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 위구르 지역의 고분에서 발견된 <복희 여와도>
흥미있는 그림이다.
배경은 우주, 해와 달과 별이 보인다.
여신과 남신이 마주 보고 있고, 그 하체는 뱀처럼 서로 꼬여 있다.
여신의 손에는 규(콤파스), 남신의 손에는 구(자)가 각각 들려있다.
이 벽화는 우주의 창조원리를 상징한다.
神이 우주를 창조할 때 대충 "있으라,있으라" 이런 식이 아니었단 것을 뜻한다.
작업 좀 한 것이다. 아래 쪽에 보면 두 개를 배배 꼬은 흔적이 보인다. 일을 했다는 것이다. 천지공사.
무엇과 무엇을 배배 꼬아서 이 세상을 창조했을까.
바로 콤파스와 자이다. 인문학적으로 말하면 녀와 남. 철학적으로 말하면 음과 양.
공학적으로 말하면 콤파스와 자이며, 기하학적으로 말하면 원과 직선이다.
창세의 천지공사에 있어 먼저 알아야 될 것이 있다.
먼저 神은 순수추상이며 신의 천지공사 또한 순수추상이라는 것.
형이상학, 형태가 없다는 것. 얼굴은 있는데 눈,코 ,입, 귀가 없다는 것..
원래 콤파스엔 연필이 없고, 자에는 수치가 없다.
노끈이라도 좋다..그게 콤파스다..작대기 하나면 그게 자다.
아니, 순수추상에서는 그것도 필요없다. 개념만 있으면 되니깐..
그러나 개념이라고 `마구 있으라~. 이건 아니다.
반드시 콤파스의 개념과 자의 개념이 필요하며, 또한 이 둘외에 다른 것은 잡스런 것이다.
그렇다면 콤파스 하나와 자 하나를 들고 어떻게 이 항하사같이 무수하고 화려한 세상을 만들었을까.
분할이다.
그게 정답이다. 콤파스와 자로 할 수 있는 것은 <나누기> 뿐이다.
그렇다. 세상은 나누는 방식으로 창조된 것이다.
나눌 것 같으면 왜 칼이 아니고 콤파스와 자인가.
칼로 치면 정확하지 않으며 또한 키스가 나기 때문에 흡집이 생겨버린다.
즉, 완전성에 마이나스가 오기 때문에 반드시 무형의 콤파스와 무형의 자를 사용해야만 하는 것이다.
===============
세상은 나누어서 탄생된 것이다.
정확히, 세상은 <하나>를 나누어서 지금의 형태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란 하나, 둘, 셋의 하나가 아니다. 원형의 하나다.
우리가 말하는 하나,둘,셋은 사실 정확히 말하면 1/원형,2/원형,3/원형이다.
왜? 모든 것은 원형을 나눈 것이다.
한 사람은 한 사람이 아니라 ..그때의 1은 60억분의 1사람이다.
모든 것은 분수다. 그러나 분수를 모르고 산다.
분수가 아닌 것은 태초의 신, 그 원형 하나 뿐이다.
테레비는 테레비가 아니라 (테레비/원형)이다. 분수다. 나누어 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누는가.
=================
종이를 둘로 나누어 보라..단, 눈금자가 없다.
가능하다..둘로 접어서 나누면 된다.
그러나 엿을 눈금자없이 딱 반으로 동생과 나누어 먹어 보라.
반드시 나누고 난 뒤 싸운다. 왜? 정확하지 않으니깐..
눈금자가 없을 때 둘로 나누는 방법은?
반드시 접어야 한다..접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접는 것...그것이 콤파스다.(이 쪽을 한번 찍고 저 쪽을 또 한번 찍는다. 왕복.)
접으면 세로 줄이 생긴다..그것이 자다. (자는 어쩌면 없어도 좋으나 형태화에 필요하다...창조니깐)
콤파스로 막대기의 절반을 찾는 방법도 그러하다.
먼저 콤파스의 다리를 벌려 막대기의 양 꼭지점을 찍는다.
그리고 한 번은 이쪽의 기준점에서 원을 돌리고 또 한번은 저쪽을 기준점으로 원을 돌리면
두 원은 막대기 위 아래 두 곳에서 두 점으로 교차된다.
그 두 교차점을 지나는 일직선을 그으면 막대기의 절반과 딱 맞닥뜨린다.
(나는 시간이란 놈 이 시점에서 발생했다고 본다.
즉, 왕복의 시점..콤파스로 원을 그릴 필요는 없고 양쪽에서 벌려와도 된다.
똑같은 조건으로 뚜벅뚜벅 걸어오면 중간에서 만난다.)
=================
위에서 콤파스가 하는 이상한 쇼를 보았다.
근데 왜 하지? 엿을 동생과 똑같이 나누기 위해서?
아니다 이건 천지창조의 이야기다.
아무 것도 없는 것에서 무엇을 만드는 이야기다.
콤파스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바로 자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태초에 콤파스와 자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콤파스만 있었던 것이다..콤파스가 자를 생산하는 과정이 바로 나누기다.
콤파스의 그런 정확한 분할법으로 태초의 눈금..이 생겨나고 그 눈금이 곧 1,2,3 이며
그 1,2,3이 곧 만물만생으로 퍼져 나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 마구 탄생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원형 하나를 분할했기 때문에 늘어난 것은 아무 것도 없다..그대로다..
마구마구 엄청엄청 늘어났지만 전혀 늘어나지 않은 것..
이것이 바로 질량보존의 법칙, 또는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란 것이다.
흔히,공이다,무다..하는 말도 이런 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과정은 있지만 실제론 분할이지 늘어나거나 준 것이 아니란 것이다.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
그것 역시 분할의 작업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부분의 합은 전체보다 작다? 역시 같은 말이다.
창조는 분할만 했지 그 역은 없다(존재론). 왜?
1, 그럴 필요가 없으니깐.
2, 분할에는 에너지가 투입되지 않는다..순수추상이다.
그러나 역으로 분할된 것을 붙이려 한다면 ..밥풀을 어디서 구해와야 할 것 아니냐..
그 밥풀을 어디서 구할 것이냐..이미 질량보존의 법칙..엄연히 있는데..
콤파스로 자를 만들 순 있어도 자를 이용해 콤파스를 만들 순 없다.
만약 이 역이 가능하다면 태초는 하나가 아니라 두 제국이 존재했어야 한다.
태초에 하나가 창조를 시작한 것이 아니라 둘이 시작한 것이다..
시스템이 둘이어야 한다..만약 그렇다면 질서란 말은 아예 사용하면 안된다.
개판이다.사탄아 물러가라.
그리고 작용반작용의 법칙?
구조론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이다.
구조의 저울..구조의 균형..구조의 목,구조의 미학.전부 여기에 해당된다.
모든 스토리는 여기서 나온다.
길어질 것이므로 다음에..자분자분..
팁.
종이를 반으로 접으면 접는 것과 접힌 자국은 동시성이다.
그러나 접는 것이 먼저고 접히는 나중이다.
접는 것이 작용이고 접힌 자국은 반작용이다.
고로 콤파스와 자는 작용반작용 사이인데..누나가 먼저다.
======
창조원리는 자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꼭 구조론이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자주 구조를 살펴야 하듯..
종교인이 아니라도 근원에 대한 그리움을 매순간 놓쳐서는 안될 것이다.
지금도 창조는 계속되고 있고 구조는 살아 움직이고 있다.
여기까지..
흥미있는 그림이다.
배경은 우주, 해와 달과 별이 보인다.
여신과 남신이 마주 보고 있고, 그 하체는 뱀처럼 서로 꼬여 있다.
여신의 손에는 규(콤파스), 남신의 손에는 구(자)가 각각 들려있다.
이 벽화는 우주의 창조원리를 상징한다.
神이 우주를 창조할 때 대충 "있으라,있으라" 이런 식이 아니었단 것을 뜻한다.
작업 좀 한 것이다. 아래 쪽에 보면 두 개를 배배 꼬은 흔적이 보인다. 일을 했다는 것이다. 천지공사.
무엇과 무엇을 배배 꼬아서 이 세상을 창조했을까.
바로 콤파스와 자이다. 인문학적으로 말하면 녀와 남. 철학적으로 말하면 음과 양.
공학적으로 말하면 콤파스와 자이며, 기하학적으로 말하면 원과 직선이다.
창세의 천지공사에 있어 먼저 알아야 될 것이 있다.
먼저 神은 순수추상이며 신의 천지공사 또한 순수추상이라는 것.
형이상학, 형태가 없다는 것. 얼굴은 있는데 눈,코 ,입, 귀가 없다는 것..
원래 콤파스엔 연필이 없고, 자에는 수치가 없다.
노끈이라도 좋다..그게 콤파스다..작대기 하나면 그게 자다.
아니, 순수추상에서는 그것도 필요없다. 개념만 있으면 되니깐..
그러나 개념이라고 `마구 있으라~. 이건 아니다.
반드시 콤파스의 개념과 자의 개념이 필요하며, 또한 이 둘외에 다른 것은 잡스런 것이다.
그렇다면 콤파스 하나와 자 하나를 들고 어떻게 이 항하사같이 무수하고 화려한 세상을 만들었을까.
분할이다.
그게 정답이다. 콤파스와 자로 할 수 있는 것은 <나누기> 뿐이다.
그렇다. 세상은 나누는 방식으로 창조된 것이다.
나눌 것 같으면 왜 칼이 아니고 콤파스와 자인가.
칼로 치면 정확하지 않으며 또한 키스가 나기 때문에 흡집이 생겨버린다.
즉, 완전성에 마이나스가 오기 때문에 반드시 무형의 콤파스와 무형의 자를 사용해야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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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나누어서 탄생된 것이다.
정확히, 세상은 <하나>를 나누어서 지금의 형태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란 하나, 둘, 셋의 하나가 아니다. 원형의 하나다.
우리가 말하는 하나,둘,셋은 사실 정확히 말하면 1/원형,2/원형,3/원형이다.
왜? 모든 것은 원형을 나눈 것이다.
한 사람은 한 사람이 아니라 ..그때의 1은 60억분의 1사람이다.
모든 것은 분수다. 그러나 분수를 모르고 산다.
분수가 아닌 것은 태초의 신, 그 원형 하나 뿐이다.
테레비는 테레비가 아니라 (테레비/원형)이다. 분수다. 나누어 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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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를 둘로 나누어 보라..단, 눈금자가 없다.
가능하다..둘로 접어서 나누면 된다.
그러나 엿을 눈금자없이 딱 반으로 동생과 나누어 먹어 보라.
반드시 나누고 난 뒤 싸운다. 왜? 정확하지 않으니깐..
눈금자가 없을 때 둘로 나누는 방법은?
반드시 접어야 한다..접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접는 것...그것이 콤파스다.(이 쪽을 한번 찍고 저 쪽을 또 한번 찍는다. 왕복.)
접으면 세로 줄이 생긴다..그것이 자다. (자는 어쩌면 없어도 좋으나 형태화에 필요하다...창조니깐)
콤파스로 막대기의 절반을 찾는 방법도 그러하다.
먼저 콤파스의 다리를 벌려 막대기의 양 꼭지점을 찍는다.
그리고 한 번은 이쪽의 기준점에서 원을 돌리고 또 한번은 저쪽을 기준점으로 원을 돌리면
두 원은 막대기 위 아래 두 곳에서 두 점으로 교차된다.
그 두 교차점을 지나는 일직선을 그으면 막대기의 절반과 딱 맞닥뜨린다.
(나는 시간이란 놈 이 시점에서 발생했다고 본다.
즉, 왕복의 시점..콤파스로 원을 그릴 필요는 없고 양쪽에서 벌려와도 된다.
똑같은 조건으로 뚜벅뚜벅 걸어오면 중간에서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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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콤파스가 하는 이상한 쇼를 보았다.
근데 왜 하지? 엿을 동생과 똑같이 나누기 위해서?
아니다 이건 천지창조의 이야기다.
아무 것도 없는 것에서 무엇을 만드는 이야기다.
콤파스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바로 자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태초에 콤파스와 자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콤파스만 있었던 것이다..콤파스가 자를 생산하는 과정이 바로 나누기다.
콤파스의 그런 정확한 분할법으로 태초의 눈금..이 생겨나고 그 눈금이 곧 1,2,3 이며
그 1,2,3이 곧 만물만생으로 퍼져 나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 마구 탄생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원형 하나를 분할했기 때문에 늘어난 것은 아무 것도 없다..그대로다..
마구마구 엄청엄청 늘어났지만 전혀 늘어나지 않은 것..
이것이 바로 질량보존의 법칙, 또는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란 것이다.
흔히,공이다,무다..하는 말도 이런 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과정은 있지만 실제론 분할이지 늘어나거나 준 것이 아니란 것이다.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
그것 역시 분할의 작업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부분의 합은 전체보다 작다? 역시 같은 말이다.
창조는 분할만 했지 그 역은 없다(존재론). 왜?
1, 그럴 필요가 없으니깐.
2, 분할에는 에너지가 투입되지 않는다..순수추상이다.
그러나 역으로 분할된 것을 붙이려 한다면 ..밥풀을 어디서 구해와야 할 것 아니냐..
그 밥풀을 어디서 구할 것이냐..이미 질량보존의 법칙..엄연히 있는데..
콤파스로 자를 만들 순 있어도 자를 이용해 콤파스를 만들 순 없다.
만약 이 역이 가능하다면 태초는 하나가 아니라 두 제국이 존재했어야 한다.
태초에 하나가 창조를 시작한 것이 아니라 둘이 시작한 것이다..
시스템이 둘이어야 한다..만약 그렇다면 질서란 말은 아예 사용하면 안된다.
개판이다.사탄아 물러가라.
그리고 작용반작용의 법칙?
구조론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이다.
구조의 저울..구조의 균형..구조의 목,구조의 미학.전부 여기에 해당된다.
모든 스토리는 여기서 나온다.
길어질 것이므로 다음에..자분자분..
팁.
종이를 반으로 접으면 접는 것과 접힌 자국은 동시성이다.
그러나 접는 것이 먼저고 접히는 나중이다.
접는 것이 작용이고 접힌 자국은 반작용이다.
고로 콤파스와 자는 작용반작용 사이인데..누나가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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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원리는 자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꼭 구조론이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자주 구조를 살펴야 하듯..
종교인이 아니라도 근원에 대한 그리움을 매순간 놓쳐서는 안될 것이다.
지금도 창조는 계속되고 있고 구조는 살아 움직이고 있다.
여기까지..
위 본문과 상관없이 하는 말
콤파스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같다'는 것이오.
원을 그릴 때도 사용하지만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은 같은 크기를 대량 복제하는 것.