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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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5]오세
read 6472 vote 0 2010.02.08 (22:53:51)

언제부턴가,
대략 사춘기 이후였던가?
갑자기 내 안에서 어떤 장치가 고장난 느낌.
아니, 장치가 고장난 게 아니라 뭔가 달려 있던 게 그냥 떨어져 나간 느낌.
갑자기 당근과 채찍에 질려 버렸다.

"이걸(별로 하고 싶지 않았던 것들) 하렴, 그러면 이만큼 당근(사랑, 위로, 안정, 친절, 돈, 책, 자격, 귀여움, 기타 등등 이른바 좋은 것들)을 줄 거야"
"안 하면? 이만큼 처벌(체벌, 무시, 따돌림, 비난, 눈흘김 등 별로 받으면 기분 안 좋은 것들) 이 따를 거야."

씨바, 그냥 다 질려 버렸다. 당근과 채찍에 질려 버렸다.
세상 사람 통채로 다 노예로 보였다. 직장인은 월급의 노예. 학생은 성적의 노예. 종교인은 종교의 노예. 지식인은 지식의 노예,
죄다 노예였다.

노예를 부리는 주인이 되는 법도 가르쳐주더라. 성공이라는 이름으로, 출세라는 이름으로, 돈이란 이름으로, 명예란 이름으로 노예보다 초큼 나은 듯 보이는, 그러나 노예와 마찬가지로 <주인>이란 명찰을 단 노예가 되기 위해 다들 신나게 달려 가더라.
미칠것 같았다.

나는 채찍도 당근도 싫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채찍과 당근을 사용하는 것도 싫었다.
그냥 무언가를 할 땐 사랑으로 하고, 열정으로 하고, 하고 싶어서 하고
안 하고 싶으면 안 하면 그만으로 살고 싶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 한다?

고래가 존나 불쌍했다. 겨우 칭찬 받고 하는 짓이 동물원에 갇혀서 관람객들 앞에서 재롱피우기.
처벌도 좆같지만, 당근은 더 좆같았다. 처벌 뒤에 오는 당근의 달콤함에 똥꼬를 파르르떨었던 내 신세가 처량하기 그지 없었다.
비참했다. 나 뿐만 아니라 세상 전체가 비참했다.

종교를 버렸다.
천국이라는 당근? 현세라는 채찍? 씨바 엿먹어라.
해탈이라는 당근? 고라는 채찍? 이것도 엿먹어라
천주교를 떠나 불교에 관심을 가져 보았으나, 마음에 드는 건 선사들의 일갈 뿐. 하품나는 인생은 고타령에 이건 아니올시다.

명상이라는 이름으로 해방감을 만끽하고 싶었다.
그 어딘가에 있을 해방감, 자유, 평화, 사랑, 뭐 이딴 것들을 찾아 하루에 몇 시간을 앉아도 보았다.
그러나 그것도 역시 당근. 당근을 기다리며 앉아 있어도 별 뾰족한 수가 안 나오더라.
이따금 오래 앉아 있다 보면 당근 비슷한 게 나오긴 하는데, 그것도 다 지나가더라.

암튼 그 다음부턴 대체 왜 나는 당근과 채찍을 이토록 싫어하면서도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마음의 구조를 찾아 안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마음이란 것이 안만 봐선 답이 안 나오더라.
그래서 바깥도 보았다.
비로서 관계가 보였다.

나의 생각과 느낌과 행동 사이의 연쇄고리, 그리고 세상과 나와의 연결 고리가 보였다. 비로서 내가 왜 그렇게 생각하고, 왜 그렇게 느끼고, 왜 그렇게 행동하는 지가 보였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알게된 것은 겨우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이었을 뿐.

마음의 고통에서 겨우 좀 벗어낫다 싶으니 이제 세상의 고통이 보이더라.
맙소사. 거대한 채찍과 당근의 굴레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이건 뭐 OTL
도무지 어떻게 풀어가야 할 지 모르겠더라.
안에 불만의 덩어리는 가득한데, 이걸 어찌 풀어야 할 지 모르겠더라.

그러다 구조론을 만났다. 비로서 언어를 발견한 느낌. 벙어리가 말문을 튼 느낌.
채찍과 당근이 아니라 깨달음과 사랑, 그리고 완전성으로 인간을 움직일 수 있다는 확신.
그러한 확신이 내 안에 있었고, 구조론 속에도 있었다.

내가 꿈꾸는 인간은 당근과 채찍에 길들여지지 않은 인간
신과 친구먹고, 친구는 곧 동등한 존재이니, 사람이 곧 신, 사람이 곧 하늘.
매 순간 스스로가 별 수 없는 존재임을 직면하면서도 일신우일신, 역사가 진보함을, 세상이 변화할것임을, 불필요한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음을 아는 사람.

문득 떠올라 글을 썼다.
채찍과 당근.
누군가 나에게 채찍과 당근을 내미면서 나를 길들이여 했을 때 느낀 그 불쾌함을 떠올리며 이 글을 썼다.
나 또한 여전히 다른 사람들에게 채찍과 당근을 번갈아 내밀어 조종하려들때가 있음을 뒤돌아보며 이 글을 썼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0.02.08 (23:31:17)

학교라는델 갔소.
선생님과 아이들이 짜고 하는 대본없는 연극.
나는 금방 패턴을 읽었소.
선생님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이고, 문교부가 요구하는 것은 또 무엇인지.
어떤게 요령이고, 어떤게 모범이고, 어떤게 안전한 틀인지.
그렇게 망가지고 말았던 것이오.
패턴을 읽는 순간 패턴에 지배되고 마는 것.
요령을 알았다고 의기양양해 하지만 중독되고 마는 것.
원시의 건강함을 잃은 것.
자유로운 사고를 포기하고 닫힌 사고를 하게 되는 것.
학교 교육이라는 것은 통째로 패턴이오.
교육된다는 것은 곧 인간이 망가진다는 뜻이오.

교육받지 않고 들판에서 마구 뛰논다 해도 역시 패턴이 있소.
거기에는 본능의 패턴, 두려움의 패턴이 있소.

이쪽과 저쪽 중의 어느 하나에 가담하는 식으로는 승산이 없소.
비약하지 않으면 안 되오.

야생에서는 두려워 하고 도망가는 패턴을 배울 뿐이고
제도권에서는 안전한 규범의 방패막이 뒤에 숨어 남의 것을 등쳐먹는 쫀쫀한 패턴을 배울 뿐이고
야생에서 야생을 극복해야 하고
제도권에서 제도권을 극복해야 하오.

프로필 이미지 [레벨:7]鄭敬和

2010.02.09 (02:41:40)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레벨:17]눈내리는 마을

2010.02.09 (05:48:58)

야생과 제도권.

둘 사이의 긴장.
프로필 이미지 [레벨:22]id: ░담░담

2010.02.09 (10:06:31)

노예

노예의 출현은 인류가 야생의 포식자를 정복한 결과요.
다른 동물은 가지지 못한(알지도 못하는) 거대한 서식지를 확보하였소.

두려움이 끝났다 잔치를 했소.
잔치가 끝나자 더 큰 두려움이 인간을 덮쳤소.

다른 인간들의 존재.
서식지를 두고 싸워야하는 다른 인간들이 있었소.

두려움이 인류를 덮쳤고
그들은 서로를 노예로 만드는 설정에 휩쓸리고 말았소.
[레벨:12]부하지하

2010.02.10 (02:17:15)

 고수가 하수를 다루는 법이 하수 하자는데로 하고서 이기는 수밖에 없는데, 가능하기땜시 고수. 고수와 하수가 만날일이 없소. 긴장이 없는 헐렁한 일들은 도무지 신통하지가 않소. 관객도 없고 이야기도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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