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진형 칼럼.<5년 주기 불안증>
대통령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불안감이 커진다.
돌이켜 보면 나의 이런 불안감은 1997년 선거때 시작했다. 금융위기 한가운데에서 선거를 했으니 나는 김대중 후보가 당연히 될 줄 알았다. 그러나 김대중은 약 1033만표로 993만표를 얻은 이회창에 비해 겨우 40만표를 더 받아 40.3%의 득표율로 대통령이 되었다. 만약 이인제가 출마하지 않았다면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금융위기가 닥친 상황에서 치룬 선거라서 나는 당연히 정권심판론에 의해 김대중이 당선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걸 보고 그때 나는 매우 놀랐다. 그때부터 나는 내가 한국인과 한국 사회를 잘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자각 때문에 나는 대통령 선거가 다가올 때마다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2002년 선거는 선거일 하루 전 정몽준과 단일화가 깨졌다는 소식을 듣고 불길한 예감에 전전긍긍했다. 투표가 끝나고 첫 출구조사 결과를 아버님과 함께 초조하게 기다렸는데 노무현이 앞섰다고 TV 방송에서 보도했다. 뉴스 발표를 보고 아버님이 펄쩍 일어나 소리를 치며 어찌나 좋아하시던지 기억이 생생하다. 한번 더,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이때 노무현은 1201만표로, 1144만표를 얻은 이회창에게 겨우 60만표를 더 얻어 당선되었다. 이 때 노무현의 득표율은 48.9%였는데 혹시 당시 투표율이 70%로 5년 전 80%였던 투표율이 10%나 떨어진 덕을 본 것은 아니었나 싶다. 어쨌든 단일화 결렬로 노무현이 패배할 것으로 생각했었기 때문에 또한번 나는 허룰 찔렸다.
그 다음 선거는 워낙 정동영이 처음부터 열세여서 예상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그래도 이명박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는 것이 믿기 어려웠고 그런 한국 사회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어 당혹스러웠다.
그 다음 박근혜와 문재인이 대결한 선거에선 설마 박정희 딸을 국민들이 뽑을까 싶었지만 박근혜는 1577만표를 얻어 문재인보다 108만표를 더 얻어 당선되었다. 이 때도 이런 한국 사람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어 나는 일종의 열패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런 당혹감은 그 다음 선거로도 이어졌다. 박근혜 탄핵으로 치루게 된 선거였고 상대방 측 후보 역시 너무 말도 안되는 사람이어서 당연히 압도적인 과반수로 문재인이 당선될 줄 알았다. 그냥 압도적으로 이길 줄 알았던 선거에서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겨우 41.1%를 득표해 당선되었다. 그에게 표를 준 유권자 수도 1342만표로 저번 선거 대비 127만표가 적었는데 나는 이것도 참 이해하기 어려웠다. 다시 한번 더, 투표로 드러나는 한국인의 집단행동 앞에서 머리를 절래절래 흔들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한국 유권자는 참으로 알 수 없는 집단이다. 결과를 알고 나서 이러쿵 저러쿵 사후적인 설명이야 할 수 있지만 사전적으로 일이 어떻게 될지 전혀 예상을 못 하겠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런 일을 5년에 한번씩 겪고 나니 이제는 대통령 선거가 다가올 수록 기대 보다는 불안감이 훨씬 크게 느껴진다.
민주주의 정치란 결국 길거리에서 우리가 만나는 장삼이사, 일반 대중이 같이 모여 나라를 꾸려나갈 수 있다고 믿는 신념에 의한 것이다. 어찌되었든 그 방식이 왕정이나 귀족정 보다 낫다고 생각해서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대중이 내 의견과 다른 것은 차치하고 내 예상과도 다른 결정을 종종 하니 그들에게 판단을 맡겨야 하는 선거가 다가올 수록 점점 더 불안해진다.
그리고 이 불안감은 앞을 내다 볼 수가 없어서 생기는 것이기도 하지만 내가 원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될 때 얻을 수 있는 만족감보다 내가 원하지 않는 사람이 대통령이 될 때 느낄 실망감이 훨씬 크기 때문에 더욱 커진다. 어떻게 이렇게 선을 넘어도 한참 넘는 사람들이 5년에 한번씩 꼬박 꼬박 대통령 유력 후보로 나타나는지 참으로 알 수가 없다. 이게 반복되는 것에 진저리가 나기도 하지만 아예 이런 불안증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수는 없는지도 궁리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펌]
김동렬
김동렬
안녕하세요, (한겨레)탐사팀 김완입니다.
저희는 대선 국면에서 후보자 검증을 진행하라는 편집국장, 스페셜콘텐츠 부장의 지시를 받고 지난 1월 20일 무렵부터 장필수 기자, 정환봉 소통데스크와 함께 취재팀을 구성했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삼부토건 조남욱 회장의 명절선물 리스트 및 일정표를 입수해 보도하기도 하였습니다.
취재를 이어오는 과정에서 1월 말 조남욱 회장의 아들 조시연 부사장의 사업 파트너로부터 조시연 회장과 나눈 대화 파일을 단독 입수하였습니다. 대화 파일은 총 11시간 분량으로 △삼부토건 일가가 재기를 도모하며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정황, △삼부토건 주요 수사 관련 검찰과의 관계, △2005년, 2011년 삼부토건 수사 당시 윤석열 후보의 역할, △윤석열 캠프와 조시연의 연루 정황 등이 담겨있습니다.
이후 정상적인 보강/확인 취재와 보고, 발제 과정을 밟아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지난 2월 15일(화) 편집위원회 회의에 보고를 하였고, 이후 부장을 통해 국장단의 논의를 거쳐 기사 여부를 판단하겠단 입장을 전달받았습니다. 15일 밤에는 류이근 국장, 정은부 부국장과 탐사팀이 면담을 진행했고, 취재 내용과 이후 기사 진행 계획 등을 자세히 설명하였습니다. 16일 오후 국장단 논의를 거쳐 기사 게재가 확정되었고, 1면+5면 기사로 게재한다는 지면 계획이 확정되었습니다.
16일 오후 5시 이후, 1판 지면 제작이 완료되어가던 상황에서 갑자기 기사가 빠지는 것으로 결정이 번복되었습니다. 결정 번복의 이유에 대해 “일부 편집위원이 절차상의 문제를 제기했고, 편집위원회 재논의 이후 기사 여부를 재판단하겠다”는 전달을 받았습니다.
이후 17일 오전 편집위원회 회의에서 다수의 참석자들이 부정적 의견을 밝혔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워딩 기반 기사인데 워딩만으로 수사 무마 입증이 약하다’, ‘시기적으로 예민하다’, ‘기사 나갔을 때의 반향과 파장을 생각하면 보도 실익이 별로 없다’ 등의 발언이 있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이후 국장단은 최종적으로 기사 게재가 어렵단 결정을 했다고 전해왔습니다.
취재팀은 이런 의견에 동의하기 어려워 전체 구성원들의 의견을 묻고자 합니다. 우선 취재 기자들이 확보한 워딩은 수사 무마를 직접 청탁한 당사자의 발언이고, 이 당사자는 재벌 3세로 윤석열 비롯한 다수의 검사들과 지속적인 유착 관계를 의심받아온 인물입니다. 단순히 비교해선 안 되겠지만 수사 과정에서 나왔다는 피의자의 발언이 검사의 전언으로 전해져 기사가 되기도 하고, 김만배 일당이 주고 받은 카톡 대화가 대서 특필되기도 합니다. 조시연의 발언은 <한겨레>가 지난 2019년부터 보도해 온 삼부토건-검찰 유착의 가장 유력한 자의, 최고위급의 언급이기도 합니다. 워딩은 매우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수사 무마 상황을 진술하고 있습니다. 당시, 윤석열 후보는 수사 담당 검사였습니다.
워딩의 ‘입증력이 약하다’는 비판이 있는데, 조시연이 윤석열과 하는 얘기는 본인의 이익에 반하는 것으로 그 자체로 정당한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또한 윤석열 뿐만 아니라 검찰의 최고위급 인사에게도 청탁을 했다는 진술도 있습니다. 어떤 워딩도 100% 사실을 담보할 순 없습니다. 만약, 타사가 이 보도를 먼저 했다면 우리는 입증력이 약하다며 인용 보도를 하지 않았을까요. 수사는 기소로 입증되는 것인데 조시연이 언급한 2차례 수사에서 삼부 측은 수사 대상에 오르지 않았거나, 기소가 되지 않았습니다. 1회 기사 이후 조시연의 워딩 및 취재 내용을 추가 후속 보도 할 수 있음을 국장단에게 알렸고, 기사 비중을 따지지 않을테니 보도할 수 있도록 여러 맥락과 의미를 종합해 판단해달라고도 요청하였기도 하였습니다.
시기적 문제나, 보도 실익 문제는 정치적 고려일 뿐이지만, 우리가 사회적 관계 속에 놓여있는 회사이니 편집위원들은 고민할 순 있는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이를 이유로 사실을 취재하는 기자와 그 기사에 부적절한 영향이 미치고 압박을 주고 보도를 막는 것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언론의 가치와 저널리즘의 책무에 반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보도해야지, 사실을 알았더라도 정치적 시기와 파장을 고민해 보도를 미루는 것이 우리의 태도가 될 순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사내 구성원들에게 1판에 들어갔던 기사에 대한 공동의 판단을 묻고자 합니다. 기사와 함께 발행하려고 했던 녹음 파일도 첨부합니다. 물론, 이런 과정을 밟더라도 편집위원회가 내린 집체적 판단이 달라지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2015년 이후 <한겨레> 기자로 여러 벅차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고 개인적으로도 너무 많은 걸 얻고 배웠던 시간이었습니다. 편집국 이하 구성원들 덕분이고 정말 많은 빚을 졌습니다.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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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자 1면+5면에 들어갔다가 빠진 기사 전문>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검사이던 시절, 삼부토건 조남욱 회장 일가가 지난 2005년 파주 운정지구 개발사업 수사를 무마하기 위해 직접 청탁했다는 증언이 처음 나왔다. 파주 운정지구 개발사업 당시 삼부토건의 자금으로 토지를 매입했던 동업자 등은 기소돼 징역형을 선고받았지만, 삼부토건 쪽은 조사도 받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이미 ‘봐주기 수사’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16일 <한겨레>는 조남욱 삼부토건 전 회장의 아들인 조시연 전 부사장이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2월까지 지인과 나눈 대화 녹음파일 4건(11시간 분량)을 입수했다. 2010년 전후 사업 관계를 맺어온 이들은 삼부토건이 추진하다 수사를 받았던 ‘헌인마을 개발 사업’ 재개를 도모 중이었다. 그러다 조 전 부사장의 사업 추진 자금이 차명으로 숨겨져 있는 게 아닌지 의심하면서 대화를 녹음하게 되었다고 했다.
조 전 부사장은 이 자리에서 2005년 고양지청 검사였던 윤 후보가 ‘파주 운정지구 개발사업 수사 과정에서 삼부토건의 범죄 정황을 확인했다’는 취지로 말한다. 당시 사업을 두고 “고양시에서 걸린 게 그것. 삼부 돈 가지고 이것저것 지네들 개인적으로 투자하고 난리치고 그런 게 있어”라며 “(해당 사안을) 가장 정확하게 아는 게 윤총(윤석열 검찰총장을 이름)일 거야. 거기 보면 그때 돈 돌린 거, 회삿돈 가지고 돈 돌린 거, 어디에 투자한 거 다 나와”(2월 대화)라고 말한다.
삼부토건에서 당시 사업을 주도한 이는 조 전 회장의 동생인 조남원 전 부회장이었다. 실제 조 전 부사장은 “부회장이 걸린 것은 회의록”이라며 “그게 다 우리 윤총한테 다 걸린 거야. …(조)시연이 너한테 차마 얘기 못하겠으니까 그냥 아버님(조남욱 전 회장)한테 이것은 안을 수 있는 한계를 넘었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안 된다고 이야기해라 이랬는데”라고 당시를 설명했다. 이 사건 관련하여 윤 후보 상대의 수사 청탁이 이뤄진 정황이 조 전 회장 일가의 직접 진술로 처음 제기된 것이다. 윤석열 후보 쪽은 “파주 운정지구 부동산 비리 수사와 관련하여 법과 원칙에 따라 철저히 수사했다”고 밝혀왔다.
대화 중 지인이 “그럼 그때 잡아넣었어야지”라고 하자, 조 전 부사장은 “돈 잔치를 한 거야”라고, 이어 “그때 저걸 봐준 거네”라는 말에는 “그걸 (윤 검사가) 못 봐준다고 한 건데 영감(조남욱 전 회장)이 막 난리쳐서”라고 답한다. 자금 흐름 등을 파악해 ‘윤 검사’도 난색을 표했으나 결국 조 전 회장이 힘썼다는 얘기로 해석된다. 윤석열 후보 상대의 삼부토건 수사 무마 시도 정황은 11시간 대화에서 반복해 설명된다.
조 전 부사장은 “거기(회의록)에 여러가지 돈을 어떻게 빼느니, 이 돈을 어떻게 남기느니 … 그다음에 돈 처리 문제가 쫙 그다음에 쭉 나오는 거지. 그게 증거인데 그걸 얘기하겠냐 나한테?”라고 말하기도 했다.
삼부토건 사주 일가의 청탁이 실제 윤석열 당시 검사에게 어떤 인과적 영향을 미쳤는지는 파악하기 어렵다. 다만 사건 수사 결과, 삼부토건의 사실상 하청에 불과한 동업자(SM종합건설)는 기소된 반면, 사업을 주도한 ‘돈줄’(삼부토건)은 어떤 혐의로도 수사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꾸준히 나온다.
스마일
김은혜 지역구에 김은혜때문에 소상인 지원이 안되고 있다고 현수막 좀 걸어야겠다.
스마일
여론조사기관이 일부러 진보표본을 적게 잡은 것인지
샤이 진보가 전화를 안 받는 것인지
아니면 보수쪽이 전화가 오기를 기다리며
전화통만 붙들고 있는지 알수 없다.
모두 추측일 뿐이다.
표본수에 진보수가 적다면 그 전화를 받고 있지 않는 진보층이
투표장에 나올지 안 나올지 모르는 것이다.
그 전화를 받지 않는 층이 투표장에 나오게 해야한다.
열심히 자기자리에서 자기일을 최선을 다해 해야한다.
나는 애초에 인간에 대한 기대를 접어놓았다. 인류와는 친구가 될 수 없었다. 문득 눈 뜨고 보니 대통령이 깡패 두환인데 무슨 말을 하겠는가? 솔직히 너희들 그때 90 퍼센트 지지했잖아. 체육관선거 타령하지만 보통선거를 해도 전두환은 당선되었을 것이다. 나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다. 삼청교육대, 깡패소탕, 통금해제, 과외금지, 프로야구 만세 불렀잖아. 나는 똑똑히 들었다. 깡패두환 찬양가를. 그렇다. 대한민국은 한낱 깡패 따위에 접수된 것이었다. 그 나라에 그런 인간들이 살고 있었다. 사람 행세를 하고 있었지만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필라델피아 켄싱턴 좀비와 같은 자들이 4천만이었다. 그 어떤 희망도 발견하지 못하고 대한민국에 등을 돌렸다. 다른 나라는 괜찮겠지. 한국만 버리면 돼. 영국은 더 악질이었다. 페이지마다 피칠갑이었다. 신사의 나라? 책 안읽은 놈들이 하는 소리다. 프랑스는 더 학을 떼게 한다. 오만한 놈들이다. 심지어 벨기에놈들까지. 미국은 말할 것도 없다. 등신과 머저리와 강도와 살인자들의 세상이었다. 지구를 포기하라. 한술 더 뜨는 것이었다. 외계에도 갈만한 별이 없잖아. 어쩌라고. 천국과 내세까지 탐색해 보았다. 그곳도 갈만한 곳은 아니었다. 젠장. 그렇다면 답은 하나. 나와 비슷한 무리들을 찾아보는 것이었다. 어쩌면 사람 아닌 자들 중에 하나쯤은 사람이 있지 않겠나. 결코 없었다. 뉴턴은 연금술에 빠져 있었고 아인슈타인은 고집을 피웠고 노이만은 사이코패스였고 파인만은 집요한 설명충이었다. 고흐는 불쌍했고 모짜르트는 놈팽이였고 베토벤의 오만은 콤플렉스였다. 철학자들이라고 행세하는 자들 중에 또라이 아닌 자는 없었다. 오죽하면 공자까지 소환했어야 했겠느냐고. 공자의 비리야 누가 시시콜콜 적어놓았겠는가? 공자가 대단한게 아니라 그만큼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 석가는 거짓말을 너무 많이 했고, 예수는 그냥 무식해서 용감한 촌놈이었고, 노자는 절망을 끝까지 밀어붙인 쓰레기다. 그냥 대중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주는 자들이었다. 소크라테스는 못 생겼다는 이유로 밀렸다. 아테네 학당 그림에도 구석에 쳐박혀 있다.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신 이유는? 못생긴건 답이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다. 안생긴다. 결단코. 진실을 말하는 자는 어디에도 없었다. 인류는 왜 이다지도 비겁하다는 말인가? 하긴 눈 뜨고 뻔히 보고도 지구가 둥글다는걸 못 보는 등신들이니. 태양의 고도에 따라 수면에 빛이 부서지는 그림이 곡면의 반사비율과 정확히 같다는 것은 어린애도 알 수 있다. 평면과 곡면의 빛의 반사가 어찌 같겠는가? 동양인은 5천년간 눈으로 보고도 소실점을 보지 못했고 서양의 고전회화도 온통 몸을 비틀고 있는게 원리가 같다. 문제는 소실점의 문제를 보지 못하면 그런 왜곡을 저지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 그런 문제를 건드린 것이기는 한데 레토릭이 딸려서인지 엉뚱하게 풀었다.
이집트인이 부조를 왜곡해 놓은 것은 그런 고민의 산물이다. 뭔가 고민하면서도 자기가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는 모른다. 꼼수를 써서 우회하면서도 자신이 무엇을 비켜가려 했는지는 모른다. 인간들은 죄다 등신이며 1+1=2가 안 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안되는 애들을 가르쳐봤자 무리데쓰요. 왼쪽이 아니면 오른쪽이다. 이게 안 된다. 왼쪽이 아니면 물타기를 하라. 왼쪽이 아니면 꼼수를 써라. 이러고들 나자빠져 있다. 동양화든 서양화든 꼼수의 집합이다. 하긴 신윤복 그림도 자세히 보면 발을 180도로 벌리고 있고 김홍도는 더러 왼손이 오른손이다. 몸은 정면인데 발을 정면으로 못그리므로 측면으로 그리는 것이다. 도망치지 말고 정면으로 달려들어야 한다. 솔직히 진리를 향해 정면으로 달려드는 인간은 역사에 단 한 명도 없었다. 70억 중에도 없고 과거에도 없었다. 우주가 통째로 비뚤어졌는데 원숭이 사촌들에게 지적질 하면 뭣하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