서 주인공에게 에너지가 있다고 설정해도 관객들이 납득한다. 


    한국은 가난해서 주인공이 비리비리해야 한다. 이야기가 메말라서 망한다. 현실성 무시하고 김진태 화백처럼 뚝심있게 밀어붙여야 한다. 영화 극한직업 역시 현실성은 없다. 상관없다. 코미디니깐. 중요한건 형식이다. 유사한 이야기를 대량으로 복제해낼 수 있는 구조라야 한다. 


    전통적인 개그는 일본 만담에 등장하는 보케와 츳코미의 대칭을 따른다. 흑백논리가 되고 선악구도가 되고 이분법이 되고 초딩일기가 되는 것이다. 하지 말라는 자기소개다. 재미는 있어도 수준이 낮다. 코미디 봉숭아 학당은 돌아가면서 안 물어본 자기소개를 계속하는 것이다.


    보케가 바보짓을 하고 츳코미가 때리는 구조의 선악대칭은 자체적으로 완결되므로 흐름이 끊어진다. 시민쾌걸은 다르다. 슈퍼맨이 악당을 물리치면 선악대칭이다. 김진태 화백은 구조 안에서 또 다른 구조를 만들어낸다. 이야기가 옆으로 방향을 튼다. 슈퍼맨에도 급수가 있더라.

 

    누워서 날아가는 슈퍼맨은 기술이 떨어지는 3급이고 앉아서 가부좌 자세로 날아가는 슈퍼맨은 2급이고 수직으로 꼿꼿하게 서서 날아가야 슈퍼맨 중에 알아준다. 이런 식이다. 대칭에서 비대칭으로 틀어버린다. 내용이 아니라 형식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주체가 되는 점이 각별하다.


    허영만의 타짜에서 아귀가 도박판 안에서 또 다른 도박을 벌여서 상대의 손목을 자르는 것과 같다. 선악대결이 아니라 고수와 하수의 대결이다. 선악대결로 가면 악당이 박살나고 이야기가 완결되지만 고수와 하수의 대결로 가면 또 다른 이야기가 옆으로 가지를 쳐서 계속 가준다. 

  

    사실은 정보부인 막국수 요원이 잠복근무를 위해 위장으로 포장마차를 했는데 맛집으로 대박이 난다는 이야기는 만화 시민쾌걸에도 나온다. 웃음을 끌어내는 방식이 유사하다. 마이더스와 같은 부자들은 성형수술을 하므로 얼굴이 재벌처럼 생긴게 아니라 아이돌 가수처럼 생겼다.


    그러므로 신과함께의 염라대왕은 할아버지 수염이 없다. 주호민 화백의 작품에 김진태 화백의 설정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염라대왕이 돈이 없어 꾀죄죄한 몰골로 다니겠는가 말이다. 이렇게 방향을 틀면 거기에 맞추어 다른 캐릭터도 죄다 설정을 바꿔야 하므로 흥미진진하다. 


    극한직업은 다들 싸움도 잘하고 영업도 잘하고 치킨장사도 잘한다. 한국 코미디의 병폐인 신파를 극복하고 있다. 7번방의 선물과 같이 찌질하면 안 좋다. 울면서 관객의 도움을 구하는게 신파다. 그거 저급한 반칙이다. 이야기를 진행할 동력이 떨어지니까 관객에게 매달리는 거다.


    영화 신과함께도 자체 동력의 고갈로 관객에게 부담을 주는 편한 길을 선택한 점이 아쉽다. 신과함께가 동력고갈에 빠진 이유는 주인공들의 무술실력이 떨어져서다. 흥행은 했지만 크게 잘못된 거다. 영화 극한직업은 수련을 거듭하여 실력이 점점 늘어나는 일본식 설정을 피했다.


    기본적으로 주인공이 강해야 한다. 주인공이 약한 이유는 머리가 나빠서 강한 캐릭터를 못 만들기 때문이다. 우주적 조만장자로 강하면 거기에 맞추어 죄다 바꾸어야 하는데 엄두가 안 난다. 그게 약한 거다. 코미디가 웃기는 이유는 코미디언이 대놓고 바보짓을 하기 때문이다. 


    바보짓을 하면 일이 당연히 일은 실패로 돌아간다. 왜냐하면 바보니까. 그래서 실패하면 사건은 거기서 끝난다. 흐름이 끊어지고 긴장이 풀린다. 긴장을 유지하려면 다시 더 강한 바보짓을 해야 한다. 흐름이 끊어지므로 억지 긴장을 끌어내려고 코미디언들이 고함을 질러댄다. 


    봉숭아 학당에서 볼 수 있다. 기승전결로 전개되지 않고 같은 패턴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런 저질개그를 탈피한 사람은 전유성과 최양락 정도인데 이분들은 고함을 지르지 않고 점잖게 말한다. 점잖게 이야기해도 긴장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다음 계획이 뒤를 받쳐주기 때문이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3]kilian

2019.01.29 (04:39:13)

" 닫히면 망한다. 열린구조라야 한다."

http://gujoron.com/xe/1057860

[레벨:2]말시인

2019.02.01 (10:12:03)

동렬님의 캐릭터론에 딱 맞는 영화로 한국에서는 '범죄도시' 마동석의 원펀치. 미국 영화 중에서는 '포레스트 검프' 가 생각이 나요 ㅎㅣ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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